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하

SG워너비의 멤버 (생년월일 순)前 멤버
이석훈김용준김진호채동하
본명최도식
출생1981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
사망2011년 5월 27일
학력명덕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 방송 연예과
소속사더블유에스 엔터테인먼트

1 소개

대한민국의 가수. SG워너비의 전 리더이자, 메인보컬이였다.

2 가수 활동

2002년 'Gloomy Sunday'라는 타이틀곡으로 데뷔하였다. 그 후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소속사인 지패밀리 엔터테인먼트가 부도가 나고, 엠넷 미디어(당시 GM기획, 현 CJ E&M, 코어 컨텐츠 미디어)를 통해 김용준, 김진호와 함께 SG워너비의 리더 및 메인보컬로 활동하게 된다.

SG워너비가 앨범 판매량 1위, 골든디스크 대상, MKMF 대상 수상 등 그야말로 고공행진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2008년 1월, 소속사와의 의견 차이로 SG워너비에서의 탈퇴를 발표하였고, 3월 조영수의 All star 앨범에 참여하고 탈퇴하였다. [1]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뮤지컬 등 폭 넓은 활동을 원했으나 소속사에서는 SG워너비 활동에 전념하기를 바라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2] 같은 소속사였던 티아라의 함은정과 지연은 연기도 했었던 걸 보자면, 이해가 안 되는 결정. 결국 소속사와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탈퇴.

탈퇴 후 2집 ESSAY로 컴백하려 했으나 목디스크와 성대결절이 겹쳐 활동을 연기하여 2009년 11월에 늦게나마 컴백을 했음에도 목 디스크가 또 발목을 잡아 방송활동을 많이 못했다. 곡의 퀄리티는 좋으나 기대만큼은 활동은 못한 편. 타이틀곡의 작곡가인 조영수가 초대박일 거 같다도 예상할 정도면 많이 아쉬운 편이다. 음반의 판매량 자체는 나쁘지는 않았으나 기대에는 못 미쳤다. 특이하게 이 앨범엔 채동하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3]과 직접 쓴 수필이나 심정들이 적혀있다.

스타 골든벨에서 공연 중이던 있던 뮤지컬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자신의 배역에게 주어진 뮤지컬 넘버를 부른 적도 있다. 내가 다 먹을거야 내가 다 먹을거야 초코파이 덕후라카더라

2010년 9월에는 미니앨범 D Day로 컴백. '발라드의 멜로디, 록의 리듬, 클래식의 과감함, BPM 147을 한 노래에 섞은 'Vanilla Sky'라는 노래가 채동하의 자작곡이자 타이틀곡이었다. 역시 그렇게 오래 활동하지는 않고 들어간 편이나 그래도 2집 ESSAY보다는 비교적 활발하고 오래 활동하여 채동하를 기다려온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의 성원에 보답을 해냈다.

2011년 1월, V.O.S에서 탈퇴했던 전 리더 박지헌[4]과 '어제 같은데' 라는 싱글을 발표하고 한국에서는 각종 행사로, 일본에서는 콘서트로 점점 활발하게 활동해 나가며 다시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3 사망

2011년 5월 27일[5],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S아파트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타살 흔적은 없으며 사인은 자살. 자살 동기는 우울증으로 보인다고. 실제로 2009년 7월 9일, 채동하가 잘 따르던 매니저 장 모 씨가 자살로 숨졌고,[6] 본인이 열심히 작업한 앨범은 건강상 문제로 기대에 못 미쳤으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컸다는 점이 채동하를 괴롭힌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사망 당일인 5월 27일은 일본 도쿄에서 공연하는 날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일본 프로모션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채동하의 일본 측 소속사에서 공연이 얼마 안 남았는데 채동하와의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입국한 사실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았으며 수차례 연락을 했음에도 받지 않았다. 이에 그의 매니저가 자택을 방문하였고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119에 신고, 구조대가 출동하여 베란다를 통해 들어갔으나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한 상태였다. 평소에 그를 본 사람들은 짧은 외출에도 단정했으나 자살 며칠 전에는 단정한 모습과는 달리 초췌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기준으로 한달도 안 남은 채동하의 생일에 맞춰 미니앨범 쇼케이스와 팬클럽과 함께하는 생일파티 등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와중에도 콘서트 준비는 속행되었고 공연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서야 소식을 들은 일본 측 스텝들은 입장만 기다리고 있던 수백 명의 팬들에게 채동하의 자살 소식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전달해야 했다. 공연은 생전 SG워너비 활동과 일본에서의 활동을 담은 영상들을 편집해서 상영했고 관련 스텝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추모문을 낭독하는 등 추모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팬 층이 거의 30~50대 여성이라 눈물바다가 되었지만 다행히 큰 소란은 없었고 조용히 공연은 막을 내렸다. 팬카페에 며칠 전에 올라왔던 밝고 기대감 넘치는 글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며, 더욱이 그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기부, 봉사 등 각종 선행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더욱 더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7]

