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ttachment/세이코.jpg
리즈시절(1983년 천국의 키스 활동기)
파일:Attachment/Nov08696.jpg
환불여신이었던 과도기 박...박해미?
현재 회춘파워! 파문전사! 오히려 과도기보다 데뷔 초 모습과 가까워졌다
이름 | 松田聖子 |
출생일 | 1962년 3월 10일 |
국적 | 일본 |
혈액형 | A형 |
학력 | 호리코시 고등학교 졸업(편입) |
가족 | 부모님, 오빠 |
소속사 | F |
데뷔 | 1980년 '裸足の季節 |
저물어 가던 쇼와(昭和)시대를 지배한 아이돌
시대를 넘어 계속 사랑받는 영원의 아이돌 [2]
1 소개
일본의 가수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이자 배우 겸 실업가이다. 후쿠오카 지방 유지(치쿠고노쿠니 다이묘의 자손 집안)의 딸로 본명은 칸다 노리코.[3]
1980년 18세의 나이에 裸足の季節(맨발의 계절)로 데뷔. 70년대 전설의 가희인 야마구치 모모에의 은퇴와 함께 바통터치를 하듯 데뷔하여 끊이지 않는 히트곡과 화젯거리로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돌 가수였다.
음반 총 판매량 2963만장으로 역대 가수 중 15위를 차지하며 쇼와시대 역대 가수 중 총 판매량 1위 를 기록했다.[4]
2 아이돌 가수로서의 마츠다 세이코
1978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유수한 아이돌을 배출한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에서 사쿠라다 준코의 데모 테이프를 보내 지방 예선에서 우승. 데뷔 당시의 캐치 프레이즈는 '끌어안고 싶어! 미스 소니'. 가수 데뷔에 대한 부모의 반대가 심하였지만 세이코의 노래를 들은 소니측에서 "이 아이는 반드시 팔린다."고 확신하여 스카우트되었다. 79년엔 소속사를 '선뮤직'으로 옮기고 연예활동이 허가되는 호리코시 고등학교로 전입.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데뷔하였고 그녀는 그렇게 전설이 되었다.
음반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24곡 연속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 1980년대는 아이돌 붐이 장기간 지속되었던 시기였는데, 수많은 아이돌 중에서도 인기는 그야말로 당해낼 자가 없을 만큼 압도적이어서[5][6] 여러 가지 전설들을 남겼다.
당시의 인기를 짧게 나타내는 말로는 세이코쨩 컷과 부릿코가 있는데 세이코쨩 컷은 말그대로 머리를 바깥으로 넘겨 부풀린 세이코의 머리모양을 의미하는 뜻으로 일반 여성은 물론 당시 아이돌들이 모두 세이코의 머리형을 따라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녀의 패션 또한 당시 여성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무대에서 자신을 귀여워보이게 행동하는 '부릿코' 이미지는 유행어가 되며 크게 화제가 되었다. 모 음악방송에서 '푸른 산호초'가 1위를 하고 감격하여 우는 모습이 비춰졌는데 얼굴만 열심히 찡그리고있지 눈에선 눈물이 전혀 나지 않았기때문에 '부릿코' 확정.(...) 덧붙여 약 30년이 지난 후, 방송에서 이 '부릿코' 화면을 보여줬는데 본인도 매우 소리지르고 민망해하며 보기 힘들어했다.. 시간이 약간 지나 82년 FNS가요제에서 <들장미의 에튀드>로 대상을 수상 하였을 때 세이코가 마스카라까지 번져가며 눈물을 흘리는 의외의(?) 모습을 본 사회자가 "이번엔 진짜 눈물이 나오나봅니다"라는 발언을 하여 시청자들에게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결국 (팬들한텐 테러를 당했다는 얘기가...)사회자는 1년뒤 '83 FNS가요제에서 사과멘트를 했다고 한다. 이 부릿코컨셉은 무대 위에서의 컨셉으로 실제로 방송이나 라디오등에서는 꾸미지않는 털털한 모습을 보였는데, '부릿코라는 별명을 얻어도 왜 고치지 않는가'에 대해 묻자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대중들에게 꿈을 주는 일이기 때문에 고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전성기때는 이러한 헤어스타일 등의 생김새나 행보 하나하나가 화제를 일으켰다. 곡의 작사는 주로 마츠모토 타카시[7]였으며 작곡은 마츠토야 유미(쿠레타 카루호명의)가 맡아 수많은 곡들을 만들어내고, 또 히트시켰다. 목소리는 데뷔 초 일정한 무게감이 있는 시원스런 목소리였으나 엄청난 스케쥴로 목을 혹사당해 허스키한 목소리로 변하였다가 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변하게되었다.
