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피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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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24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시즌 55호 홈런을 때려내는 장면. 이 해는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구단 사상 마지막 리그 우승 시즌이었다.어퍼덱까지 관중들로 꽉 찬 게 이대호 오릭스 시절 중계로 보던 한산한 오사카 돔의 모습과는 천지차이...

도야마 GRN 선더버즈 No.16
이름칼 데릭 로즈 (Karl Derrick "Tuffy" Rhodes)
생년월일1968년 8월 21일
국적미국
출신지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출신학교웨스턴 힐스 고등학교
포지션외야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1986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아마추어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68순위
소속팀휴스턴 애스트로스(1990~1993)
시카고 컵스(1993~1995)
보스턴 레드삭스(1995)
긴테쓰 버팔로즈-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1996~2003)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4~2005)
오릭스 버팔로즈 (2007~2009)
도야마 GRN 선더버즈 (2015~ )
지도자도야마 GRN 선더버즈 야수 코치 (2015~)
2001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마쓰나카 노부히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터피 로즈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라이온즈)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 선수.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용병 타자 중 한 명. 일본프로야구 13년간 464홈런을 때려 외국인 선수로서는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NPB 최다 퇴장기록의 보유자(총 14회).

1986년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지명받고 1990년에 처음으로 MLB 무대를 밟게 된다. 마이너리그에서는 호타준족형 타자로 주목받았으며, 싱글 A 시절에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이미지[1]와는 다르게 65도루를 기록한 적도 있다. 1994년 시카고 컵스 소속일 때는 개막전에 선발 출장하여 드와이트 구든을 상대로 4타수 4안타, 3홈런을 치는 인상깊은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영상 그러나 이후에는 메이저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뒀고, 로즈를 톱타자로 키우려 한 팀 수뇌부와 슬러거가 되고 싶어한 본인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1996년 일본으로의 이적을 결심하게 된다.

80년대 말부터 주포 역할을 해온 랄프 브라이언트가 부상으로 이탈한 긴테쓰 버팔로즈로 이적한 로즈는 괴력의 파워를 자랑하며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슬러거로 자리잡았다. 특히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당시 세이부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베네주엘라 출신 슬러거 알렉스 카브레라[2]와 함께 퍼시픽리그 홈런왕 경쟁을 펼치게 된다. 2001년에는 괴물같은 홈런 페이스로 왕정치의 기록이었던 한 시즌 55홈런 갱신을 눈 앞에 뒀으나, 홈런 기록이 외국인에 의해 깨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일본 야구계는 엄청난 견제를 하며 결국 신기록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왕정치는 로즈에게 '"기록을 깼으면 한다"라는 말을 했지만, 정작 그가 감독으로 있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투수들은 로즈를 피해가기 일쑤였다. 근데 왕정치대만 출신. 뭐야 이거...[3] 1년 후 55홈런 고지에 오른 라이벌 알렉스 카브레라 역시 똑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 결국 성역과도 같았던 이 기록은 12년 뒤인 2013년, 드디어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블라디미르 발렌틴이 60홈런을 때려내며 깨지게 된다.

2003년 시즌이 끝나고 긴테쓰와의 재계약 협상에 실패하여 200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후 센트럴리그 홈런왕도[4] 달성하며 명불허전임을 몸소 알렸다. [5] 로즈 자신도 요미우리에서 은퇴하고 싶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4월 26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서 알렉스 라미레스가 친 큼직한 타구를 쫓아가다 잡지 못했는데, 당시 수비주루 코치였던 히로타 스미오가 이 점을 두고 "수비는 발로 하냐?"라고 깠고, 결국 빡돈 로즈는 히로타 코치의 멱살을 잡고 격한 말배틀을 펼쳤다. 경기 후 로즈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님 흥분했음. 제발 그러지좀 마셈." 이라고 말리는 통역을 제압하고 기자들에게 일본어로 직접 "이거 기사로 내라. 오늘 경기 진게 내 탓이라고 히로타가 그랬다. 일본에서 10년 뛰었는데 이렇게밖에 안 해주냐? 투수가 저렇게 쳐맞은 것도 내가 발수비 한 탓이냐? 투수도 X같다. 다 X같다. 자이언츠 X발새끼들. 나 도쿄로 갈꺼다." 란 식으로 폭언을 했다. [6]

