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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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SK 와이번스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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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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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코치 시절.
kt wiz No.88
채종범(蔡鍾範 / Jong-bum Chae)
생년월일1977년 12월 3일
출신지경상남도 창원시
학력창원용지초 - 마산동중 - 마산고 - 연세대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6년 2차지명 11라운드 지명(쌍방울 레이더스)[1]
소속팀SK 와이번스 (2000~2008)
KIA 타이거즈(2008~2011)
응원가홈플러스 로고송[2]
KIA 타이거즈 등번호 33번(2008~2011)
김주형채종범(2008~2011)장지환(2012~)

1 소개

SK 와이번스 - KIA 타이거즈 소속의 외야수였다. 2012년 NC 다이노스의 타격코치, 2014년부터 kt wiz의 코치로 부임했다.

2 선수 시절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1순위 지명을 받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지명권은 SK 와이번스에 인계되었다. 2000년에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주축으로 창단한 SK 와이번스에 창단 멤버로 입단해서 2003년까지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다. 2002년에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타율 .291 17홈런 68타점을 기록.

그러나 2004년 어깨 부상을 당하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동안, 하필이면 병역비리 크리가 터져 이듬해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2008년 소집해제 후 SK 와이번스에 복귀했으나, 장기간의 공백에 이미 몸은 예전의 좋은 성적을 내던 상태가 아니었다. 거기에 팀의 주축으로 성장해 버린 조동화, 김강민, 박재상, 임훈 등에 밀려 2군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SK의 타격코치였던 이세 다카오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년 동안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해 어깨가 정상이 아니었다며, 대한민국의 병역 의무가 선수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하였다. # 2008년 5월 5일 KIA 타이거즈전병두, 김연훈 - 이성우, 김형철, 채종범 트레이드로 인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KIA로 이적한 후 당시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전병두와 내야 유틸이었던 김연훈을 거의 조공격으로 넘긴 것 때문에 이적하자마자 엄청나게 까였다. 게다가 소집해제 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성적까지 점점 하락하는 와중에 조범현 감독은 우익수 자리에 계속 넣어주면서 양아들소리까지 듣는 등 평생 먹을 욕을 거의 다 먹게 된다.지못미 당시 조범현 감독이 주전 우익수 기회를 계속 준 탓에, 이종범 선수의 아들인 이정후 군은 아버지에게 아빠, 아빠 이름이 잘못 나와 있어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

이 2:3 트레이드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실제로 전병두KIA 타이거즈에서 계속 기회를 줬지만 어깨 부상과 새가슴, 그리고 고질적인 제구 문제가 전혀 나아지지 않아 참 애매한 선수였고, 김연훈은 KIA에 있을 당시 타격에서는 자동 아웃카운트 판매기였고 수비 면에서는 내야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했지만 말 그대로 소화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게다가 루키 시즌이 끝나고 바로 군대를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KIA는 주전 포수였던 김상훈이 부상을 당해 전반기 시즌 아웃을 당한 상황에서 마스크를 쓸 만한 포수가 차일목밖에 없어서 백업 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트레이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해 KIA가 SK에 상대전적으로 엄청나게 발려서.. 지금도 이성우는 간간히 나오고 있긴 하지만.

여튼 욕만 먹다가 2008 시즌을 보내고 2009 시즌을 의욕적으로 준비했으나, 시범경기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 재활 치료로만 1년을 보내게 된다.

2010 시즌엔 주로 지명타자외야는 누가 보고?로 출전하고 있는데, 시즌 초반에는 무릎이 완전하지 않았는지 부진하다가 2군에 내려갔다. 위에서 얘기한 트레이드 논란과 신통찮은 성적 때문에 KIA 팬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으나, 2010 시즌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두고 삽질도 모자라 포크레인질을 하는 나지완을 대신해 지명타자로 출전하며 7경기 연속 타점과 최근 5경기에서 홈런 3방을 몰아치며 대 폭발했다. 애초에 조범현 감독은 채종범이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 외야 슬롯 하나를 채종범에게 주려고 했다고 한다니, 뒤늦게나마 터진 게 그나마 다행.

별명으로는 짭종범[3], 조범현의 양아들이라고 해서 조종범 등이 있다.[4] 2010년 7월에 좋은 활약을 보여, 종범甲의 뒤를잇는 종범乙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7월 22일 삼성전에서 6회말 정현욱에게 투런 홈런을 쳐내고 8회말에는 차우찬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냈으나 정작 팀은 불펜진들의 퐈이아로 패배. 7월 27일 롯데전에서는 6회와 8회 담장을 때리는 장타를 날렸다. 오오 역시 종범乙.

그리고 7월 29일 한싸홈 때는 투런 홈런을 치면서 한싸홈 기록을 세우는 것을 돕게 되나... 8월 들어 엄청난 부진에 빠지며 2군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계속 부상에 신음하다 보니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한 탓에, 2011년 10월 1일에 프런트에서 선수 정리 명단을 발표했을 때 방출되었다는 오보가 나왔을 정도. 아예 3군에서도 열외되어 이영수와 함께 개인훈련하는 처지가 되었다.

3 지도자 시절

결국 2011년 12월 1일 자로 KIA에서 방출되었다. 은퇴냐 현역 복귀냐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에서 본인은 현역 연장에 대한 불씨를 살리며 방출 이전까지 무등 야구장에서 개인훈련을 계속 해 왔다. 그러나 새로 창단하는 NC 다이노스에서 코치 제안을 받아 은퇴를 선언하고, 타격코치로 고향 연고 NC에 들어오게 되었다. # 그러나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해 NC 다이노스1군 진입을 못 보고 1년 만에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2013년 9월, kt wiz가 창단되고 사령탑에 조범현 감독이 취임하면서 다시 코치직으로 임명되었다.

2015년 시즌 개막 후 2군 타격코치를 맡았으나 시즌 초반 kt wiz가 연패를 거듭하면서 코치진의 보직 변경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잔류군 야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2016년에도 계속 잔류군을 맡고 있다.

4 여담

  • 2009년에 응원가가 나왔는데, 홈플러스 CM송을 개사한 곡이다.(...)
  • 프로 현역 시절에는 외야수지만 마산고등학교 시절엔 유격수였으며,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기도 했는데 그 당시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던 선수가 신명철이다.
  • 소속 팀이 우승할 때마다 밖에서 지켜보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 SK 와이번스창단쌍방울 시절을 합해도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땐 공익으로 복무 중이었고, KIA 타이거즈12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을 땐 재활 치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객석에서 지켜봤다. 그래서 재활 당시 우스갯소리로 "내가 없어서 KIA가 우승할 거 같다"라고 말했는데, 진짜로 KIA가 2009년에 우승했다! 채종범이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것은 SK 선수로써 준우승(현대 우승)을 차지했던 2003년 한국시리즈뿐이다. 한편, 채종범이 소속된 팀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8-7-6-2-5-4-6-1-6-1-5-4.
  1. SK에 지명권 승계. 연세대 졸업 후 2000년에 입단.
  2. 채~종~범 안타를 쳐주세요 채~종~범 안타(홈런)를 쳐주세요 채~종~범 우리가 응원해요 기~아의 채종~범 ! 오! 오!
  3. 순전히 이종범 때문에 붙은 별명. 이 둘을 통틀어서 더블종범이라고도 한다. 이 둘은 이름의 한자도 같다. 이종범처럼 외야수이기도 했고.
  4. 참고로 채종범은 강병철의 양아들(...) 리스트에도 있다... 확실히 타격 재능은 있나 보다. 그리고 결국 코치로써도 조범현 아래에서 지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