4 가창력

살아 생전 가창력을 살펴 보면, 젊은 가수치고는 굉장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Gloomy Sunday로 데뷔하던 1집 때부터 김형석 작곡가가 말하길, 박효신조성모의 장점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극찬한 걸 보면... 작곡가도 조성모의 여러 히트곡을 썼던 이경섭 작곡가가 1집 대부분의 곡을 작곡했을 정도.

거기다가 음반판매량순위 차트에서 40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소속사의 부도로 인해 얼마 활동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는 점. 영상을 찾아보면 있긴 있다.

저음부터 3옥타브가 넘어가는 고음까지 소화 가능하며 록 스타일의 곡도 잘 소화하곤 했다.[8]

저음에서는 허스키한 쇳소리[9], 고음에서는 맑고 힘 있는 미성이 나오는 특이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SG워너비 당시 메인보컬이었으며 김진호가 워낙 파트가 많고 폭발적인 애드립을 지르기에 팬들이 아닌 사람들은 채동하의 가창력과 그가 메인보컬이라는 사실을 잘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브할 때는 원곡의 기존 파트 배분과 다르게 하여 채동하도 메인보컬의 면모를 보여주며[10] 그리고 아예 채동하가 녹음 버전 곡에서도 후렴을 맡는 곡들도 몇 곡 있는 등[11] 메인보컬이 맞다. 김진호가 워낙 대중성 있는 폭발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어서 리드보컬로서 파트를 다 가져가다시피 했으나 채동하가 SG워너비를 탈퇴한 뒤, 채동하의 살인적인 고음을 맡을 사람이 없어 더 이상 라이브로 들을 수 없는 곡들이 몇 곡 있는 것만 봐도 그의 가창력을 잘 알 수 있다.[12]

SG워너비 3집부터 라이브와 음반의 차이가 더 커지는데, 이는 음반 프로듀싱 단계에서 김진호의 두꺼운 목소리를 부각시키기위해 다른 두 멤버의 파트를 줄이고, 미성을 강조하도록 디렉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브에서는 보다 힘차고 파워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목소리가 채동하 본연 스타일에 가깝다. 대표곡들인 3집 내사람, 4집 아리랑 고음파트만 들어봐도 라이브와 차이가 크다. 그런데 SG워너비를 탈퇴 하고 발매한 솔로 2집도 미성을 심하게 강조하여 역시 라이브와 차이가 크다.(...) 프로듀서 조영수의 취향[13]인 듯.

그러나 선천적인 천식 때문에 기복이 좀 심하다고 평가받았었다. 목뿐만 아니라 몸 컨디션에 따른 기복도 심한 편이라, 몸이 좀 안 좋을 때는 정확한 음을 못 내기도 했다.

사실 콘서트로만 보자면, 개인무대에서 락 장르의 노래들을 부른다. 2집 콘서트 개인무대에서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무대를 한 적도 있고, 무리를 많이 하는 편. 언젠가 4집 콘서트 중에서는 뮤지컬 넘버를 부르다가 도중에 쓰러져서 휴식하고 나온 적도 있었다. 인간극장에서 그대로 나온다.

5 사후

채동하가 세상을 떠난 후, 아이돌 홍수 시대에서 채동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만 가는 줄 알았지만...

