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피 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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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っぴいえんど

  • 영어 발음대로 한다면 해피 엔드가 돼야 하나, 밴드 명에도 굉장히 큰 의의가 있기 때문에 핫피 엔도로 적습니다.

1 개요

일본 포크 그룹. 1970년 결성되었다. 원래 1969년 에이프릴 풀에서 활동하던 마츠모토 타카시, 호소노 하루오미가 떨어져 나와 오오타키 에이치와 스즈키 시게루를 끌여들어 만든 밴드다. 멤버는 아니였지만 에이프릴 풀 멤버였던 코사카 츄도 백밴드로 도움을 줬다.

다만 워낙 멤버 네 명이 걸출한 인물들이였다니 결국엔 음악 노선 차이로 분쟁이 발생해 4년 정도로 단명했다.

일본 내에서야 전설이였으니 두말할것도 없지만 해외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편이다. 알려진 게 2003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영화 OST에 실리면서부터니 굉장히 늦게 알려진 셈이다. 그래도 일본 록을 심도있게 파게 되면 반드시 나오는 이름인지라 알게 되는 편이다.

2 일본 록의 시작이자 대중음악의 중심이 되게 한 산파

일본 록은 여기서 시작되었다해도 무방할 정도로, 일본 대중 음악사에 큰 영향을 주었던 밴드였다. 이 밴드 없었다면 LOUDNESSBOØWY든 미셸 건 엘르가든이든 필로우즈든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며, 우타다 히카루범프 오브 치킨이나 심지어 사운드 호라이즌도 없었다.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의 들국화 (혹은 신중현), 영국인의 비틀즈 같은 위치에 있는 국민 밴드.[1] 사실 대외적 지명도에서는 사잔 올 스타즈에 밀리지만... 하지만 핫피 엔도가 없었다면 사잔 올 스타즈가 데뷔할 토양이 확보되지 않았을 것이고, 반대로 후배 밴드 사잔 올 스타즈가 없었다면 핫피 엔도가 개척한 일본 록이 일본 대중음악의 대들보로 굳건해지는 과정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3 록 음악을 자국의 언어로 녹여내는 도전

한국의 미8군 출신 정도 되는 GS사운드는 일본 전통 엔카 필 멜로디와 영국 록을 결합 시킨듯한 사운드로 일본 초기 록을 들려줬고 인기도 많았다. 하지만 이들의 치명적인 약점은 일본 고유의 정서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즉 자국어인 일본어로 록한다는 화두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국어로 록하기라는 화두는 GS사운드 이후 등장한 그룹에서도 이어졌는데, 플라워 트래블링 밴드 같은 밴드는 이 문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아예 가사가 무의미한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나아갔고 그래서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반면 핫피 엔도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했다.

이런 문제 의식은 밴드 명에서도 그대로 드러는데, 발음해보면 알겠지만 Happy End의 일본어 음차 표기다. 하지만 일본어 대부분이 영어 표기를 카타카나로 표기하는데 비해(즉 저 표기는 ハッピーエンド가 되어야 한다.) 이들은 의식적으로 일본어 고유어 표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히라가나로 표기했다. 즉 영어 단어를 우리의 언어로 표기하는 것처럼, 외국의 록에 우리의 정신을 담아내겠다라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정말 일본 고유의 향취가 느껴지는 따스한 포크 록' 정도 되겠다. 그렇다고 듣기 거북할 정도로 왜색이 강하다는 것은 아니고 대표 앨범인 風街ろまん(바람 거리의 로망)는 은은한 동양 특유의 정서가 담겨 있는 훌륭한 포크 앨범이다. 외국인들에게도 지지를 받았을 정도.

4 기타

음악적으로 페어포트 컨벤션이나 버즈[2], 버팔로 스프링필드, 리틀 피트, 모비 그레이프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는 편이다. 본인들 말로는 잭스[3] (특히 '비어있는 세계')와 미야자와 겐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포크 크루세이더즈 같은 요조한 포크 영향력도 강한 편이다.

그래도 밴드 멤버 중 하나였던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가 나중에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를 결성하면서 해외에서도 성공하게 된다. 그 외에도 일본 거물 밴드에게는 이들의 손길이 구석구석 미쳐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해체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4] 참고로 멤버였던 호소노 하루오미는 일본 유명 관료의 자손이라 한다. 호소노 마사부미라는 사람인데 타이타닉 호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흠좀무. 이후 YMO로 대박을 치고 솔로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멤버 중 한 사람인 기타리스트 스즈키 시게루의 마약 투여 혐의로 인해 포니 캐년/킹 레코드 등에서 음반 판매를 중지하였다. 그 쪽에서는 이게 관행이라는듯. 물론 유료 다운로드도 불가. 좀 무섭다. 솔로 앨범인 BANDWAGON은 명반으로 평가받으니 들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또다른 멤버인 오오타키 에이치는 1980년대까지 호소노 못지 않게 명반들을 내놓았으나 EACH TIME을 발표한 1980년대 중반에 활동중지한 뒤 간간히 라디오에 얼굴을 내밀다가 2013년 12월 급사했다.

마츠모토 타카시는 세션 활동을 이어가며 작사가로도 활동했는데 요새 유명한 작사 작품이라면 성간비행이 있겠다.

핫피 엔도와 함께 이 도전을 했던 록 뮤지션이 한명 있는데 RCサクセション(RC석세션)의 보컬이였던 忌野清志郎(이마와노 키요시로)였다. 이 뮤지션 또한 일본 록의 역사를 파고 들어가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이다. 핫피 엔도가 자국의 언어로 스며든 따스한 포크록을 지향했다면 RC석세션은 자국의 언어로 저항정신을 표출하는 방향성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둘 모두 후배 록 밴드들의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1. 셋다 각 국가의 굉장히 유명한 명반리스트 1위자리에 자신들의 앨범을 올려놓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2. Buzz가 아니라 밥 딜런 옹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미국 포크 밴드인 The Byrds다.
  3. 이쪽도 일본어 록을 선험적으로 실험했다는 평을 받는, 상당히 전설적인 밴드이나 다소 설익은 면이 있었기에 핫피 엔도처럼 전국적인 현상은 일으키지 못했다.
  4. 대표적으로 호소노 하루오미와 오오타키 에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