결국 이 사건 때문에 로즈는 벌금을 내게 되었고 결국 이것이 시즌 후 전력외 통고를 받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외에도 요미우리 시절엔 팀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던 모양인데, 자신이 자주 소외당했다고 주장할 정도. 사실 당시 요미우리는 워낙 타 팀의 강타자들만 수집하다 보니 수비, 주루 등이 영 좋지 않았고 팀의 짜임새에도 문제가 많았다. 긴테쓰에서 줄곧 코너 외야만 소화하던 로즈를 타카하시 요시노부 등과 동시에 기용하기 위해 30대 후반의 로즈를 중견수로 옮기기도 했으니 수비에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

2006년 신시내티 레즈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MLB 시범경기에 출장했으나, 부진을 보이며 마이너행을 통보받고 3월 21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만,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를 흡수합병한 오릭스 버팔로즈 구단 관계자에게 "나 어깨 다 나았음! 일본에서 야구 하고싶은데.." 라고 전화를 걸었고, 2007년 일본프로야구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일본 복귀 후 2년 연속 40홈런을 때렸는데, 2007년에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야마사키 타케시[7]와 40대끼리 홈런왕 경쟁을 펼치다 좌측 무릎 관절 통증으로 인해 경기 출전을 포기, 3년만의 홈런왕 타이틀 획득을 아깝게 놓치고 말았다. 나이를 잊은 듯한 꾸준한 활약과 버팔로즈 프랜차이즈를 대표하는 선수라는 상징성에 비록 팬들은 다 떨어져나간 팀이지만 팀 내에서는 사실상 프랜차이즈 스타, '미스터 버팔로즈' 대접을 받았다.

2009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84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는데, 그 와중에도 22홈런을 때려냈다. 그러나 오릭스 구단의 리빌딩 방침에 의해 로즈는 2009시즌을 끝으로 재계약을 하지 못하며 일본 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은퇴 뒤에는 농구선수인 아들 뒷바라지에 전념하고 있다가 2015년 긴테쓰 시절의 팀동료였던 요시오카 유지가 감독으로 있는 일본의 독립리그 BC리그의 팀인 도야마 GRN 선더버즈(富山GRNサンダーバーズ)에 입단하여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5년만의 현역복귀.

팔을 위쪽으로 쭉 뻗어 배트를 치켜들고 흔드는 독특한 타격폼으로도 유명했다. 긴테쓰 시절 함께 클린업을 이뤘던 우타자 나카무라 노리히로 못지 않게 특이한 타격폼.
  1. 사실 일본에서도 처음 3시즌 동안은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다. 2년차인 97년에는 22도루(8도루사)를 기록했다.
  2. 이후에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다.
  3. 이 경기로 빡친 로즈는 상대팀 다이에 선수들이나 기자들한테 "너님들에게 난 그저 가이진(외국인)일 뿐이지"란 자조적 표현이 낀 디스를 했다.
  4. 오치아이 히로미츠에 이은 일본프로야구 사상 두번째 양대리그 홈런왕이다.
  5. 200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팀 홈런 259개로 미칠듯한 뻥야구를 했지만 정작 팀 도루개수는 25개를 기록했다-_-... 하긴 이런 미칠듯한 뻥 타선에 도루가 필요한지?
  6. 이 때문에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 외국인 선수들은 일본어를 잘해도 절대 일본어로 인터뷰를 못하게 되어있고 통역이 필수다. 덕분에 알렉스 라미레스는 일본어 실력이 출중함에도 요미우리시절 내내 일본어로 인터뷰를 하지못했다.
  7. 일본 현역 최고령 홈런왕이다. 터피 로즈와 동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