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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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부터 2008년 초까지의 멤버. 왼쪽부터 김용준, 채동하, 김진호
1.jpg
김용준과 김진호의 외모 변화가 상당히 눈에 띈다
2015년 컴백 선공개 이미지.
2008년부터 현재까지의 멤버. 왼쪽부터 김용준, 김진호, 이석훈.[1]
SG워너비
팀명SG워너비
영문명SG Wanna be
데뷔2004년 SG워너비 1집. Wanna BE+
소속사CJ E&M
사이트,> >
SG워너비의 멤버 (생년월일 순)前 멤버
이석훈김용준김진호채동하
50
음반 대상
이수영
<휠릴리>
(2004)
SG워너비
<죄와 벌>
(2005)
동방신기
<"오"-정.반.합 ("O"-正.反.合)>
(2006)
동방신기
<"오"-정.반.합 ("O"-正.反.合)>
(2006)
SG워너비
<아리랑>
(2007)
동방신기
<주문-MIROTIC>
(2008)
50
디지털 음원대상
SG워너비
<내사람>
(2006)
아이비
<이럴거면>
(2007)

미디엄템포 발라드의 시초이자 대표적인 그룹.[2]
소몰이창법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가수이자 2000년대 중반 발라드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그룹.
버즈, M.C The Max와 함께 남자들의 3대 노래방 대통령.

1 개요

2004년 1월 20일[3]에 데뷔한 대한민국의 3인조 보컬 그룹.
2016년 현재, 데뷔한 지 12년이 넘어가는 장수 그룹이다.[4]

데뷔부터 2007년까지 채동하(리더), 김용준, 김진호 세 명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2008년 채동하의 탈퇴와 함께 새 멤버 이석훈의 영입으로 2009년 현재 김용준(리더), 이석훈, 김진호 체제로 유지중이다. 이석훈의 영입 이후 노래 스타일이 바뀌었다.

이름인 SG워너비(SG Wanna Be)는 레전드 포크 락 그룹인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처럼 되고 싶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실상 사이먼 앤 가펑클 스타일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음악을 하다가 6집에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 스타일의 곡을 타이틀로 내기도 했다. 사실 3집의 당장이라도 카우보이 모자 눌러쓰고 말 몰고 소몰고 서부 대평원을 달려야 할것 같은 채찍 추임새의내사람이나 5집의 귀에 착착 감기는 피들스타일과 하모니카, 기타 사운드 조합의라라라부터 뭔가 미국 컨트리 음악풍을 시도하긴 했었다. 6집 타이틀 사랑해는 거의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곡 the boxer를 벤치마킹한 느낌.

2012년까지 9장의 정규 앨범을 냈으며, OST, 디지털 싱글 등 많은 앨범을 발매했다. 일본에서도 정규 1집을 비롯해 앨범을 발매했으며 마니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상 음반위주의 음악시장의 문을 닫은 마지막 가수라고 할 수 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음반시장이 이미 기울어가는 상황에서도 발매하는 앨범마다 수십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골든디스크 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음악시장은 음원 위주의 시장으로, 또한 가요계는 아이돌 위주의 시장으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5]

특히 2005~2006년에는 가요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SG워너비의 미디엄 템포곡의 히트 이후 수많은 아류 그룹들이 생겨나 가요계를 가득 채웠다. 이는 곧 가요계의 획일화를 뜻하고, 현재 아이돌 그룹으로 점철된 가요계에 대한 비난이 많은 것처럼 이 때는 일명 소몰이로 획일화된 가요계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 그 중에서도 SG워너비는 소몰이 유행의 선두주자이자 대명사에 가까웠기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세한 건 아래에.

20대 가수이제 전부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세대와 기성세대 모두에게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이다. 2.5집으로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했을 때 기성세대에게 많은 어필을 한 듯. 20대30대 가수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연말 디너쇼를 열고 있으며,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상당히 많이 오신다고 한다.

