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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토마스 샤프(Thomas Schaaf) |
생년월일 | 1961년 4월 30일 |
국적 | 독일(Germany) |
출신지 | 만하임(Mannheim) |
신장 | 176cm |
포지션 | 수비수 |
유소년 경력 | SV 베르더 브레멘(1972–1977) |
소속 클럽 | SV 베르더 브레멘(1977–1995) |
지도자 | SV 베르더 브레멘 U-17 감독 (1987–1988) SV 베르더 브레멘 U-19 (1988–1995) SV 베르더 브레멘 수석코치(1993–1995) SV 베르더 브레멘 2군 감독(1995-1999) SV 베르더 브레멘 감독 (1999–2013)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2014–2015) 하노버 96(2015~2016) |
목차
1 소개
베르더 브레멘의 충신
한 팀을 위해 40여 년을 헌신한 진정한 원 클럽맨
그러나 잔인한 운명은 끝내 그를 원치 않는 길로 끌고 갔다.
토마스 샤프는 축구 역사에 보기 드문 축구인이다. 그는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을 통틀어 자신의 축구 인생을 오로지 한 팀에 쏟아부었다. 그는 베르더 브레멘에서 무려 41년 동안 활동하면서 팀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바쳤고 브레멘은 그의 지도 하에서 성공 신화를 이뤘다. 그러나 잔인한 운명은 그가 그토록 헌신했던 클럽이 그를 경질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의 실패가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 여러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40여 년이란 긴 세월을 한 팀에 바친 인물이 이토록 쓸쓸하게 떠나갔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2 선수 경력
샤프는 1961년 4월 30일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만하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고 1965년에 어머니를 따라 그의 인생 전체를 바치게 될 도시 브레멘으로 이주했다. 그는 1972년에 베르더 브레멘의 유스팀에 입단했다. 그는 독일 스포츠 대학에서 기술 강좌를 수강했고 대학을 졸업한 뒤 베르더 베른 유스팀에서 1978년까지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1978년, 그는 18살의 나이에 프로 팀에 승격되었다. 이후 그는 1979년 4월 18일에 데뷔전을 치뤘고 이후 2군에서 1980년까지 21경기를 출장했다. 1980-81 시즌에 마침내 1군에 올라온 샤프는 그후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그는 이후 15년간 281경기에 출장하여 14골을 넣으며 팀의 주축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1980-81 시즌에 팀을 2부 리그에서 승격시킨 샤프는 분데스리가에서 1987-88 시즌과 1992-93 시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또한 그는 독일 슈퍼컵에서 1988년, 1993년, 그리고 1994년에 우승을 달성했고 포칼컵에서도 1990-91 시즌과 1993-94 시즌에 우승했다. 또한 대륙 대회에서도 1991-92 시즌에 UEFA 위너스컵 우승을 달성했다.
이렇듯 팀의 주축 멤버로서 활약한 샤프는 1987-88시즌 부터 선수겸 감독으로서 베르더 브레멘 U-17 멤버들을 가르쳤다. 이후 그는 1988년부터 1995년까지 7년간 베르더 브레멘의 U-19 선수들을 이끄는 동시에 선수로서의 생활도 지속했다. 그러다 1995년, 그는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1993년부터 1995년까진 수석코치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감독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3 감독 경력
3.1 베르더 브레멘의 퍼거슨
샤프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베르더 브레멘의 2군 팀 감독을 맡았다. 그러다가 1999년 5월 9일, 팀이 강등 위기에 처한 상황에 직면한 보드진은 펠릭스 마가트를 경질하고 그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당시 리그는 3경기만을 넘겨두고 있었고 브레멘이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2승은 거둬야 했다. 샤프는 의기소침해진 선수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데 성공했고 기어이 2승을 거두는 데 성공하여 팀을 1부리그에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간신히 팀을 살리는 데 성공한 샤프는 1999년 6월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포칼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고 팀의 세 번째 포칼 컵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포칼컵 우승팀 자격으로 획득한 UEFA컵에서 8강에 오르며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베르더 브레멘은 UEFA 32강전에서 프랑스의 명문 클럽 올랭피크 리옹을 상대로 1차전에 3:0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샤프는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의 투지를 살리는 데 성공했고 2차전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승부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이 대단한 승리는 베저강의 기적이라는 용어로 화자되기도 했다.
