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엄 촘스키

Avram Noam Chomsky[1]


영어 전공자들에게 공공의적

"저는 항상 제가 한 말을 뒤바꿉니다. 지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늘 그렇게 할 겁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5년 전에 가르치던 그대로를 가르친다면, 그 학문이 생명력이 다했거나, 아니면 그가 사고하기를 멈췄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 노엄 촘스키, 〈지적으로 살아있는 사람〉 中, 2013.06.05.

1 개요

1928년 12월 7일 필라델피아에서 동유럽 출신 유대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미국의 언어학자, 철학자, 아나키스트, 정치 활동가이다. 그리고 전설의 아가리파이터이다.

1930년대 반유대주의를 경험하여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교인은 아니며, 유대 혈통이지만 무신론자로 과학적 방법론을 중시한다. 분석철학언어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통해 쉽게 유추할 수 있으며, 본인도 버트런드 러셀의 의견을 여러 인터뷰에서 자주 인용한다.

1945년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보편 문법이론을 발전시켜 언어학에 지금까지 높이 평가되는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1967년 베트남전 비판을 시작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 좌파의 대표적 인물.

2008년 국방부가 선정한 금서목록에 그의 저서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과 '정복은 계속된다'가 포함되자, 자신의 저서가 개방 이전의 소련에서도 금지된 바 있다며 비웃었다.

2 언어학자로서의 업적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촘스키는, 가정환경상 영어, 이디시어, 러시아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다언어사용자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촘스키는 희대의 언어학자가 될 수 있었다. 촘스키는 인류의 뇌에는 언어 습득 장치(LAD: Language Acquisition Device)란 고유한 기능을 하는 장치가 존재하며, 그 장치에는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이란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 모든 인류 언어는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기제에 의해 작용하며 언어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보았다.[2]

이러한 가설에 의거하여 촘스키는 50년대부터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 generative grammar)를 주창하였으며,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언어 연구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연구는 단순히 문법 방면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할레와의 공저인 SPE(The Sound Pattern of English)에서는 음운론 연구에 음소보다 더욱 작은 단위인 변별자질(distinctive feature)을 적극 활용하였다. 변별적 자질 개념은 유럽 구조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를 미국으로 전파한 사람들도 유럽 구조주의자들이었지만 촘스키는 이를 구조주의자들의 전통적인 맥락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받아들였고, 이게 현대 영미권의 음운론의 변별적 자질 개념의 기본이 된다. SPE는 변별적 자질 개념의 전면적인 도입 이외에도 영어의 강세 패턴에 대한 최초의 일반적인 이론화, 음운현상의 형식적 기술방식 등의 제시 등에서 대단히 중요한 저작이다. 이로서 촘스키는 그야말로 언어학의 전반을 석권한 대학자가 되었다고 과언이 아니다.

또한, 촘스키는 스스로가 제창한 이론에도 끊임없는 수정을 가하여 초기의 변형생성문법을 수정, 80년대에는 지배-결속이론(Government-Bind theory)를 제시하여 문법연구에 풍파를 일으키더니, 90년대에는 다시 그것을 수정한 최소주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촘스키의 자기발전 덕에, 일반 언어학계는 그저 촘스키의 옥음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걸인의 상황으로 전락.촘스키 사마 저 논문좀 쓰게 논문 써주세요 이러한 끊임없는 변화가 순전히 촘스키의 학문적 역량 덕인지, 젊은 시절의 업적을 통해 획득한 학계에서의 상징권력 덕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촘스키의 이론에 반론을 제기한 제자들(Lakoff, McCawley, Jakendoff 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나 촘스키언 캠프 안에서 끊임없이 축출되어 왔다.

촘스키의 이론은 언어학 뿐 아니라 심리학과 인지과학, 컴퓨터공학, 생물학 등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80년대-90년대에는 모든 분야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였다. 또 통산하여 역사상의 모든 저술가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10인 중의 한사람이다. 세익스피어, 마르크스와 동급의 인용도를 보인다고 하며, 생존해 있는 지식인들 중에는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사회언어학(Sociolinguistics)의 아버지'라고 칭해진다.

촘스키의 반대자들인 '기능주의자'에게는 엄청난 원성을 듣고 있기는 하나, 정말 20세기가 낳은 희대의 먼치킨이자 무소불위의 언어학자라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촘스키 이후의 언어학은 언어에 대한 촘스키식의 접근방식(형식주의)을 따르는 학자들과 이에 저항하는 접근방식(기능주의)을 따르는 학자들로 나뉘며, 어느 입장을 따르든지 언어학에서의 촘스키의 공헌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두 접근방식이 너무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형식주의자와 기능주의자들 사이의 이론적, 심리적 거리는 상당한 편.