3 음악가로서의 마츠다 세이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작사와 작곡, 프로듀스까지 본인이 직접 만들어내며 아티스트의 영역으로 활동을 전개해간다. 1996년 본인이 직접 작사를 맡은 싱글 <あなたに逢いたくて〜Missing You〜>(작사:마츠다 세이코/작곡:오구라 료)로 데뷔 이후 최고 판매량인 100만장을 달성. <「大切なあなた(소중한 그대)>, <輝いた季節へ旅立とう/9빛나는 계절로 떠나자)>,<이별의 순간(「さよならの瞬間)> 등을 작사하고 히트시켜 셀프 프로듀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작사가로써는 개인적인 감정을 적나라하게 투영하는 가사, 아니면 매우 긍정적인 가사를 자주 쓴다. 작곡으로는 장조(長調)의 곡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18살 데뷔부터 55세가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매년 열리는 콘서트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데 디너쇼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매번 공연마다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고 그 콘서트 티켓 또한 모든 가수들 중에서도 제일 고액의 부류에 들지만(48000엔/4인 세트 220,000엔) 발매하는 즉시 완매하며 끊이지 않는 인기를 나타내주고 있다.
2006년 발매한 74매의 CD를 엮어 만든 10만엔대의 초고가 앨범 'seiko matsuda'의 판매량은 2억엔을 기록. 이 전까지 앨범 판매량에서 최고액의 앨범으로 기록된 건 전설적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6만엔대 앨범이었는데 이 기록을 16년만에 갱신하였다. 발매예정이었던 1만셋트를 모두 완매시킨 판매량만 10억엔이 넘었다고 한다.
4 마츠다 세이코의 삶
파일:Attachment/C81CBAA9C5C6C74C zps3c9ad3b2.jpg 1996년경 우리나라 신문 기사 |
2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3번째 결혼, 출산, 수많은 스캔들을 거치면서도 데뷔부터 35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아이돌이라 불리고있는 유일무이한 존재. 영원의 아이돌. 일본의 국민MC 아카시야 산마는 그녀에게 "그 많은 스캔들을 견디면서도 지금까지도 활동하는 걸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라는 말을 했다.
후쿠오카 쿠루메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PTA 회장, 8살 연상인 오빠는 와세다대학 출신. 처음에는 가수로 데뷔할 생각이 없었으나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결정적으로 1977년 고향인 쿠루메의 사진관 촬영 모델에 응모하여 선출된 것을 계기로 연예계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데뷔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상당히 많았는데, 1978년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에서 사쿠라다 준코의 <気まぐれヴィーナス(제멋대로 비너스)>를 불러 큐슈 예선에서 우승했으나 엄격한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데뷔가 무산. 그리하여 데뷔가 보통 10대 중반인 여타 아이돌보다 다소 늦었다.(고교 졸업 이후)
1년간 부모님을 설득하고 도쿄로 상경했으나 5개의 소속사에 거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선뮤직까지 가게 되었으나 후에 대형 기획사로 발돋움하는 이 당시의 선뮤직은 소형 기획사였고 나카야마 케이코(中山圭子)라는 기대주의 대형 신인[8]이 데뷔를 앞둬 세이코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데뷔를 못하는 상황에도 처하게 됐으나 본인의 강한 의지를 본 나카야마 케이코가 양보를 해주어 겨우 데뷔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후는 다들 아는 대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와는 다르게 스캔들이 참 많았다. 일명 스캔들 여왕. 당대 유명 남자 스타들과 거의 모두 한 번씩 엮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물론 과장이 섞인 것도 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 고 히로미와는 데뷔 당초부터 결혼을 약속할 만큼 공식 연인이었으나 1985년 1월에 세이코가 단독 기자회견을 열어 고 히로미를 일방적으로 차버렸는데 당시 호텔 방 TV에서 이 장면을 보게 된 고 히로미는 어이가 없어 의자에서 데꿀멍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명대사는 "다시 태어나면 꼭 함께 있자고 맹세했습니다".후에 고 히로미 측은 그런 말 조차 한적이 없다고. "내가 다시 태어날 때 벌레가 되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이라 하였다.(.....)
파일:Jqpo3Xs.png 85년 1월 고 히로미와의 결별 기자 회견 모습. 옆에는 '정말 슬플 땐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져있다. |
4개월 후에 스폰서 이시하라 유지로[9]에게서 소개받은 배우 칸다 마사키와 결혼했다.
