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사건사고/구조 및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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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와대의 구조 활동 및 시신 인양 조작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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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8일과 29일, 정의당 정진후 의원과 김현미 새민련 소속 국조특위 간사는 구조작업 초기 정부,해경이 실시한 생존자들을 위한 공기 주입이 여론을 의식한 요식적인 거짓이었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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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의원이 29일 지적한 바에 따르면 이 공기 주입은 선내에 갇힌 승객들의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침몰선박 내의 잔여 공기, 일명 '에어 포켓'을 강화하기 위해 콤프레셔를 동원해 호흡할 수 있는 공기를 불어 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안건은 상정된지 24간이 지나서야 실시됐고 또한 공기주입용으로 사용한 콤프레셔는 구조용도가 아닌 공업용 오일로 작동하는, 산소는 커녕 유독가스인 일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물건이었으며 또한 일반적인 공장에서 사용하는 것에도 못 미치는 소형이 1대 투입됐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도 28일 "(해경의) '상황정보문자시스템'에 따르면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4시57분경 이미 세월호의 에어포켓에 남은 공기는 다량으로 배출되어 잠수부의 수중탐색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정 의원이 공개한 해경 문자시스템에서 오간 대화를 보면, 3009함에서 "현재 선체에서 대량의 공기방울이 배출"됐다며 "현장 안전 고려, 수중탐색 중단. 대기 중"이라고 보고했고, 해경 상황실 근무자는 이 상황을 다시 정리해 "여객선에 공기가 많이 빠져 나오고 있어, 에어가 다 나오고 나서 선내수색 예정"이라며 "해경·해군 수색 중 철수. 대기 중"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해경이 민간 잠수부들이 발견한 시신을 자신들이 발견한 것처럼 꾸몄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진후 의원은 하루 지난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해경의 '상황정보문자시스템(4월16일~5월26일)'을 분석한 결과 4월 19일 순수 자원봉사자 민간잠수부가 창문으로 시신 3구를 차례로 발견했지만 해경에서는 민관군합동발견으로 조작해 국민의 눈을 속였다”고 폭로했다. 또한 4월 21일 정진후 의원은 23구의 시신이 동시 발견됐을시 이 중 10구는 바지선 옆 바다에서 표류하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체 내부에서 발견된 것으로 구조 당국이 고쳐 발표했다는 의혹 또한 제기했고, 이러한 과정에 청와대 행정관까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2 다이빙 벨 논란

파일:Attachment/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사건사고/구조 및 수습/E123123132.jpg
민간 수중작업 전문가를 자칭하는 이종인이 4월 18일 JTBC 뉴스 9에 유속에 상관없이 다이빙 벨이라는 물건을 구조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인은 처음 세월호가 침몰하던 16~17일에는 구조는 유속등의 여건상 사실상 불가하며구조작업 자체가 관 유도로 지도되는 것으로 민간인 자원봉사자도 마음은 좋은데 통제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작업은 위험도 따르지만 결과가 없다고 했다가 18일에 이같이 주장하였다.

여기에 현장 구조활동한 황대식 한국해양구조협회 본부장은 이종인이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이빙 벨은 현장의 유속이 빨라 도움이 되기 힘들다는 지적등을 했고##, 결국 현장에서 기존 작업 방해, 이미 설치된 바지선과의 안전사고 우려로 거부당했다.# 또 해당 다이빙 벨은 이 종인의 자작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공인기관에서 안전성이 인증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종인의 인터뷰가 주가 된 '늙은 잠수부의 눈물'이라는 이름의 동영상과 2014년 4월 24일 10시 30분에 시작된 팩트TV 외 합동생방송에서 다른 민간잠수부들과의 이종인에 대한 인터뷰 등이 나왔다. 여기서 해군 또는 해경 측에서 1억5천만을 주고 바지선을 구입한 후에 승인 하에 사건 현장에 갔는데, 정작 사건 현장에서는 퇴짜를 놨고 새벽에 몰래 한국폴리텍대학에 있는 이종인의 다이빙 벨보다 훨씬 구린 실습용 다이빙 벨을 가지고 오다가 걸렸다면서 2014년 4월 24일 팩트TV외 합동생방송에서 주장했다. #

그러나 일단 위에서 나왔듯이 해당 다이빙 벨은 이종인의 자작품이고[1] 이종인은 처음에는 20시간동안 작업이 가능하다고 하다가 40분으로 말을 바꾸는 등 논란이 있다. 단 이후에 JTBC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20시간은 여러 사람이 교대하면서 하룻동안 작업 가능한 시간이고, 40분은 한 사람이 한 교대에 작업 가능한 시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이빙벨에 대한 질적 논란또한 존재했다 이종인의 다이빙벨과 해외 국가의 다이빙벨 비교 자료 제일 압권인건 다이빙벨 안쪽 청테이프.