언어학에서의 형식주의와 기능주의의 개념과 그 차이에 대해서는 언어학 문서에서 자세히 내용 추가바람

참고로 그의 언어학 연구는 펜타곤이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기계번역, 언어분석 분야 연구자금 중 상당히 많은 양이 펜타곤, DARPA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정보분석, 안보에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


3 철학적 견해

언어학자로서 분석철학 뿐만 아니라 유아의 언어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인지철학에도 장 피아제와 논쟁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구조주의 철학자로, 자크 데리다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을 소위 '입진보'라고 비판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는 아니지만 자크 라캉을 '사기꾼(Charlatan)'이라고 비판했고, 슬라보예 지젝한테도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추가바람.


4 비판

4.1 캄보디아 학살 발언

베트남의 NLF와 캄보디아크메르 루주, 레바논헤즈볼라민간인 학살과 고문을 정당화하고 왜곡시켰다고 비판받고 있다. 캄보디아 학살에 관한 비판은, 허먼과의 공저 <인권의 정치 경제학> 제 2권(79년) 때문이었다. '캄보디아:왜 언론은 인도네시아와 동 티모르보다 캄보디아의 보도 가치가 더 크다고 보는가.' 인도네시아의 만행이 폴 포트의 학살 못지 않은데도 언론의 태도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석한 이 보고서는, 반대파로부터 '멋모르는 촘스키가 학살자 폴 포트에게 면죄부를 주려 한다'는 비난을 불러들였다.

사실 촘스키의 뜻은 캄보디아의 학살만큼이나 잔혹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은 묻힌 채 캄보디아만 강조 내지는 과장되었다는 논리. 이런 논리는 자칫하면 한쪽에 치우치는 논리가 된다. 보도연맹 학살도 잔인한데 왜 북한의 학살만 까나요? 우리나라도 위안부 피해를 당했는데 왜 중국과 남경대학살만 신경쓰나요? 라는 병크가 사실 이런데서 출발한다. 촘스키는 동티모르 침공을 비난하다가 약간 도가 넘은 상태였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이 이중잣대로 그들의 적에게는 집중적으로 극악한 관심을 주는 반면에, 그들 자신 혹은 그들의 동맹이 저지른 비슷하거나 더한 병크는 얼렁뚱땅 넘어가 사실상 은폐한다면 그 보도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특히 촘스키와 공저자인 허만은 지속적으로 주류 언론의 이런 행태를 분석하고 비판해온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즉, 이 문제에서 촘스키와 허만이 말하고자 하는 건 언론과 정부가 보이는 정치적 편향성과, 거기에 따른 여론조작에 대한 비판이다.《여론조작(Manufacturing Consent)》에서도 이 문제가 분석되고 있으며, 특히 개정판 서문과 6장에서 촘스키와 허만은 이렇게 말한다.

7장에서도 설명했지만 베트남이 1978년 12월에 폴 포트를 축출하자, "민족학살"을 자행한 "제2의 히틀러"라며 비난을 퍼부었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재빨리 폴 포트의 후견인이 되어 캄보디아가 유엔 의석을 차지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타이로 피신한 그를 돕고 보호했다. 베트남은 폴 포트의 폭정을 중단시켰다는 이유로 가혹한 벌을 받았다! 베트남은 극심한 제재를 받았고 미국은 베트남에 한 수 가르치기 위해 중국의 침략을 지원했다. (중략) 미국의 정책을 지배하고 폴 포트를 지원하도록 이끈 것은 "내 적의 적은 친구"라는 고전적 원칙이었다. (중략) 폴 포트를 지원하게 된 것은 이전에 그의 정책을 비난한 사실을 감안하면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주류 언론은 이를 태연하게 보도했으며, 미국의 대중들은 미국이 폴 포트의 동맹이자 지원자가 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러나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떠나고 미국 관리들의 반베트남 열정도 식어버린 1990년대 후반 폴 포트는 베트남 정책에서 유용한 도구의 자격을 잃었다. 결국 미국의 관리와 전문가들은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의 잔혹성, 그리고 전범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근거를 재발견했다. 언론은 폴 포트에 대한 이전의 "편향성"을 얼버무렸고, 아예 1979년에서 1995년까지의 상황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미국이 "실익정책" 차원에서 그를 지원했다는 애매한 말로 둘러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2의 히틀러"의 도덕성을 고찰하거나 그에 대한 지원의 성격과 규모를 자세하게 설명하기를 피했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잔학행위에 관한 기록은 상당히 많고 종종 무시무시했으며", 그것이 "공포의 수치"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극렬한 비난은 실제로 옳았음이 판명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우리가 여기서 제기한 중심적인 문제, 즉 입수한 사실들이 일반인에게 제공될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선별되고, 변경되고, 때로는 조작되는가의 문제에서 도달한 결론을 변경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분명해보이며, 그것은 미래에 캄보디아에 관해 어떤 사실이 발견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되풀이해서 강조하듯, 미국의 정책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두 권짜리 연구서(《인권의 정치경제학(Politicla Economy of Human Rights)》)의 이 장에서 우리의 관심은 인도차이나가 아닌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관련 증거를 바탕으로 "전후 인도차이나와 관련된 사실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들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살피고, 이 증거가 "서구 이데올로기의 프리즘을 통해" 굴절된 과정을 분석하는 "매우 다른 작업"이었다. 거기서 도출된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3]

