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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기름유출 사고'라는 명칭은 국내 언론사들이 통용시킨 것이다. 이러한 호칭은 전적으로 피해자인 태안 지역에 자칫 부정적인 인상을 씌울 수 있는 명칭임에 주의하자. |
법률상의 명칭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이다(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의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호). |
1 개요
한순간의 실수로 인한 오염이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지 보여주는 사건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예인 중이던 크레인선 삼성 1호가 지나가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와 충돌, 원유 12,547㎘가 유출된 사건이다.
2 사건 상황
당시 인천대교 공사를 마친 삼성중공업은 회사 소속선 해상기중기 부선[1] 삼성1호(1만 2000t급)를 경남 거제로 철수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예인선 2척(삼성T-5호ㆍ삼호T-3호)을 동원하여 운송을 계획하고, 새벽을 이용하여 운송을 시작했는데,
파일:태안 기름유출 사고 경로.jpg
그 당시 기상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고, 예인선 두 척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게 된다. 이때 항만 당국도 예인 선단의 운항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하여 오전 5시 23~24분 즈음에 비상 호출 채널로 두 차례나 호출을 시도하였으나, 해당 선박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후 담당자는 수시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선박에서는 응답하지 않았고, 허베이 스피릿호(선장, 1등항해사가 모두 인도인) 측에서도 삼성T-5호에 호출을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간신히 삼성T-5 선장의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내, 사고 발생 1시간 전인 6시 15분에 연락이 닿긴 했다. 이미 예인선단은 복원력을 상실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연결된 와이어가 절단되면서[2] 태안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홍콩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14만 6868t)와 충돌하였다. 이로써 유조선의 화물탱크 3개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높은 파도 때문에 초기방재 및 충돌부위 긴급보수에 제동이 걸려 결국 기름이 다량으로 유출되는 사고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사건은 사실 크게 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몇몇 부분들을 보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가 사건을 크게 키워버렸다.
- 무엇보다도 삼성중공업 측에서 기상상황 등을 고려해 운항일정을 조정했더라면 문제없었을 일이었다. 당장 12월 6일의 날씨 예보만 보았어도 파도가 3m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풍랑주의보를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이를 반추해보자면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아니면 풍랑주의보를 만난 시점에라도 즉각 반응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일이다. 당일 3시에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다면, 이미 어느 정도 파도의 높이가 올라왔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다르게 표현하면 충분히 대처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괜찮겠지...' 하는 안전 불감증이 사건을 키운 것이다. 더군다나 바지선이 허베이호 쪽으로 접근할 때 항만 당국에서 누누이 경고했는데도 삼성 쪽에서 씹었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할 안전 불감증이 맞다. [3]
- 마지막으로, 허베이 스피릿호의 선체 구조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2007년 당시 규정으로는 유조선 선체 하부와 측면에 공간을 두어 액체 화물 누출을 최소화하는 이중선체구조가 의무가 아니었다. 따라서 허베이 스피릿호도 단일선체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만약 이중선체구조였다면 사고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4]
결국 이 사건은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3 피해
파일:태안 기름유출 사고 확산상황.jpg 파일:태안 기름유출 사고 확산사진.jpg
결국 바다 한가운데에 와이어가 끊긴 무동력 바지선을 버려두고 가는 바람에 정박해있던 허베이호와 충돌하며 사고를 친 기름유출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가뜩이나 위에 언급한 풍랑주의보는 초기방재에도 실패하여, 원유는 서해안을 넘어서 군산, 목포 제주도 근처까지 퍼져나갔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부풀려졌다.
추가유출은 2일만에 간신히 막았지만, 이미 유출된 기름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론 그 원유를 흡수하는 마땅한 수가 없다고 하여도, 정부역시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못 내놓았다. 물론 타르 덩어리가 이렇게 빨리 확산한 데는 조류, 강풍 등의 기상 악화 원인도 있었지만, 관계 당국이 저지선 구축에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해경 방재대책본부는 '해안오염지도'를 제작해 해안 오염 특성에 따른 전문 방재 작업을 할 예정였다고 했지만 이는 초기대응 치고는 너무 늦은조치였고, 현실적으로 유출된 원유 7만8918배럴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이 때문에 태안군과 서산시 양식장, 어장 등 8000여ha가 원유에 오염돼 어패류가 떼죽음했으며 짙은 기름띠는 만리포, 천리포, 모항, 안흥항과 가로림만, 안면도까지 유입되었으며, 당장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손꼽히는 천수만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되었었다.
