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코만도 대원들을 기리는 기념상
1 개요
이후 이 부대의 이름이 널리 특수부대나 특공대를 보편적으로 의미하는 일반 보통명사화 되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육군 특공대도 영어로 ROK Army Commando 로 번역하고 있고, 그 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영어이름으로 Commando란 단어를 붙이는 부대들이 무척 많다. [1]
2 역사
과거에도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나 소규모 그룹과 개인은 존재했으나, 대부분 적의 군복을 입거나 민간복으로 활동하는 스파이에 가까운 부류였고, 특수작전을 위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임시방편격으로 투입되곤 했던 한시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창설된 영국 육군 코만도에 의해 처음으로 전문적인 특수작전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실전을 통해 얻은 노하우와 체계적인 훈련법은 이후에 창설된 다른 영국 및 타국의 특수부대들에도 고스란히 전파되어 현대 특수부대의 초기 롤모델이 된다. [2]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초반, 영국 육군은 독일에 반격은 하고 싶지만 프랑스 전선에서의 참패로 보유장비를 대부분 잃고[3]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국 육군은 보어전쟁 당시 영국군을 괴롭히던 보어군과 민간 자원병의 소규모 습격대에서 힌트를 얻어, 독일군 점령지의 해안 등지에 기습 침투하여 타격을 가하고 빠르게 퇴각하는 부대를 구상했다. 그래서 보어어로 소부대를 의미하는 Komando에서 유래한 명칭인 Commando라는 이름으로 육군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1941년 봄, 노르웨이 해안에 대대 규모의 육군 코만도가 급습, 독일군 경비대를 사살하고 연료 저장고와 소형 선박 등 독일군 시설을 파괴 후 포로와 노르웨이 자원자들을 데리고 돌아간 것을 시작으로 중대~대대 단위의 기습을 반복하여 독일군 수뇌부, 특히 히틀러의 심기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육군 코만도의 성공으로 영국군 내에서는 특수부대 창설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중동지방에 전개했던 코만도 요원들을 중심으로 육군 SAS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육군 코만도 내에서 카누를 이용한 특수작전 분야에 특화시킨 SBS를 창설했는데 이 육군 코만도 소속 SBS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해체됐다가 그 후 해병대 소속 특수부대로 재창설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영국 해병대에도 자체 코만도의 보유 필요성이 제기되어, 특수작전 경험이 풍부한 육군 코만도 교관들이 해병대로 파견가서 해병 코만도 요원들을 교육/양성시켜서 1942년에 해병대에도 자체 코만도 부대가 창설되었다. 그리고 일부 육군 코만도 대원들은 훗날 영국 육군 공수부대의 창설 멤버가 되기도 한다.
즉 영국 육군 코만도는 SAS, SBS, 해병 코만도, 육군 공수부대 등 영국의 모든 특수부대/정예부대의 원류이자 산실의 역할도 했던 셈이다. 그래서 비록 종전 직후에 육군 코만도는 해체되었지만, 영국 특수부대의 아버지격인 육군 코만도의 DNA는 SAS, SBS, 해병 코만도, 육군 공수부대 등에 남아서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특수부대들도 영국 육군의 코만도와 SAS를 벤치마킹하여 창설 및 발전했고, 이런 미국의 특수부대들은 다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수많은 특수부대들의 모델과 스승이 되었으니, 영국 육군 코만도는 미국 특수부대를 통해 전세계 특수부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국 육군 코만도가 세계 특수부대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것이고 코만도란 이름이 널리 특수부대를 일컫는 일반 보통명사화 되기까지 한 것이다.