4.2 경제 활동으로 인한 구설수

또한 촘스키는 자기 정치경제적 견해와 모순되는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만 달러의 재산을 세금을 피하려 딸 이름으로 된 신탁에 맡겼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자본주의는 끔찍한 재앙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다양한 펀드에 투자를 했는데다, 이에 대해 추궁받자 "그럼 내가 뭘 하란 말이오? 몬태나의 오두막에서나 살란 말이오?"라고 반문이 담긴 이메일 답신이 왔다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카더라.[4]

문제는 이 비판의 근원지가 미국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씽크탱크로 유명한 후버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던 '피터 슈바이처' 였다는 것. 피터 슈바이처가 펴낸 저서인 '내 말대로 하시오(행동은 따르지 마시오)Do as I Say (Not as I Do): Profiles in Liberal Hypocrisy'에서도 이 문제를 끄집어 내어 이슈화 시켰다. 그런데 슈바이처는 이 책에서 촘스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관해서도 여럿 씹었는데 비판한 인물들이 죄다 미국의 보수층 혹은 공화당의 적이라 부를만한 인물 뿐이었다. 마이클 무어, 랠프 네이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클린턴 부부, 조지 소로스, 낸시 펠로시 기타 등등... 덕분에 설혹 이 책에 실린 촘스키에 대한 의문이 팩트라고는 해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나온 것. 자기 적이라 생각해서 일부러 팩트를 과장하고 왜곡한거 아니냐? 하는 소리가 나오는건 물론이고, 슈바이처 자신도 책에 실어놓은 내용이 실상과 달라 낸시 펠로시와 트러블이 일어나자 "펠로시의 포도 농장이 세세하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하나 찾아내는건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꽤나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기에 결국 이 비판은 촘스키를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에 따라 팩트에 관한 해석이 다르게 내려지고 있다. 대체로 촘스키 지지자들은 믿을 수 없다면서도 사실이라면 실망스럽다는 찝찝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편이고, 제주도 해군 기지 영상 공개 이후로 한국에서 급증한 반대파들은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묻지마 인용하고 있다.

굳이 이를 변호하자면 촘스키는 자신이 "백인이자 특권층 소속"이라서 상당한 자유를 누리고있음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으며, 그가 존경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사회주의자 버트런드 러셀도 <Should Socialists Smoke Good Cigars?> 같은 글을 써서 자신의 입장을 말했던 적이 있음을 특히 몬태나 문서에도 있듯이 그 지역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면 사실 탈세 의혹을 빼고는 그렇게 지탄받을 일도 아니다.


4.3 식민지 근대화론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에서는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를 미국의 식민지 지배와 비교해 산업화 시켰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논쟁이 되는 주제이긴 하나, 문서을 보면 알겠지만 제국주의 및 식민지배 미화와는 거리가 멀다.

