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봉
뉴욕 메츠 No.10 | |
테리 리 콜린스 (Terry Lee Collins) | |
생년월일 | 1949년 5월 27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미시건 주 미들랜드 |
포지션 | 내야수 (2루수, 유격수, 3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71년 드래프트 19라운드 (전체 461번, PIT) |
소속팀 | 피츠버그 파이리츠 산하 마이너 (1971~197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1974~1978)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1980)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1984) |
지도자 | 피츠버그 파이리츠 불펜코치 (1992~1993)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 (1994~1996) 애너하임 에인절스 감독 (1997~1999)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코치 (2001) 오릭스 버팔로스 감독 (2007~2008) 뉴욕 메츠 감독 (2011~) |
1 개요
2 커리어
미시건 주 출신으로, 이스턴 미시건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드래프트에 나와 전체 461번으로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지명을 받았다. 지명된 후 피츠버그 산하 마이너와 다저스 산하 마이너에서 10년간 뛰었으나 메이저에는 올라오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통산 671경기 출장에 타율 .251을 기록하였다.
은퇴 후 1981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1992년 피츠버그의 불펜코치로 선임되어 1993년 시즌까지 활동하였다. 1993년 시즌 이후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 아트 하우(Art Howe)가 해임되자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가 3시즌간 감독으로 있던 휴스턴은 3시즌 모두 2위를 마크하였다.
1996년 시즌 후 그는 휴스턴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얼마 되지않아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감독으로 채용되었다. 애너하임에서의 처음 두 시즌은 2위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1999년 시즌에는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부진하였고, 결국 항명파동까지 터지는 최악의 흑역사를 남기며 29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자진사임하였다.[1]
2001년 시즌에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코치를 맡았고, 2006년 시즌 후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성적 부진으로 인해 2008년 5월 21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교류전 후 자진사임하였다. 오릭스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중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10년 시즌에는 뉴욕 메츠 마이너 코디네이터로 일하였고, 2010년 11월 23일 메츠의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1년 9월 27일 클럽 옵션이 실행되었고, 2013년 9월 메츠와 2년 연장계약을 맺었다. 2014년 12월 23일 기준 메츠에서의 성적은 304승 344패 승률 .469.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꽤 좋지 않은 편. 전략적으로 뛰어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혹사 논란이 상당한 편이다. 맷 하비의 토미존 수술을 비롯, 카를로스 토레스의 13-14시즌 혹사와 15시즌 폭망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평가이며, 15시즌 현재 마무리 제리스 파밀리아 역시 14시즌 부터 15시즌 정규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까지 엄청나게 굴리고 있다[2]. 결국 디비전 시리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도 거의 매경기 등판에 2이닝, 1+이닝 세이브를 했던 파밀리아는 월드시리즈에서 3블론이라는 역대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5차전처럼 수비수의 실책으로 망한 경기도 있지만 콜린스 감독 역시 6점차에서도 파밀리아를 내보내는 등 패배에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 :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다. 파밀리아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