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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의 지역구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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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安道
1 개요
평양직할시,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를 포함하는 지역. 관서(關西)라고도 한다. 관서는 관(철령)(鐵嶺關)의 서쪽이라는 뜻이다. 서북(西北)[1], 서토(西土) 등으로도 불렸다.
남북 평안도를 다 합친 넓이는 4만 3,400㎢, 인구는 1,060만 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특히 가장 큰 도시인 평양은 북부 지방 제일의 도시.
기원전에는 고조선의 땅이었다가 낙랑군, 다시 고구려의 땅이 되었다. 고구려가 망하면서 극히 일부는 신라의 땅, 나머지는 당나라 땅이 됐다. 당나라 땅은 후에 발해가 차지했다. 그러나 양쪽 모두 평안남도 쪽은 변경의 성격을 가졌다. 후삼국시대초 평남의 남부를 궁예가 수복하였고, 왕건이 발해유민을 받아들이며 평안남도 대부분을 수복하는 등 점차 되찾아나가 북계(北界)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나라 간섭기에 북계가 최탄의 난으로 원나라에 넘어갔으나 결국 반환받았다. 조선의 성립 당시 중강진 을 중심으로 한 일부가 여진족의 땅이었는데 세종대왕 때 4군 6진을 개척하면서 완전히 되찾게 되었다.
평안도라는 명칭의 어원인 평양과 안주는 둘 다 현재 평안남도에 속한다. 원래는 대동강, 청천강이 상류가 북쪽으로 뻗었기에 평안좌도, 우도로 구별했으며 이 경우 대부분의 큰 도시들은 영변을 제외하고는 모두 좌도에 속하게 된다. 평안남북도는 1896년이후의 구분이다.
방언은 서북 방언을 사용한다. 다만 동북쪽 끝인 후창군 지역은 동북 방언권에 가깝다.
관서 8경이라 함은 강계의 인풍루(仁風樓), 의주의 통군정(統軍亭), 선천의 동림폭(東林瀑, 폭포), 안주의 백상루(百祥樓), 평양의 연광정(練光亭), 성천의 강선루(降仙樓), 만포의 세검정(洗劒亭), 영변의 약산동대(藥山東臺)를 말한다.
조선후기 들어와서는 서북 지방 사람은 차별을 심하게 받았다. 양반들은 몰락해 벼슬길보다는 경제 활동에 전념해 부유한 상인들이 많았고 특히 의주의 임상옥이 거상으로 유명했다. 또 이들은 경제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으려고 관리들과 결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세도정치 시절에는 이들을 수탈하는 수령도 많았으며 특히 평안감사가 정승 부럽지 않은 관직인 것으로 유명했고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란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서북 지방의 차별과 더불어 지방 향리들의 수탈도 가혹했고 홍경래의 난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 참고로 홍경래의 난 항목에 올라온 격문[2]을 참고하면 조선후기 사회 전반에 평안도에 대한 괄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것은 대한민국/지역감정 항목을 참조.
2 통일 후 전망
일단 평안도는 對 중국 무역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남한사이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중간기착지로써 쓸모가 있는데다가 인프라 건설비를 지원받기에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에서 어느정도 완충지대로 두기를 원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인을 수십만씩 배치해서 긴장관계를 조성하면서까지 경제적으로 손해를 입을려고 자처할 가능성은 낮다.
역시 양강도와 자강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각각 평북과 함남에 흡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