사실 세계의 선진국들을 살펴보면 아주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5분만 관찰해도 알 수 있는 것인데, 미국에서는 그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 사실이란 무엇이냐 하면 경제 선진국들은 서방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던 경험이 없는 나라들입니다. 이에 비해 서방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던 나라들은 총체적인 실패작으로 끝났습니다. 서방의 식민지 정책을 물리친 나라는 일본인데, 경제 발전을 이룩한 전통적 제3세계의 유일한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유럽은 일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정복했고 일본은 경제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프리카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일본이 산업화 과정을 시작했을 때(1870년대), 서아프리카의 아산테 왕국은 가용 천연자원, 국가 형성의 수준, 기술 발전의 단계 등에 있어서 일본과 대등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두 지역을 비교해 보십시오.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 두 나라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일본은 서방에 의해 정복되지 않았는데 비해, 아산테 왕국은 영국에 의해 정복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서아프리카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서아프리카 그대로이고 일본은 경제 선진국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일본도 그들 나름의 식민제도를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들 역시 발전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운영 방식은, 식민지에서 일방적으로 빼앗기만 한 서방국가들의 방식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도 잔인한 식민지 수탈 국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들을 경제적으로 발전시켰던 겁니다. 이들 식민지는 산업화되고,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교육 수준을 높이고, 농업 생산을 증대하고 있었던 겁니다. 한국과 타이완의 성장률은 20세기 초반 내내 일본의 성장률과 비슷했습니다. 사실 1930년대에 이르러 포모사(현재의 타이완)는 아시아의 상업적 센터 중 하나였습니다. 타이완과 그 바로 옆에 있던 미국 식민지 필리핀을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필리핀은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형편 무인지경의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또 다시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아래는 이에 대한 한국어판 편집자의 변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의 열악한 현실을 강조하려다보니, 한국과 대만의 경우를 "단정 지어" 비교 사례로 제시한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과 대만의 경제 발전 근거를 "서구 열강과는 다른 일본의 식민 지배 방식"에서 찾는 것은 무리다. 일제시대 식민지 한반도의 "경제 성장"은 주로 일제의 전쟁물자 보급기지로서의 역할에 기인한 것이지 국민경제 발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존 페퍼(John Feffer)에 따르면 "남한은 1960년 사하라 경제보다 뒤떨어진 수준으로부터 … 눈부신 도약을 거듭하는 혁명적 성과를 이루었다. … 이 거대한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하여 남쪽의 한국인들은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러니까 일제 식민 지배를 거친 한국의 경제는 적어도 광복 후 20년이 지난 1960년대 중반까지는 아프리카나 중남미 지역 국가들보다 더 나을 게 없었으며, 오늘날의 성장은 순전히 한국민들이 엄청나게 희생한 대가라는 얘기다. 한편 촘스키는 여기서 필리핀의 "실패"를 대만과 비교하고 있는데, 사실 필리핀은 1960년대까지 한국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였다. 이런 저런 사실로 볼 때 오늘날의 결과에 "식민 지배 방식"을 원인으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촘스키의 의도가, 어떤 방식이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데에 있는 것은 전혀 아니므로, 이 대목은 "자유시장"의 폐해와 그에 따른 제3세계의 참담한 희생을 주장하기 위한 하나의 비교 예시로 보아 넘겨도 무방할 듯싶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과 대만의 예시가 일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많은 자유주의 사상가, 경제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극명하게 갈린 경제 성과에 대해 한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 등의 성공 요인이 바로 그 "자유시장" 이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위 문단의 내용은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은 2차 대전 이후 사회주의 체제를 수용하거나 외국인 투자자들을 극단적으로 배척하거나 국가의 민간 개입이 극도로 심화되는 등 반(反)시장적인 정책을 추구했기 때문. 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로 놀라운 경제 성장을 거듭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한국의 경우 군사독재 정권이 초기에 강력하게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했으나 이후 점진적으로 완화하기도 했다.[5] 사실 한국의 경제발전을 모델로 한 개도국 경제발전의 경우 정부vs시장의 전통적인 논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2차대전 이후 대체로 망했어요 상태인 아프리카나 남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경제 제도가 잘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길게 말할 것도 없고.

