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그 자체인, 뉴욕 양키스 감독 시절.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조 토레 | |
헌액 연도 | 2014년 |
헌액 방식 | 베테랑 위원회(Veteran's Committee) 선정 |
이름 | 조셉 폴 토레 (Joseph Paul Torre) |
생년월일 | 1940년 7월 18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뉴욕 브루클린 |
포지션 | 포수, 1루수, 3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6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MLN)[1] |
소속팀 | 밀워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60~1968)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9~1974) 뉴욕 메츠 (1975~1977) |
지도자 | 뉴욕 메츠 감독 (1977~198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 (1982~198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1990~1995) 뉴욕 양키스 감독 (1996~200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 (2008~2010) |
뉴욕 양키스의 영구결번 | ||||||
1 | 2 | 3 | 4 | 5 | 6 | 7 |
빌리 마틴 | 데릭 지터 | 베이브 루스 | 루 게릭 | 조 디마지오 | 조 토레 | 미키 맨틀 |
8 | 9 | 10 | 15 | 16 | 20 | 23 |
빌 디키 & 요기 베라 | 로저 매리스 | 필 리주토 | 서먼 먼슨 | 화이티 포드 | 호르헤 포사다 | 돈 매팅리 |
32 | 37 | 42 | 44 | 46 | 49 | 51 |
엘스턴 하워드 | 케이시 스텡겔 | 마리아노 리베라 & 재키 로빈슨 | 레지 잭슨 | 앤디 페티트 | 론 기드리 | 버니 윌리엄스 |
197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 |||||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 → | 조 토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
1 소개
미국의 前 야구선수, 야구감독.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시즌 동안 뉴욕 양키스의 지휘봉을 잡았으며, 토레가 지휘하는 동안 양키스는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적이 없다. 총 10차례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으며, 6번의 리그 챔피언과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1996, 1998-2000[2])를 획득했다. 통산 .605의 승률과 2,326승을 기록한 명장이다.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을 획득했다.
2 선수 시절
메이저리그가 국내에 알려질 때는 이미 뉴욕 양키스의 감독으로서 알려져서 선수 시절 명선수라는 이미지는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은 조 토레는 선수로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였다. 1960년에 데뷔, 통산 3할에 가까운 타율 (.297)과 2,342개의 안타, 통산 9회의 올스타, 1971년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고 통산 타율-출루율-장타율 .297-.365-.452를 기록한 강타자이다.
특히 포수로서는 자니 벤치라는 강자에 가려서 2인자 이미지였지만 공격형 포수로서 손꼽히는 선수이다. 1971년 30세 시즌부터는 3루수로 전향해 MVP를 따는 등 강타자로 커리어를 연장했고, 1977년 36세의 나이에 뉴욕 메츠에서 은퇴한다. 선수 시절 4연타석 병살타라는 흠좀무(...)한 경기를 한 적이 있다.[3]
3 지도자 시절
3.1 뉴욕 메츠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시절
1977년부터 뉴욕 메츠의 선수 겸 감독이 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당시의 토레는 별 볼일 없는 성적을 거두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메츠를 떠나 친정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도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러니까 브레이브스 레전드인 필 니크로와 데일 머피가 브레이브스 시절 유일하게 가을야구를 했던 1982년에 플레이오프에 한 번 밖에 나가질 못 했으니 안습하긴 마찬가지. 그래서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일종의 징크스를 따라가나 싶었는데...
3.2 뉴욕 양키스 감독 시절
제국의 황제
1996년 뉴욕 양키스와 감독 계약을 하더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뉴욕 양키스가 제국을 건설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특히 감독들 중 보기 드물게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앤디 페팃, 버니 윌리엄스,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마리아노 리베라 등으로 이어지는 골든 제너레이션을 데이빗 콘, 데이빗 웰스, 폴 오닐 등의 베테랑들과 잘 규합하여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4]와 4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끄는 데에 있어 중심이 되었다. 통산 우승 커리어는 6번 진출 중 4번 우승인데 모두 양키 시절이다.
2007년에는 선수로서 2천승, 감독으로서도 2천승 (총 4천승 이상)을 거두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역시 양키빨
양키스빨이라고 이야기를 듣지만, 조 토레 이전 양키스는 제대로 혼란기였다. 1981년 디비젼 1위를 한 이후로 양키스는 10년이상 플레이오프에 나간 적이 없고, 90년대 초반은 오히려 암흑기였다. 7개팀이 있던 당시 디비젼 기준으로 1982년부터 1992년까지 5-3-3-2-2-4-5-5-7-5-4 위를 차지했다. 당연히 플레이오프는 단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러니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서 임기를 채운 감독이 없다. 이 기간 동안 감독은 밥 레몬 - 진 미카엘 - 클라이드 킹(이상 1982) - 빌리 마틴(1983) - 요기 베라(1984-85) - 빌리 마틴(1985) - 루 피넬라(1986-87) - 빌리 마틴(1988) - 루 피넬라(1988) - 달라스 그린(1989) - 벅키 덴트(1989-1990) - 스텀프 메릴(1990-91)로 바뀌었다[5].
이런 감독 잔혹사를 최초로 끊고 4년간 감독직을 유지하면서[6] 양키스를 플레이오프로 보낸 인물이 벅 쇼월터이지만 쇼월터도 1995년[7] 15년만에 최초로 양키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8] 다음에 바로 잘렸다.