또 현재 구조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언딘인터스트리나 해군, 해경이 더 좋은 다이빙 벨을 가지고 있는데 왜 더 조악한 물건을 들여온것이냐는 반론도 있다.[2]금양호 사건 당시 언딘이 사용한 다이빙 벨 기사 거기에 현재까지 해당학교에서 빌려 갔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전해들은게 전부이며 그 시점이 언제였는지도 불분명하다. 다른 언론사에서는 고발뉴스의 주장이 있었다는 사실만 전달할 뿐 교차검증할만한 보도가 없으니 만큼, 다른 언론사의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일단 국민 TV도 다이빙 벨을 배에 실은 사진을 찍어 기사를 내보냈다.#

해경 측의 공식입장은 '다이빙 벨을 대학으로부터 빌려 온 것은 맞지만 현장에 투입하지는 않았다, 현재 언딘이 한 대학으로부터 다이빙 벨을 대여해 온 것은 사실. 그러나 현재 투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언딘도 사용하지 않고 바지선 위에 올려둔 상태, 대여는 (해경의 판단이 아닌) 언딘의 자체 판단 하에 대여한 것이며 안전 상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절대 투입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보였다.## 한국 폴리텍대 강릉캠퍼스도 민간업체에 대여한것이지 해경에 대여하진 않았다는 입장인 듯.#

또한 언딘측의 공식발표에는 언딘에서 단독으로 가지고 온것이며 이는 현장에 당장 투입목적이 아닌 '당장 투입하기에 어려운 조건인데이종인의 다이빙벨이 여론화되자' 자신들도 다이빙벨 장비를 가지고 있다라는 목적으로 빌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전 천안함 수색에 참여했다 가라앉은 금양호 실종자 수색 당시 현재 세월호 구조에도 참여한 언딘에서 자체 보유한 다이빙 벨로 구조작업을 시행한 적이 있다. 이때 다이빙 벨을 내리는 것도 실패했다고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설치는 했지만 사람은 구하지 못한 것이다.# 첫날은 선이 짧아서 설치에 실패했고, 둘때날에는 가이드라인을 설치했고, 셋째날에는 수색을 했으나 생존자를 발견하진 못했다.#

또한 언딘이 국내 유일하게 국제구난협회(ISU)의 정회원 인증을 받은 업체라고[3] 알려지는 등 뛰어난 구난 업체라고 알려졌으나,# ISU가 구조실력을 인증하는 단체는 아니라는 의견과 # 과거 98금양호 침몰 때 보였던 모습 등을 통해 인명구조 실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재조명 되고 있다.###
참고로 언딘은 이번이 여섯번째 작업이다. 게다가 이 언딘이란 업체는 해경이나 해군이 아닌,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업체인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한 업체였다.# 해경, 민간, 언딘간의 갈등양상을 취재한 디스패치의 26일자 기사

그러다 결국 4월 24일 밤에 다이빙 벨을 투입하기로 결정되었다. 4월 24일 저녁부터 25일 아침까지 진행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실종자 가족들과의 회의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다이빙 벨 투입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하단의 '가족 상황실을 둘러싼 혼란' 부분을 참고.).