파일:VifjwHG.png 칸다 마사키와는 영화 '카리브 사랑의 심포니'에서 첫 공연을 하며 사이가 가까워지게 되었다. |
이를 언론에선 세기(聖輝, 世紀)의 결혼으로 칭할 만큼 화제가 되었다. 이 결혼식은 피로연부터 모든 것을 생방송으로 중계하여 34.9%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임신 발표 후 사흘 만에 사무실 직속 후배인 오카다 유키코의 자살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에 관련되었다는 의혹을 제기받아 또 화제가 되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미국의 호텔에서 콘도 마사히코와 바람을 피우는 모습이 발각되어 이에 충격받은 콘도 마사히코의 연인 나카모리 아키나가 자살 소동을 일으켜 또 화제...현재의 무시무시한 악녀, 천하의 개쌍년 이미지는 결정적으로 이때 만들어져서 현재까지도 아저씨들이 모이면 아키나가 잘못했네, 세이코가 잘못했네로 서로 싸운다고...흠좀무. 90년대 꾀한 미국 진출길에선 당시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있던 뉴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멤버와의 염문설, 미국인 청년이었던 제프 니콜스(영화 감독과는 동명이인)와 백댄서였던 알란 리드와의 열애설, 98년엔 6살 연하 치과의사와 재혼 시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ビビビッときた(비비빅하고 (느낌이)왔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는 등등 세이코의 마수는 어마어마했다. 지금까지도 당시의 결혼을 "ビビビ婚(비비비콘)"이라고 칭할 정도. 가히 사생활 면에서 '일본의 마돈나' 라 불리울 만도 했다.
파일:XgNniJE.png 제프 니콜스가 94년경 출판한 폭로본을 들고 미소짓고 있다. 제목은 '무너진 사랑'(...) 미국에서 있었던 3년간의 밀화나 러브레터 등을 공개하였으나 만들어낸 이야기라거나 대필 작성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
위와 같은 일례로 같은 여자들의 질투도 장난 아니게 받은 마츠다 세이코지만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결혼 후에도 은퇴하지 않고 출산 후 가수 일을 지속, '마마돌'로써의 활약으로 여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이돌로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으며 많은 여성들이 동경하던 최고의 미남 스타 고 히로미와의 로맨스 → (일방적으로 찬) 파국 → 곧바로 떠오르는 미남 배우 칸다 마사키와 결혼 → 출산 및 부띠끄 운영 → 미국 데뷔 → 이혼 → 6살 연하의 훈남치과 의사와의 결혼 → 이혼 → 3번째 결혼 등 그녀의 파격적이고 화려한 인생은 고분고분하게 남성만을 따랐던 당시 여성들에게 충격과 동경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이러한 그녀의 스타성은 80~90년대의 일본의 다양한 서브컬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순정만화는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 속에도 실제의 명의로 언급되거나 본인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 탄생되곤 하였다. 나카야마 미호 주연의 명작 영화 러브레터에서 주인공인 후지이 이츠키가 '푸른 산호초'를 언급한 장면이 있었으며 전설적인 고전 애니로 남겨진 마크로스의 주인공 린 민메이도 공식적으로 마츠다 세이코와 라이벌 나카모리 아키나를 모델로 만든 캐릭터인 등, 80년대엔 그야말로 모두가 '마츠다 세이코'에 푹 빠져있다고 해도 무방했을 정도.
그런 그녀의 팬이라 자처하는 연예계 종사자들도 많았는데, 오냥코클럽의 주요 멤버 유우유[10]와 와타나베 마리나, 이시바시 타카아키, 히라이 켄, 린드버그의 보컬 와타세 마키, 모리구치 히로코, 뉴하프 연예인 하루나 아이, 모닝구 무스메의 이이다 카오리, AKB48의 카시와기 유키&와타나베 미유키, 오덕계의 아이돌 나카가와 쇼코가 매우 열광적인 팬으로 유명. 와타나베 미유키는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마츠다 세이코의 오마쥬'라는 방식을 차용하여 앨범 자켓도 세이코의 '여름의 문'을 흉내내고 세이코쨩 컷까지 똑같이 따라했다. 이토록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엄청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다. 심지어, 2차원 아이돌인 마크로스 시리즈의 린 민메이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11] 마츠다 세이코와 같은 가수가 되고싶다고 밝힌 바 있다.
파일:Attachment/tumblr mafasowVdi1r2e3ceo1 500.png "4월 8일 친구들과 쇼핑...정말 오래간만이야 아키나도 세이코도 여전하구나. 난 어떨까...?걱정이 들어.너무 꾸미는 게 아닐까 하고. 항상 카메라 앞에서 준비하고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닌걸..." 미키모토 하루히코가 그린 린 민메이와 나카모리 아키나와의 콜라보. |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선 '동경하는 인생의 연예인', '반짝이는 여성 유명인' 랭킹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에서는 매년 앙케이트하는 '싫어하는 여자 연예인' 랭킹, 월간지 'SPA!'에서「1998년 남자가 용서할 수 없는 여자」1위, '주간여성'에서「2000년도 독자가 뽑는 싫어하는 여자」5위, '주간문춘'에선「2005년도 여자가 싫어하는 여자」5위의 위엄을 시전.(...)