잇따른 성공으로 고무된 영국군은 "수가 적어도 잘 싸우는데 많으면 더 좋겠지?"란 생각으로 코만도를 대규모로 운용할 생각을 하게 된다. 1942년 2월에는 U-보트의 활동을 방해하고, 노르웨이 해안에 정박한 비스마르크급 전함 티르피츠와 대형함들이 다시 대서양에서 작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생 나자르 항구의 대형 드라이 독과 항만 시설들을 파괴하기 위한 채리엇 작전에 투입, 독일 해군의 작전수행능력을 저하시키는데 성공한다.[4] 작전은 성공하여 생 나제르 드라이독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구되지 못했고, 티르피츠는 대서양에서 활동할 수 없었으며, 히틀러에게 대서양 전체를 방어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더욱 강화시키는 다대한 전략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 댓가로 사망하거나 부상이나 후퇴 수단의 미비로 퇴각하지 못하고 포로가 된 대원들이 너무 많았다. 이후 1000여 명의 코만도가 투입되었던 1942년 8월 디에프 상륙작전은 작전 자체도 처참하게 실패하게 된다. 이후 이들 작전에서 사상자와 포로가 된 대원이 너무 많자 코만도 지휘부에서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대규모 침투작전은 자제하고 이후 분대~2인 1조 팀 단위의 소규모 침투, 파괴, 암살, 정찰 임무로 전환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영국의 군축 정책에 따라서 영국 육군 코만도가 해체되고 육군 특수부대의 역할이 SAS로 집중/일원화된다.
따라서 영국에서 코만도라는 이름을 가진 부대는 영국 해병대 예하의 코만도부대만 남게 되었고, 1960년대 이후로는 해병대 예하 코만도부대를 확대하여 기존의 해병대 소속 보병부대들의 대부분을 코만도여단으로 전환시켰다. [5]
3 영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영국 육군 코만도의 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노르웨이에 불필요할 정도의 대규모 주둔군을 배치시키고 코만도 대원은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오히려 전선의 독일군 장교들은 소규모로 침투하는 코만도의 전문성과 용맹함을 높이 평가하며 전사자에게는 후한 장례를 치러주고, 포로도 코만도라는 것을 숨기고 후방 포로수용소로 보내는 등 호의를 배풀었다.
이러한 영국 육군 코만도 활약은 다른나라에도 영향을 미쳐서, 미국도 육군 코만도를 벤치마킹하여 미군 최초의 특수부대인 육군 레인저 대대를 창설했다.
그리고 영 연방국과 자유프랑스, 그 외의 독일 점령하의 국가출신의 자원자들이 코만도 부대에 합류했고, 이들은 전후 자국에 돌아가 고국의 특수부대 창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4 기타
참고로 영미권에서 go commando란 노팬티(...)라는 뜻의 속어다.[6] 각종 미드나 영화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표현이다. 프렌즈에서도 나온다. 다른 속어들도 그렇지만 이 표현 또한 초보 번역가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괴상하게 발번역해놓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코만도스 시리즈가 바로 2차대전 당시 코만도 부대를 소재로 한 게임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코만도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사령부'를 뜻하는 영단어 'command'와 헷갈리지 말자. 끝에 'o'가 안 붙는다.
- ↑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육군 코만도가 해체된 후부터는 육군 SAS가 세계 특수부대계의 선도자적인 역할 및 큰형님 노릇을 대신하게 된다.
- ↑ 됭케르크 철수작전 참고
- ↑ 이 작전에는 코만도 뿐만 아니라 드라이독의 거대한 갑문을 파괴하기 위해 자폭용으로 개조된 윅스급 구축함 '캠벨타운'도 투입되었다. 선체에 실린 폭약의 양은 무려 4톤이었다.
- ↑ 이를 두고 일부에선 영국 해병대 '전체'가 코만도부대화 됐다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틀린 얘기다. 기존 보병부대의 대다수가 코만도여단으로 바뀌긴 했지만 코만도여단에 속하지 않은 강습상륙단이라는 보병부대도 해병대 내에 따로 있고, 보병이 아닌 상륙지원 기갑부대(Armoured Support Group)도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 ↑ 코만도 대원들이 번거로움을 이유로 속옷을 입지 않은데서 유래되었다고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