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지문

대한민국의 보물
1호
서울 흥인지문
(서울 興仁之門)
2호
옛 보신각 동종
(舊普信閣 銅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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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의 흥인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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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의 흥인지문. 앞에 노면전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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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흥인지문

한양도성 8대문 및 보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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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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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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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

1 개요

대한민국의 보물
명칭서울 흥인지문 (서울 興仁之門)
번호1호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88
관리자종로구
건축시기조선시대 1396년
지정일1963년 1월 21일

興仁之門. 서울 성곽의 동쪽 문. 일명 동대문이다. 숭례문과 함께 서울 성곽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며, 2008년 숭례문이 불타면서 사대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그대로 남아있는 문이 되었다. 조선 태조 5년(1396)에 처음 지어졌으며, 이후 단종 1년(1453)과 고종 6년(1869)에 고쳐 지어서 현재의 모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2 특징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식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조선 초기의 양식인 숭례문과는 다르게 흥인지문의 누각은 조선 후기의 양식이다. 석축 역시 숭례문에 비하면 보다 실전적으로, 반달형의 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이유인 즉, 흥인지문이 경복궁에서 볼 때 좌청룡으로 동쪽에 있는데, 경복궁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주산 현무봉인 북악산과 우백호인 인왕산 그리고 안산인 남산이 높고 큰 것에 비하여 좌청룡인 낙산은 낮고 약하기 때문에, 한양은 동쪽이 약해 동쪽 방향에 있는 외적의 침입을 많이 받는다고 보았다. 이 약한 기를 보충해주기 위해서 군사적 목적이 아닌 풍수적 목적에 의해서 옹성을 쌓은 것이다.

또한, 대문과 소문을 막론하고 서울 성곽에 존재하는 다른 문의 명칭은 세 글자로 되어 있지만(숭례문, 돈의문, 숙정문, 홍지문, 동소문 등) 특이하게 이 흥인지문만 네 글자와 정사각형 현판으로 되어있다. 이는 한양 동쪽 다른 삼면에 비해 물이 흘러나가므로 전체적으로 토대가 우묵하게 낮아 지기가 약하다는 이유로 그 기운을 북돋는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넉 자로 지었던 것이다. 동대문 바로 옆에 있던 개천(청계천의 옛 이름)이 흘러나가는 곳 이름이 오간수문, 혹은 오간수구인 것도 같은 이치.

3 이모저모

원래 흥인지문은 1943년 경성부에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7개 구인 종로구,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성동구, 영등포구가 설치될 당시 동대문구 관할이었다. 이후 1975년 동대문구 관할이었던 숭인동, 창신동(흥인지문 바깥 지역) 일대가 종로구에 편입되면서 동대문 역시 종로구 관할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이 때문에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유명세나 중요도에 비하면 국보가 아닌 보물 1호라는 점이 좀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나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문화재 당국에서 숭례문을 조선보물 1호, 흥인지문을 2호로 지정했던 데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문화재가 소중한 줄 알면 돈의문도 철거하지 말았어야지.. 광복 이후 1962년 우리 정부에서 문화재 보호체계를 만들고 국보와 보물을 지정할 때 일본 관리체계를 벤치마킹하면서 굳어진 듯하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저러한 생각을 할 수도 있는 듯.

2011년 7월 중부지방을 강타한 호우로 인해 지붕의 기왓장과 내림마루 일부가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서울 성곽 복원의 일부로 낙산의 서울 성곽과 흥인지문을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근데 종로왕산로의 교통혼잡 헬게이트는 어쩔건가염 복원공사를 처음 시작할 때 개신교 측과 마찰이 있었는데, 성곽 바로 앞에 있는 교회를 철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교단에서는 1892년 처음 교회를 세운 이후 100여년이 지나서 근대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조사 결과 남아 있는 교회 건물은 1973년에 신축한 일반 건물로 역사적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철거한 후 성곽 복원 공사를 진행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기운다는 전설이 있다. 광해군 말년에 북서쪽으로 기울었다던가, 임오군란 때 남동쪽으로 기울었다던가...
(물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된다. 단순한 설)

정치인 고흥문(高興門. 1921년~1998년)의 본명인 고흥문과 호인 인지(仁之)는 흥인지문 태몽을 꾼 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