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비스마르크급 전함
1 개요
북해의 외로운 여왕님
되니츠 제독의 서류상 부인
공대 보스
티르피츠[1]는 비스마르크급 전함의 2번함이다. 비스마르크가 침몰하고 완성되었고, 함급의 설명을 보면 알다시피 결함이 많았지만, 오랫동안 영국을 존재만으로 위협했고, 영국의 주 표적이 되어 외롭게 격침되었다.
2 제원
- 기준배수량 : 42,900톤(47,300숏톤)
- 만재배수량 : 52,600톤(58,000숏톤)
- 전체길이 : 251m
- 전체 폭 : 36.0m
- 홀수 : 8.7m
- 출력 : 160,026hp
- 최대속력 : 30.1kt
- 항속거리: 16kt로 9,280해리
- 승조원: 2,608명
- 주 엔진 : Brown-Boveri식 기어드 터빈 3기, 3축 추진(연료는 중유 8,000t)
- 무장 : 52구경 38cm 연장포 8문(주포), 55구경 15cm 연장포 12문(부포), 65구경 10.5cm 연장포탑 8기(대구경 대공포), 83구경 37mm 연장대공포탑 8기, 20mm 대공기관포 78기(단장과 4연장 혼용), 533mm 4연장 어뢰 발사관 2기, Ar196 수상정찰기 4대
3 약력
- 시공일: 1937년 11월 2일
- 진수식: 1939년 4월 1일
- 취역: 1941년 2월 25일
4 함생
티르피츠는 비스마르크가 침몰한 다음에 완성된 관계로 주요 작전에 거의 참가하지 못했고 사실상 연합군 함선을 향해 제대로 포격 한번 해본 적이 없지만 노르웨이 근방의 여러 항구들을 전전하는 것 만으로 연합국 해군의 신경을 박박 긁어댔고, 만약에 티르피츠가 공세적으로 나올 경우 이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선단과 항공기들이 필요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되니츠 제독과의 일화도 나름 유명한데, 비스마르크의 허무한 손실에 실망한 히틀러는 전함들을 골칫덩이로 여기다가 결국 갈아버릴 것을 명령했고 이를 위해 해군 총사령관에는 잠수함 전문가던 카를 되니츠 제독을 임명했다. 그러나 되니츠는 티르피츠를 갈긴 커녕 티르피츠의 억지력을 눈여겨보고 "이거 갈아버릴 돈이 더 많이 든다. 얘들 살아있기만 해도 가치가 있다. "라며 히틀러의 예상과 반대로 히틀러와 다퉜고 결국 담판을 지어서 해군에 대한 추가지원을 약속받고 티르피츠를 지켜냈다.
42년부터는 북해 랜드리스 선단을 압박하기 위하여 노르웨이로 이동하고 1942년 3월 초, 티르피츠는 연합군의 수송선단인 PQ12와 QP8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3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면서 출항했으나 수송선단을 발견하는데 실패했고 운 나쁜 한척의 수송선이 구축함에게 딱 걸려 침몰당했다. 결국 3월 9일 영국 항공모함 빅토리어스 호의 정찰기에 위치가 뽀록나고, 영국 해군항공대의 추격 및 공격을 우려하여 임무를 중단하고 노르웨이로 귀환했다.