원래 다이빙 벨은 25일 오후 3시께 사고현장에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자정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았다. 알파잠수기술공사 측은 이날 오후 9시가 돼서야 사용 중인 바지선 옆면에 다이빙 벨을 실은 바지선 정박에 나섰다. 다이빙 벨이 사고 해역에 도착한 뒤에도 해경·해군 등의 수색·구조작업이 계속돼 투입에 필요한 사전 준비 작업이 늦어졌다는 것이 알파잠수기술공사 측 설명이다. 일단 해군, 해경측은 협조중이라는 이종인과 JTBC간의 인터뷰도 있었다.# 이후 바지선을 넘나들며 앵커 작업 등을 벌이던 알파잠수기술공사 측 인원들은 오후 11시께 갑자기 다이빙 벨을 다시 바지선에 싣고 먼 바다 쪽으로 철수했다.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이 때 몇몇 부분에서 작업 여건이 맞지 않아 장비를 철수한 것으로, 조만간 다시 투입을 시도할 거라고 말했다.# 이후 언딘측의 동의가 늦어져 4월 26일 새벽에 겨우 현장에 접안하여 작업에 돌입(#, #), 새벽 1시와 새벽 5시에 바다 속에 투입하려고 했지만 1시에는 앵커가 꼬여서, 5시에는 조류가 너무 강해 바지선을 고정시키지 못해서 다이빙 벨을 설치하는데 실패했다(#). 당시 이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기상상태가 악화되면서 일단 다이빙 벨을 실은 이 대표의 바지선은 인근 관매도로 피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살이 느려지는 정오에 3차 다이빙 벨 투입을 위한 바지선 앵커 설치작업을 시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오전 중에 이 대표는 다이빙 벨과 동행한 민간잠수부들과 함께 팽목항으로 귀항했다.#

이후 이종인은 기자 회견에서 날씨와 내부적인 불협화음 때문에 28,29일쯤에나 투입이 가능할 거라고 입장을 밝혔다. 어차피 지금 거센 조류 등으로 바지선 고정 작업 등을 마쳤어도 다이빙 벨 투입이나 잠수 등은 상당히 힘들며, 언딘과 불협화음이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언딘 바지선을 내주면, 언딘 잠수부들은 작업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 작업 방해 안되게 별도 작업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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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종인이 이전에 다이빙 벨을 투입했던 거제도 앞바다의 조류는 0~40cm/s의 유속이지만 해당침몰지역의 조류는 120cm/s 이상이기 때문에 투입여건 자체가 다르다.

한편 이상호 기자는 언딘쪽 비협조로 내내 기다리다 풍랑예비특보가 발령되고 나서야 해경이 '다이빙 벨 작업하려면 해 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

4월 29일 오후 5시에 사고 해역에 다시 왔는데, 파고가 높아서 1시간 정도 지난 뒤에 설치를 끝냈고 그 후에 한 가동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30일 새벽 2시 즈음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때도 투입은 또 실패했고 30일 정오 투입예정# 이후 3시 40분경에 투입했다가 20분만에 하강 도중, 파도에 산소공급용 케이블이 쓸려 구멍이 나는 바람에 다시 건져올려 수리 중. 언제 재투입할지는 불명이라고.#

5월 1일 새벽 3시경 정조 시간에 본격적으로 투입이 되었다. 다이빙 벨에 탑승했던 잠수부들은 80분 정도의 엵혀있는 가이드라인을 푸는 작업을 마치고 천천히 감압을 하며 올라와 5시 20분경 바지선으로 복귀했다. 다만 교체작업을 할 다이버가 없어서 연속투입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한편 동승한 유가족들은 작업에 대해서 의문을 표했는데 세명중 두명은 다이빙벨에서 작업해야 하고 한명만 나와서 작업해야 한다고 해서 동승한 유족이 저게 뭐하는 짓이냐고 했다고.# 더군다나 이번에 잠수한게 한 20m정도 되는데 참고로 현재 세월호는 수심 35m 정도에 잠겨있다. 어쨌든 선내 진입해서 수색은 한 모양이지만, 구조 실적은 제로.# 구조 현장의 이상진 잠수사 역시도 "조류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전문 잠수사들은 이 말을 아무도 믿지 않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 호언장담하던 20시간 연속 잠수도 거짓말이라는 것은 잠수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고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후 동일 11일 오전에 다이빙 벨은 원인모를 이유로 바지선째로 철수했다.# 이종인은 철수하면서 다이빙벨 완전 실패를 선언하고[4], 유족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으며#, 이번 사건은 언론이 성공했다는 말을 한것이라며 실패를 인정했다.# 덧붙여서 "꼭 하려고 했다. 제게는 이 기회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도 입증받을 좋은 기회였다.", "정부도 경제적으로 보장했고 얼마든지 사람을 돈 주고 일을 시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제 이런 결정을 하면서 그 혜택들과 다 맞바꾸는 것"이라며 "제가 질타를 받고 여러 가지 사업하는데도 앞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종인은 철수 이유로 "우리가 공을 세웠을 때 기존 수색하던 사람들과 분란이 일어나거나 사기를 저하시킬 것으로 우려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에서 보이듯 그동안 다이빙벨이 필요하다고 며칠의 시간을 끌었다가 실패했다면서 공을 세우면 다른이들의 사기저하를 이유로 철수한다는것은 납득이 안간다는 의견들이 많다. 여기에 실제로는 가족들의 철수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알려지길 함께 동승했던 유족들이 다이빙벨을 믿을수 있는것이냐고 했고 결국 유족들 요구로 철수했다고 한다.# 동승했던 유족은 이종인이 우리를 가지고 장난쳤다. 다이빙벨이 만능이라는 사람들[5]은 대체 누구냐며 분노했다고#