현재 일본의 인명색인 랭킹에선 '마츠다 세이코'가 1위를 하고있으며, 일본 잡지에 제일 많이 등장한 유명인. 1995년 집계 당시 무려 3,300건 이상의 등장 횟수를 자랑하였다. 20년이 지난 2015년 현재에는 4,000건은 훌쩍 넘겼을 듯 84년의 앙케이트에선 '결혼하고싶은 여성 NO.1'에 선정되었다.
1988년 도쿄 지유가오카에 부띠끄 '플로레스 세이코'를 개점.(현재는 자신의 팬클럽 이름을 따 리뉴얼하여 영업중)
1990년대 초에는 미국 진출을 위해 철저하게 영어를 공부하였지만 아시아의 가수들이 다 그렇듯 별다른 성과는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번 미국 진출을 노린 앨범을 발매하였고 90년대 후반엔 헐리웃 데뷔를 목표로 하여 오디션을 통해 청춘 코메디 작품에도 출연하였다. 그렇기때문에 그녀의 영어는 일본내에서도 상당한 수준급이다. 2007년에는 NHK스페셜 '마츠다 세이코 여성 시대의 이야기'라는 마츠다 세이코의 삶과 그녀를 보며 살아온 동세대 여성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방송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칸다 마사키와는 결혼한 지 약 12년 후인 97년에 이혼했고,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딸 칸다 사야카를 두었다.
파일:G4DFraK.png 이번에 저희들은 12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각자 다른 길을 걷고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서로를, 그리고 서로의 재능을 존경하고 서로 도와가며 힘내왔습니다만 최근 두 사람 모두 가정과 일 사이의 양립과 그 어려움을 고민하고 부부로써의 밸런스를 무너뜨려버렸습니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 원하는 것만이 많아져 조금씩 배려를 잊어버린 걸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서로 떨어져 각자를 그리고 각자의 인생을 다시 고치고 싶어졌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 저희는 딸이라는 엄청난, 바꿀 수 없는 것을 얻었습니다. 이 소중한 딸을 이 같은 형태로 상처입히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딸을 위해서도 조용히 평화롭게 끝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보통 사람의 마음을 가진 인간입니다. 서로 서로 고민하며 수많은 눈물도 흘렸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들은 앞으로도 배우로써 또 가수로써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1997년 1월 10일 칸다 마사키 마츠다 세이코 1997년 이루어진 이혼 성명문. |
사야카는 SAYAKA라는 이름으로 가수 데뷔까지 했는데 엄마의 엄청난 빽을 뒤로 했음에도 아 망했어요. 현재는 본명인 칸다 사야카로 연기, 뮤지컬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진성 덕후 애니메이션 팬이라 페이트 제로, 빙과, 유루유리등 최근에 나온 애니메이션들까지 모두 섭렵하고 성우 전문학교를 거쳐 가난뱅이 신이!에서 아데노코지 나데시코역으로 성우 데뷔를 하였으며, 2014년에는 겨울왕국의 안나 역을 맡았다! 원조 안나 크리스틴 벨이 2001년에 데뷔했고, 한국어 더빙의 박지윤이 2005년에 데뷔한 점을 생각하면 안나를 맡은 성우 중에는 꽤 어리고 경력도 짧은 편이지만, 디즈니 더빙 퀄리티는 일본에서도 건재하기에 연기는 괜찮은 편이다. 이미지로는 박지윤의 안나에 비해 원작의 톰보이스러운 안나에 가깝다는 평. 일본에서도 대히트한 영화덕분에 사야카의 위상도 높아졌으며 항상 그녀를 따라다니던 '세이코의 딸'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기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6살 연하의 치과의사와 두 번째로 결혼하였으나 다시 이혼하고, 2012년 2살 연하의 대학 조교수와의 세번째 결혼을 발표. 같은 시대에 친분이 깊었던 아이돌 타하라 토시히코는 블로그에서 "다음번 결혼은 나랑 하자"고 밝혔다. 당신도 유부남이잖아 미국 드라마인 'BONES'에 일본인 저널리스트역으로 출연했고 2012년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작품인 타이라노 키요모리에서는 시라카와 법황의 애첩인 기온노뇨코역으로 출연하였다.
2014년 홍백가합전에서 첫 출장이었던 1980년이후로 영광스런 첫 오오토리(大トリ)[12]를 장식하게 되었다.
부른 곡은 본인의 작사곡이자 최대 히트곡인 'あなたに逢いたくて〜Missing You〜'이며 출연 시 47.5%라는 순간 최고 시청률로 1위를 기록했다. 동세대 활동했던 나카모리 아키나의 오랜만의 출연으로 80년대의 가희가 오랫만에 한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시청률이 뜨자 '세이코, 아키나에게 압승'이라는 둥의 헤드라인을 뽑아냈다. 역시 일본도 기레기 2015년 홍백가합전에서 두 번째 오오토리를 맡았다.