2013년 10월 12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첫 출연한 김진호를 통해 잊혀 가는 줄만 알았던 채동하가 다시 기억되게 된다. 이날 김진호는 추모특집으로 고인이 된 옛 멤버 채동하를 추모하며 SG워너비 시절 히트곡 '살다가'를 열창했다. 중반부에 故채동하의 파트에서 원곡이 흘러나오며, 즉 故채동하의 목소리와 '살다가'의 MR이 그대로 나오면서 감동이 더해졌다. 최종적으로 432점이라는 매우 높은 점수를 받고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또한 방송이 끝난 후에도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 이번에 부른 '살다가'가 1위를 찍고 채동하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다시 사람들에 기억에 남겨지게 될 수 있었다.

6 여담

선천성 심장병이 있다. 이로인해 군대는 당연히 면제. 어려서부터 수두, 홍역 등 각종 질병을 모두 겪으며 힘들게 자라왔고 그 후유증으로 천식을 달고 살았었다. 때문에 담배는 입에도 안 대고[14] 술도 와인을 마시는 편.[15]진호가 맥주, 용준은 술고래라는 점에 비하면 뭐

의사나 친지들은 천식 환자가 어떻게 그렇게 무대에서 뛰어다니며 노래를 하는지 신기하다고...[16]

씨야의 이보람과는 연인 사이였었다. 스타 골든벨에서 이보람이 채동하에게 "잘 할게요."' 라며, 영상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결별. 참고로 씨야는 SG워너비의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탄생한 여동생 가수로 불리기도 했다. 얼굴마담 허스키 노래머신이 다 존재했다. 결별 후에 채동하가 운명을 달리했다는 연락을 받고 못 믿겠다며, 빈소로 달려갔고, 빈소에 도착하고 나서 실신했다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장윤정 2집에 '편지'라는 제목의 듀엣곡이 있다.

  1. 공식적인 SG워너비로서의 마지막 스케줄은 2008년 5월 8일일본 도쿄에서 열린 콘서트였다.
  2. 실제로 뮤지컬 출연 중 SG워너비 스케줄 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공연을 취소한 사례도 있었다.
  3. 15년 전 오늘, 마음도 사랑도 눈물도.
  4. 2016년 1월 재결합하여 다시 V.O.S로 활동 중이다.
  5. 사망추정 시각은 5월 26일 저녁 이후로 추정된다고 한다.
  6. 이 당시 "심장의 절반이 날아간 것 같다." 고 밝혔다. 생애 첫 매니저이자 본인에게는 엄청 소중한 매니저였다고 한다.
  7. 채동하는 SG워너비 탈퇴 이후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네팔에 여러 번 방문하여 현지에서 밀알학교 건축현장에서,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해서 봉사하였으며 특히, 2009년에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네팔 아이들, 그리고 국내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학습용품을 기부하고, 독거노인들을 위해 쌀을 보내는 등 선행을 해오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망소식과 더불어 생전 선행소식이 알려져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
  8.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며, 콘서트에서 본 조비, 너바나의 곡들을 자주 불렀다.
  9. 쉽게 생각하면 노홍철의 이긴 한데, 그만큼 심하진 않고, 바람이 새는 정도.
  10. 타임리스, 죽을만큼 사랑했어요, 죄와벌, 살다가, 내 사람, 사랑가, 은, 첫눈, 처음처럼 등
  11. 광, 한 여름날의 꿈, 사랑하길 정말 잘했어요, STAY, 어린 사랑, 세글자, 비틀즈의 음악보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이별하길 정말 잘했어요, 은 등
  12. 고음만 잘 올린다고 가창력이 좋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채동하는 저음부터 고음까지 넓은 음역, 감미로운 음색, 안정적인 발성, 훌륭한 성량, 애절한 감정표현 등 모든 면에서 상당히 뛰어난 보컬이다.
  13. 정확히는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두드러지게 프로듀싱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SG워너비는 조영수가 가장 자신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14. 피우다가 끊다가를 반복했다고 한다.
  15. 인간극장에서 보면 캔맥주는 마시는듯 하다.
  16. 인간극장 SG워너비 살다가 살다가 편 참조. 그의 어머니가 밝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