이후 샤프는 리빌딩을 단행하여 여러 어린 선수들을 길러냈고 클라우디오 피사로, 아일톤, 주앙 미쿠, 발라레앙 이스마엘 등 정상급 선수들과 함께 브레멘을 강팀으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3-04 시즌, 브레멘은 마침내 1993년 이래 11년간 갈망했던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포칼 컵에서도 우승을 차지, 더블을 기록하는 대성과를 거두었다. 마침내 베르더 브레멘을 독일 최고의 팀으로 성장시킨 샤프에게 수많은 갈채가 쏟아졌다.
2004년의 성공 이후, 베르더 브레멘은 다섯 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4-05 시즌에선 인터밀란, 발렌시아, 안더레흐트와 한 조를 이뤘는데, 전문가들은 베르더 브레멘이 2위에 들기도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베르더 브레멘은 놀랍게도 4승 1무 1패라는 대활약을 선보이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16강전에선 베저강의 기적의 피해자 리옹에게 패하고 말았다. 또한 리그에서도 지난 해 리그 우승을 내준 뒤 이를 갈고 있던 바이에른 뮌헨에게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브레멘은 이후에도 클로제, 클라스니치의 K-K라인으로 대표되는 공격진과 프링스, 보로프스키, 바우만, 미쿠, 디에구로 대표되는 미드필더진, 그리고 페어 메르테자커, 피에르 워메 등 수위권의 수비진을 구축하여 계속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문제는 주축 선수들이 계속 이탈했다는 것이다. 2006-07 시즌엔 미쿠가 이적했고 2007-08 시즌엔 클로제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으며 2008-09 시즌엔 보로프스키가 이적하고 프랑코 바우만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런 식으로 주축 선수들이 계속 이적하자, 브레멘은 갈수록 심해지는 전력 유출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8-09 시즌 중반에 10위까지 추락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샤프는 보드진의 절대 지지를 등에 업고 선수들을 잘 통솔하여 UEFA 32강전에서 AC 밀란을 격파하고 8강전에서도 우디네세를 3:1로 제압했다. 또한 포칼컵 결승전에선 레버쿠젠을 꺾고 5년만에 트로피를 수집했다. 그러나 UEFA 결승전에선 샤흐타르에게 2:1로 패하고 준우승에 그쳤다.
2008-09 시즌이 끝난 뒤, 팀의 중미로서 척추 역할을 톡톡히 했던 디에구가 유벤투스로 이적하고 말았다. 베르더 브레멘이 10위에 그치는 바람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 컸다. 브레멘은 중소클럽이기 때문에 자금에 한계가 있었고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실패한 마당에 선수를 잡을 길이 없었기에 전력 유출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샤프는 자신이 여전히 탁월한 명장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메수트 외질 등의 활약을 앞세워 리그에서 승승장구했고 기어이 3위를 기록하여 다시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했다. 이렇듯 베르더 브레멘을 이끌고 순탄하게 이끌어가는 그를, 사람들은 베르더 브레멘의 퍼거슨이라고 부르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이것이 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는 것을...
3.2 몰락
2010-11 시즌, 베르더 브레멘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활약을 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메수트 외질을 잡지 못하고 레알 마드리드로 보내고 말았다. 게다가 보드진은 별다른 영입을 하지 못했고 결국 외질의 이탈로 인한 전력 공백을 메꾸지 못했다. 결국 샤프는 팀이 하위권을 전전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12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팀의 주축 선수들은 거리낌없이 팀을 계속 이탈했다. 수비진의 핵심 페어 메르테자커는 아스날로 이적했고 팀의 최고 공격수 나우두는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는 등 여러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그 와중에도 보드진은 또 별다른 영입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샤프는 저력을 발휘하여 시즌 중반까지 5위를 기록하며 챔스권 진출의 희망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후 전력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연전연패를 거듭하여 결국 9위로 마감하고 말았다.
