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파일:Attachment/ZipDrives.jpg
좌측은 USB형, 우측은 패러렐 포트형. 패러렐 포트는 D-SUB 비슷하게 생긴 길쭉하고 핀 많은 포트인데, 과거에 프린터 등에서 쓰였다. 지금은 모두 USB로 대체되었지만, 한때는 RS-232 시리얼 포트와 함께 자주 쓰이던 포트. 시리얼 포트는 마우스, 키보드에서 주로 쓰였다. 각각 병렬 포트, 직렬 포트라 부르기도 했다.
2 상세
플로피디스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용량은 훨씬 뛰어난 디스크형 저장장치. 1994년 아이오메가에서 출시하였다. 디스크의 제작은 후지필름이 맡았으며, 자체 개발한 ATOMM (Advanced super Thin layer & high Output Metal Media)를 채용하여 대용량을 실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회사는 카트리지 디스크형 자기기록 저장장치를 만들어온 이력이 있고 집드라이브와 재즈드라이브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차세대 플로피 디스크 타입들인 슈퍼디스크 와 같은 경쟁작들 중에서는 가장 인기가 좋았으나, CD-R/CD-RW 와의 경쟁에서 밀렸으며, USB 메모리의 등장 및 결정적인 결함이 겹치면서 몰락하였다.
용량은 100MB, 250MB, 750MB가 있었다. 최초 100MB 용량의 디스크가 나왔다가, 나중에 250MB, 최종적으로 750MB까지 확장이 되었다. 이대로만 본다면 충분히 CD를 대체할 수도 있었는데, 문제는 2000년대 들어 아이오메가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EIDE 인터페이스 CD-RW의 가격이 훨씬 빠르게 떨어졌다는 것[1]이 망한 원인이라면 원인. 즉, 250MB 시절에 이미 RW기술이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으로 시중에 널리 퍼졌던 상황이었다. 굳이 RW가 아니라도 한장에 몇백원이면 사는 CD-R과 달리 ZIP 디스크는 용량도 작은 게 만원 가까이 했다. 추가로 호환성이 거지같아서 각 용량에 따라 호환이 요상하게 이루어져 거의 각 용량 단위 디스크 전용이라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에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초기 계획 중에는 100MB에 호환되고 가격이 저렴한 25MB가 준비되어있지만 기획 단계에서 취소되었다.
호환성 테이블 | 100MB 디스켓 | 250MB 디스켓 | 750MB 디스켓 |
100MB 드라이브 | R/W 가능 | 사용 불가 | 사용 불가 |
250MB 드라이브 | R/W 가능 , 속도 느림 | R/W 가능 | 사용 불가 |
750MB 드라이브 | 읽기만 가능 | 읽기만 가능 | R/W 가능 |
국내에서도 아이오메가 공식홈페이지에 설명은 되어있지만 제품을 팔지는 않는다. 이미 생산라인 자체가 사라진지 오래. 게다가 요즘에는 아이오메가 링크를 클릭하면 레노버의 네트워크 스토리지 홈페이지가 뜬다. 이유는 후술.
당연히 이걸 사용하려면 전용 디스크와 드라이브가 필요했다. 거기에 ZIP 디스크를 사용하려고 해도 역시 전용 포맷 유틸리티를 써야 했다고 한다. 플로피 디스크처럼 일반적인 포맷(도스나 윈도우에서 쓰는 바로 그 포맷 유틸...)을 썼다가 디스크 한 장을 날려먹은 사례도 있었다(...).
당시 1.44MB 용량의 3.5인치 플로피디스크가 일반적으로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용량은 매력적이었지만, 사용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가격의 전용 드라이브가 필요했고, 위에서 말한 거지같은 호환성이 자살태클을 걸었다. 그로 인해 보급률이 한없이 낮았고, 결국 많이 쓰이지 못하게 된다.
플로피디스크의 단점을 개선하고자 노력을 하긴 했다. 예를 들어 내구도는 상당히 튼튼한 편이었는데, 대신 그만큼 비쌌다.