5 에피소드
- 데뷔 이전
- 데뷔 이전엔 핑크 레이디의 춤을 따라추며 지각을 자주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테니스부 소속으로 고교 시절엔 학교를 대표하는 '여신'으로 불렸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밝힌 오디션을 받게 된 경위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 3명과 들린 소바집에서 미스 세븐틴 응모 포스터가 붙어있는 걸 보고 다 함께 응모하였는데 친구 2명은 불합격하고 본인만 합격했다는 듯. 오디션을 받으러 왔을 때의 본인에 대해 선 뮤직 사장과 남성 스탭들은 시골에서 막 상경한 별다른 인상이 없는 모습에 흥미를 갖지않았으나 여성 스탭들이 맹렬히 지지하였기때문에 데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성스탭들의 선견지명데뷔 계기가 된 '미스 세븐틴'에 응모를 한 이유는 "너무 좋아하는 미키마우스를 볼수있으니까"(응모 상품이 미국 디즈니 랜드초대권이었음.)라는 이유였고 대회의 게스트 심사위원이 데뷔 전부터 동경하던 고 히로미였다는 사실에서였다고 한다. 그렇게 동경하던 사람과 교제 성공이라니.무서운 여자참고로 고 히로미와는 2000년에 화해하여 듀엣곡 <True love story>을 작업하고, 매우 다정하게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 데뷔 일화
- 데뷔곡인 <裸足の季節(맨발의 계절)>은 시세이도의 세안 용품 'EKUBO'('보조개'라는 의미)의 CM송으로 쓰였는데 세이코는 볼에 보조개가 생기지 못했기 때문에 광고 모델을 다른 탈렌트로 채용.(소속사의 사장인 아이자와 히데요시[13]는 세이코에게 비쥬얼적인 측면을 기대하지 않았기때문에 노래만 노출시키자는 생각으로 CF에 출연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노래가 알려지긴 했으나 지명도가 낮았기때문에 광고 모델과 함께 가진 사인회장에서 "저 앤 뭥미?"라며 자신에게 아무도 줄을 서지않았기에 분했었다고 나중에 회상하였다. 그러고 얼마 안가 세이코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치솟아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고 한다.
- 예명
- '마츠다 세이코'라는 예명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비화가 있다. 하나는 당시에 잘나가던 자동차 기업 마쓰다주식회사와 지금도 유명한 시계 브랜드 세이코를 본따 두 기업처럼 성공을 바라는 의미로 소속사 사장이 작명소에서 직접 받아온 이름이라는 것. 두번째는 맨 처음 결정된 예명이 '아라타 아키코'였으나,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서 데뷔 전에 출연한 드라마 <おだいじに>에서 본인의 배역명이었던 '마츠다 세이코' 쪽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두번째 설이 공식이다.
- 부릿코
- 의식하여 일부러 귀여운 행동을 하는 '부릿코'는 그녀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캐릭터지만 무대가 아닌 라디오에서는 털털하고 쿨한 면도 보였기 때문에 그러한 갭이 더욱 더 '부릿코' 취급하는데 일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을 때, 음악 방송에서 첫 1위를 했을 때 등 우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절대 눈물이 나오지 않는 모습이 부릿코로서의 이미지를 한층 더 강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잡지 등에서는 이러한 세이코를 "嘘泣き聖子(우소나키 세이코 - 거짓눈물 세이코)"라고 신랄하게 까기도 했다. 아이자와는 "팬들이 원하는 걸 즉각적으로 판단하여 그 자리에 맞는 분위기를 만드는 머리의 비상함과 프로 근성이 만든 '교묘한 자기연출'이 마츠다 세이코라는 가수를 만들었다"고 얘기하였다.
- 성형
- 84년 즈음부터 성형수술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 정도가 심해서 90년대 중반에는 성형 부작용으로 얼굴에서 진물이 나온다느니 하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 실제로 이때의 모습은 50대 중반을 향해가 2015년보다도 오히려 늙어 보인다. 니코니코 동화의 세이코 관련 동영상에서는 성형 이전까지의 영상엔 무한 찬양 코멘트가 달리지만 성형 후의 영상은 영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 성형이 자연 미모를 바꾼 특이한 케이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90년대 특유의 촌스러운 스타일링 때문에 외모가 매우 달라보이는 경우도 있으므로 일부 팬들은 성형을 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한다.
하지만 쌍수와 코수술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그리고 미모 취향의 문제일 뿐 못생겨진 건 결코 아니다.
- 음악성
- 전형적인 7080 아이돌의 음악으로. 밝고 화사한 목소리만으로 많은 팬을 끌어모으기 충분했다. 다만 30년이 넘는 활동 기간동안 그나물에 그밥인 노래가 많아 빨리 질린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데뷔 초기의 힘있고 스트레이트한 창법은 당시 활동했던 시기보단 후대에서 재평가되고 있고, 각종 뮤지션들의 역량이 집결된 정규 4집과 5집 앨범은 일본 팝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 그 외의 에피소드.
