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기자)

1 소개

MBC 출신 프리랜서 언론인이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문화방송 공채 기자로 입사했다.

문화방송 기자로 있을 당시 탐사전문기자로 활동했고 MBC 퇴사 후 현재는 GO발뉴스라는 탐사보도 전문 인터넷방송의 진행자로도 활동 중이다.

변희재로부터 고발당했다.[1]

MBC로부터 고소당했다. 관련기사

MBC 보도국 기자 시절에는 시사매거진 2580 등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 당시 취재를 맡은 것과 2002년 연예계 PR비 의혹 보도[2] 등을 비롯하여 2000년대 초반 연예계 취재를 활발하게 벌인 적도 있다. 또한 이후 삼성 X파일 사건[3]을 보도하였는데, 이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로 2006년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의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진보좌파계열 언론인이며 주로 권력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탐사보도로 명성이 높으나, 이후 안 좋은 의미로도 유명해져 있다. 밑에 길게 서술한 것처럼 진보 성향에 가려서 그렇지 구린내가 많이 나는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MBC의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방탄헬멧 실험 당시 결과가 지맘대로 안나오자 신형 국군 헬멧이 미군 헬멧보다 성능이 뒤진다는 의혹을 제기 하였는데, 국방부 인터뷰 당시 국방대 교수가 미군 헬멧을 보여 준 뒤 미군 헬멧과 다른 찌그러진 '미군형 헬멧'을 보여준 장면을 편집을 통해 미군 헬멧인듯 조작하는 일이 있는데, 그 당시 취재기자가 이상호 기자였으며, 이후 방송에서도 '더군다나 미군으로 납품 되려다가 반품된 제품 이었습니다'라고 조작에 힘을 실어주는 사건이 있었다. 이는 YTN 돌발뉴스에 등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낳았고, 당시 탄속이나 충격량 계측장치도 없는 목동 실탄 사격장에 가서 실험해보자는 이상호 기자의 "MBC가 쏜 총알로 해야지..." 라는 말에 이후 밀덕들에게도 대차게 까였던 사건이다.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진행자 신강균과 이상호가 건설회사로부터 핸드백 뇌물을 받은 사건과 맞물리면서 스스로 종영됐는데, 이상호는 핸드백을 3일동안 들고있다가 다시 반납했다. (이 사건이 밝혀진 것은 이상호 본인 스스로의 심경 고백을 통한 것이었다.) [4]

2011년 12월의 전두환 취재로 인해 2013년 1월 MBC에서 '명예 훼손 및 품위 유지 규정 위반'을 이유로 해고되었으며, 이후 MBC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여 동년 11월 해고무효판결과 함께 사측에서 복직일까지 월 400만원을 지금하라는 판결을 받으며 승소했다. 이에 대해 MBC 사측에서는 항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워낙 이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가벼운 뇌경색 증상으로 잠시 탐사보도를 접었다.
7월 9일 대법원은 이상호 기자에게 최종 승소 판결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고 당한 본인은 타인을 부당해고를 시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디어워치대표는 변희재
8월 4일 MBC는 이상호 기자에게 정직 6개월 징계했다. #

2016년 5월 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이상호 기자가 사측 인사위원회로부터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다”고 밝혔다. MBC는 이 기자가 정직 기간 동안 연출한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7시간>, 해고 기간 동안 연출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소셜미디어 활동에서 회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점도 징계 사유로 들었다.#
결국 진짜 MBC를 떠났다. 이상호 기자는 5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회사에 사의를 전달했다"며 "이제 국민의 기자가 되기 위해 두려운 가운데 MBC를 떠나 광야로 나서려 한다"고 밝혔다.#

2 사건사고

2.1 세월호 사고 당시 활동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때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5] 그 중에는 인파 중 사복경찰을 골라내는 취재도 있었다.비공개 동영상이다

하지만, 취재 및 보도라는 기자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서 사건 자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고 만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 청장과 실종자 가족과의 면담 진행 중,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며, 연합뉴스 홍창진 기자의#에 매우 격하게 분노하면서 "넌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 이 XX야. 연합뉴스! 기자 이 개XX야! 니가 기자야?"라고 발언하였다.