같은해 1942년 여름 동안 티르피츠는 연합군의 북해 수송선단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시 작전에 참가하여 7월경 수송선단 QP17을 거의 괴멸시키는데에 성공했다.포질한번 조우전 한번 못했으면서 궁극의 숟가락질 당시 연합군은 티르피츠가 구축함 9척을 동반하고 출항했다는 정보를 받고 이를 수송라인 차단을 위한 것으로 판단하여 수송선단의 산개를 명령했으나 오히려 호위도 제대로 못 갖춘 수송선단은 유보트와 루프트바페의 좋은 먹이가 되어 12척의 수송선을 상실했다. 선단이 흩어졌다는 정보를 입수한 독일 해군은 티르피츠에 작전 종료를 명했고 뒷처리를 유보트에게 맡겼다. 산책만 다녀왔더니 남편이 수고 많았다고 토닥여주는 여왕님, 왜 지구 반대편 여왕은 집에서 숨만 쉬고 있어도 남편이 집문서까지 팔아서 숭배해 주던데
작전 종료후 노르웨이 북쪽 해역에서 소련 해군 북해함대 소속의 니콜라이 루닌 소령이 지휘하는 카츄샤급 잠수함 K-21의 공격을 받았다. 루닌 소령은 당시 명중했는지 제대로 확인을 하진 못했지만 폭음을 확인했다고 했으며, 1960년대까지 영국/독일측 전사가들은 소련측의 주장을 부정하였으나 나중에 1942년 7월 6일 티르피츠가 노르웨이 방면으로 12노트의 느린 속도로 항해하고 있었다는 항공 정찰기록이 발견되고 7월 8일부터 9월 6일까지 나르빅 항에 머문 이유가 소련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인해 피해를 입어 수리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 소련입장에서도 유보트와 더불어 자신들의 산소호흡기를 쥐락펴락하는 놈인지라 무리를 해서라도 공격을 시도할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K-21이 발사한 어뢰는 명중하지 못하고 빗나갔으며 티르피츠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43년 9월에 스피츠베르겐 공격을 목적으로 출항하여 독일군의 상륙작전을 지원할 목적으로 티르피츠는 샤른호르스트급 전함과 9척의 구축함과 함께 육상 포격을 실시했다. 이 작전은 티르피츠가 발포한 유일한 작전이다. 야마토도 태피3를 건드려보긴했는데
4.1 공대 모집합니다!
티르피츠는 42년부터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에서 숨어서, 1942년에 두차례, 1943년에 한차례 제한적인 공세에 동원되는거 말고는 크게 한일이 없었다, 티르피츠를 구해낸 칼 되니츠도 유보트 작전을 우선시해서 딱히 티르피츠에겐 관심을 많이 쏟지 않았다. 하지만 칼 되니츠의 말처럼 티르피츠의 존재만으로도 연합군의 속을 벅벅 긁어놓고 소련의 산소호흡기인 랜드리스 작전에 무지막지하게 차질을 주고 있었다. 결국 미국 영국은 이놈과 유보트 때문에 대부분의 물자를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교통망이 빈약한 이란에 하적하여 다시 소련으로 보내거나, 상당히 신경쓰이는 일본함대를 지나서[2] 블라디보스토크에 하적후 다시 동유럽으로 보내는 개고생을 해야했다. 때문에 영국군은 근성돋는 각종 티르피츠 레이드 격침 작전들을 실행한다.
티르피츠에 대한 영국군의 첫 작전은 매우 위험성이 높은 작전이었다. 영국 해군 X급 잠수정 2척이 기지를 떠나 1천 마일을 항해해 독일 국방군이 설치한 기뢰지대를 돌파하고 그물과 해안포대, 수중청음 시설을 피해 기어코 티르피츠의 선저에 4톤의 폭약을 설치하는데에 성공했다. 폭약은 한시간 뒤에 폭발했고 격침에는 실패했지만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티르피츠는 몇 개월간 임무에 나갈 수 없었다. 오오 근성의 영국 잠수정 오오
1944년의 티르피츠[3] |
1944년 4월경 수리를 마친 티르피츠는 다시 연합군에게 어그로를 끌어댔고 영국 해군은 또다시 작전을 기획해서 항공모함을 동원하여 티르피츠 보스 레이드를 뛰었다. 2척의 전함, 2척의 항공모함, 5척의 호위항공모함, 2척의 순양함, 16척의 구축함과 2척의 유조선으로 구성된 대규모 공격대 함대가 출발했고 계획보다 빠른 4월 2일 시험을 위해서 피요르드에 짱박혀있던 티르피츠를 향해 함재기들을 출격시켰다.
영국 해군 항공대 소속 바라쿠다 뇌격기들과 호위기들로 구성된 2개 비행대의 순차 공격 진행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뇌격기들은 대잠탄, 갑판을 뚫기 위한 철갑 폭탄, 상부 구조물들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소규모 폭탄과 일반 범용폭탄 등 다양한 폭탄들을 적재해서 티르피츠에 쏟아부었다.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티르피츠는 효율적인 대공방어를 해내지 못했으며 티르피츠의 승조원들도 허둥대며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일부 영국군 전투기들은 갑판에 기관총을 마구잡이로 갈겨대기도 했으며 영국 해군은 3대의 항공기를 손실하고 티르피츠는 승조원 122명 사망에 300여명 가량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약간의 누수와 상부구조물에 손상을 입어 이걸 고치는데에 또다시 2개월이 들었다.