- - 현재는 세이코의 대표작이 된 'SWEET MEMORIES'지만 발매 초기에 CM으로 쓰였을 시엔 영어 가사 부분만 흘러나왔고 자막으로 <곡:마츠다 세이코>라는 표기도 안떴기때문에 "누가 부르는건가?"하는 질문이 속출했다. 그리고 발매 2개월뒤 음악 방송에서 처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게 됐다.
- - 80년대 초 전성기 시절 자이언트 바바와의 대담에서 "난 미토고몬(水戸黄門)밖에 안봐서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 - 천사가 가진 순수성을 좋아하여 콘서트에선 천사의 날개를 단 코스튬을 자주 입는다.
- - 콘서트 마지막은 꼭 '赤いスイートピー(붉은 스위트 피)'로 장식한다.
- - 전세계 K-1 경기장 프리패스권을 갖고 있다.
- - 인기 절정기였던 83년 오키나와 공연에서 갑자기 난입한 팬에게 구타를 당한 사건이 있다. 범인은 19세의 정신병을 가진 세이코 팬으로, 30cm의 쇠몽둥이로 3회 머리부근을 구타하여 그 자리에서 기절.[1]
영상에 나오지만 3대이상 이었고 플라스틱 파이프라고 전해진다.생방송으로 진행된 콘서트였는데, 세이코는 이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해 오랜 시간 오키나와에서 공연을 하지 못하다가 23년이 지난 2007년에 복귀 공연을 하였다. - - 1982년에 데뷔한 세이코쨩즈(聖子ちゃんず)란 3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이 있었다. 3명 모두 세이코쨩 컷을 한 게 특징. 마츠다 세이코 본인도 닮았다고 말했었다고.
사실 전혀 닮지 않았다데뷔 직후 멤버 한명이 은퇴하는 바람에 싱글 하나만 내고 사라진 그룹이다. - - 본명이 카마치 노리코<蒲池法子>로서, 자드의 사카이 이즈미(본명 카마치 사치코 <蒲池幸子>)와 친척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족보의 기록이 옳다면, 적어도 에도 시대부터 갈라진 먼 친척이라는 설이 다수설이나, 현행법으로서는 친연관계는 없는 셈. 우리나라로 치면 두 사람이 김해 김씨에 하위 계파까지 같은데 족보가 십수대 이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전혀 남남인 경우인 경우와 비슷하다.
- 2010년엔 일본 예능그룹 야지마 미용실과의 콜라보로 'アイドルみたいに歌わせて(아이돌처럼 노래해줘)'를 발매. 뮤비에서 47세라고는 믿기지않을 만큼의 컨셉(!)으로 역시 영원한 아이돌임을 상기시켜주었다. SMAPxSMAP, 뮤직페어 등에 출연해서 무대를 보여주기도 했다.
6 앨범 캐치프레이즈
珊瑚の香り、青い風 いま、聖子の季節 산호의 내음, 푸른 바람. 지금, 세이코의 계절 |
あの日あのとき刻みたい 그 날 그 시간을 새기고 싶어 |
扉をあけたら、もうひとりの私・・・聖子。 문을 열면 또 한 사람의 나... 세이코. |
こころの香り 聖子,19のメッセージ・・・마음의 향기 세이코, 19세의 메시지 |
シュロの香り、南風、いま、ココナツ色の気分・・・聖子 |
종려나무의 내음,남쪽 바람, 지금 코코넛색의 기분...세이코 |
こころはバロックカラー、いま、あなたとティータイム |
마음은 바로크 컬러, 지금 그대와 티타임 |
セイシェルの色にそまり、いまこころはあなたへのシンフォニー、聖子 |
세이셸 색에 물들여져, 지금 마음은 당신의 심포니, 세이코 |
自由な光をあびて、いま鼓動はあなたへSINGING・・・聖子 |
자유로운 빛을 쬐면서, 지금 고동은 그대에게로 SINGING...세이코 |
四次元の光に輝き聖子、神秘的 사차원의 빛으로 빛나는 세이코, 신비적 |
ガラスにきらめく摩天楼 恋は偶然、いまあなたと朝食を・・・聖子。 |
유리에 반짝이는 마천루 사랑은 우연히, 지금 그대와 아침식사를...세이코 |
九月の波は高い・・・熱い夏の風よ Take Me 聖子 |
9월의 파도는 높다...뜨거운 여름의 바다여 Take Me 세이코 |
聖子からSEIKOへ、いま舞台は新次元。세이코에서 SEIKO로, 지금 무대는 새로운 차원 |
水晶のせせらぎに、あなたへの熱い気持ちを浮かべて・・・聖子。 |
수정의 시냇물에 그대에게로의 뜨거운 마음을 띄우고...세이코 |
ようこそ、ストロベリー・ランドへ。心の扉を開いて、今、あなたを未知の国へ誘います。 |
어서오세요, 스트로베리 랜드에. 마음의 문을 열고 지금, 당신을 미지의 나라로 안내합니다 |
あなたの心の中の透明な空へ旅したい・・・。 |
