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릉군

巴陵君
(? ~ 1534)

조선의 왕족.

본명은 이경(李璥)으로 왕실의 종친 중 한 명. 혈통으로는 태종의 서장자 경녕군의 증손으로 성종과 같은 항렬이다. 실록에선 자세히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 성리학적 소양이 있던 종친이었던 모양인데 기묘사화가 일어나고 조광조가 유배끝에 사사된후 과감히 중종에게 상소를 올려 조광조 등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했다가 그만 미운털이 박혔는지 해남으로 유배당하고 만다. 그랬다가 중종 29년인 1534년에 해남에서 생을 마쳤다고 실록에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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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에서의 파릉군(坡陵君)

여인천하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서 정난정의 친 아버지로 나온다. 배우는 최동준.그러나 정난정의 생모가 산속에서 그녀를 낳을 때 파릉군은 역적으로 몰려 유배를 갔고 생모가 아이를 낳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뒤에 다른 여자가 정난정을 데리고 가 자기 딸로 키웠기 때문에 둘 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파릉군은 유배가 풀린 뒤 나름대로 과 그녀가 낳았을 자식의 행방을 찾아 다녔으나 끝내 찾질 못했다.

강직한 성격으로 조광조의 개혁을 지지했다가 기묘사화 당시 조광조의 유배와 사사를 반대하다가 조광조와 한패라는 이유로 또 유배되었다. 일시 유배가 풀린 후, 중종에게 데스노트 살생부를 만들라는 명을 받는다. 중종의 정치개혁 의지가 있었다...라는 것이었지만 정난정의 계략으로 결국 파릉군은 살생부 제작을 포기하고 다시 유배되었다가 명종이 등극한 이후에 회초리로 명종의 종아리를 때린 문정왕후를 면전에서 대놓고 질타하다 문정왕후의 미움을 샀고, 또 다시 유배 되었다가 정난정의 계략으로 결국 사약을 받고 사사되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정난정의 출생을 지켜봤으며 그녀의 보호자 중 한 명인 당추 스님이 정난정에게 파릉군이 친부임을 알려주자 경악하는 정난정은... 엄밀하게 말하면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어진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작중에서는 올곧은 선비로 나오지만, 무려 네 번이나 유배되고, 결국 친딸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만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안습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