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 Fenton Pete Mickeal |
| 생년월일 | 1978년 2월 22일 |
| 국적 | 미국 |
| 출신지 | 일리노이주 록아일랜드 |
| 출신학교 | 신시내티대학교 |
| 포지션 | 스몰포워드 |
| 신체 사이즈 | 193.8cm[2], 102kg |
| 프로입단 | 2000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58번(뉴욕 닉스) |
| 소속팀 | 탬파베이 썬더독스(2000~2001) 캔자스시티 나이츠(2001~2002) 토크 앤 텍스트 폰 팔즈(필리핀)(2002) 페리스테리 B.C.(그리스)(2003~2004) 디나모 모스크바(러시아)(2004) 마케도니코스 B.C.(그리스)(2004~2005) CB 브레오간(스페인)(2005~2006) 대구 오리온스(2006~2007) TAU Ceramica(스페인)(2007~2008) FC 바르셀로나(2009~2013) UCAM 무르시아(2014) 캉그레헤르스 데 산투르세(2014) 부칸너로스 데 라과이라(2015) 어소이언 데포르티바 아테네(2015) |
| 2006~2007 한국프로농구 외국 선수상 | |||||
| 크리스 윌리엄스(울산 모비스 피버스) | → | 피트 마이클(대구 오리온스) | → | 테런스 섀넌(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 |
1 소개
KBL 역사상 최강의 외국인 선수
전 농구선수. 스페인 프로농구 ACB 소속 명문팀 FC 바르셀로나에서 뛰었으며 2006-07 시즌 한국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에서 뛰어서 한국 농구팬들에게 알려진 선수다. 한국에서는 주로 핏마로 많이 불린다.
순수 기량으로 봤을때 한국프로농구 역대 최강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되고, 용병 트라이아웃제가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NBA에서 뛰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편인 외국인 선수로, 앞으로도 흔치 않을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2 선수시절
2.1 프로 데뷔
일리노이 주 록아일랜드에서 출생하여 록아일랜드 고등학교를 거쳐 인디언 힐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주니어 시절을 보낸후 신시내티 대학교로 옮겨 3~4학년 동안 활약한다.
2000년 NBA 2라운드에서 뉴욕 닉스의 지명을 받은 후 하부리그인 ABA에서 2002년 리그 MVP 및 파이널 MVP를 휩쓰는 맹활약을 하지만 스몰포워드로서 리얼 사이즈 196cm의 작은 키 때문에 결국 NBA에는 입성하지 못하고 필리핀 리그를 거쳐 유럽 무대로 건너간다. 스페인리그의 브로간 루고에서 맹활약하던 도중, 마침 KBL에 외국인 선수 자유계약제가 도입되자 대구 오리온스가 그를 데려온다.
2.2 대구 오리온스 시절
| 시즌 | 소속팀 | 경기 | 야투 | 야투 성공률 | 3점슛 | 3점슛 성공률 | 야투율 |
| 2006-07시즌 | 대구 오리온스 | 52경기 | 586 | 59.31% | 73 | 37.82% | 55.80 |
| 자유투 | 자유투 성공률 | 어시스트 | 리바운드 | 스틸 | 블락 | 득점 | PER |
| 435 | 83.98% | 137 | 570 | 67 | 49 | 1,826 | 33.94 |
KBL에서의 활약은 말그대로 압도적. 김승현이 슬슬 유리몸의 기질을 드러내며 드러눕기 시작하고, 핏마와 손발을 맞출 것으로 기대했던 리 벤슨이 야반 도주한 후[3] 제러드 호먼, 폴 밀러 등 역대급 식물용병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팀을 말그대로 혼자 이끌다시피 한다. 떨어지면 점퍼, 붙으면 돌파, 더블팀 붙어도 뚫고 득점 등(...) 결과적으로 시즌 경기당 평균 35.1득점 11리바운드 2.6어시스트라는 괴물같은 성적[4]을 올리며 팀을 4강으로 끌어올린다. 60퍼센트의 2점슛 성공률과 38퍼센트 가까운 3점슛 성공률, 84퍼센트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하였다. 선수 효율성 지수는 무려 33.94.[5] 이쯤되면 알겠지만 KBL 수준에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던 선수였고, 당연히 오리온스 팬들은 그런 핏마를 신으로 떠받들 수 밖에 없었다. 별명도 핏마교주, 핏마본좌였으며, 이 시기 오리온스는 피트 오리온스, 대구 마이클스로 불렸을 정도.(...)