사실 촘스키가 식근론을 옹호하는지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므로 여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1)위 문단 작성자가 책의 내용을 온전히 옮겼을 것 2)역자가 촘스키 책의 전후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여 촘스키의 의도를 짚어냈을 것. 이 두 가지 전제를 깔자면 상술된 내용은 개도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해봤으면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1. 제3세계를 앞장 서서 침공하고 식민지로 삼은 것은 유럽이 맞고, 또 그 유럽이 지구의 대륙 중에 가장 먼저 시장경제 제도가 정착한 것 역시 맞으나 이 사실이 곧 식민지로 삼은 나라들에까지 시장경제를 이식했고, 나아가 그 결과로 제3세계의 경제가 시궁창에 빠졌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런 주장을 하려먼 먼저 유럽이 제3세계에 온전한 형태의 자유시장 체제를 도입하려 했다는 논증이 있어야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단순히 수탈하고 노예 노동을 부려먹기 위해 일방적으로, 무력을 앞세워 침탈한 유럽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설령 그런 의도가 있었다 한들 가당키나 한 일이었을까?[6]

2. 1번과 연결되는데, 상술되었듯 그 제3세계 국가들이야말로 자유시장이 가장 안착되지 못한 케이스였다. 서글프게도 몇몇 예외적인 국가를 제외하면 그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만의 적극적인 수출 장려 정책, 싱가포르와 중국의 외자 유치, 홍콩의 경제 자유화 등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들의 정책은 오늘날에는 세부적으로 이견은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는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나 그때 당시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무엇보다 2차대전 이후는 공산주의가 서슬퍼렇게 살아있을 때였다. 거기에 골 때리게도 촘스키가 언급한 이유로 제3세계 국가들은 자유시장 체제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왜? 자기들을 침공한 유럽 국가들의 경제 체제가 바로 그거니까! 2차대전 이후 공산화 된 국가들은 얘기할 것도 없고 제3세계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를 따져보면 사회주의에 가까웠다. 제3세계의 큰형님격인 인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인도가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선 것은 무려 1991년의 일이었다. 아프리카는 단순히 정책이념적 문제뿐만 아니라 내전에 휩싸이며 사회주의고 자본주의고 나발이고 국가 전체가 개판이 되기도 했고.

3.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역자가 정말로 촘스키의 의도를 제대로 짚었다면, 자유시장을 비판한다는 촘스키의 저 글은 뻘소리가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하면, 교육과 사회 인프라의 구축은 자유시장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당장 경제학 교과서를 한 번 펼쳐보자! 공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민영화나 반대를 하고 있는가? 오히려 개발경제학은 물론이고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역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인정[7] 하고 있으며 특히 개도국의 경우 교육과 인프라의 구축, 즉 정부가 해야할 역할을 해내는 것에 대하여 누구보다 강조하고 있다.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정부가 하지 말아야 될 일들을 시장에 맡기라는 것이지 아예 손 놓고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애초에 정부가 없으면 시장도 없다. 정부가 없다는 것은 무정부주의를 뜻하지 자유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4. 게다가 촘스키가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역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는 자유시장 체제의 필수 요소인 근대적인 민법과 사유재산권의 도입을 매우 중요시한다.[8]흔히 철도, 의료보건, 수도 등 사회 인프라나 물질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도와 사상의 뒷받침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식근론 문서 내지는 대표적인 식근론자인 이영훈 교수의 저작들을 참고하자.

5.한국은 오랫동안 단일민족국가로 존재해왔으며,[9] 중앙 집권화된 통일 왕조의 지배를 받은 나라로 서구 열강이 식민 지배를 마치며 갓 생겨난 몆몆 나라들과는 애초에 출발 부터가 다르다. 당장 아프리카등의 개도국에 민족,종교등으로 인한 심각한 갈등 상태에 놓여있고 내전으로 치닫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경제성장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을 비교하면 통일된 국가로서의 존재기간이 한국보다 훨씬 짧고 서로 이질적인 민족들로 구성된 경우가 드물지 않은 개발도상국들보다 경제성장에 더 유리한 조건임을 부정할 수 없다. 대만 역시 폴리네시아계 소수민족이 존재하긴 하나 절대다수가 중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개도국과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4.4 한국에서 취급과 인용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정치활동 및 저술에서 촘스키를 자주 인용한다. 물론 보수진영도 필요하면 곧잘 인용하지만 아무래도 진보측이 많이 이용하는것이 사실. 문제는 이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앞뒤 다 잘라먹고 자신들한테 필요한 부분만 취사 선택해서 인용한다. 결과적으로 촘스키의 저술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에서 저명한 사회과학자가 이러이러한 주장을 했다는 권위를 빌리기 위한 도구로 자주 사용된다.

이렇다보니 촘스키의 책을 인용해서 논문을 쓰지 말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말해도 다 쓴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데 '촘스키의 전문영역언어학에서 인용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문제는 전문 영역이 아닌 부분에서 인용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므로 주의를 요하며 이런 문건은 논문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2008년 이후 개정된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에 이 분의 저서가 무려 두 권이나 있다. 사유는 북한찬양, 반정부, 반미 ...