그리고 양키스 감독에 오른 인물이 조 토레이다. 15년만에 플레이오프를 진출시킨 감독을 잘라버린 보스 밑에서 감독이 되었으니, 감독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팀 장악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 시기에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진출한 시기와 거의 겹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언급이 있었는데 주요 관심사는 조 토레가 얼마나 오래 감독자리를 유지할 것인가였다. 이 상황에서 조 토레는 부임 첫해 1996년 월드 시리즈를 우승시켰고, 이듬해 디비젼 시리즈 탈락을 거쳐서, 1998~2000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록한다. 4연패도 2001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마리아노 리베라가 좀만 더 버텨줬다면 불가능이 아니었다. 양키스에서, 특히 조지 스테인브레너 아래서 12년 연속 감독 자리 유지하려면 보통 인물로는 무리란 이야기다.
3.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 시절
하지만 2008년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 문제로 양키스와 싸우다 영 좋지 않게 헤어졌고[9],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감독으로 부임한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다저스의 기강을 확실하게 잡았고 그 결과 2년 연속으로 다저스를 지구 챔피언으로 만든다. 그러나 다시금 우승반지를 획득하는데는 실패한다. 2010년 시즌을 끝으로 후배이자 제자인 돈 매팅리에게 감독직을 물려준 다음 사임한다.
다만 감독생활 내내 불펜 혹사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대단했던 감독이다. 대표적인 예가 불펜투수 주제에 한 시즌에 100이닝을 소화한 적이 두 번이나 있는 스캇 프락터로, 프락터는 토레 감독의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12년 크보의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프락터가 양아들 소리를 들었을까….
4 은퇴 후
은퇴 후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운영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1년 말~2012년 초에 있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인수전에 참가한다고 하여 관심을 모았지만, 찌질한 구단주 맥코트와 싸우는 게 싫어서 도중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결국 최종적으로 스탠 카스텐-매직 존슨 컨소시엄에 인수되었다.
2012년에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하지만 "선수를 무사히 구단에 돌려보내는 것이 최대의 일"이라는 발언을 하고 영 좋지 않은 투수교체와 선수기용 등으로 많이 까였으며 미국은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좆또레
2013년 12월 9일 바비 콕스, 토니 라 루사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만장일치로 헌액된 세 감독의 승수가 총 7558승(...)으로 웬만한 메이저리그 팀의 통산 승수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고 투표에 나올 선수들의 면면도 역대급[10]이라 2014년 치러질 헌액식은 사상 전무후무한 별들의 잔치가 될 것이란게 중론이다.
뉴욕 양키스에서 감독을 하면서 6번을 달아서 한 자리수 등번호를 받은 인물로는 2번을 단 데릭 지터와 함께 생존해 있는 사람.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되면서 2014년 8월 23일자로 그의 등번호 6번이 양키스에서는 이제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이제 201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데릭 지터의 등번호 역시 영구결번이 되면 앞으로 뉴욕 양키스에서 한 자리 등번호는 달 수가 없다.- ↑ 1965년 시즌 후 밀워키 브레이브스는 애틀랜타로 연고를 이전했다.
- ↑ 메이저리그 역사상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감독은 조 토레를 포함해서 케이시 스텡겔(1949-1953, 뉴욕 양키스), 조 매카시(1936-1939, 뉴욕 양키스)까지 세 명 뿐이다. 그 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딕 윌리엄스(1972-1973), 알 닥(1974) 감독 체제 하에 월드시리즈 3연패를 차지한 적 있다.
- ↑ 참고로 한 경기 최다 병살타 타이 기록이기도 하다. 조 토레 외 한 경기 병살타 4개를 친 선수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구스 고슬린과 빅터 마르티네즈가 있다.
- ↑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월드시리즈 3연패는 네번밖에 안나온 대기록이며, 특히 최소 11경기를 승리해야 하는 디비젼-챔피언쉽-월드 시리즈 체제가 확립된 1995년 이후는 유일무이하다.
- ↑ 빌리 마틴의 경우는 이 이전 5년에도 2번이나 감독에 임명되었다가 잘렸기 때문에 이 시기와 합치면 5번이나 임명과 해임을 반복했다.
- ↑ 이건 조지 스테인브레너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3년간 영구제명으로 추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사이에 벅 쇼월터가 팀 성적을 끌어올려서 1993년부터 2-1-1의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에 버틴 것.
- ↑ 1994년도 디비젼 1위였지만 파업으로 단축시즌이었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 ↑ 결과는 디비젼 시리즈 탈락
- ↑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500만불의 연봉에 포스트시즌 단계마다 100만불, 월드시리즈 진출시 1년 계약 연장과 함께 800만불을 지불하는 계약을 제시했다. 구단에 장기간 헌신한 감독에게 모욕적인 처사였다.
- ↑ 약물 혐의가 확실한 선수들을 제외하더라도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 등의 굇수들이 쏟아져나와 결국 2014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밖의 명전 헌액 후보자로 크레익 비지오나 제프 배그웰도 빨리 헌액되기는 힘들어보이고 커트 실링과 새로 합류하는 마이크 무시나도 장수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