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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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炳圭
1918년 7월 1일 ~ 1993년 7월 19일

대한민국의 전 금융인, 관료, 정치인이다. 호는 동백(東栢)이다.

1918년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태어났다. 안동공립보통학교(현 안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제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를 수료하였다. 이후 일본 오사카대학 상과대학 예과 및 본과 과정을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2년 한국은행의 전신 조선은행에 입사하였다. 8.15 광복이승만 정권 때 한국은행에서 초대 도쿄지점장, 오사카 지점장, 부총재, 은행감독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5.16 군사정변 후인 1961년부터 1962년까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민주공화당 4대 의혹사건 중 증권파동에 연루된 혐의로 1963년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서울신문 이사, 재무부장관 고문, 아시아개발은행 상임이사 등 경제인으로 활동하였다.

10월 유신 선포 후 주 태국 대사, 주 라오스 대사, 주 스위스 대사를 지냈다.

1979년 제3기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에 임명되어 1980년까지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