문제는, 한국에 올 때부터 논란이 될만한 수준의 초특급 굇수 핏마처럼 외국인 선수 한두명이 팀을 PO로 끌어올리는 극단적인 외국인선수 의존현상이 나오자 당황한 KBL에서 결국 용병 자유계약제를 폐지시키고 트라이아웃제로 환원시키기에 이르렀고[6], 핏마는 결국 한시즌만에 KBL을 떠난다. 그리고 오리온스는 멸망했다. 핏마가 떠난 후 4년간 대구 오리온스의 성적은 10-9-10-10.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3 FC 바르셀로나 시절
KBL을 떠난 이후로는 스페인리그로 돌아가 2009년부터 FC 바르셀로나 농구팀에 입단했다. 2010년 LA 레이커스와의 친선전에서 맹활약하면서[7] 잠깐 국내팬들의 주목을 다시 받기도. 2010년에 유로리그 결승으로 이끌었으며 2010년 All-ACB Finals Team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폐색전[8] 발병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풀 시즌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2012~13년 시즌에도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유로리그, ACB에서 뛰었지만 3월 31일자로 폐색전이 재발해 시즌아웃되었다.
2013시즌 이후 계약을 종료하고 같은 ACB 소속인 UCAM 무르시아와 계약을 했으나 단 5경기만을 뛴후 캉그레헤르스 데 산투르세로 이적했다. 그곳에서 무릎 부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알려진후 베네수엘라로 건너가 부칸너로스 데 라과이라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어소이언 데포르티바 아테네로 이적했지만 단 5경기만을 뛰고 방출되었다. 이후 다른 팀들을 알아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은퇴를 한 것으로 보인다.
3 트리비아
- 원래 집안이
금수저부자인데다 유럽에서도 꽤 활약했기 때문에 돈도 많이 벌어놔서 한국 생활 당시 자기 자가용에다 전속운전기사까지 둘 정도였고, 원래 한국생활에 그다지 호감은 아니었다가 자기 위주로 맞춰주는 구단 시스템에 감탄해서 한국생활을 즐겼다고 한다.기사
- KBL에서 뛰던 시기 여러 여자 연예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목격되었고, 어느 연예인과는 아예 한국생활 내내 사귀는 사이였다고 한다(...)
- ↑ FC가 말 그대로 축구팀이라는 뜻임에도 바르셀로나 구단 산하 스포츠팀 이름에는 이 FC가 다 들어가 있다. 농구팀은 FC Barcelona Bàsquet(바스켓)팀이라고 부르며 기타 다른 종목도 이런식으로 이름에 FC가 들어가 있다.
- ↑ KBL 등록 기준. 영문 위키에는 199cm이라고 되어 있다. 당시 KBL은 외국인 신장 제한 때문에 신장 측정치를 줄이려고 노력하던 시기이다.
- ↑ 이후 아말 맥카스킬을 영입하려고 했지만 신장 초과로 영입이 불발되었다. 맥카스킬은 2009-10 시즌에 전자랜드에 입단하면서 KBL로 오게 된다.
- ↑ 경기당 35.1득점은 2016년 현재까지도 KBL 역대 최고 기록이다.
- ↑ KBL 초창기 기록을 제외하고 00시즌 이후 기록중에서 이보다 높은 per를 기록한 선수는 애런 헤인즈 뿐이다.
- ↑ 2010년 이후 프로배구에서도 외국인몰빵배구가 심화되면서 (레오화재, 시몬저축은행 등등) 트라이아웃제 주장이 조금씩 나왔고 16-17시즌부터 용병 트라이아웃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 ↑ 여담이지만 이때 코비 브라이언트를 능가하는 활약을 보이며 일부 국내팬들 사이에서 "NBA 주전 이상의 기량인데 일부러 안 가는거다"는 헛소리가 돌기고 했다. 그러나 친선경기를 기준으로 선수의 기량을 판단하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이기에... 당시 NBA 챔피언이던 레이커스는 2009년 시범경기에서 5할에 그쳤고 해당 경기에서 코비는 20분밖에 안 뛰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미국인인 마이클이 세계최고 수준인 자국 리그에서 뛸 수 있다면 한국, 필리핀, 유럽 등 외국리그를 떠돌 이유가 없다. 실제로 피트 마이클은 20대 중반까지 수차례 NBA 진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다만 전성기인 2010년대 초반 기준으로 팀내 7-8번째의 벤치플레이어 자리 정도는 차지할 기량은 된다는게 중론. 실제로 그 당시 NBA팀에서 오퍼를 받기도 했다.
- ↑ pulmonary embolism, 폐동맥이 혈전 등의 원인으로 막히는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