2014년 11월 12일, 이종인이 실종자 가족들이 원한다면 다이빙벨을 재투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트위터로 전한 속보에 따르면, "열악한 수색여건 고려, 해외 전문가팀 꾸려 재수색. 단, 안전위해 해경과 해군은 바지선 부근에서 완전 철수해야" 라고 밝혔다. (팩트TV)

더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3 해경과 민간 구난업체 언딘의 유착관계 발각

2014년 4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제기되던 해경의 구난업체 언딘에 대한 특혜제공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됐던 해경과 언딘의 유착 의혹 등에 대해 수사한 결과 "해경과 언딘의 유착 의혹에 대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해경이 언딘에게 독점적 권한을 주려고 노력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기사

언딘의 김모 대표[6]는 지난해 1월 출범한 해경의 법정단체인 해양구조협회 부총재를 맡고 있고, 검찰은 사건에 대가성 금품이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해경이 일단 평소 친분 등을 고려해 언딘에 일감을 몰아주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4 해경의 고의 충돌 논란

5월 1일 작업에서 해경이 다이빙벨 근처로 배를 접근해 빠른 속도로 바지선에 접안시킨 것(보도 영상)에 대해 고의적인 방해가 아닌가하는 논란이 있으며, 이것을 포함해 해경과 언딘의 비협조와 압력 행사가 철수의 이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단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작업을 진행할 수는 없는 게 맞고, 해경도 위의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잘못을 인정했다.
우선 이종인씨의 다이빙벨이 설치된 위에는 알파기[7]가 위치해 있었으므로, 고의로 의심된다는 의견이 나오는 자체는 이상할 것은 없다. 비록 국내법상 의무는 아니나, 국제법상 알파기가 설치된 곳으로는 배를 운항할수 없게 되어있다.#

거기다 이종인씨의 발표에 뒤이어 이종인씨의 아들이 올린 걸로 추정되는 글[8]과 이후 이종인 대표 본인의 전화 인터뷰를 보면 적어도 피해자인 이종인 대표가 느끼기로는 고의적인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

다만, 해경이 바지선에 충돌에 가까운 접안을 해 온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것이 해경이 위협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한 행동인지, 단순히 접현과정의 실수 또는 해당 표시를 보지 못한 단순한 병크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그 외 협박을 위한 행위임을 증빙하는 공식적인 증거는 없는 상태이다.