4.2 으아니 챠! 왜 가라앉지 않는고야!!
또다시 격침에 실패해서 잔뜩 약이 오른 영국군은 차기 작전 3개를 다시 입안하였으나 북해 특유의 지독한 기상상황으로 인해 작전은 모두 취소되었다. 하지만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1944년 7월 다시 영국 해군은 항공모함을 동원하여 티르피츠를 공습했으나 두번은 안속는지 독일군의 경보체제와 연막때문에 또다시 티르피츠의 격침에 실패했다.
8월 초, 티르피츠는 자잘한 수리를 마치고 다시 시험 항해에 들어갔고 영국군은 다시 공격을 개시했다. 8월 24일 전개된 작전에서 영국 바라쿠다 뇌격기들은 티르피츠의 포탑과 보탄대에 폭탄을 명중시켰으나 운도 없게 불발이 나고말았다. 실제로 보탄대가 제대로 폭발했으면 티르피츠는 침몰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영국 항공모함 한척이 유보트의 공격을 받아 상당한 데미지를 입어서 귀환해야 했고 29일 영국 해군은 다시 티르피츠 레이드를 뛰었으나 그놈의 날씨가 발목을 잡아 실패했다. 결국 영국 해군은 티르피츠를 격침시키는 임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격침 임무는 영국 공군에게 넘어갔다.
뒤이어 영국 공군과 미 육군항공대는 DH-98 모스키토 전폭기나 쇼트 선더랜드, B-17 폭격기를 동원하는 작전을 여러차례 구상했지만 대부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4.3 안되겠소, 쏩시다!
영국 공군은 모두 3차례의 공격을 실시하였다. 이 티르피츠를 격침시키기 위해 들인 공이 엄청난데, 아무리 폭격을 하고 맞춰도 가라앉질 않는 티르피츠를 죽이기 위해 폭탄이 안먹히면 졸라 쌘 폭탄을 먹이면 되지 라며 1944년 9월 15일 소련에서 출발한 아브로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들을 동원하여 톨보이라 불리는 5톤의 지진폭탄과 선체 하부를 노리는 5천 파운드의 조니워커 기뢰를 투하했다. 티르피츠의 연막 때문에 대부분은 빗나갓지만 한발이 핀 포인트로 명중해서 심각한 피해를 입히며 티르피츠는 더이상 연합군 수송선을 위협할 수 없는 신세고자가 되었다. 이 와중에도 독일 해군은 티르피츠가 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같은해 10월경 티르피츠는 노르웨이 지역의 연합군 침공을 방어하기 위한 해상 포대로 활용하고자 위치를 이동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동한 위치가 영국의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이륙하는 영국 공군 폭격기들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고 말았다.
1944년 10월 28일 영국 공군은 다시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에 톨보이 폭탄을 적재하고 공습을 개시하였는데 바다 안개에 가려 성공을 하지 못했지만, 티르피츠의 스크류 프로펠러 축을 구겨놓는데에 성공했다. 이 시점에서 티르피츠는 자력이동능력을 사실상 상실하였다.
마침내 1944년 11월 12일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들이 다시 공대를 뛰었고 운 없게 티르피츠의 연막 장치가 작동되지 않아 3발의 톨보이 폭탄이 내려꽂혔다. 결국 주포탑 근처 갑판에 톨보이가 명중하면서 티르피츠는 결국 수 분만에 전복하여 외로운 함생을 끝마쳤다. 1,700여명의 승조원 중 1천여명이 전사하고 말았다.