이러한 하락세는 2012-13 시즌에 정점을 찍었다. 이제 브레멘의 선수진은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했던 옛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베르더 브레멘은 시즌 내내 하위권을 전전해야 했고 결국 1999년 이후 최악의 성적인 14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결국 2013년 5월 15일, 샤프는 전격 경질되고 말았다.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경질당했는데, 이미 브레멘의 성적은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확정된 상황. 이럴거면 그냥 시즌 끝까지 맡기고 자진사임 형태로 물러나도록 하는게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 시기의 스쿼드는 이미 대외컵 진출조차도 버거웠고 강등만 당하지 않아도 천만 다행인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시즌을 마무리한 후 후임 감독을 물색하여 팀을 재정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브레멘이나 샤프나 좋게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스쿼드로는 아무리 과르디올라나 히딩크가 온다 하더라도 대외컵 진출이라도 시키면 그 자체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이리하여 샤프와 베르더 브레멘 간의 41년 로맨스는 비극으로 끝났다.
3.3 프랑크푸르트 시절
브레멘에서 경질된 뒤 1년간 쉬었던 샤프는 프랑크푸르트와 2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팀의 주포 알렉산더 마이어가 19골을 몰아치며 득점 선두로 나섰다가 28라운드에서 시즌 아웃되는 것을 시작으로 4월에 수많은 주요 선수들이 연쇄 부상을 입는 상황에 휘말렸지만 9위를 기록하며 팀을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구단 내부에선 성적과 경기력에 만족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일었고 지난시즌 11위한 팀인데 연쇄 부상에도 불구하고 9위를 찍었으면 잘한 거 아닌가? 샤프는 보드진과의 마찰 끝에 결국 1년만에 사임했다.
3.4 하노버 96 시절
2015년 12월 28일, 샤프는 하노버 96과 18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강등권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하노버 96은 17경기를 치른 2016년 1월 9일 현재 4승 2무 11패로 승점 14점을 기록하며 17위에 그치고 있다. 강등을 면하려면 최소한 15위는 찍거나 16위를 거두어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점은 14위인 프랑크푸르트와의 승점차가 3점밖에 나지 않고 15위인 슈투트가르트와는 불과 1점밖에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팀 분위기를 일신하고 연승을 이끌어내기만 한다면, 강등권 탈출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반기 하노버의 성적은 처참 그 자체. 후반기 시작부터 5연패를 기록하며 전반기 포함 8연패의 수렁에 빠졌고, 슈투트가르트전에서 2-1로 승리하며 연패를 끊었지만 이 경기가 유일한 승리였다. 이후 지역 라이벌인 볼프스부르크, 베르더 브레멘, 함부르크에 대패하면서 28라운드까지 1승10패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15위 베르더 브레멘과 승점이 11점차로 벌어지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강등이 확정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100일도 버티지 못하고 2016년 4월 3일 경질당했다. 그가 하노버 감독으로 있던 시절 하노버의 득점은 11경기에서 단 4득점에 불과했다. 브레멘 감독 시절 닥공축구를 시전한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4 경력
4.1 선수 시절
- SV 베르더 브레멘 (1977/78 - 1994/95)
- 독일 분데스리가 (2) : 1987/88, 1992/93
- 독일 2. 분데스리가 (1) : 1980/81
- DFB 포칼 (2) : 1990/91, 1993/94 ; 준우승 (2) : 1988/89, 1989/90
- DFL-슈퍼컵 (3) : 1988, 1993, 1994 ; 준우승 (1) : 1991
- UEFA 컵 위너스 컵 (1) : 1991/92
- UEFA 슈퍼 컵 준우승 (1) : 1992
4.2 감독 시절
- SV 베르더 브레멘 (1999/00 - 2012/13)
- 독일 분데스리가 (1) : 2003/04
- DFB-포칼 (3) : 1998/99, 2003/04, 2008/09 ; 준우승 (2) : 1999/00, 2009/10
- DFB-리가포칼 (1) : 2006 ; 준우승 (2) : 1999, 2004
- DFL-슈퍼 컵 (1) : 2009
- UEFA 컵 준우승 (1) : 20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