5 해경의 미흡한 대처 논란

5.1 최초 신고 접수 및 출동 관련

  • 사고 한참 전부터 언급하자면 해경은 2014년 초, 동해, 서해, 남해의 3개 지방청에서 수난 구조를 담당하는 수색구조계를 폐지했다. 원래 계장 이하 각 3명이 담당하던 이 부서가 폐지되면서 인명구조와 해양구난 업무는 경비계에서 1명의 실무자가 담당하게 되었다. 해경의 초기 대응이 엉망이었던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 그리고 새삼스럽게 해양경찰의 경우 해양보다는 경찰이 강조되는 구조였던 것이 주목받게 되었다. 최고 지휘부의 상당수가 바다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던 것. 그래서 해양실무보다는 수사정보 능력이 더욱 중시되는 이상한 조직이 되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의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해경 역시 이모양이면 대한민국에서 해양안전을 책임질 조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
  • 사고 당일에 최초 신고 학생과의 통화에서 위도와 경도를 말하라며 다그친 사실이 4월 22일에 알려져 비난을 받았다. 현재 장소의 경도와 위도를 모를 신고자에게 여러 차례 위치를 묻는 질문을 해 시간낭비를 했고 결국 제 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9] 해경은 당시 신고자가 승객인 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소방본부 측에도 문제가 있는데, 소방본부 측에서 이미 배 이름을 들었는데도 이를 해경 측에 알리지 않아 신고자가 다시 배 이름을 말해야 했다.#
  • 해경의 초동대응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자, 해경측은 연락만 안 했을 뿐 쭉 지켜보고 있었다는 해명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관련규정위반을 시인한 셈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
  • 해경의 초기 구출과정도 문제인데, 침몰 47분 전에 도착한 해경 소속은 구조정 1척과 헬기 1대가 전부[10]. 이 47분 동안 뭘 했느냐하면, 구명정은 인근에 접근했다가는 같이 침몰할 위험이 있단 이유로 근접하지 않고 구명보트 한대만 내려서 이 구명보트만 왔다갔다 하면서 승객을 구조했다. 관련 YTN 보도 그리고 구명 헬기 역시 1, 2명씩 구조하는 산악구조 형태를 취했다. 당연히 구조 인원은 극 소수. 마지막으로 침몰 10여분을 남긴 상황에서 조타실이 있는 선수로 접근하여 그곳에 몰려있는 선원들을 구조했다. 이때에는 목포해양경찰서장의 승객을 전부 퇴선조치 시키라는 명령마저도 4차례나 무시했다. 해경, "승객 퇴선" 지휘부 명령도 어겼다-노컷뉴스 보도. 이에 대해서 당시 해경들은 '배가 너무 기울어서 접근이 불가능했다'라고 대립했다. 해경 ‘승객 퇴선’ 책임 떠넘기기- 서울신문 보도. 이는 해경의 초기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다음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이후 검찰 수사 내역을 보면 해경의 초기 구조가 완전히 실패였으며, 해경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하였다. 갇힌 300여명 이동 가능했는데… 해경, 아무도 선체 진입 안 했다-경향신문 보도. 해경의 초기 대응에 대해서 검찰이 업무상 과실치사를 고려하고 있다 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선장·선원 '살인죄'…해경에 과실치사 검토-SBS 보도. 일단 해경측에서는 이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석균 "해경에 과실치사 적용 사실 아냐"-뉴스 Y보도. 하지만 검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해경을 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추가적인 사실 보도가 잇다를 것으로 보인다. 檢, 해경 늑장구조·업계 유착비리 `전방위 수사`.
  • 승객 구출 과정에서도 해경이 승무원들을 먼저 구출시켜 버리는 바람에 내부구조를 몰라 탑승중인 승객을 구출하지 못하였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구출을 위해 파견한 소방헬기가 중간에 고위 공직자를 탑승시키기 위해 지체되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조사 결과 사건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던 진도 VTS의 경우 사건 발생 이전부터 근무일지까지 조작할 정도로 근무태만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였다는 게 밝혀졌다.# 진도 VTS는 목포해양경찰서가 통보를 하기 전에는 세월호가 침홀중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이들은 CCTV 기록까지 지우는 등의 증거인멸까지 시도했고 결국 구속되었다.