이후 욕설은 너무했다는 지적을 수용하여 사과는 하였으나, 연합뉴스 측에선 소송을 고려 중이고 이상호 기자는 추가 사과는 없으며 소송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욕설의 대상이었던 연합뉴스 기자는 이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도 기자 시키면 저처럼 할 거잖아요"라는 해명문을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이상호 기자의 뇌경색이 재발하였다는 것이 알려지고, 진중권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걱정을 사면서, 연합뉴스의 소송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다. 결국 연합 뉴스에서 내부적으로 소송을 준비한 적이 없다고 발을 빼면서 소송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이상호 본인은 증세가 경미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시 중계를 재개하였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속시원한 해결책도 구조 현황도 내놓지 못한 사고 수습의 직접 해당관청인 해수부 장관과 해경 청장을 상대로 끈질긴 추궁 끝에 추후 구조작업에 대해 약속을 받아내기도 하여 당시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크게 신뢰를 얻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이 제3자로서 정상적인 취재과정이 아니라 사건 자체에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로 비춰지면서, 그에 대한 비판 여론도 고개를 들게 된다.

게다가, 여기서도 욕설 논란 이외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는데, 바로 "잠수부는 다쳐도 된다. 천추의 한이 남으면 안 된다." 라는 말을 한 것으로, 발언 당시 지지부진한 구조작업 때문에 큰 비난을 받지 않았으나, 며칠 뒤에 정말로 민간 잠수사 중에 사망자가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발언이 도마에 오르게 된다.* 다만 이 발언은 "잠수사 분들이 모두 생명 포기 각서까지 쓰고 들어가신 분들인데, 잠수사들의 수색 활동을 해경에서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뉘앙스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던 다이빙 벨 투입이 아무런 성과없이 철수하게 되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민간 잠수부 사망이 뒤를 잇자 진도 팽목항 취재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에게 항의를 받고 쫓겨났다. ##

다이빙벨은 해경과 일반 민간 잠수사의 평균 30분도 되지 않는 잠수 시간에 반해 2시간 30분의 잠수 시간을 기록하였으나, 이는 사고현장인 맹골 수로에서 팽목항 쪽으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시연한 것이다. 심지어 처음에는 팽목항 나루에서 실험하면서 마치 사고 현장에서도 투입 가능한 것처럼 선동했지만, 이를 지적당하자 유속이 느린 적당한 지점을 정해서 다이빙벨을 투입하는 영상을 촬영했다. 투입까지 3번의 시도 (이 중 한번은 장비불량)가 있었을 만큼 다이빙벨 안에서는 유속 영향을 적게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이빙벨 설치 난이도가 높다는 점을 다소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구조시 감압 챔버가 부족해서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의 뉴스가 보도 되었다.

통영함에도 다이빙벨이 있으나 세월호 구조에 투입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이 오픈된 wet bell인 반면, 통영함의 다이빙벨은 심해잠수용인 closed bell 타입인 점이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

다이빙벨 떡밥이 사그라들자 이번엔 세월호 침몰 원인이 폭침이라며 고발 방송을 올렸다.방송 내용을 요약하면 세월호 출항 전부터 폭파 협박이 있었고 세월호가 침몰하자 정부에서 일부러 구조에 늑장을 부렸다는 것인데, 너무 비약이 심한 황당한 이야기라 기사화도 거의 되지 못 하고 묻혔고, 사람들의 입으로만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폭침설의 근거는 일단 침몰 당시 배 안의 학생들은 가스와 계란 냄새가 난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사제 폭탄의 재료로 쓰이는 부탄가스유황을 떠올리는 것. 구조작업을 지휘했으면서 동시에 구원파 장학생 출신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었던 이용욱 전 해경 정보국장이 폭발물 전문가 출신이었다는 증언을 입수, 보도하면서 폭파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조사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가스 냄새의 경우 조리시설에 있는 가스가 새어나온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고, 전에 폭발물 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이 도대체 폭탄 테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설명을 못 하고 있어 현재에 있어선 음모론 그 이상 그 이하도 되고 있지 못한 상태다. 폭탄 전문가들 전부 예비 폭탄마로 만들 기세 그래서인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들마저도 이런 의혹은 올리고 있지 않다.