또한 방송보다는 콘서트에 집중하는 가수이다보니 20대 가수로서는 유일하게 라이브 공연 300회를 돌파한 그룹이기도 하다. 200회 기념으로 3집 전국투어 라이브 DVD가 발매되었고(2006년), 300회 기념으로 6집 전국투어 라이브 DVD가 발매되기도 했다(2009년). 이 라이브 DVD에 실린 6집 전국투어 콘서트 「인연」의 서울 공연은 대중가수에게는 인순이, 이승철 등 최고의 가수에게만 그 문을 열어주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신세대 가수로서는 최초의 세종문화회관 입성이었다. 반면 이렇듯 왕성한 콘서트 활동은 리드보컬 김진호가 성대결절에 걸리게 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는 더 이상 20대의 가수는 아니다.
2016년 기준으로 86년생 막내 김진호까지 30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2016년 현재까지 SG워너비의 통산 앨범 판매량은 280만 장이 넘는다! 특히, 음반시장이 이미 급속도로 위축된 2000년대 중반에 데뷔하여 기록한 수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음반시장 호황기였던 1990년대 기준으로 보면 천만장이 넘는 수준으로 환산 가능한 수치다.

1.1 소몰이창법

좋게 말하면 노래를 잘 부르는 그룹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들의 노래가 한국가요계를 획일화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6] 좋게 평가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7] 이미 이전에 유행을 했거나 인기있던 가수들. 브라운아이즈나 조성모같은 가수들의 노래와 히트방식을 답습하며 개성없이 노래해온 점은 비판의 여지가 많다. 나얼과 윤건이 브라운아이즈 시절 사용했던 드라마식 M/V 구성과 박효신, 환희등이 먼저 구사해온 소몰이 창법, 같은 소속사 대선배인 조성모와 비슷한 보컬구성의 서브보컬, 투박하고 자극적으로 뽑아낸 듯 한 현악 세션 구성 등등 이전 발라드 가수들이 히트해온 성공방식을 그대로 모방해 성공을 해왔고, 그 뒤 무수히 많은 양산형 아류들을 만들어 냈다.

그 뒤에 나온 많은 소몰이 가수들까지 덩달아 인기를 끌면서 한국 가요계가 획일화 되었다. 하지만 유행에 편승한 작곡가, 가수는 물론이고 "소몰이면 어때 노래만 좋은데ㅋ" 하더니, 듣다 질릴 때 쯤엔 "노래가 소몰이 밖에 없어" 하며 무작정 까기만 한 청자들 또한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2007년 이후 아이돌이 다시 대세로 기울여지면서 소몰이 가수들의 거품이 다 꺼지면서, SG워너비 역시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하여 컨트리와 가벼운 발라드 곡들이 SG워너비의 새로운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원더걸스빅뱅 등의 너도나도 아이돌이 대세를 탄 뒤에는 이들의 인기는 비교적 사그라든 편. 게다가 SG워너비의 노래 스타일이 소몰이에서 벗어나 편안한 발라드를 지향하자 음원시장에서의 반응도 예전처럼 뜨겁지는 않다. 한 편에선 가요계에 가득한 댄스곡에 질렸다며 예전처럼 정통 소몰이 노래를 내달라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이건 뭐… 하지만, 콘서트에서는 항상 매진을 기록한다. 괜히, 라이브 가수로 기억나는 것이 아니다.

김진호는 소몰이라는 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별명은 소몰이만 아니면 상관 없다고. 그럼 소눈. 언제는 실제로 시골에 내려가서 자기 목소리로 소가 몰아지는 지 해 봤다고 연예가중계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당연히 안 되었다고 한다. 소는 그냥 눈만 꿈뻑꿈뻑 거렸다고(...). 심지어, 언젠가 콘서트에 소를 타고 나오는것도 고려해봤다고(…)