전복된 티르피츠 |
원래 티르피츠도 침몰당하기 직전에는 최악의 경우 침몰하더라도 똑바로 가라앉아서 착저하도록 하면 나중에 재수리하거나 고정포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일부러 피오르 지형을 택하고, 어뢰방지용 그물을 깔았으며, 해저지형도 평탄하고 두꺼운 모래톱을 골랐다. 하지만 명중한 톨보이 3발을 제외한 나머지 지진폭탄이 모래톱과 주변의 바닥에 명중하는 바람에 모래톱과 해저바닥에 큰 구멍을 뚫어놓았으며, 모래톱 전체로 봐도 큰 경사가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결국 티르피츠가 가라앉으면서 경사면이 된 모래톱과 충돌하여 옆으로 전복되는 바람에 수리불가상태가 되었으며, 다수의 생존한 승조원들이 탈출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들을 구하려고 용접기까지 동원해서 배 밑바닥을 뚫었지만 너무 두꺼워서 마침내 구멍을 뚫었을 때에는 내부의 승조원들은 이미 산소부족으로 사망한 뒤였다.결국 모든 원인은 영길리의 톨보이 이보시오 되니츠양반 뭔소리요 내가 고자라니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격침당하는 당일에 루프트바페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마지막 티르피츠 격침 작전에 랭커스터 폭격기 한대가 격추당했지만 이는 대공포에 의한 것이였다. 당시 랭커스터 폭격기들은 톨보이 폭탄 탑재를 위해 방어무장을 내리고 장갑 일부를 제거한 상태라 전투기에 매우 치명적이었지만 루프트바페는 "광물이 전투기가 부족합니다" 라며 출격을 하지 않았고, 결국 티르피츠의 침몰을 막지 못했다. 이후 노르웨이 지역의 루프트바페 지휘관은 모가지 처분당했다.
5 기타
티르피츠에겐 노르웨이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있었는데 바로 '북해의 외로운 여왕님'. 엘사? 1번함 비스마르크도 죽고 혼자 이항구 저항구나 전전하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영국 함대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당시 독일해군 최강이자 최대의 전함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참 적절한 별명. 특히나 남편이 자기는 안보고 아기들 돌보느라 바뻐 같이 지내지도 못한 걸 보면 더 그럴싸하다.
항구에 있을 때 가장 강한 전함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항구에 눌러앉아서 '아직 독일에 전함 남아있다!'는 위협을 하는 것이 전부였던 티르피츠의 행보를 비꼰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억제력 부분의 활용은 다른 용도로는 도저히 써먹을 수 없어서2대전기 전함 중 최고였고 발이 빠르다는 점을 활용해 방방곡곡 얼굴을 들이밀며 활악한 걸 보면 최소한 그 운용만큼은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특히 야마토보다는 훨씬 잘 써먹었다.[4]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번함 워싱턴과 티르피츠는 맞붙을 뻔 한적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항로가 엇갈려 결국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6 매체에서의 등장
- 네이비필드에서 독일 유니크 전함으로 등장한다.
- 콜 오브 듀티 1에서 영국군 마지막 미션에 등장했다. 프라이스 대위와 같이 잠입했고, 플레이어가 폭탄을 설치하는 도중에 교전이 벌어져 프라이스 대위가 전사하고 플레이어 혼자 귀환선으로 돌아간다. 가만 보면 독일 해군 최정예 전함이 영국 요원 단 2명에게 털린 꼴이다(...)
- 2009년에 출시된 울펜슈타인에서는 미사일 전함으로 마개조되어 인트로에 등장했다가 블라즈코윅즈가 미사일을 터쳐서 대파하고 만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 독일 8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나온다. 독일 최초로 등장한 군함이며
현재까지 등장한 모든 전함을 통틀어 유일하게 어뢰를 장비가능한 전함이다.[5][6]
- ↑ 독일어로 읽으면 "티어피츠"라고 읽어야 된다.Tirpitz에서 ir는 "이어"라고 읽기 때문
- ↑ 45년 8월까지 소련과 일본은 불가침 조약을 맻고 있었고 소련배에 선적된 미국물건은 일본도 함부러 건들 수 없었다
- ↑ 중앙에 갑판 위에 놓인 어뢰 발사관과 2번 주포위에 대공포좌등의 차이가 보인다. 비스마르크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
- ↑ 특히 야마토는 일본 해군도 존재를 감추기에 급급했기에 당시 연합군 측에 알려진 정보도 적었을 뿐 아니라 전공도 일본 해군 군함들 중에 가장 적은 편이고 최후도 정말 안습하다. 항공모함 개장 했다가 개장 완료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울프팩도 아닌 단 한 척의 잠수함에게 걸려서 격침당한 항공모함도 원래 야마토의 자매함이었다.
- ↑ 다만 등장 예정인 모든 전함을 통틀어 유일하게 어뢰를 장비할 수 있는 전함은 아니다. 대개장 전의 강구트급 전함과 침몰전의 임페라트리사 마리아급 전함, 킹 조지 5세급과 후드급도 어뢰를 정비한다
- ↑ 이제 아니다.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도 어뢰를 장비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