짐 릴랜드

이름제임스 리차드 "짐" 릴랜드 (James Richard "Jim" Leyland)
생년월일1944년 12월 15일
국적미국
출신지오하이오 주 페리스버그
포지션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63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팀- [1]
지도자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 (1982~1985)
피츠버그 파이러츠 감독 (1986~1996)
플로리다 말린스 감독 (1997~1998)
콜로라도 로키스 감독 (1999)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감독 (2006~2013)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

1 개요

메이저리그가 자랑하는 명장 중 하나.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시절을 거쳐 지도자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며, 피츠버그 파이러츠의 에서는 배리 본즈와 함께 피츠버그의 90년대 초반 최후의 전성기[2]를 이끌었으며 신생팀 플로리다 말린스를 창단 4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꼴랑이[3]라고 일컬어지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리그를 호령하는 강팀으로 탈바꾼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2 선수 경력

1963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계약을 맺고 1964년부터 1970년까지 타이거즈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지만 끝끝내 메이저리그 승격에는 실패했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포수. 마이너리그 통산 타율은 .222(...) ㅋㄲㅈㅁ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선수생활 마지막 시즌인 1970년부터 플레잉 코치[4]로 활동하기 시작한 릴랜드는 1972년 타이거즈 산하 싱글 A 마이너리그 팀인 클린턴 파일러츠(Clinton Pilots)의 감독이 되고 1979년에는 트리플 A 팀인 에반스빌 트리플레츠(Evansville Triplets)의 감독직을 맡아 1979년과 1981년 두 차례 팀을 지구 우승으로 이끈다. 이런 릴랜드의 능력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또다른 감독계의 레전드 토니 라루사. 1982년 라루사는 릴랜드를 당시 자신이 맡고 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3루 주루 코치로 임명한다. 1983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던 릴랜드는 이후 1986년 피츠버그 파이러츠의 33대 감독으로 선임된다.

3.2 피츠버그 파이러츠

1986년부터 1996년까지 11시즌을 보내면서 배리 본즈, 제이 벨, 팀 웨이크필드, 바비 보니야, 앤디 밴슬라이크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릴랜드의 피츠버그는 내셔널리그의 강자로 군림했다. 특히 1990년부터 1992년까지는 3년 연속 NL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다만 NLCS에서 번번히 바비 콕스가 이끄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게 발목을 잡혔다.[5] 그렇지만 릴랜드는 지휘력을 인정받아 1990년과 1992년에 두 차례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6].

하지만 1990년대 중반 피츠버그의 구단주가 바뀌고, 구단주가 파이어세일을 감행(...)하면서 피츠버그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결국 릴랜드도 1996 시즌 종료 후 사임한다. 여담이지만 피츠버그는 이 때 구단주의 파이어세일과 더불어 2000년대 단장을 맡은 데이브 리틀필드의 무지막지한 삽질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무려 20년 동안이나 승률이 5할 밑이었던 대 암흑기를 거쳐 2013년 이후에야 부활한다.

3.3 플로리다 말린스 ~ 콜로라도 로키스

이런 릴랜드를 모셔간 팀이 바로 창단 이후 5년만의 우승을 노리고 있던 플로리다 말린스. 그리고 릴랜드는 1997년 월드 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기대에 부응한다. 창단 이후 최단기간 우승.[7]하지만 이번에도 구단주의 파이어세일이 시작된다. 팀의 주축들이 시즌 중에 줄줄이, 그것도 같은 지구의 라이벌에게 팔려나가는 상황 속에서 릴랜드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결국 1998 시즌을 54승 108패라는 처절한 성적을 거둔 이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다.[8] 이듬해인 1999년 콜로라도 로키스와 2년 계약을 맺었지만 77승 85패로 사실상 지구 최하위[9]를 기록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다시 물러난다.