고용량 백업장치/휴대용 저장장치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시절이었기에 미국에 한정해서는 기업사이에서 어느 정도 보급엔 성공했다. 덕분에 옛날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여러 대학교에서 꽤 보급된 적이 있다.[2][3]
3 장점
장점은 당시 경쟁 매체들에 비해서 대용량이었고 컴퓨터에서 인식이 용이했다는 것이다. 당시 CD-RW는 그다지 많이 보급되지 않았으며, 그나마 대다수는 대부분 그 비싼 SCSI 인터페이스로 출시되었다.(플렉스터,소니 등...) 이 때 복사된 CD도 1만원을 넘어가던 시절이다[4]. 50~60MB를 카피하기 위해서 CD라이팅을 하는것도 돈이 아까웠으며, SCSI 카드에 CD-ROM까지 같이 들고가서 설치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ZIP드라이브는 프린터 등을 연결하는 병렬 포트(패러렐)로 되어 있고, 거기에 어댑터만 있으면 들고 가서 사용할 수 있었으며, 몇몇 구형 컴퓨터에의 경우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복사할 정도의 용량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CD-ROM과는 달리 매체가 물리적으로 소비되지도 않았으니 당시 이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면 컴퓨터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구세주에 가까웠다. 디스크 몇 장만 교환해도 하드디스크 하나의 정보를 완전히 백업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미디어 ZIP디스크는 하드디스크보다 충격에 강해서 하드디스크를 떼어 갖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안전했다. 요즘 하드디스크도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타 부품에 비해 충격에 약한데, 당시의 하드디스크는 충격에 더 민감해서 진정 유리조각을 들고다니는 스릴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이 장점은 어디까지나 병렬 포트 인터페이스가 달린 100MB 시절의 장점이었으며, 나중에 용량이 커지고 USB 버전이 출시되어 사용 편의성을 보장하려 했으나, 이 때는 너무 늦었다. ZIP 디스크를 대체할 수 있는 미디어 매체가 너무 많이 출시되었다. 당시에 용량은 조금 적을지 몰라도 작고, 빠르고, 쓰기 편한 USB 메모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속도가 느린 ZIP 드라이브는 급격히 도태되었다. 플로피 디스크와 더불어 결국 ZIP 드라이브도 이미 강력한 대체재가 풍부해진 상황 속에서 사장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4 단점
디스켓은 휴대용이라고는 하지만, 드라이브 보급율이 낮았기에 한번 데이터를 옮기려면 ZIP 디스켓과 함께 드라이브도 같이 들고 다녀야 했다. 크고 불편한 패러럴 케이블과 전원 어댑터는 덤...
사실 가장 큰 단점은 외장형의 경우 PC 와의 연결이 패러럴 포트를 사용했는데, 이게 엄청 느렸다.[5] 체감 속도는 플로피 디스크보다 조금 빠른 수준(...) 이었다. 더 빠른 속도를 지원하기 위해서 SCSI를 지원하는 제품도 있긴 했는데, 일반 PC 용 SCSI 콘트롤러가 상당히 고가였기에 이를 이용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다. [6][7]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EIDE 를 지원하는 내장형 ATAPI 드라이브를 내놓고, 더 늦게는 USB 지원 제품도 만들긴 했지만, 이미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병렬포트 집드라이브는 윈도우9x 계열에서는 BIOS에서 병렬포트 모드를 바꾸고, OS에서 설정을 손봐주어야 그럭 저럭 쓸 만 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데이터가 깨지는 문제, 디스크가 인식 불능이 되는 문제는 거의 다 병렬포트용 집드라이브에서 발생했다. SCSI 포트용은 느리지만 병렬포트용보다야 훨씬 빨랐고 안정성이 아주 좋았다. EIDE용이 끝판왕이지만, CD-R/CD-RW 공시디가격이 폭락한 뒤, 집드라이브의 신규 수요가 죽어버린 뒤에 출시되었기 때문에 상황을 바꾸지 못했다.
패러럴 포트 대신 SCSI 나 EIDE를 쓰면 조금 빨라진다고 하지만 CD 계열보다는 훨씬 느렸다. 내장형 ATAPI 드라이브 기준으로 한 100MB 디스크 1장 용량을 모두 저장하는데 3~5분 정도 걸렸다. 레코딩이야 당시 CD-R도 이 수준이었지만 읽기도 마찬가지라는 게 문제...
5 퇴출
CD와의 경쟁도 힘겨웠는데, 동시에 플래시 메모리를 이용한 저장용 장치들 USB 메모리, SD카드 등이 보급되면서 아예 묻혀버렸다. 가격, 성능, 편의성, 크기 등등 어느 면으로 보아도 완전한 열세이다 보니 완전히 도태되었다.
ZIP 드라이브는 데이터 전송의 안정성 문제도 있었는데, 하드디스크와 같은 EIDE 포트용과 주로 매킨토시용으로 잘 쓰던 SCSI포트용 제품은 믿을 만 했지만, 병렬 포트용은 느리기도 느리거니와[8] 전송 에러가 드물지 않아 반복 저장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디어도 그렇게 믿을 만 하지는 못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버퍼 언더런을 막아주는 장치가 없었던 시절의 CD 라이터만큼이나 짜증나는 물건이었다.
