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이런 병맛스러운 축제다. 역시 기행의 나라 영국...
영국 글로스터 지역의 브록워스(Brockworth) 마을에서 스프링뱅크(Spring Bank) 휴일마다 열리는 괴랄한 축제. 지역 인근에 위치한 쿠퍼즈 힐(Cooper's Hill)이라는 곳에 눈썰매장 같은 모양의 잔디밭을 확보한 후, 언덕 꼭대기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진행자가 (아마도 그 지역의 특산물일) 둥근 글로스터 치즈 덩이[1]를 언덕 아래로 굴리면, 곧바로 모든 참가자들이 그것을 쫓아 정신줄을 놓고 언덕 아래로 우르르르 달려 내려간다. 와중에 엎어지고 넘어지고 구르는 일은 아주 예사로운 일. 언덕 맨 아래에는 결승선이 있어서 여기에 제일 먼저 도달하는 한 사람이 문제의 치즈를 소유할 수 있다.
물론 원래 경기 규칙은 굴러 내려가는 치즈를 손에 넣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언덕 중간에서 치즈를 붙잡는 데 성공한 참여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2] 문제의 치즈는 언덕 아래에 설치된 펜스 내지는 울타리에 걸려 멈추게 되는데, 경기가 끝난 후 승리자는 치즈를 손에 들고 인증샷을 찍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이제 와서는 굳이 치즈를 잡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제일 먼저 굴러 내려가는 달려 내려가는 것에 다들 치중하는 걸 보면 뭐 아무래도 좋은 듯.
한 번에 내려가는 참가자의 수는 20명이고, 총 5번 실시한다.[3] 그 중 한 번은 여성 참가자만으로 이루어진다고. 경기 중간중간에 막간을 이용하여 언덕을 달려올라가는 이벤트성 경기도 치르는 듯. 이래뵈어도 나름 엄연히 작전(…)을 짜서 전략적으로 임해야 하는 축제라는 것이 자부심 넘치는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전략 회의 장소는 역시나 인근의 펍.
이 축제도 굉장한 전통을 자랑하지만, 도대체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는 이거다 싶을 만큼 뚜렷한 사료나 물증이 남아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점점 영국 전역으로 그 유명세가 퍼지고 있으며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 처음에는 브록워스 주민들만이 참여하는 아기자기한(?) 지역 축제였으나 이제는 그 마을의 유명한 명물이 되었고 아예 관광자원이 되다시피 했다. 병맛스러운 축제가 세계인들에게 병맛스러운 인기를 끌어서 전세계의 병맛스러운 참가자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추세. 물론 단순히 관람만을 위해 찾는 관광객들도 굉장히 많이 있으니 지역민들에게는 이래저래 효자 축제.
한 가지 특징이라면 몹시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것. 위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자신이 원하는 코스프레를 하고 참여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코스프레나 닌자 코스프레 등등 각종 골때리는 복장으로 굴러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다. 게다가 한번은 운영위원회가 결성되어서 아예 경기장을 설치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하며 심지어 유료 관객석(…)을 만들어서 돈벌이 좀 해 보려고 시도했다가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위원회는 해체되고, 그렇게 그 해는 그냥 지나가나 싶었는데 관리자 없이 그냥 자원봉사자들끼리 힘을 합쳐서 무사히 축제를 치러냈다고. 여전히 축제는 자원봉사를 통해 유지되고 진행되는 중이니 아직까지 축제의 본질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럴싸하게 말해서 축제라는 거지 실상은 그냥 산비탈에서 험하게 구르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부상자가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깨지고 찢어지고 다치고 부러지고 하는 것이 예사. 이 때문에 행사장에는 지역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으며, 뇌진탕 같은 심한 부상을 겪은 참가자가 있으면 즉시 현장에서 병원으로 이송한다. 위 영상 마지막에서도 나오지만, 그렇게 다쳐서 절뚝거리면서도 다들 그저 좋다고 웃고 있으니...
비슷한 것으로 일본의 온바시라 축제(Onbashira Festival)가 있다. 이쪽은 통나무를 타고 절벽을 내려가는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