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르 헤르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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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 Herzl. (1860-1904)

1 개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태계 언론인. 시오니즘의 주창자.
현대 이스라엘 건국운동의 기원이 된 인물. 제2의 모세 생김새부터 모세랑 많이 닮았다

2 생애

1860년 5월 2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원이던 헝가리부다페스트에서 출생.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신문기자 겸 작가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프랑스 파리에 특파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목격한 드레퓌스 사건이 그의 인생을 뒤집어 놓는다.

이 사건이 단순한 누명 사건이 될 수가 없었던 이유는 혁명의 본고장으로서 반유대주의가 발붙일 곳이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던 프랑스에서 터진 사건이었기 때문. 서유럽의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융화되어 정체성을 잃어가던 와중이었다. 당장 드레퓌스도 자기가 유대인이라는 자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던 것. 헤르츨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 만연한 반유대주의에 시달리다가 프랑스에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에게도 조국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헤르츨은 1896년 2월, '유대인 국가'라는 책을 펴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같은 해 8월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술탄을 찾아가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넘겨달라는 청원을 하기도 한다. 결국 술탄과의 면담은 실패했지만 이 일로 그는 일약 시오니즘의 정치적 지도자로 떠오르게 된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시온주의자 세계대회는 그 노력의 결실. 이 대회에서 "팔레스타인에 국제법으로 보장되는 유대인의 조국을 건설한다"는 선언이 나왔다.

1904년 심장병으로 숨진 탓에 생전 이스라엘의 건국을 보지는 못했지만, 1949년에는 오스트리아 에 묻혀 있던 유해가 이스라엘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3 평가

이스라엘에서는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과 함께 국부로 칭송받는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국립묘지부터가 '헤르츨 산'이라 불리며, 헤르츨의 무덤 역시 지금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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