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히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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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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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괜찮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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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얼마 전.

1 개요

Christopher Eric Hitchens
1949년 4월 13일 ~ 2011년 12월 15일

영국계 미국인 언론인. 대표적인 대중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2005년에 선정된 세계 100대 지식인에서 노엄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리처드 도킨스, 바츨라프 하벨에 이어 5위에 랭크되었다. 탑 5위중 4명이 무신론자다

2 상세

이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거침없는 아가리 파이팅으로, 엄청난 키배 실력으로 사람을 데꿀멍하게 만든다. 히친스가 작정하고 깐 목록은 헨리 키신저[1], 마더 테레사[2], 교황, 온 세상의 종교, 종교적/민족적 보수 주의자, 그리고 이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기도 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을 "냉전 시기 미국이 개입된 온갖 더러운 일들의 배후에 있던 전쟁 범죄자"라고 하면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테레사 수녀 역시 충분히 좋은 환경에서 봉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환자들을 방치한, 교황청의 장사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테레사 수녀의 기적 여부를 검증하는 바티칸의 '악마의 대변인' 일을 맡기도 했다.

1985년 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혹시 모를 안기부에 의한 암살을 막기 위해 함께 귀국 비행기에 동행한 미국인들 중 한명이다. 1983년 8월 당시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가인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이 3년간의 미국 망명을 마치고 귀국하는 공항에서 암살당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안기부 요원과 경찰들이 미국 인사들과의 몸싸움을 불사하면서까지 김대중을 잡아갔다. 히친스는 훗날 “김대중 씨가 서울의 공항에서 다시 붙잡혀 가던 순간에 그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물론 그 뒤에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에게 개털렸지. 미국 공화당 레이건 정권이 김대중의 무사 귀국을 전두환의 미국 공식 방문을 가지고 거래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 협상의 미국쪽 파트너였던 CIA의 도널드 그레그는 1989년에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다. 미국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 앨 고어 상원의원 등도 당시에 김대중의 신변 보장과 무사귀국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그의 특유의 위트와 지식이 담긴 저서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 How religion poisons everything)는 굉장한 이슈를 불러왔고 결국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인 만들어진 신과 더불어 무신론자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사실을 말하면서 종교가 없이도 인간은 번성하고 도덕적이고 서로 사랑할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다만 도킨스와는 사상적 궤가 상당히 다른 것으로 추측되며, 실제로 저서에서 도킨스나 데넷 등 과학자들의 무신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서술해 놓았다. 간단히 말하면 그의 주장은 '좋다. 당신들 말대로 신이 있다고 치자. 근데 그 신은 이러저러해서 전혀 위대한 존재가 아냐.' 라는 것이다.

3 트리비아

여담이지만 저술가로서 드러나는 면모는 도킨스보다 상당히 공격적이고 열정적이다. 도킨스가 학자라면, 이 사람은 운동가 같은 타입.

말년에는 네오콘편에 서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옹호하는 듯한 분위기로 전향(?)해서 욕을 좀 먹었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해서 그가 주장한 이라크 해방의 찬성 주장을 봤을 땐 아무리 좋게 봐줘도 극단 좌파라고 봤으면 봤지 네오콘이라곤 할 수가 없다.

그의 편에 서서 얘기하자면 그의 저서 'a long short war'나 그의 무한 토론배틀과 소프트리버럴에 대한 공격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이라크 해방이 처음엔 파시즘으로 시작하여 이슬람 신정체제로 끝난 (인종학살과 끝없는 WMD보유 주장 및 수취 시도를 한)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이라크 국민을 해방 시켰으며, 특히 파시즘에 억눌리지 않겠다는 이라크의 세속좌파 쿠르드족과의 연대를 주장했다. 그래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서방의 개입결과였다는 미국좌파의 항복주의적 주장을 보는대로 깠다. 그 근저에는 신정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로 표출되는 종교에 대한 혐오와 인종청소와 독재의 지속을 옹호하는 이중적인 좌파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었다.

애연가이자 애주가였으며,[3] 이 때문에 식도암에 걸린 것이 폐와 림프절로 전이되어 2011년 사망하였다. 도킨스는 히친스의 장례식에서 "잘 살았어요"라고 말하였다. 무신론자로 살았던 히친스에게 어울리는 마지막 인사랄까...

한국에도 그의 저서 대부분이 번역되어 있다.

여담으로, 그의 동생인 언론인이자 저술가 피터 히친스는 정치 성향도 보수적이고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워싱턴 타임즈 칼럼니스트인 수잔 필즈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피터 히친스를 현대 사회의 카인아벨에 비유하기도 했다.

  1. '키신저 재판'. 번역본은 절판되었다
  2. 번역본 제목은 '자비를 팔다' 원제는 'The Missionary Position' 정상위라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3. 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다. 기자가 그의 집에 아침에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이미 술에 절어 있있다거나. 파티에서 역시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잠깐 2층에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퇴고할 필요도 없는 기사를 잡지사에 뚝딱 써서 보내고 또 술을 펐다거나... '건강을 위해 앞으로는 샤워할 때 담배를 피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기도...잠깐, 저 위의 사진은 분명 샤워실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