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역사

1 개관

오늘날 천안(天安)이라는 지명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의미로 지어진 곳이라는 설이 있다. 즉 왕건이 여기에 지명을 붙일 때 이곳이 편안하면 천하가 편안할 것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후삼국시대 왕건견훤 사이에 전선이 형성된 지역이었고, 그만큼 교통의 요지이기에 이런 말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천안으로 개칭되기 전의 이름이 '도솔'인 것으로 미루어 이보다도 불교 용어인 '도솔천'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유념하자.

2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고대에는 오늘날의 시가지를 기준으로 남쪽의 대목악군(大木岳郡)과 그에 소속된 감매현(甘買縣)[1], 그리고 북쪽의 사산현(蛇山縣)[2]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후 통일신라경덕왕이 지명을 대대적으로 개작하면서 대목악군을 목주로 고쳤다. 그러나 후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대목군(大木郡)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한편 그보다 북서쪽으로 흑성산 너머에 있는 지금의 시가지 근처가 새로이 도솔(兜率)이라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3 고려

930년 8월에 고려 태조 왕건이 대목군에 행차하면서 이곳을 지나는 길에 술사 예방(藝方)이 "삼국의 중심에 오룡이 구슬을 다투는 형상이니 만약 이곳에 대관(大官)을 두면 백제가 스스로 투항할 것입니다."라 하자, 이에 비로소 왕건이 동·서 도솔을 묶어서 천안이라 부르고 천안도독부를 설치하여 대승 제궁(弟弓)을 부사(府使)로, 원보 엄식(嚴式)을 부사(副使)로 각각 배치하였다.[3] 이후 936년에 왕건이 천안에서 남진하여 경상북도 선산인 일선군에서 후백제와 결전을 벌이는데 이것이 바로 일리천 전투이다. 이 전투로 후삼국은 통일되었다.

이후 목천 부근은 목주(木州)라는 이름으로 청주목에 소속되지만, 이와 달리 천안은 1018년 현종에 의해 천안부(天安府)가 되고 지부사가 파견되어 오늘날의 아산과 평택, 후에는 안성까지 아우르는 행정의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사산현은 고려 초 직산이 되었다. 1310년에는 충선왕에 의해 전국의 부와 목이 폐지되면서 영주(寧州)가 되었으나, 1362년 한창 홍건적이 활개치는 가운데 공민왕에 의해 다시 천안부로 복구되었다.

4 조선

조선의 건국과 함께 지방 지배가 대대적으로 재편되면서 위와 같은 천안의 중심지적 기능은 모두 청주목으로 이관되었고, 천안은 1413년 영산군(寧山郡)을 거쳐 1416년 천안군으로 격하되었다.[4] 이에 따라 천안부 소속의 직산현, 평택현, 온수현, 신창현, 아산현이 모두 청주목 소속으로 이관되어 천안에서 독립하면서[5] 오늘날 천안의 경내에는 천안군과 더불어 직산현과 목천현[6]이 분치되어 있었다.

1895년의 지방관제 개정으로 천안은 공주부에 소속되었고, 이듬해 다시 충청남도 소속이 되었다.

5 일제강점기

이후 1914년에 천안, 목천, 직산 3개 군이 천안군으로 통합되면서 현재의 시계가 형성되었다.

6 대한민국

1963년 천안읍과 환성면[7] 이 천안시로 승격되어 천안군에서 분리되었고, 나머지 천안군 지역은 천원군(天原郡)으로 개칭되었다.

1973에는 성환면이 성환읍으로 승격되었다. 1982년에 천원군청이 성거면으로 이전하면서 3년 뒤인 1985년 성거면이 성거읍으로 승격되었다. 1991년에 천원군은 다시 천안군으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으로 천안군이 천안시에 병합되었다. 2002년 직산면과 목천면이 직산읍과 목천읍으로 승격되었다. 2005년에 인구 50만 돌파와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이 이루어졌고, 천안시청이 불당동으로 이전했다.

2008년에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동남구서북구로 분구되었다. 2013년 인구 60만을 돌파하였다.[8]
  1. 이외에도 세종특별자치시 북부의 전의면인 구지현이 대목악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2. 지금의 경기도 안성인 백성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3. 이보다 앞선 1월에 고창 전투가 있었다. 이후 932년에는 왕건이 지금의 충북 청원군 문의면인 일모산성을 공격하고, 견훤은 이에 맞서 평안도 지방의 해안을 휩쓸었다. 다시 934년에 왕건이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인 운주에서 견훤을 꺾자 금강 이북의 성들이 왕건에게 항복해 들어온다. 그리고 견훤은 바로 이듬해 신검에게 배신크리를 맞고 왕건에게 항복한다.
  4. 그래도 군이면 낮다고만 할 수 없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청주목의 관할 19개 군현 가운데 군 단위는 오직 천안군과 옥천군만 있고 나머지 17개는 모두 현이다.
  5. 단, 풍세현은 천안군 소속으로 남았다.
  6. 태종 때 목주에서 목천현으로 개칭하였다.
  7. 이 두 지역이 현재 천안시 동지역이다. 천안읍은 구도심 일대, 환성면은 구도심을 제외한 외곽 일대였다.
  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5139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