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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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or of Seoul

1 개요

대한민국수도, 서울특별시시장. 서울시립대학교의 학교운영위원장.

서울특별시의 규모 만큼이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과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크며, 정치적 비중도 아주 높다. 다른 광역자치단체 수장이 차관급으로 대우받는데 비하여, 유일하게 서울특별시장은 장관급으로 대우받는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비슷했는데, 관찰사(지금의 도지사) 등은 참판(차관)급(종2품) 대우를 받았지만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은 판서(장관)급(정2품) 대우를 받았다.

임명직 시장 시절부터 현행 선출직 시장까지 국무회의에도 참석이 가능하며, 발언권도 있다. 한국의 국무회의는 대통령 중심제 특성상 서울시장을 제외한 참석자 전원이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 때문에,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의견이 나오는 경우는 야당 출신 서울시장이 발언할 때를 제외하면 없다고 할 수 있다.

중앙정부의 회의에 참석할 정도면 이미 일개 지방정부의 수장을 훨씬 뛰어넘은 지위라고 볼 수 있는데, 단순 법적 권한이 아닌 정치적 비중으로 보자면 서울시장의 정치적 지위가 대통령 바로 다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국무회의 참석 여부는 서울시장 자율이라,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당적이 다르면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일례로 오세훈 전 시장의 경우 이명박 정권 출범 후에는 계속 국무회의에 참석했으며, 노무현 정권 시기에는 이명박 시장이 정권 출범 직후, 오세훈 시장이 취임 직후 인사차 참석한 게 전부였고,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참석율은 10%대로 저조하다.

여하간 정치적 위치와 상징성 때문에 서울특별시장은 사실상 차기 대권주자로 보내기에 딱 좋은 위치이어서 뭇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정치에 관심 많은 전국의 시민들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도 다음 차기 대선후보를 점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명 서울시장→대선후보→대통령 테크. 이 테크가 아니어도 전·현직 시장이 가지는 정치적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전/현직 서울특별시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정치계에선 당연한 일로 자리를 잡았다. 아래 주요 서울특별시장만 봐도 한국 정치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윤보선, 이명박이 서울특별시장을 지낸 뒤에 대통령이 되었고, 허정고건은 대통령 권한 집무대행을 맡았다.

조순의 경우 당선된 지 2일 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면서, 전임시장(최병렬)의 퇴임으로 인해 취임을 하자마자 사고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살피고 첫 임무부터 무겁게 출발했다. 그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전임시장(이원종)의 경질로 후임시장에 취임했던 우명규도 마찬가지로 취임을 하자마자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그러나 성수대교 건설 당시 서울시 건설부시장으로 실무 총책임자였다는 게 밝혀져 근 열흘만에 자진사퇴하고 최병렬이 시장으로 임명된다.