5.2 침몰 후 구조 및 수습 작업 관련

  • 해경이 자원봉사 잠수부들의 선박 접근을 해수부장관의 격려 방문을 이유로 저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진도군범정부사고대책본부브리핑 (영상 2분 40초경). 이는 민간잠수사들의 자질부족을 브리핑하는 도중 돌발적으로 나온 주장으로 향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11]
  • 초기 대응과정에서 해경이 심각성은 축소하고 구조 현황은 과장해서 보고하여 일을 키웠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초기 대응도 인명 구조가 아닌 선박 구난으로 처리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문제는 권력형 비리로 옮아가고 있는 관계에 있는 언딘이 구난업체라는 것이다. 구조명령을 내리면 인근 목포 등지에 있는 구조 업체 등이 선정되지 구난 전문 업체인 언딘이 선정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논란이 또 커졌다.
  • 해경이 자원봉사로 온 민간잠수사 측에 폭언을 날려 민간잠수사들 측이 철수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다만 실종자 가족 측은 유보적인 입장으로 대표 유경근씨는 "도움을 주는 모든 분들이 감사하다. 민간 다이버분들의 노력에 감사하고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해경의 구조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서 일방의 편을 들기 힘들다"고 말했다. 민간 다이버 참여에 신중한 정부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수중구호단체 관계자는 "400명 정도가 잠수사 신청을 했는데 전문가도 있지만 레크리에이션 자격증을 가진 비전문가들도 많다"며 "정부가 잠수병, 장비 부족, 개별 능력 검증 어려움 등을 이유로 민간 다이버의 구조 작업에 신중한 것은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머구리 방식으로 구조방식이 바뀐 이후 해군으로 지휘권이 넘어갔고 민간잠수사들도 일부만 남기고 대부분 철수했다. 이후 23일 해경은 페이스북을 통해 자원봉사자가 오면 작업을 중단하고 먼저 그쪽에 기회를 줬으나 대부분은 험한 바다를 버티지 못하고 나왔고, 이로 인해 작업에 많은 지장이 초래되자 불가피하게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제한하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결정에는 현지 작업을 참관하고 계시는 희생자 가족 대표 분들의 간절한 요청도 반영되었다고. 자원봉사 잠수사의 참여 중단이 결정된 이후 이를 알지 못하고 민간잠수부가 다시 배를 타고 접근하여 밧줄을 던지려하자 작업을 감독하던 해경 요원이 자신의 부하직원에게 “아 이 사람이 왜 허락도 없이 자원봉사자 분들을 모시고 왔냐?”라고 말했고, 이것이 민간잠수사에 폭언을 날린 것으로 와전되었다 한다. #
  • 해경이 특정 업체의 투입을 위해 민간 잠수사 및 해군 특수 부대의 투입을 저지한 사실이 보고되고 있다. 우선 민간 잠수사가 발견한 첫번째 시신을 특정 업체가 발견한 것으로 발표한 것이 드러났으며, #. 이 특정 업체가 수색작업을 하기 위해서 해경이 현장을 통제했다는 것 또한 밝혀졌다.# 현장에 접근한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 역시 접근이 차단되었다는 국방부 발표 또한 있었다. # 여기에 세월호 구조 현장을 지휘하던 해경 간부가 청해진 해운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유병언 회장 운영 세모 그룹에서 근무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 특히 이 해경 간부가 사고 초창기 핵심 정보를 확보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 다음날인 5월 1일에는 해당 간부가 구원파를 믿었었고 박사학위 논문에 유병언 회장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
  • 청해진 해운측이 언딘과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해경에서 언딘과의 계약을 종용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
  • 2014년 1월, 김석균 해경청장이 해양구조협회의 수익사업을 지원하라고 공문을 보냈다는 SBS 보도가 나왔다. 이 해양구조협회에 전 해경간부 6명이 낙하산으로 가 있었고, 이 해양구조협회의 부총재가 수도 없이 까이고 있는 언딘의 주식 65%를 소유한 대주주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시기부터 언딘이 국가적 지원을 받아왔다는 것이 속속 밝혀졌다. 이걸로 권력형 비리 사건도 추가다.
  • 문화재청은 사고 당일 목포에 있던 수중문화재 인양 선박 씨뮤즈호를 사고 현장으로 파견하고, 다음날에는 태안에 있던 누리안호도 도착하였다. 288톤급 대형선박인 누리안호는 잠수사 4명이 동시에 사용가능한 감압챔버를 갖췄으며, 18톤급 선박인 씨뮤즈호 역시 잠수사 공기공급 장치를 갖춘 배로, 수중문화재 발굴에 사용 되어 왔으며, 수중 발굴에 경험이 많은 잠수 인력이 함께 파견되었다. # 한국의 수중문화재는 고려와 조선의 조운선이 서해의 거친 항로에서 난파해서 생긴 사례가 많은 걸 감안하면, 수중 유물 인양과 조사 경험이 많은 잠수 인력은 곧 험한 서해에서의 잠수 경험이 많은 인력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해경은 두 선박과 잠수사들을 활용하지 않고 쓰레기 수집이나 맡겨, 할 일이 없다고 판단하여 누리안호와 씨뮤즈호는 귀환하였고, 그 도중에 해경이 공문을 보내 다시 두 배를 요청하면서 사고 후 일주일 만에야 수색에 투입되었다. #
  • 해경이 사고로 희생된 학생들의 휴대폰 메모리를 먼저 봤다는 주장이 있었다. # 이에 대해 해경측은 휴대폰 무단 복원 및 열람은 사실이 아니며, 주인을 찾아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 하지만 휴대폰은 일련번호로 주인을 확인할 수 있고, 본체인 휴대폰이 먼저 인도된 이후에도 데이터 칩이 인도되지 않은 정황이 있는 이상 저 해명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 언딘이 수색 성과를 가로채고 있다는 보도가 있은 후, 이제는 해경이 초기 구조 성과를 가로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가장 골치아픈 부분을 발췌하자면, 해경이 구조했다고 밝힌 인원이 141명, 관공선(진도 행정선, 전라남도 어업지도선)과 어선이 구조한 인원이 69명으로 다 합치면 210명이 되는데, 이미 밝혀진바와 같이 실제 구조자 수는 174명... 더구나 보도내용에서 나오는 것처럼 해경 소속이 아닌 곳엣 구조한 것으로 확인된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도대체 초기 구조에서 해경이 뭘 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연이어 졌다.
  • 이런 일련의 사건이 연이어지자 이젠 해경10대논란이란 기사가 나올 지경.