3.4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이후 한동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스카우터 직을 맡으여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던 릴랜드는 2005년 10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차기 감독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첫 해인 2006년 95승 77패라는 성적으로 디트로이트를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 릴랜드는 플레이오프에서 양키스, 오클랜드를 연파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은사인 토니 라루사의 카디널스에게 막히며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그의 지도력은 여전히 인정받아 92년 이후 14년만에 올해에 감독상을 다시 수상하는 영예를 누린다. 양 대 리그에서 모두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통산 7번째 인물이기도 했다. 2007년 디트로이트는 그와의 계약을 2009년까지로 2년 연장하는데. 돈트렐 윌리스미겔 카브레라까지 영입하면서 야심차게 준비한 2008년 제대로 망했다. 하지만 데이브 돔브로스키 단장은 여전히 릴랜드를 신뢰했고 2009년 디트로이트는 지구 2위를 차지하면서 부활의 기미를 보인다. 이에 다시 2011년까지 계약 2년 연장이라는 결과도 얻었다. 2010년에도 아깝게 지구 2위를 차지한 릴랜드 휘하의 디트로이트는 2011년 다시 95승 67패를 기록하며 5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ALCS에서 패하면서 월드시리즈 진출은 좌절되고 말았다. 이듬해인 2012년 감독 통산 1600승을 기록하면서 토미 라소다를 제친 릴랜드는 다시 팀을 포스트시즌에 이끌고 드디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나 싶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힘없이 4전 전패를 당하고 만다. 마이클 일리치 옹 피꺼솟 월드시리즈 내내 1할6푼5리라는 극악의 빈타에 시달린 타선이 원흉.[10] 2013시즌에도 다시 미네소타의 도전을 물리치고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3연패에 성공했지만 ALCS에서 보스턴에게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이 시즌 종료 후 릴랜드 감독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단장 겸 CEO인 데이브 돔브로스키의 특별 보좌 역을 맡고 있다.

3.5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 WBC의 감독으로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조 토레 감독과 마찬가지로 감독 커리어의 마지막이 될 전망.

4 여담

  • 생긴 거에서 여러모로 클로저 이상용의 김상덕 게이터스 감독과 비슷하다. 콧수염이나 약간의 똥배나.. 아마 최훈이 릴랜드 감독을 보고 김상덕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해낸듯.
  • 현 뉴욕 메츠 감독인 테리 콜린스 감독이 릴랜드 감독의 대표적인 제자로 오랫동안 릴랜드 밑에서 경험을 쌓았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릴랜드 사단' 출신.
  • 피츠버그 감독직에서 물러난 지가 벌써 20년인데 그 기간에도 쭉 피츠버그에 살았다고 한다. 지금의 부인을 만난 곳이 피츠버그라서 애착이 크다고 한다.
  1. 선수로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해보지 못했다.
  2. 최후의 전성기라고 하기엔 2013년 이후 피츠버그가 암흑기를 벗어던졌지만...
  3. 뭐 정규리그 100패는 우습고, 혼자 20패를 당하는 선발투수까지 있을 정도이니...
  4. 플레잉 코치라기엔 실질적으로 코치였다. 선수로 1970 시즌에 딱 2게임 나왔으니.
  5. 1991년과 1992년은 애틀란타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고 말았다. 정작 애틀란타도 월드시리즈 가서 번번히 패한게 함정.
  6. 올해의 감독상 투표에서 2위도 두 차례나 했다.
  7. 93년 창단 이후 4년만의 우승. 근데 불과 4년만인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이 기록을 깨버린다. 1998년 창단 이후 2001년 우승
  8. 시즌 중에 파이어세일을 할 때 '빡친 릴랜드가 사임을 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기자 사이에서 돌았지만 그래도 꾹 참고 정규시즌까지는 지휘를 했다고 한다.
  9. 신생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감안하면 사실상 최하위이나 마찬가지인 셈.
  10. 아닌게 아니라 정규리그 162경기 동안 딱 2번의 무득점 경기를 했던 디트로이트 타선이 월드시리즈에서만 2번의 무득점 경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