독립영화 감독으로 데뷰(...)해서 안해룡 감독과 함께 세월호 다이빙벨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찍었다. 이에 일각에선 방영 반대에 나서고 있다.#1, #2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사람이, 그것도 해당 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인물이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상황.

일반인 희생자 유족이 해난구조 지원 장비인 '다이빙벨'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10월 2일 개막하는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상영될 것으로 알려지자 상영 중단을 촉구했다. # 서병수 부산시장도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주무국인 부산시 문화체육관광국에 “<다이빙벨>의 상영이 부적절하다. 상영 중단을 검토해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주무부서인 영상문화산업과의 간부가 이용관 집행위원장한테 전화를 걸어 상영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집행위원회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다이빙벨> 상영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선정위원회를 열어 선정한 개막·폐막작 등 313편의 작품을 이미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발표한 상태에서 갑자기 특정 작품 상영을 중단하면, 지난 18년 동안 지켜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전통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라는 것이다.#

2016년 2월 12일, 자신의 SNS에 ‘대통령의 7시간’ 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대통령의 7시간’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기자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다큐 영화 ‘대통령의 7시간’을 비밀리에 취재‧제작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2016년 7월 31일, 베를린 영화제에 상영하기로 되었던 다이빙벨이 상영 취소되었다. 이 문제를 두고 이상호는 한국 영화계가 정치적인 외압을 넣었기 때문이라며 주장하였고, 영화계 인사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2.2 민간요법 옹호 행위

또 한편으로는 김남수민간요법계통의 사실상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좋게 말하면 민간요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돌팔이)를 마치 권력의 탄압인 양 옹호하여 문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김남수에 대해서는 책까지 썼다. 공중파 TV 출연도 이상호 기자의 소개로 알려져 있다.

이 일로 김남수는 대중에게까지 상당한 인지도를 얻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후 추적 60분, 그것이 알고싶다 등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에서 그가 옹호했던 인물들의 진상을 파해치고 극딜하였으며 이상호 기자는 이들로부터 뒷돈 또는 향응을 제공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돌고 있다.

2.3 서부전선 포격 사건 관련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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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총풍사건을 들먹이며 아니면 말고 식으로 떠벌렸다. 여기에 낚인 네티즌들이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작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근에 역임 한거라...

2.4 젝스키스 관련 DSP미디어 비리 취재

2000년에 젝스키스가 해체하자 팬들은 매우 격분했다.[6] 대표적인 예가 팬들이 조영구 차를 사장 차로 오인하고 반파시킨 사건일 것이다.기사, 기사 이 사건은 팬클럽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이호연 사장이 1100만원 수리비를 전부 보상함으로써 마무리됐다.기사

이런 팬들의 성화는 DSP미디어의 비리를 폭로한다는 투서를 보내는데 까지 발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상호 기자가 MBC 시사프로 피자의 아침이라는 아침방송에서 5부에 걸쳐 방송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이호연 사장은 경찰조사를 받았다.소속사 사장을 경찰조사까지 받게 만든 젝키 팬들의 위엄이다ㄷㄷ 당시 경찰조사를 받은 이유는 탈세를 위한 음반판매량 축소와 팬클럽비 유용이다.# 그러나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이상호 기자의 후일담에 따르면 무혐의처분을 받았지만 탈세와 관련해선 나중에 수억원대의 추징금은 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후 2001년 7월 시사매거진 2580에서 가요계 전반의 실태를 담은 보도를 내보내게 된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해당 방송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내보내고 있다. "젝스키스 멤버 부모: 콘서트로 돈을 받은 적이 없다. 99년 11월 이후 (9개월 간) 93만 원 받았고, 그 후로 한 푼도 못 받았다."이상호 기자 홈페이지 원문