4.5 인종차별성차별 논란

그의 연구실은 여성과 유색인종 학생을 잘 뽑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는 현재는 확인불가능한 사실이다. MIT [언어학과 홈페이지]에 가 보면, 전체 연구교수 21명중 3명이 여성이고, 비백인도 있다. 대학원생과 졸업생도 마찬가지. [Mother Jones 신문에서 비판받는 부분]은 노엄 촘스키가 가부장적이라는 것이지, 대부분 학생이 백인 남성 위주라는 얘기는 아니다.

게다가 사실 유색인종들 중에 언어학과 학생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심지어 MIT 모든 학생들이 다 들을 수 있는 언어학 기본 교양과목 이후 상위 과목에는 유색인종 찾는게 힘들다. 한마디로 유색인종 차별 근거는 딱히 근거가 없는 발언이다. 게다가 노엄 촘스키를 언어학과 학생은 볼 기회도 별로 없다. 안 그래도 희소한 유색인종 언어학과 학생들은 대학원으로 가면 더 없다. 게다가 교수 밑에서 연구하려면 우수한 성적은 물론이요, 교수와 어느 정도 관심분야가 겹치는 등, 상당한 교감이 없으면 안 된다. 한 마디로 유색인종 차별론은 정말 근거없는 말이다. 성차별 문제도 마찬가지다.

5 관련 문서

  1. 여기서 Noam의 실제 발음은 노엄이나 노암보다는 놈에 가깝다. coat의 oa와 같은 발음. 촘스키 놈 어원은 히브리어로 '즐거움'을 의미하는 '노암(נועם).'
  2. 여담으로 이러한 촘스키의 주장을 인간 이외의 동물도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것을 보이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침팬지 님 침스키(...)였다. 실제로 촘스키를 비틀어서 붙인 이름이지만 촘스키의 주장을 반박하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3. 이 문단의 모든 인용문 출처는 《인권의 정치경제학》이다.
  4. [참고문헌]
  5. 우리나라의 군사독재정권의 경제개입은 그나마 다른 개도국들의 경제개입에 비하면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고 오히려 우리나라는 개도국들과 비교해 시장자유도가 높은 편이었다. 다만, 무역정책 등은 자유로웠던 반면, 산업정책이나 금융정책 측면에서는 박정희 시절에 사채 동결조치나 중공업 육성정책 등 흑역사가 존재한다. 실제로 외국의 경제학자들은 아시아의 4마리용에서 실시된 산업 정책이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평을 내리지는 않는다.
  6. 전통적인 식민지의 시장활용에 관한 이야기들을 볼 때, 이 말 역시 주의해야한다. 영국의 예를 들자면,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유럽시장이 막혔을때, 식민지에 자국 상품을 팔아서 버틸 수 있었다. 자유시장 체제가 아니고서는 그런식으로 수익 내기가 무척 힘들다. 거기다 영국의 이주의도를 가지고 있던 식민지들은 그 시기엔 개발이나 이주가 덜되어 저런 식의 판매가 그 적자를 매꾸기 힘들었다. 따라서 필히 제3세계 국가에 자유시장경제를 인식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7. 이 부분은 이 서술자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이데올로기의 발산에 가깝다. 우선 '가깝다'고 한 이유는 경제 교과서는 그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물론이요 신자유주의만 하더라도 공교육의 중요성을 인정치 않는 학자가 많음을 많은 교육학 개론서에서부터 위험시하고 있다.
  8. 일본의 경우는 논란이 되기도 한다. 사유재산권의 도입 중 하나라고 여겨지는게 토지조사사업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정책, 즉 일본인들, 지배자들 중심의 정책으로서 저런 평가가 도출된다면, 인도도 저런식으로 똑같이 평가될 수 있기에 이 부분도 주의해서 봐야할 점.
  9. 물론 만주족등의 소수민족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그 수가 인근의 국가는 물론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상당히 적었다
  10. MIT의 한국 학생들이 찍은 패러디 뮤비의 하이라이트에서 여유로운 티타임과 정확한 발음으로 "오빤 촘스키 스타일"을 말한다! 사실 '오빤' 빼고 다 영어잖아 [교수실로 찾아온 학생들이 부탁했기 때문에 종이에 써 놓은 것을 읽었던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