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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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가수 시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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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습.

早見優, 1966년 9월 2일생.

일본의 전 아이돌 가수.

본명은 이노우에 카즈미(井上 一美). 시즈오카에서 출생하여 7세부터 14세까지 7년간 미국에서 자랐다. 14세때 하와이의 일본 백화점에서 스카웃되어 홀로 귀국, 마츠다 세이코 등이 소속돼있던 선 뮤직[1]과 계약하여 82년 '急いで!初恋(서둘러요!첫사랑)으로 데뷔하였다. 일본인들이 환장(...)하는 미국에서 온 귀국자녀+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유창한 영어를 컨셉으로 나갔던 독특한 존재였다. 그 때문에 노래에 영어가 꼭 들어간다던가 예능에서 영어를 한다던가하는 일이 잦았다. 바로 이러한 점때문에 일본과 한국 가요계의 해외파 아이돌의 시조라고 봐도 좋다.

초기때는 미니드레스를 입고 소녀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전형적인 아이돌이었으나 80년 중후반부터 유로비트의 빠른 댄스곡을 부르며 와일드하게 노선을 변경. 87년에 발매한 유로비트풍 음악 'ハートは戻らない(하트는 돌아오지않아)'로 히트하였다.

87년 활동 당시 조용필의 애인이라는 소문이 크게 돌았는데, 실제로 87년 우리나라의 예능 방송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조용필 100곡 취입 기념쇼에 하야미 유가 직접 내한하여 출연한[2] 적이 있기에 그러한 의혹이 더욱 불거졌던 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하야미 유가 "보이브렌드, 걸프렌드는 없지만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에 든다면 한국 애인도..."라는 발언을 하기도... [3]

90년대에 들어선 배우로써 어른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1996년 외국계 은행원에서 근무하는 아메리칸 스쿨 시절 선배와 결혼. 두 아이를 출산하였으며 현재도 각종 버라이어티에서 활동 중이다.

2008년 토미카 히어로 레스큐 포스남부 나츠노역으로 출연했다.

KOF 시리즈시이 켄수가 좋아하는 가수 [4]

여담으로 그녀의 이름을 딴 소행성이 존재한다. 바로 6880 하야미유.

1 에피소드

  • 당시 선탠한듯이 까만 피부를 가졌었는데, 상아빛의 뽀얀 피부가 유행하던 80년대 당시 친구들과 멋대로 옥상에서 일광욕을 하여 관계자에게 매우 혼났다고 한다.
  • 미국에서 자라와 상당히 솔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이었다. 때문에 여러 에피소드가 생겼는데 그 중 하나가, 하야미 유가 좋아했던 남성이 영락없이 자신도 좋아할거라 생각하고 차를 운전하여 그의 집 앞에 놀러갔더니 여자친구와 함께 나와 아무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슬픈 에피소드가 있다.(...)
  • 결혼 전 모 월간지에 데이트 장면이 파파라치당했는데, 그 장소가 고깃집이어서 미묘하게 이미지 붕괴라는 말을 사무소에게 듣고 그 다음부터 일부러 고풍스러운 카페에서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 그녀가 데뷔한 82년에는 아이돌 붐이 일어 엄청난 수의 아이돌이 데뷔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하야미 유 본인을 포함해 나카모리 아키나, 코이즈미 쿄코, 마츠모토 이요, 호리 치에미, 이시카와 히데미 등이 인기가 높았다. 이들을 일본 연예계에서는 '꽃의 82년조'(花の82年組)라고 불렀다. 이들 중에서도 마츠모토 이요[5], 호리 치에미와 절친하여 현재까지도 함께 출연하는 일이 많다.[6] 2005년 '큐티★마미'라는 유닛을 결성. 이 셋은 아이돌 활동 당시 비슷한 포지션에서 누가 더 높지도, 적지도 않은 비슷한 인기를 누렸기도 하다. 2011년 함께 나온 방송에서는 "우리 진짜 인기없었어~", "그 흔한 친위대도 없었잖아~"80년대 자료 영상을 보면 분명히 이 사람들은 친위대가 있었다.라고 얘기하였지만 셋다 80년대를 빛냈던 아이돌이었음에는 변함이 없는 듯.
  • 홍백가합전에는 83년(여름빛 낸시), 84년(유혹광선 번쩍!), 85년(PASSION), 총 3회 출장했다. 82년 데뷔 동기 중 나카모리 아키나(7회)와 코이즈미 쿄코(5회)를 제외하면 제일 우수한 기록.뭐, 애초에 저 두사람이 인기로 보나 음반판매량으로 보나 다른 동기들을 월등히 앞서기는 하지만 여담이지만, '호리 치에미'가 84년, '이시카와 히데미'가 85년에 1회씩 출연했고, '마츠모토 이요'는 출장경력이 없다.

2 히트곡

  • 急いで!初恋(서둘러요!첫사랑) 1982년
  • 夏色のナンシー(여름색 낸시) 1983년 - 하야미 유의 최대 히트곡, 일본 코카콜라 CM bgm으로도 쓰였다.
  • 誘惑光線・クラッ!(유혹광선 번쩍!) 1984년
  • PASSION 1985년
  • ハートは戻らない[7] 1987년
  1. 이후 오카다 유키코도 이 소속사에 속해있었다.
  2. 1987년 4월 6일 경향신문 7매 발췌
  3. 당시 조용필 37세, 하야미 유 20세 흠좀무
  4. 초반 프로필의 중요한 것에 "하야미 유의 데뷔앨범"이라 써져 있다.
  5. 81년 데뷔. 하반기(10월)에 데뷔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활동이나 신인상 수상은 82년부터 주로 행해졌다. 신인상의 범위가 9월까지였다고 한다. 때문에 82년 데뷔조로 분류.
  6. 사실, 아이돌 활동 당시에는 이시카와 히데미와 더 절친했던 듯 하지만, 그녀는 1990년에 결혼한 후 사실상 은퇴해서 같이 출연하는 일은 없다.
  7. 하마사키 아유미가 데뷔전 부른 곡으로도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