5.3 최초 도착 경비정의 구조일지 허위작성

세월호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도 소극적인 구조활동으로 비난을 산 목포해경 경비정 책임자가 체포됐다. 검찰은 2014년 7월 29일 오전 3시께 목포해경 123정 정장 김모(53) 경위를 긴급체포해 조사했고 김 경위에게는 공용서류 손상,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혐의가 적용됐다. 김 경위는 출동 당시 근무일지를 일부 찢어버린 뒤 그 자리에 퇴선을 안내했다는 내용을 새로 적어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5.4 기타 해경 소속 공무원 및 관련 사건·사고

  • 해경 간부가 80명을 구한 것도 대단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해 논란을 빚었다. 거기다 사고에 대해 기자와 관련자들에게 24시간 내내 응대하고 있던 해경 직원들에게까지 폭언과 욕설을 퍼부은 점도 문제가 되었다. # 결국 이 간부는 직위해제[12]되었다. #
  • 해경의 미흡한 대처에 대해 평소에 제대로 된 훈련을 이행하지 않았기에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 한편, 평소에 예산 부족을 호소하면서도 골프장을 건립했다는 사실도 보도되었다#

5.5 파급 결과

  • 4월 28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경이 수사대상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
  • 4월 30일 해경은 미흡한 초동 대처에 대해 공식 사죄하였다. #
  • 이 사죄와는 별개로 감사원은 해경을 포함한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해양항만청 등을 상대로 특별 감사에 들어갔다. #
  • 5월 19일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해양경찰을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6 시신 인도의 문제점

시신 인양시 현장에서 간단한 신원확인 절차를 거쳐 먼저 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하고 후에 DNA등 대조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정하는 방식으로 희생자 관리를 하는 과정에서 예견되었던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익사체의 특성상 외견상으로 정확한 신원파악에 다소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고 아무리 실종자 가족이 하루라도 빨리 인양된 시신을 장례라도 잘 치뤄주고 싶어서 요청했다 하더라도 이런 시신이 뒤바뀌거나 전혀 엉뚱한 사람의 시신으로 장례를 치르게 될 심각한 문제점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사고대책본부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13] 그래서 다시 절차를 철저히 했더니, 이번에는 우리애가 확실한데 너무 오래걸린다는 원성이 터져나오며 심란한 전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신의 인상착의를 잘못 알려줘서 시신 확인이 바로 되지 않는 일도 일어났다.#

단원고 교사들을 시신확인에 일주일동안 투입한 것으로 나왔다. 부모도모르는데... 문제는 담임교사가 아닌 교과 교사들로 아이들 얼굴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교사들을 밀폐공간에서 일주일 씩이나 동원했다는 점으로 향후 해당 교사분들의 PTSD가 걱정되는 상황이다.