하지만, 소몰이의 대명사라는 것과는 달리 일부 타이틀곡만 그러했고, 제외하고는 감성적인 발라드와 모던 록, 심지어는 댄스 곡과 일렉트로닉까지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4집 2번 트랙 은(恩)이 매우 특이한 스타일인데 반주는 힙합에 노래는 발라드인 힙합발라드(?) 스타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타이틀 곡이 무거운 미디움템포라 소몰이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또한, 일각에서는 소몰이창법이 소를 몰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체력을 요구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불러진 명칭이라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래방에서 SG워너비 노래를 선곡하면, 잘 부르지 않는 이상 1절 하이라이트 부분을 다 듣기도 전에, 꺼버린다고.. 그렇다고, 하이라이트 부분을 소화한다고, 클라이맥스 부분까지 잘 부르는 경우도 흔치 않다. 온통, 대부분 클라이맥스에서 삑사리가 대부분이라고. 귀 테러는 덤 [8]

1.2 미디엄템포

또한 미디엄템포라는 새로운 장르라면 장르로 볼 수있는 곡들을 주로 불렀는데, 발라드는 느리고 지루하다는 인식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의 빠르면서도 서정적인 노래가 새롭고 좋게 들렸다고한다. 2007~2009년 후크송이 유행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 멤버

김용준(현 리더, 서브보컬)
김진호(메인보컬)
故 채동하(전 리더, 서브보컬)
이석훈(서브보컬)

3 활동

SG워너비/음반 목록 을 참조.

4 수상내역

연도수상내역
2004년제15회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제19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신인가수상
2005년SBS 가요대전 프로듀서상
SBS 가요대전 본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MBC 10대 가수가요제 본상[9]
제20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본상
제20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남자그룹상
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그룹부문가수상
2006년SBS 가요대전 프로듀서상
SBS 가요대전 본상
제21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디지털부문 대상
제21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본상
제16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Mnet KM 뮤직 페스티벌 최고 노래상
Mnet KM 뮤직 페스티벌 올해의 최고 앨범상
Mnet KM 뮤직 페스티벌 디지털 인기상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남자 발라드부문 가수상
2007년제22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
제22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본상
Mnet KM 뮤직 페스티벌[10] R&B 소울 음악상
2008년제23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본상
Mnet KM 뮤직페스티벌 KFC OST상
제17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2009년제24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디스크부문 본상[11]
제36회 한국방송대상 개인상부문 가수상
제18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5 기타

처음 얼굴없는 가수로 활동할때, 멤버들 이름을 와이미(김용준), 데이빗(채동하), 찰스(김진호)라고 했던 흑역사가 있다(…). 곧바로 바꾸긴 했지만 기억하고 있는 팬도 있는 듯. 찰스는 데뷔 전에 철회된 이름이라, 아는 분들은 정말 극초기 팬들 밖에 없는 듯. 김진호가 "이 외모에 찰스가 웬 말이냐."(...)라고 강력하게 어필해서 본명을 사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데뷔 후 처음으로 나온 방송에는 데이빗하고 와이미로 나오긴 나왔었다. 데이빗의 경우, 채동하가 김진호처럼 영어 이름을 쓰기 싫다고, 어필하게 됐고, 김용준은 와이미의 스펠링이 Whyme라고 하는 병크를 지적하면서, "왜 나야?"라는 예명이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접었다고. 나중에, 삼성전자 광고에서 Why not?이라는 광고를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랐었다고(...) 네이밍 센스가 참 모자르다

수상경력에 2005년 MBC 10대 가수가요제 본상 수상이라고 적혀있지만, 사실 수상을 거부했다.
거부한 이유는 당시 기획사였던 GM기획과 MBC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2004년 데뷔 때부터 2006년 연말 연기대상 축하공연 때까지 MBC에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당시 기사[12]

10대 가수가요제가 제법 권위 있는 시상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SG워너비 측에서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는 수상 거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양 쪽 모두 논란이 있었다. 결국 10대 가수가요제는 SG워너비를 시작으로 많은 가수들의 보이콧으로 인해, 폐지 되었고, 지금의 MBC 가요대제전으로 개최되게 되었다.

