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도성도(18세기 제작 추정)

한양도성 8대문 및 보신각
창의문
북문
혜화문

서대문
지문
동대문
소의문
남대문
광희문

1 개요

서울특별시의 주위를 둘러싼 곽과 문을 일컫는 말이다.

1396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후 궁궐과 도시를 방위하기 위해 지은 도성이다. 흔히 한양도성하면 성벽만을 생각하는데 숭례문, 흥인지문을 비롯한 서울 4대문과 그외 문도 한양도성에 포함된다.

'서울 성곽'이라는 이름도 이 도성의 한때 공식 명칭이었지만 2011년 7월 사적의 통일된 지정명칭 부여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서울 성곽이라는 단어는 통용되고 있으며 문화재 안내판에도 서울 성곽이라고 표기된 곳이 많으며 서울시가 정한 도성 순례길의 명칭도 '서울 성곽길'이다.

2 역사

2.1 축성

1395년 수도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이성계는 도성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를 위해 도성 건축 담당 기구인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했다.

성이 낙성된 후에는 배수지(排水地)로 5칸 수문(五間水門)·2칸 수문 등을 만드는 한편 성곽의 관문(關門)으로 숙청 이 좋아하신다는[1](肅淸門 : 북대문)·흥인문(興仁門 : 동대문)·돈의문(敦義門 : 서대문)·숭례문(崇禮門 : 남대문)의 4대문과 혜화문(惠化門 : 동소문)·광희문(光熙門 : 시구문)·창의문(彰義門)·소덕문(昭德門 : 서소문) 4소문을 합해 8문을 완성하였다.[2]

2.2 시련

임진왜란 당시 성곽의 일부가 부서지고 광해군이 복원 작업을 진행하였지만 이후의 병자호란때 청나라와의 조약 중 성곽을 복원도 추가로 쌓지도 하지 말라는 조약으로 그냥 방치되다가 1704년(숙종 30년) 이조판서 이유(李儒)의 주장으로 5군문(五軍門)의 장정을 동원하여 1711년(숙종 37)까지 수축하였으며, 1743년(영조 19년)에 다시 고쳤다. 그밖에도 효종·현종·영조·순조 시대에 부분적인 개수를 행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서울의 성곽은 대체로 태조·세종·순조 때의 것이다. 이때까지 만 해도 한양도성은 상당히 90%가량 복원되었으나 일제강점기6.25 전쟁으로 도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2.3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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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2012년 자료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국방 유적 보존 및 정비 지시에 따라 구자춘 서울특별시장이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1975년 광희문 문루 복원을 시작으로 훼손된 체성과 여장 복원, 주변 가옥 매입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75년부터 삼청지구(창의문~숙정문) 복원에 이어 2012년 9월까지 진행된 인왕산 정상구간까지 총 길이 18,627m 중 69%인 12,771m의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과 함께 숭례문 남동측 광장구간 성벽복원까지 마무리 됐으며 남산 구간, 시장공관 구간, 동대문 성곽공원 구간이 추가로 복원될 예정이다. 현재 2013년 총길이 18,627m 중 약 70% 가량이 복원 완료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성곽이 건물에 가려져 있거나 아직도 땅속에 파묻혀 있다. 그리고 숭례문같은 대문에 비해 성곽은 인지도가 많이 떨어져 일반인들의 관심도 필요할듯 하다.

3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2012년 11월 23일 서울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오르면 1년 뒤부터 등재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유네스코 권고 기준에 맞는 보존 관리를 하기 위해 올해 한양도성 전담부서를 신설한 데 이어 내년에 한양도성 연결 사업 등에 71억 원 가량을 우선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2013년부터는 연차별로 총서와 자료집을 발간해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초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만약 서울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성곽은 물론 그 외 숭례문,흥인지문,숙정문같은 서울 4대문도 세계유산에 등재될수 있다.[3] 서울시는 체계적인 한양도성 관리를 위해 시 내부에 전담조직인 한양도성도감을 올해 하반기에 새로 만들고 책임자로 ‘도제조’[4]를 두기로 했다. 책임자는 4급 공무원이 맡게 될 예정으로 규모는 시 조직의 1개 과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 공간을 활용해 한양도성 박물관과 연구소도 설립하기로 했다.

4 순성(巡城)놀이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면서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는 여행을 순성(巡城)놀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당시 한성부 사람들의 여가 활동 중 하나였다. 현대까지 풍경이 잘 남아있는 인왕산-북악산 지역은 물론이고 낙산, 목멱산(남산)등지 또한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명승지 중 하나였다. 현대에도 성곽을 복원한 이후 순성하며 여행하는 등산객들이 많다. 북대문(숙정문)이 있는 북악산을 제외한 구간은 자유롭게 탐방이 가능하지만 북악산을 입산하려면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 김신조 사건 이후 민간인에게 통제된 군사시설을 민간인에게 개방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사진이나 사본 인정은 안되며 꼭 신분증 원본을 소지한 사람만 입산이 가능하니 탐방할 위키러들은 유의하기 바란다.
  1. 또는 숙정문(肅靖門)
  2. 위키백과
  3. 돈의문은 아직 복원 안됨
  4. 실지 제조, 도제조는 대게 판서, 정승급의 대신들이 겸직했다. 그리고 도제조는 정일품 관료들의 명예직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우측 링크를 참조. # 대장금 등 드라마에 나온 개념을 차용한 티가 팍팍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