입지가 좁아져 가던 상황에서 일명 죽음의 클릭이란 치명적인 결함 요소가 알려지게 되면서 입지가 완전히 바닥으로 들어가 버렸다. 특히나 판매 초기에 대중 규격이자 가장 많이 쓰이던 100MB 드라이브에서 생긴 사건이다 보니 그동안 쌓아 왔던 안정적인 디스크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실추되었다.
판매 초기 대중 규격인 100MB 드라이브에서 디스크를 넣은 후 망치가 무언가를 두드리는 것과 같은 금속음과 함께 삽입된 디스크에 액세스를 할 수 없게 되는 현상으로, 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드라이브는 100% 사용할 수 없고, 그 당시 사용한 디스크조차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쉽게 말해 드라이브와 디스크의 동반자살이 일어나는 것 때문에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원인은 디스크 미디어에 내포된 금속 가루와 읽기 장치에 축적된 윤활유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1995년 1월 이후 생산분에서 이런 결함이 보고되었다. 이후 아이오메가는 실적 문제를 겪게 되고, 그럭저럭 시장을 파고들었던 ZIP 드라이브도 몰락하게 되었다. 주주들 뉴욕 앞바다 용궁행
6 관련 제품
아이오메가에서는 거의 같은 시기에 하드디스크를 기반으로 하여 용량을 기가바이트 단위로 늘린 재즈 드라이브를 만들었지만, 이마저 결국 망했어요 테크를 탔다. 이건 완전히 시기를 잘못 탄 것 외에도, 비싸도 너무 비쌌다. 또한, 속도 문제 때문에 SCSI 만 지원하는 등, 재즈 드라이브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라기 보다는 기업용 제품에 가까웠다. 게다가, "죽음의 클릭" 사건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아이오메가가 경영위기를 겪으면서 재즈를 제대로 밀어 주지 못한 문제도 있었다.
2005년에는 하드디스크의 단점을 극복(했다고 주장)하고 용량을 35GB로 늘린 USB 2.0 인터페이스의 REV 드라이브를 출시했지만, REV 역시 최악의 안정성으로 악평을 들은 끝에 외장 하드디스크에 밀려 결국 망했다. 결국 ZIP, JAZ, REV 모두 삼진아웃을 당한 아이오메가는 더 이상 독자 규격의 드라이브를 내놓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오메가는 2008년 4월, 미국의 저장장치 업체 중 하나인 EMC에 2억 1,300만 달러에 인수되었고, EMC는 중국의 레노버와 합작하여 2013년 6월에 소비자용 저장장치 브랜드명을 "레노버 EMC"로 바꾸면서 아이오메가 브랜드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2015년 현재 아이오메가 사이트로 접속하면 레노버 네트워크 스토리지의 홈페이지로 리다이렉트된다.
여담으로 슈퍼패미컴의 UFO를 그대로 닌텐도 64 버전으로 이식한 Z64가 존재했다. 이름대로 ZIP 드라이브를 썼었다.- ↑ 특히 2005년경에는 DVD-RAM의 기록/삭제가 가능한 EIDE 인터페이스의 멀티 라이터 가격이 많이 하락했다.
- ↑ 가령 서울대학교 중앙전산원이라든가.
- ↑ 대학원에서 프로젝트 비용으로 구매처리가 가능했기에 다들 일단 사고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좀 아는 사람들은 훨씬 안정적인 광자기디스크를 샀다.
- ↑ 대부분의 컴퓨터가 하드디스크는 있었으나 CD롬은 없는 시대였다. 그런데 2010년대의 PC도 대부분 ODD가 없다.
복고풍? - ↑ 그 당시에는 USB 가 겨우 표준이 만들어져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였기에 채택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USB 지원 모델이 나왔다.
- ↑ 예를 들어 SCSI 외장형 ZIP 드라이브를 이용해서 두 PC 사이에서 데이터를 옮기려면, 두 PC 모두 SCSI 콘트롤러가 달려 있어야 했다. 아니면, PC 를 열어서 SCSI 카드까지 떼어내야 했다.
- ↑ 과거 클래식 Mac OS 쓰던 매킨토시가 비싼 이유중 하나가, 성능을 위해 SCSI를 썼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맥의 성능은 IBM 호환 PC보다 좋았지만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 ↑ 당시 흔히 사용하던 Windows 95에서 EPP모드 전송속도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설정해 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