또한 시신들을 시신안치소가 아닌 냉동차에 실으려 했다는 보도가 있다. 정부, 영안실 자리 없다… 일시에 많은 시신이 몰려서 자리가 없었다 해도, 유족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7 기타 정부당국의 대응 관련 문제점

세월호 사고 발생 당일 오전, 해양수산부와 안전행정부는 각각 청와대에 사고소식을 보고했으나 그 세부 내용은 상당히 부정확했다. 이후 오후에 경찰이 작성한 상황보고서에도 “선장이 10시 18분에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방송했다”는 잘못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 청와대는 사고 발생 초기에는 직접 지휘를 하다가 이후 4월 23일과 5월 1일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분야를 통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표하여,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사고 발생 당시, 가장 먼저 사고사실 보고를 하도록 규정된 국가기관이 국정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 청해진해운 측에서는 사고 당일 9시 10분경 국정원에 사고 사실을 통보하였다.

세월호 사고 발생 당시, 10시에 서면보고를 받은 이후 7시간이 지나 5시에 중대본을 방문할 때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논란이 일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질의에 어디에 계시는 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논란이되고있는 최순실게이트 사건과 맞물린다. 최순실이 살고있는 독일과의 시차가 7시간이기에 그때 당시 독일은 새벽1시였기에 조언을 받지못해서 깨어나는 시간까지 기다린시간이 7시간이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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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사건사고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자작이라고 해서 이 사람이 웹툰 무한동력의 그 아저씨 모냥 자칭 발명가 같은 사람은 아니고 알파 잠수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다이빙 벨도 이 회사 물건.
  2. 해군은 이종인이 가지고 있는 다이빙 벨보다 더 좋은 클로즈드 벨을 보유 하고 있지만 파도로 인한 모선의 고정 불가, 유속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 수중시야 불투명 문제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3. 구난은 커녕 언딘은 그냥 인양 업체다. 지금은 반박문 외에는 아무런 내용도 볼 수 없는 언딘 홈페이지에 실려 있던 업무 내용 중에서 인명 구조 언급은 없었으며, 사고 해역에 파견된 것도 청해진 해운과의 인양 계약인 것으로 해경에 의해서 확인 되어서 언론에 보도되었다. 인명 구조는 작업할 때마다 민간인 용역을 가져다 쓰는 것.
  4. 이종인은 수색을 하였으나 실종자를 찾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한 것이다. 다만 이를 성공이라며 옹호하는 인간들도 있다. 어쨌든간에 수색을 하였으니 성공하였다는 논리. 하지만 20시간 연속 작업이 가능하다고 했으면서 정작 2시간만 작업했고 그나마도 고작 수색 작업은 20분, 25분 나누어서 투입하여 총 45분이었다. 그나마도 3명 중 2명은 다이빙 벨에서 작업해야하고 나머지 한 명만이 수색작업을 하였다. 이는 같이 들어간 유족도 언급하는 바이지만, 효율성에 굉장한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이유이며 비판 받는 요소다. 따라서 이를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5. 물론 다이빙벨의 기능은 매우 적다.
  6. '알파 잠수'의 이종인이 다이빙벨 활용을 장려해서 많이 착각되는데 알파 대표 이종인은 언딘과 아무 관계가 없다.
  7. 국제법에 의하여 수면 아래 다이버가 위치하고 있으므로 가까이 접근하거나 고속운항하지 말고 조심하여 운행하라는 표식이다.
  8. 이런 상황에서 흔히 나타나는 '자칭'이 아닌 2008년부터 꾸준히 알파잠수 글을 올려 온 블로그라고 한다.
  9. 사실, 경위도를 물은 거 자체는 문제가 없다. 소방본부 측에서 신고자의 현 위치의 육지행정구역 상의 주소를 알려주긴 했는데, 이걸로는 해상의 배 위치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경위도를 물어봤을 때 모른다고 하고, GPS 확인하라고 했을 때 다시 모른다고 했음에도 바로 배의 이름을 묻지 않고 계속 위치에 관한 질문을 한 게 문제가 되었다. 해경은 배의 이름을 알면 그 배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10. 이후 헬기는 3대로 늘어난다.
  11. 현재 이 동영상은 계속 삭제되고 있어 링크 갱신이 필요함
  12. 이 처분을 받은 공무원은 3개월 정도 아무런 직책 없이 대기하는 상태가 되는데, 이 시기에 잘못했다가는 아예 파면될 수도 있다.
  13. 사고지역 수온이 낮아서 부패가 늦게 진행되는 편이긴 하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