당신 마음 속의 투명한 하늘로 여행하고 싶어... |
7 싱글 목록
1 裸足の季節(맨발의 계절) 1980年4月 12위
2 青い珊瑚礁(푸른 산호초) 1980年7月 2위
3 風は秋色(바람은 가을색)/Eighteen 1980年10月 1위
4 チェリーブラッサム(체리 블로섬) 1981年1月 1위
5 夏の扉(여름의 문) 1981年4月 1위
6 白いパラソル(하얀 파라솔) 1981年7月 1위
7 風立ちぬ(바람이 부는) 1981年10月1위
8 赤いスイートピー(붉은 스위트 피) 1982年1月 1위
9 渚のバルコニー(물가의 발코니) 1982年4月 1위
10 小麦色のマーメイド(연갈색의 머메이드) 1982年7月 1위
11 野ばらのエチュード(들장미의 에튀드) 1982年10月 1위
12 秘密の花園(비밀의 화원) 1983年2月 1위
13 天国のキッス(천국의 키스) 1983年4月 1위
14 ガラスの林檎(유리의 사과)/SWEET MEMORIES 1983年8月 1위
15 瞳はダイアモンド(눈동자는 다이아몬드)/蒼いフォトグラフ(푸른 포토그래프) 1983年10月 1위
16 Rock'n Rouge 1984年2月 1위
17 時間の国のアリス(시간 나라의 앨리스)/夏服のイヴ(여름옷의 이브) 1984年5月 1위
18 ピンクのモーツァルト(핑크 모차르트) 1984年8月 1위
19 ハートのイアリング(하트의 이어링) 1984年11月 1위
20 天使のウィンク(천사의 윙크) 1985年1月 1위
21 ボーイの季節(보이의 계절) 1985年5月 1위
22 DANCING SHOES(SEIKO명의) 1985年6月 1위
23 Strawberry Time 1987年4月 1위
24 Pearl-White Eve 1987年11月 1위
25 Marrakech〜マラケッシュ〜(마라켓쉬) 1988年4月 1위
26 旅立ちはフリージア(여행은 프리지아) 1988年9月 1위
27 Precious Heart 1989年11月 2위
28 All the way to Heaven(SEIKO명의・영국 한정 발매) 1990年4月末
29 THE RIGHT COMBINATION(Seiko and Donnie Wahlberg명의) 1990年7月 28위
30 who's that boy(SEIKO명의・미국 한정 발매) 1990年10月
31 We Are Love 1990年11月 16위
32 きっと、また逢える…(분명 다시 만날 수 있어...) 1992年2月 4위
33 あなたのすべてになりたい(당신의 모든 것이 되고싶어)/Shinin' Shinin' 1992年8月 31위
34 大切なあなた(소중한 그대) 1993年4月 7위
35 A Touch of Destiny 1993年5月 51위
36 かこわれて、愛jing(갇혀있는 애jing)(MATSUYAKK명의) 1993年11月 63위
37 もう一度、初めから(다시 한번, 처음부터) 1994年5月 22위
38 輝いた季節へ旅立とう(빛나던 계절로 떠나자) 1994年12月 12위
39 素敵にOnce Again(멋지게 Once Again) 1995年4月 22위
40 あなたに逢いたくて(당신을 만나고싶어서)〜Missing You〜/明日へと駆け出してゆこう(내일로 달려나가자 - TV애니메이션 괴도 세인트 테일 2기 오프닝곡) 1996年4月 1위
41 Let's Talk About It(SEIKO명의・일본미발매) 1996年4月
42 I'll Be There For You(마츠다 세이코 with Robbie Nevil명의) 1996年5月 35위
43 さよならの瞬間(이별의 순간) 1996年11月 5위
44 Good For You(SEIKO명의・일본미발매) 1996年12月
45 私だけの天使(나만의 천사)〜Angel〜/あなたのその胸に(당신의 그 가슴에) 1997年4月 5위
46 Gone with the rain 1997年12月3日 28위
47 恋する想い(사랑하는 마음)〜Fall in love〜 1998年6月 34위
48 Touch the LOVE 1998年11月 66위
49 哀しみのボート(슬픔의 보트) 1999年10月 27위
50 20th Party 2000年5月 17위
51 上海ラヴソング(상하이 러브송) 2000年6月 37위
52 Unseasonable Shore 2000年6月 35위
53 True Love Story/さよならのKISSを忘れない(작별의 키스를 잊지않아)(고 히로미・마츠다 세이코명의) 2000年9月 7위
54 The Sound of Fire 2000年11月 46위
55 あなたしか見えない(그대밖에 보이지않아) 2001年6月 30위
56 愛♡愛(사랑♡사랑)〜100%♥Pure Love〜 2001年11月 49위