채동하가 탈퇴한 이후 이석훈을 영입해서 발표한 5집 앨범은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많은 팬들은 채동하의 빈 자리를 정말 아쉬워했고 이석훈과 채동하의 목소리와 가창력을 비교하면서 채동하를 그리워했다.
채동하는 탈퇴 이후 뮤지컬 출연과 솔로앨범 2집 등을 발표하며 활동했는데 2집 앨범안에 본인이 과거에 쓴 일기가 담겨있다. 일기를 읽어보면 채동하는 어릴적부터 심장 질환으로 잘 뛰어놀지 못하고 거의 항상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음이 느껴진다. 일기를 통해 들여다본 그의 삶에서 SG워너비 활동 은 그를 행복하게 만든 몇 안되는 일이었던 것 같고 그룹 탈퇴이후 다시금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채동하는 2011년 5월 본인의 자택에서 자살하여 그 당시 많은 팬들과 동료 가수들이 그를 추모하였다.

이석훈은 국립발레단 출신 최선아와 약혼을 하였다. 결혼은 SG워너비 활동이 먼저라고했는데 과연 언제할지? 2015년 9월 11일 방송된 마녀사냥 방송에서 밝힌바 혼인신고는 이미 했고 결혼식은 내년 초에 한다고 했다. 김진호는 일본 잡지 인터뷰에서 35살에 결혼하고 싶다고 하였다.

멤버 김용준은 2011월 4월 뺑소니를 쳐서 기소당했다. 황당한 건, 인근 경찰서에 뺑소니 신고된게 없는지 전화 문의를 하다가 경찰이 네가 범인이냐? 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자수(…)했다는 것. 결국 징역 8월, 집유 2년, 사회봉사 80시간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것 때문에 MBC, KBS에서 방송 출연 금지를 시켰다가, 2015년 현재는 모두 풀린 상태.

이수영의 뮤직쇼에서 여러모로 대박을 터뜨렸었다.[13]

재밌는 점이라고 한다면 SG워너비의 팬층이 대부분20~30사이 남성(!)층(...) 이다. 그래서 그런지 SG 워너비 본인들도 말하길 다른 남성 그룹들은 오빠~ 소리 듣지만 이상하게 우리 콘서트에는 형~ 또는 형님~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14] 그래서 그런지 본인들은 여성팬들이 많이 늘어나길 원하지만 정작 남성팬들이 더 많은 편이다. [15]

국내에서 김진호의 긴 샤우팅 때문에 해외에도 약간이나마 SG워너비가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해외에서는 김진호가 맴버중에서 인기있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SG워너비 노래에서 외국인들이 김진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거론하는 편이다. [16]

11월에 새로운 앨범을 가지고 컴백한다고 한다!

6 공백기 이후 4년만의 컴백

2014년 12월 23일, 멤버들의 군입대로 약 2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던 SG워너비가 그들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CJ E&M으로 돌아와 재결합 계획을 확정지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2015년 7월 22일, 완전체 화보 촬영 기사가 뜨면서 컴백이 가시화되었다.##
3명이 완전체로 화보를 촬영하는 건 처음이라고. 에스콰이어 8월호에 새 앨범 관련 소식과 함께 수록 되었다.

SG워너비의 새 앨범 티저 영상을 촬영 중이라는 사실이 스타일리스트 박만현의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사진과 함께 밝혀졌지만, 현재는 사진을 내렸다.누가 빨리 내리라고 했나 어차피 볼 사람은 다 봤다

그리고, 7월 30일티저영상이 공개되었다!!!!!!
티저 영상에 나온 바로는 8월 19일 미니앨범 [THE VOICE]가 발표 된다고 한다.

8월 4일부터 리더 김용준을 시작으로 매일 아침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서 멤버별 티저 영상과 각오가 공개되고 있다.

그리고, 8월 19일 PM 10:00[17] 드디어, 새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다!이게 몇 년 만의 앨범이냐 발매하자마자, 멜론을 제외한 모든 앨범 차트에 줄세우기를 하였고, 멜론에서는 2위로 주춤하다가, 12시가 되서야, 가슴 뛰도록이 1위를 기록하였고, 2시부터 더블 타이틀곡인 좋은 기억까지 2위를 차지하면서, 1, 2위를 모두 석권하며, 올킬을 달성했다!!!