2 주요 서울특별시장

  • 윤보선 : 제2대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다. 뒷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지만...
  • 이기붕 : 제3대, 제4대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다. 뒷날 대한민국 부통령이 되지만...
  • 허정 : 제8대 서울특별시장. 뒷날 대통령 권한 집무대행을 맡았다.
  • 윤치영
  • 김현옥 : 제14대 서울특별시장. 불도저 시장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이명박의 원조 파리의 오스만시장에 버금가는 서울 대개조 사업을 벌였다. 60년대 말 서울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판자집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개발정책을 주도했고, 서울 지하철의 기본계획도 이 사람이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를 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너무 개발정책에만 목을 맨 나머지 대형 참사를 불러일으켰다.
  • 양택식 : 제15대 시장. 두더지 시장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이 사람 임기에 그 악명 높은 광주대단지사건이 터졌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의 공사를 총지휘했던 시장인데 하필이면 1호선 완공 당일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이 터지면서 사임했다.
  • 구자춘 : 제16대 시장. 전임자가 만든 서울 지하철 계획을 자기 입맛에 맞게(...) 적절하게 변형하여 지금의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서울시내 구간을 만들어냈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만에 만들었다는 레전설이 나름 유명. 별명은 황야의 무법자였다. 훗날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 박영수 : 제18대 시장. 임기 중인 1982년 4월 서울 지하철 3호선 무악재 구간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경질되었다.
  • 염보현 : 제20대 시장.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 출신이다. 재임 기간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했고, 한강종합개발을 추진했으며,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개장, 목동신시가지 건설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경희궁, 보라매, 종묘공원, 석촌호수 공원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도 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은 실질적으로 염보현의 공적이라 보는 사람이 많다. 부임 중에 이규동 대한노인회장 등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과 연루된 비리로 인해 1988년 구속되었다.
  • 고건 : 제22대(임명), 제31대(민선)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다. 임명과 민선으로 2번 시장을 한 특이한 사례. 뒷날 국무총리로 재직할 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중에 대통령 권한 집무대행을 맡았다.
  • 박세직 : 제23대 시장. 1990년 12월 임명되었으나 두 달도 못 되어 수서 비리 사건으로 경질되었다.
  • 최병렬 : 제29대 서울특별시장. 마지막 관선시장.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시작해 퇴임 전날의 삼풍백화점으로 끝나는 안습한 임기를 보냈다. 즉 '사고로 시작해서 사고로 끝났다'고 한다. '최틀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사고 현장에서 너무 기가막혀 눈물만 흘렸다고. 참고로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시에 탄핵을 주도했던 그 한나라당 대표 맞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이 된 한나라당 후보로 고건에게 맞서 패배.
  • 조순 : 제30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초대 시장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최초의 민선 시장은 제2공화국 때 제11대 김상돈 시장이다. 공교롭게도 시장에 당선된지 2일 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이 사고를 시작으로 무거운 첫 임무를 시작하였다. 참고로 삼풍백화점 사고 때문에 취임식도 대폭 축소하여 간소하게 취임식을 치뤘다가 바로 사고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살피는 일화가 있었다.
  • 이명박 : 제32대 서울특별시장. 재임기간 동안 청계천 복원, 서울광장 개장, 서울 대중교통 체계를 바꾸었다. 이후 17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 오세훈 : 제33대, 제34대 서울특별시장. 민선으로는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시장이다. 반듯한 이미지와 준수한 외모로,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꼽혔지만
  • 박원순 : 제35대, 제36대 서울특별시장. 바로 윗줄의 오세훈의 사퇴로 열린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그 이후 재선에 성공하였다. 2011년 10월에 취임하여 2014년 재선에 성공하였으므로 현 임기를 마치면 역대 서울시장 중 최장기 재임 시장이 된다.

3 역대 서울특별시장

서울특별시장이 선출직으로 완전히 전환되기 전인 1995년 이전까지는 재임기간이 채 1년을 넘기지 못한 시장이 10명이나 있었다.

선출직 전환 이후에도 1990년대 말까지는 여당 출신의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야당 출신의 인물이 내리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의 이명박, 오세훈(이상 한나라당)[1], 보수정당 재집권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박원순이 여기에 해당된다.

역대 시장의 사진과 주요 업적에 대해서는 서울시 홈페이지의 이 문서를 볼 것.