57 素敵な明日(멋진 내일) 2002年6月 29위
58 all to you(SEIKO명의・일본미발매) 2002年 19위(Billboard Dance Chart)
59 just for tonight(SEIKO명의・일본미발매) 2002年12月 15위(Billboard Dance Chart)
60 Call me 2003年6月 17位
61 逢いたい(만나고싶어) 2004年5月26日 12위
62 Smile on me(SEIKO with Crazy.T명의) 2004年7月 18위
63 永遠さえ感じた夜(영원마저 느낀 밤) 2005年2月 34위
64 I'll fall in love 2005年8月 30위
65 しあわせな気持ち(행복한 기분) 2005年9月 28위
66 bless you 2006年4月26日 29위
67 WE ARE.(PawPaw명의) 2006年5月
68 涙がただこぼれるだけ(그저 눈물이 흐를 뿐) 2007年5月23日 38위
69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마츠다 세이코×후지이 타카시) 2007年8月1日 36위
70 クリスマスの夜(크리스마스의 밤) 2007年11月21日 34위
71 花びら舞う季節に(꽃잎 흩날리는는 계절에) 2008年3月19日 32위
72 Love is all 2008年6月25日 32위
73 あの輝いた季節(그 빛나던 계절) 2008年10月22日 30위
74 アイドルみたいに歌わせて(아이돌처럼 노래해줘)(야지마 미용실 feat.프린세스 세이코) 2010年4月21日 16위
75 いくつの夜明けを数えたら(수많은 새벽을 세어보면) 2010年5月5日 12위
76 特別な恋人(특별한 연인) 2011年11月23日 14위
77 涙のしずく(눈물의 물방울) 2012年5月2日 20위
78 LuLu!! 2013年5月22日 23위
79 夢がさめて(꿈에서 깨어나)(마츠다 세이코 & 크리스 하트 명의) 2013年10月30日 14위
80 I Love You ~あなたの微笑みに(당신의 미소로)~ 2014年5月21日 27위
- ↑ 마츠다 세이코 본인이 세운 개인 사무소로 대표는 본인의 어머니이다.
- ↑ 2013.03.29 뮤직 스테이션에서 인용.
- ↑ 처녀적 성은 카마치. 이혼을 했으니 카마치 노리코가 되어야 옳으나, 딸의 원만한 학교 생활을 위해 표기와 읽는 법만 동일한 칸다라는 호적을 새로 만들어 들어갔다. 현재는 재혼하였기 때문에 본명이 불명이다.
- ↑ 2015년 8월 뮤직스테이션에 발표에 의하면 2254만장을 기록했다고 한다.
- ↑ 당시 대항마라고 할만한 유일한 인물로는 나카모리 아키나가 있다. 두 사람의 음악적 스타일이 판이하게 달라서 더욱 부각되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일본 연예계의 대표적인 라이벌로 손꼽힌다. 어쨌든 이 둘은 80년대 아이돌의 대명사로 당시 아이돌들 중 최고의 판매량(2900만장, 2500만장)을 자랑한다.
- ↑ 세이코의 후계자 격인 인물이 같은 소속사 후배이기도 했던 오카다 유키코였는데 그녀는 나중에... 자세한건 항목 참고
- ↑ 마크로스 프론티어ost 성간비행의 작사가
- ↑ 마츠다 세이코와는 렛슨 동기로 2살 연하였다. 선뮤직 측은 야마구치 모모에와 고 히로미를 담당했던 프로듀서와 히트 메이커 미나미 코우세츠라는 황금 작곡진을 배경으로 두고 데뷔 프로모션까지 찍는 등만발의 준비를 했으나 데뷔곡으로 쓰인 외국산 샴푸 CM에서 유해한 성분이 검출되어 방송이 중지되는 등 불운의 연속이 계속 되어 자연스레 밀려났다고 한다.
- ↑ 50~80년대의 전설적인 영화배우. 현재는 사망. 망언 정치인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의 친동생이다!
- ↑ 마츠다 세이코와 실제로 만나서 감동받아 울었다고 한다;
- ↑ 정확히 말하면 린 민메이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앨범인 "Miss D.J"에서
- ↑ 각 팀의 마지막(トリ) 무대 중에서도 모든 가수들의 제일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을 부르는 명칭
- ↑ 세이코를 비롯해서 오카다 유키코, 사카이 노리코등을 배출하여 80년대 아이돌계를 휩쓴 인물. 2013년에 사망하여 장례식장에서 세이코가 눈물을 보였다.
- ↑ 데뷔 35주년 기념 싱글. 마츠토야 유미의 작곡과 마츠모토 타카시의 작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