4 땀, 눈물, 희생
파일:태안 기름 제거작업.jpg 파일:태안 기름 제거작업2.jpg
태안군민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를 위해 앞다투어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왔다. 주말마다 봉사를 오는 부부부터, 수능 끝난 학생, 군인, 아파트 부녀회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연인원 96만 4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수작업으로 일일이 기름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태안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수학여행, 졸업여행 등을 반납하고 기름닦기에 나섰었다. 보호복이 없어서 이전 봉사자가 입었던 보호복을 다시 입거나 흡착포가 없어서 헌옷으로 기름을 닦고, 1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오다 보니 현지 지휘체계 역시 엉망이었으며, 이런 자원봉사자들 때문에 태안도로는 항상 차가 막히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들이 쏟은 열정 덕택에 점차 태안의 해안가는 제 모습을 찾아갔다.
태안군 차원에서도 생태환경회의를 열고 해외의 방재분야 전문가를 초빙하여 자문을 받는 등 여러 방면을 통해 지원에 나섰고 공중파에서는 앞다투어 태안 어민들을 위한 모금행사를 마련했다.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 덕분에 최소 10년이 걸릴 것이라 예상한 방재작업에도 속도를 붙여서 겉에 보이는 기름일 뿐이지만 2달만에 작업이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었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현실성 있는 지원을 펼쳐서 40여개 지역의 오염조사 및 방재작업에 나섰고, 재난지역선포 및 재난장병휴가 세제혜택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펼치는 등 기름 유출을 막고자 하는 노력 및 이를 지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분들 덕택에, 이 글이 작성되는 7주기(2014년 12월)에는 어장도 복구되고, 빠르게 정화되는 등 회복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저런 유기화합물 투성이의 환경에 노출시켰다는 사실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1989년 엑슨발데즈호 사고의 경우 엑손사의 부담으로 인건비를 지급하고 보호장구를 갖춘 상태에서 작업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2008년이 돼서야 미국 연방 대법원이 25억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정부와 삼성 측이 사태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5 여담
하지만, 위의 사건경황 및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당사자이자 가장 큰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삼성중공업의 책임은 가려졌다. 일단 이 사건의 명명에 있어 일반적 명명법 대신 태안 기름유출 사고라는 표현이 사용되면서 삼성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것 자체가 책임자를 은폐하는 작용을 했다.[5][6] 심지어 삼성중공업은 12월이 다가고 해가 넘어갈때까지 사과한마디 없다가, 태안 어민들이 자살하고,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1월 말에 가서야 부랴부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삼성측은 도의적인 사과일뿐 책임적 문제가 없다며 유죄로 나온 1심 판결에 항의하기도 했다. 심지어 2007년 12월 삼성중공업의 변호인단은 삼성의 책임한도액을 50억원으로 제한해달라는 선박책임제한절차 개시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50억의 이유는 보험금이 50억이었으니까.
기름 유출 사고 6년만인 2013년 11월 22일 삼성중공업이 피해지역에 3600억 원을 보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관련 기사
태안 갯벌에서 기름 먹는 미생물이 발견됐다고 한다. 사고 이후에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한 듯하다. 관련 기사
사족으로 이 사고는 나무위키의 전신인 리그베다 위키가 설립된지 9개월 후에 발생하였으나,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문서는 사고가 일어난지 7년만에 작성되었다. 워낙 커다란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6년, 상태가 많이 나아진듯 하다.돌고래의 일종인 '상괭이'무리가 많이 발견된다는듯.관련기사- ↑ 동력이 없는 선박이다.
- ↑ 예인선의 와이어가 끊어지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와이어가 끊어진 이유와 시점은 2014년 12월까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 ↑ 씹었다는 표현이 과한 게 아니다. 항만 당국에서 계속 바지선과, 예인선 양쪽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다 무산되었고, 결국 항만 당국에서 예인선 선장의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해서 충돌 가능성을 알려줬는데도 표류하고 있는 바지선을 되찾아올 생각은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 정도면 항만 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냥 갔다 .
- ↑ 이중선체구조는 2010년부터야 의무화되었다. 게다가 삼성 중공업 소유의 삼성 1호가 허베이호를 일방적으로 들이받았기 때문에 허베이호는 피해자로 봐야 옳다. 항만 당국에서 허베이 호에 충돌 가능성을 알려준 시간도 겨우 충돌 20분 전이었는데, 자동차도 아니고 정박해 있는 대형 원유선이, 풍랑주의보로 큰 파도까지 일던 상황에서 20분 이내에 대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 ↑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도 진도 여객선 사고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고 명명법에 있어 당사자를 명시한다는 것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 게다가 피해지라고 할 수 있는 태안이라는 지명이 본 사고 명명에 포함되면서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