대수이름당적[2]임기시작임기종료재임기간비고
임명직
01대김형민 (金炯敏)[3]1946.9.281948.12.142년 78일
02대윤보선 (尹潽善)1948.12.151949.6.5172일
03대이기붕 (李起鵬)1949.6.61949.8.1469일
04대1949.8.151951.5.81년 266일
05대김태선 (金泰善)1951.6.271952.7.241년 27일
06대1952.8.291956.12.134년 107일
07대고재봉 (高在鳳)1956.7.61957.12.131년 160일
08대허정 (許政)1957.12.141959.6.111년 179일
09대임흥순 (任興淳)1959.6.121960.4.30323일
10대장기영 (張基永)1960.5.21960.12.30242일
선출직[4]
11대김상돈 (金相敦)[5]민주당1960.12.301961.5.18139일
임명직
12대윤태일 (尹泰日)1961.5.201963.12.162년 210일
13대윤치영 (尹致暎)1963.12.171966.3.302년 104일
14대김현옥 (金玄玉)[6]1966.3.311970.4.154년 15일
15대양택식 (梁鐸植)1970.4.161974.9.14년 139일임명직 시장 중 최장기간 재임.[7]
16대구자춘 (具滋春)1974.9.21978.12.214년 111일
17대정상천 (鄭相千)1978.12.221980.9.11년 254일
18대박영수 (朴英秀)1980.9.21982.4.271년 237일
19대김성배 (金聖培)1982.4.281983.10.141년 169일
20대염보현 (廉普鉉)[8]1983.10.151987.12.294년 76일
21대김용래 (金庸來)1987.12.301988.12.4340일
22대고건 (高建)1988.12.51990.12.262년 21일
23대박세직 (朴世直)1990.12.271991.2.1853일
24대이해원 (李海元)1991.2.191992.6.251년 127일
25대이상배 (李相培)1992.6.261993.2.25244일
26대김상철 (金尙哲)[9]1993.2.261993.3.47일역대 최단기간 재임
27대이원종 (李元鐘)[10]1993.3.81994.10.211년 227일
28대우명규 (禹命奎)[11]1994.10.221994.11.211일
29대최병렬 (崔炳烈)1994.11.31995.6.30239일
선출직
30대조순 (趙淳)민주당1995.7.11997.9.92년 71일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 중도 사퇴.
직무대리강덕기 (姜德基)1997.9.101998.6.30293일
31대고건 (高建)새정치국민회의1998.7.12002.6.304년
32대이명박 (李明博)[12]한나라당2002.7.12006.6.304년민선 서울특별시장 출신 첫 대통령[13]
33대오세훈 (吳世勳)한나라당2006.7.12010.6.304년최초의 재선 시장
34대한나라당2010.7.12011.8.261년 56일무상급식 전면확대 논란 당시 투표율이 33.3%에 못 미치자 사퇴했다.
권한대행권영규[14] (權寧奎)2011.8.272011.10.2660일
35대박원순 (朴元淳)무소속[15]2011.10.272014.6.302년 247일사상 첫 온라인 취임식
36대새정치민주연합2014.7.1(현직)(현직)
  1. 단, 오세훈은 2010년 재선 도전 당시에는 여당 신분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 지방선거 당선 당시
  3. 해방 이후 초대 서울시장. 서울(특별자유시)이라는 명칭을 정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초창기에는 한성부윤이었다... 이후 곧 '서울시장'으로 개칭되었다.
  4. 장면 내각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선거로 서울시장을 선출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다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서울시장은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대통령 임명직으로 회귀했다.
  5. 4.19 혁명으로 장면 내각정부가 들어서면서 선거를 통해 최초의 민선시장이 되었다. 날짜를 보면 예상되지만, 이듬해 일어난 5.16 정변으로 인해 임기를 반 년도 못 채우고 경질된다.
  6. 박정희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으로 서울시장에 임명되어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서울 대개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7. 그러나 육영수 저격 사건 직후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8.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의 주역. 재임기간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하였다.
  9. 당시 매우 유명했던 인권변호사 출신에 40대라는 젊은 나이로 참신한 이미지 까지 갖추고 있어, 당시 최초의 민주세력 정부였던 김영삼 정권의 주요 인사로 내세울 만했다. 하지만 시장 취임 후 곧바로 서울근교에 위치한 수려한 본인 소유의 전원주택이 그린벨트를 무단 훼손해서 건축된 사실이 언론보도로 드러남으로써 1주일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여담으로 노태우 정권 출범 후에는 보수세력으로 변신하였다.
  10.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난 그날 오후 7시에 문책성으로 경질되었다. 후에 민선 충북도지사를 지냈다.
  11. 경북도지사를 하던 중에 이원종 시장의 경질로 급히 신임 시장에 임명되었지만 11일만에 자진사퇴했다.
  12. 임기만료로 퇴임 직후 바로 대선에 뛰어들어 당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13. 임명직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으로는 2대 시장인 윤보선이 있다.
  14. 당시 행정 1 부시장.
  15. 그러나 사실상 야권의 단일후보였다.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후보를 꺾었고 시장 취임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