이를 근거로 젝스키스가 한달에 100만원 정도 벌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위 내용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위 발언은 2001년 7월 시점에 한 것이 아니고, 과거 2000년도 피자의 아침 취재 당시 젝키 부모가 이런 발언을 했었다는 내용을 증거자료로 쓴 것이다. 그런데 인용하려면 제대로 인용해야지 의도적으로 "앨범판매 대금"이란 단어를 빼서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 저렇게 써놓으면 누가봐도 "99년 11월 이후로는 단돈 93만원만 벌었구나. 개쓰레기 소속사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이는 사실이 아니다. 피자의 아침 원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젝스키스 멤버 부모: 일단은 콘서트로 돈을 받은적이 없다는 얘기구요. 그리고 수당식으로 앨범판매 대금은 작년 11월 이후 93만원 이후에 받지 못했다. 그리고 대만에 내다 판 CD판매대금도 한푼도 못받았다." 즉 앨범판매대금 항목에 관해서 99년 11월 이후 93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젝키의 마지막 앨범인 4집은 99년 9월 9일에 발매됐다.[7]

2016년 무한도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00년 5월 해체 당시 멤버 부모들이 모두 소속사에 찾아와 정산을 받아갔다고 하고, 해체 몇개월 후에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입막음 용으로 부모에게 수천만원이 전달되기도 했다. 나머지 정산에 관한 내용은 젝스키스 정산 항목 참조 바람.

이상호의 책 '이상호의 GO발 뉴스'를 보면 "젝스키스는 1년에 100만원 벌었다."고 적고 있다. 젝스키스 정산 항목에서 보듯이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몇가지만 뽑아보자면, 이재진은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데뷔 후 몇 개월 만에 부모님 집을 사드리고도 남을 만큼 벌었다고 했고, 해체 이후 생계도 어느 정도 보장될 정도라고 말했다. 2015년 1월 27일 택시 방송에 멤버들 출연했을 때는, 행사 한번 뛰고 나면 멤버 1인당 300만원씩 받았다고 밝혔다. 은지원조차 방송에서 젝스키스를 하면서 2억은 벌었다고 말한 바 있다. 활동기간은 햇수로 3년 1개월, 음반활동기간으로는 2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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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담이지만 변희재는 이상호 기자를 사망유희 토론의 진행자로 데려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황장수 편을 끝으로 토론대결이 없어졌다.
  2. 당시 같은 회사였던 은경표 PD 등 여러 사람들이 잡혀나가게 되며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여담으로 당시 제보자였던 가수 시후(본명 박지우)는 훗날 천인공노할 개쌍놈의 짓을 저질렀다.
  3. 당시에는 이상호 X파일 또는 삼성그룹 X파일 사건이라고 불리웠다.
  4. 당시의 심경을 '기자와 아내' 라는 글로 남겼고, 그 직후 삼성 X파일 사건의 취재를 준비하게 된다. 한겨레 기사 참조.
  5. 세월호 사건 관련 사건사고를 읽으면 알 수 있지만 기레기들의 만행이 목불인견이어서 실종자 가족들은 기존 언론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생중계를 계속한 것은 이상호 기자와 팩트TV 뿐이다. 이들 이외에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손석희 사장 정도.
  6. 해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해체 문서 참조 바람
  7. 해체 이후인 2000년 5월 31일 비정규 음반으로 고별앨범 블루노트가 발매되긴 했다. 4곡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곡들로 채운 앨범이다. 당시 86,900장이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