멤버들의 자작곡이 한 사람 당 한 곡씩 세 곡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 하지만 타이틀곡들은 얄짤없는 조영수와 김도훈의 작품.

그리고 8월 20일에는 멜론 지붕킥을 5회 달성하며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음악방송들 1위는 아깝게 한 번도 못해봤다.[18] 비록 1위는 못했지만 SG워너비를 기다려온 수많은 팬들에게 보답을 해냈다.
  1. 이석훈이 처음 데뷔할 때는 채동하의 센터 자리를 그대로 이석훈이 섰으나 그 다음 앨범부터 바로 김진호와 이석훈의 위치가 바뀌었다.
  2. SG워너비의 등장으로 가비엔제이, 씨야, 먼데이키즈 등이 나타났다.
  3. 이 당시의 김진호 나이가 고작 19세였다... ㅎㄷㄷ 만으로는 17세.
  4. 중간에 4년 정도의 공백이 있었다.
  5. 여담이지만 2007 골든디스크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2008년부터 2016년 1월에 열린 30회 골든디스크 시상식까지 전부 한 번도 빠짐없이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들이 받아갔다... 순서대로 2008년 동방신기, 2009년 슈퍼주니어, 2010년 소녀시대, 2011~2012년 슈퍼주니어, 2013~2015년 EXO-K... ㅎㄷㄷ
  6. 그런데 이 부분은 이들로서는 억울 할 수밖에 없는게 1.어쩌다 히트친 가수, 2.그 스타일이 잘 팔리니 개나소나 카피한 제작자/가수, 3.그 넘쳐나는 카피들을 또 좋다고 사주고 다른 스타일을 무시한 소비자… 중에서 누가 문제일까?
  7. 가수 하나의 등장으로 가요계 전체가 거의 획일화 되었다면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과 음악계의 지지가 대단했다는 반증이니까.
  8. 여담이지만, 이석훈도 SG워너비 오디션 때, 살다가를 부르다가 삑사리를 낸 적이 있었다. SG워너비 멤버로 들어온 초기에는 내 사람을 배분할 때 방송용 채동하 파트를 줬더니, 음역대가 그당시에는 넓지 않았던지라, 다시 태어나서 사랑한 데도 이 부분을 못 불러서 영원토록 사랑할게요 이후부터는 김용준이 대신 부른다.
  9. 수상을 거부하고 가요제에 불참의사를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쪽 '기타' 참조.
  10. 현재의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11. 이날의 수상으로 인해 SG워너비는 골든디스크 본상을 5년 연속 수상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에서는 10대 가수로 선정했다. 거부했는데도 수상시키는 MBC
  13. 참고로 녹화 날짜가 기침나무 다음 날이었다.안습
  14. 실제 콘서트 가보면 여성관객보다는 남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그 여성관객들도 남성관객들의 여자친구라서 끌려왔다카더라
  15. 남성 팬들이 많은 이유는 노래의 성향이나 뮤비의 성향이 남성의 시점이 중심인데다가 대부분 사랑의 이별에 관한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여성분들이 잘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더군다나 노래방에서 여성이 부르기에는 매우 힘든편.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들이 싫어하냐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SG워너비가 활동하는 시기에 남성 아이돌이 많이 나와버려서 여성들의 시야에서 들어가지지않았다
  16. 물론 일부는 SG워너비의 맴버들을 잘 알고있고 채동하도 많이 거론되었다. 그리고 채동하가 사망했을 때에 많은 외국인 팬들이 슬퍼했었다. 현재는 김진호가 많이 외국인 팬들중에서 많이 거론된다.
  17. 정확히 뜬 시각은 PM 09:58분 경
  18. 같은 날에 소녀시대Lion Heart로 컴백하면서 음악방송에서는 1위 후보에만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