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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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기준은 창간일자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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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주식회사 서울신문사
영문명칭THE SEOUL SHINMUN
설립일1904년 7월 18일
업종명신문 및 정기간행물 발행업
상장유무비상장기업
기업규모중견기업
본사 소재지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홈페이지]

1 개요

대한민국신문. 1904년 7월 18일에 창간된 한말의 대표적 민족지 대한매일신보가 기원으로 한국의 현재 발행되고 있는 신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2 사옥


본사 사옥은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하고 있다.


3 역사

3.1 대한매일신보 시대

1904년 7월 18일에 창간된 대한제국 시대의 신문이다.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이 양기탁 등 민족계몽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세웠다.

대한매일신보 항목 참고.


3.2 매일신보 시대

1910년 8월 30일부터 1945년 11월까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존재했던 시대. 자세한 내용은 매일신보 항목 참고.
이 신문의 흑역사.


3.3 서울신문 시대

8.15 광복 후 한동안 좌익계열의 사원자치위원회가 운영하다가 미군정과 갈등을 빚어 1945년 11월 10일 군정 당국이 정간처분을 내렸다. 정간크리와 함께 '매일신보' 제호는 없어지게 되었고, 오세창 사장 등의 경영진을 새로 구성하여 '서울신문'이란 이름으로 변경해 1945년 11월 23일자 석간부터 속간하였다. 지령은 대한매일신보와 매일신보를 모두 계승하여 1만 3738호로 발행하였다.

이후 여러 번 기사내용을 시비로 정부 공보처의 간섭과 감독을 받게 되어 1950년대에는 이승만 정권의 어용신문으로서 자유당을 적극적으로 후빨지지하다가 4.19 혁명이 일어나면서 시위대들이 사옥과 시설을 홀랑 불태워 버렸고 당연하게도 이후 독자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재정난 크리에 빠져 1961년 5월 9일 휴간되었다. 5.16이 일어난 후인 12월 22일에 다시 속간되었고 독재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나팔수 노릇을 계속했다. 매일신보 시절에 버금가는 흑역사 시절. 참고로 이 시기인 1959년 3월 23일부터 대한매일신보와 매일신보 시기의 지령을 폐기하고 '서울신문' 제호로 창간한 시점부터의 지령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앞선 두 신문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사라지게 되었다.

한겨레보다 앞서 한글전용을 실행한 전력이 있다. 1958년과 1968년에 한글전용판을 발행하였지만 호응이 시원치 않아서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국한문혼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문 발행에 있어서 글자배열이나 편집체제, 문장 등을 한글판에 맞도록 연구하는 등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20년 후 창간하는 한겨레의 한글전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셈.


3.4 1990년대 후반 이후의 현황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전, 1998년 이전에는 친정부 언론의 대표주자였다. 어느정도였냐면 편파보도로 까였던 조선일보를 이 점에서는 안드로메다급으로 능가했고, 1992년 대선 당시 송정숙[1] 논설위원이 쓴 논설은 노골적인 YS찬양때문에, "YS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라고 친여적인 자사의 기자들에게도 까였을 정도. 본격 로동신문 남한(?)판(...)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야당을 공격하고 여당쪽을 두둔하는 보도를 일삼았다. "계도지"라고 해서 서울신문을 관공서나 통장집에서 정부예산으로 구독했고, 이렇게 정부예산으로 구독을 해주니 논조가 어떨찌는 뻔한 내용.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도 저런식의 보도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DJ당선 후에 편집국이 대폭 물갈이되고, DJ 캠프진영에서 사람이 내려와 경영을 하면서엥? 이거 완전 낙하산...정경유착...언론장악...읍읍 사실 어느정도 전통이다. 유착도 전통 DJ쪽이나 진보진영에 우호적인 편집이 되었다. 그래도 그 편파성에 있어서는 1998년 이전보다는 훨씬 완화되었고 제법 공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면도 있다. 나팔을 왼쪽으로 돌렸달까

그리고 1998년 11월에 <서울신문 영욕의 53년 나래를 접다>라는 칼럼을 발표해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는 칼럼을 실은 뒤 동월 10일자부터 제호를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을 자처하는 의미에서 '대한매일'로 제호를 변경하면서 매일신보 기간을 제외한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합산하기 시작했고[2], 한겨레, 경향신문과 함께 조중동에 맞서는 진보신문 트로이카 '한경대'로 불리기도 했다.DJ 큰 그림 2004년 1월 1일을 기해 다시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꿨지만 지령은 대한매일신보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계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수립 이 후, 정부에 의해 경영진이 결정되는 전통때문에, 5.18을 왜곡보도했던 이동화가 취임하면서 도로 아미타불.나팔을 다시 오른쪽으로 돌림 지금은 조중동문이 공격하면 숟가락 올려놓는 기회주의적 포지션이다. 그래도 1998년에 정권바뀌고 나서 호되게 당한 기억인지, 1998년 이전과 같은 막장적인 편파 보도정도는 아니고 조중동보다는 완화된 입장을 지키고는 있다.
어째 항상 정부를 따르는 것 같다 정권이 경영에 관여하기 쉬운 구조라 별 수 없다

현재는 정부 비판 기사가 나오는 등 나름 독립적인 색채를 유지할려고 노력중이다.


4 특징

리즈시절엔 나름 이름이 있던 신문사였다. 그러나 현재는 조중동이나 한경오 등에 밀려 인지도는 한국일보와 같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며 현재 재정상태도 크게 좋은 편은 아닌 듯, 1970~80년대를 주름잡은 그 유명한 '선데이서울'을 비롯한 많은 잡지가 이 신문사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폐간되었다. 서울신문에서 창간했던 스포츠서울의 경우 1999년 12월 자회사로 분사된 이후 2007년 5월 서울신문에서 보유한 주식을 모두 매각했다. 요즘 독자들에게는 서울신문 자체보다는 해외의 기상천외한 토픽 및 가십들 위주로 공급하는 인터넷 신문 브랜드 '나우뉴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최대주주는 우리사주조합(39%)이나 그 외에는 정부측 지분이며, 현재는 정부투자기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앞서 말한 정권교체에 따른 논조의 변화도, 이 신문의 소유구조 한계에서 비롯된 듯 하다. 정부투자기관이기 때문인지 동장 등은 무료로 구독할 수 있다.

정부기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공무원 시험등 국가에서 주관하는 시험들 대부분은 이 신문을 거쳐 민간에 발표된다. 수험생이라면 주목할만한 부분.

추가바람

  1. 이 양반은 이때 공로인지 후에 YS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이 된다.
  2. 그러나 매일신보 기간을 도려낸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