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빈 안씨

1499-1549

중종후궁. 선조할머니가 된다.

1 생애

시흥[1]에서 안탄대안단태가 아니다라는 사람의 딸로 태어났는데 1507년 궁녀로 궁에 들어갔다. 성품이 차분하고 정숙한 행동거지에 정현왕후가 그녀를 중종에게 후궁으로 들여 숙용에 봉해졌다. 영양군, 정신옹주를 생산한데 이어 중요한 자식인 덕흥대원군을 낳았다. 그녀의 생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그녀의 손자인 하성군이 왕위에 오른 덕분에 그녀는 내명부 정1품 빈으로 추존되어 창빈의 칭호를 받고 묘를 이장하게 된다.

2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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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에서는 최정원이 연기하였다. 경빈 박씨나 희빈 홍씨 등 독기 넘치는 다른 후궁들과 달리 이쪽은 얌전한 사람. 극중에서는 그녀를 칭하는 호칭이 창빈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틀린 칭호다. 그녀의 생전에는 숙용일 뿐이었기 때문에 안숙용이나 숙용 안씨라고 불러야 옳겠지만 왠지 그런건 무시하고 작중에선 그냥 창빈으로 불렸다.(...) 문정왕후와 대립각을 세우던 경빈 박씨희빈 홍씨와는 달리 문정왕후의 편에 서는 경우가 많았고 그덕에 결국 경빈과 희빈이 모두 쓸려나갔지만 그녀만 홀로 살아 남았다. 게다가 그녀의 후손이 조선 왕실의 대통을 이어가게 되면서, 후세에 승리자가 된 셈.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그녀의 사망 이후 나레이션에서도 "후궁 중 결국 유일하게 천수를 누린 최후의 승리자"라는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그 손주가......

작중에서도 문정왕후경빈 박씨희빈 홍씨처럼 부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호의적으로 대하는 모습으로 많이 나온다.

KBS 2TV 드라마 조광조에서는 역시 존재감은 없지만 얌전한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후궁 시절부터 장경왕후와 친했던 것으로 나온다. 장경왕후가 승하할 때 다른 후궁들이 겉으로는 울면서도 중전의 자리를 내심 노릴 때 진심으로 통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묘소는 현재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경내 후방에 있다. 재미있게도 그녀의 묘소 주변에는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의 묘가 있어서 주변에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을 거느리고 잠들어 있는 셈이다(!). 창빈의 묘를 가 보려면 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소 쪽으로 가면 찾기 쉬운데 창빈 묘는 정말로 저 세 대통령 무덤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역시 진정한 승리자는 죽어서도 뭔가 다르다.
  1. 당시 경기도 금천현. 시흥은 조선 후기의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