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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멤버 | ||
사카모토 류이치 | 호소노 하루오미 | 타카하시 유키히로 |
왼쪽부터 사카모토 류이치, 타카하시 유키히로, 호소노 하루오미.
イエロー・マジック・オーケストラ (Yellow Magic Orchestra)
일본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전설적인 그룹
내 인생 최대의 충격, 'YMO'그들은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
게임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이노 켄지[1]의 자서전 '게임'의 내용 中[2]
1 소개
일본의 3인조 신스팝 그룹. 일본 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룹으로, 줄여서 YMO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 록의 전설 핫피 엔도 멤버로 이전부터 명성을 떨치던 베이시스트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3]가 솔로 앨범 녹음 도중 만난 사디스틱 미카 밴드[4]멤버인 드러머 타카하시 유키히로(高橋幸宏)[5]와 훗날 마지막 황제의 OST로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으로 유명해진 키보디스트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와 합심해서 1978년 결성되었다. 5년 남짓 활동하고 1983년에 해산했다가[6] 1993년 깜짝 재결성 이후 2007년 본격적으로 재결성되었다. 실질적으로 3인이 모인 유닛인 현재의 Human Audio Sponge(HAS)와 과거의 YMO(Yellow Magic Orchestra)를 합쳐서 요새는 HASYMO라는 이름으로 다시 활동중. 유럽 투어의 기타 서포트로 코넬리우스로 알려진 전 플리퍼즈 기타의 한 축이자 시부야계의 중핵인 오야마다 케이고가 참여했다고 한다. 세상에나…
지금이야 사카모토 류이치가 대내외적으로 유명하지만, 나머지 두 멤버도 상당히 유명하다. 이 두 멤버의 커리어를 따라가기만 해도 일본 대중 음악을 거의 섭렵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스 팝(일렉트로닉 팝)이 주였으며,[7] 영미 신스 팝 밴드와 달리 동양풍의 독특한 분위기를 추구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뉴 로맨틱스 열풍을 타고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자국 내에서도 사잔 올 스타즈 수준의 국민 밴드 대접 받고 있다.
야마하나 코르그, 롤랜드 등 양질의 신시사이저를 만들어내는 일본 기업의 융성과,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던 버블 최전성기 일본의 경제 상황이 함께 만들어낸 일본 최초의 월드 슈퍼 스타. 일본이 지금처럼 전자음악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들의 공이 크다.
왜 저런 밴드가 당대 한국에선 나타나지 않았을까 안타깝지 아니할 수 없다. 전자음악이 태동할 시절 심성락 선생[8]의 '무그 경음악' 시리즈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고, 그 밖에 조용필뭐 결국 2013년 19집에서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하시긴 했으니이나 나미 같은 이들의 시도는 있었지만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당시 한국의 창작 환경은 엄혹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급격히 위축되어 있었고 게다가 한국은 유러피안 팝의 영향으로 이러한 경향의 음악은 다소 생소한 편이었다.[9] 결국 전자음 자체에서 나오는 뿅뿅거리는 소리가 뽕짝 전용 반주로 흡수되고 만다(...).[10] 가장 큰 문제는 당시 심각한 검열 때문에 무슨 음악을 발매하든 갖가지 이유로 검열의 벽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YMO가 한국에 있었다면 앨범에 건전가요 한 곡 확정 그리고 당시 한국은 일본과 달리 이런 음악이 대중화되기에는 경제적, 사회적 수준이 영 좋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이 세 분이 함께 뭉쳐 다니지만 전성기 시절 월드투어 돌 때는 세션 몇몇과 같이 다녔다. moog 엔지니어인 마츠타케 히데키(松武秀樹)[11], 키보디스트인 야노 아키코(矢野顕子)[12] 등과 함께했다. 그 밖에 필요에 따라 기타 세션을 구하는 식으로 투어를 다녔다. 함께 작업했던 유명 기타리스트로는 퓨전 재즈 계열에서 명성이 높은 기타리스트인 와타나베 카즈미(渡辺香津美), 스트라토캐스터의 명인으로 유명한 故 오오무라 켄지(무도관 및 미국 투어 멤버) 등이 있다. 오오오!
1.1 대표곡 & 영상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YMO의 곡은 그들을 세계적 아티스트로 만들어준 초창기 앨범에 포함된 Behind the Mask, Tong Poo(東風), Rydeen 등이다.
Behind the Mask는 본래 당시에도 생소하던, 전자음이 주가 된 전위적인 음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록큰롤 & 팝 느낌 덕분에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덕분에 에릭 클랩튼, 마이클 잭슨 등의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먼저 세상에 나온 건 에릭 클랩튼의 락 버전이었지만, 실제로 먼저 만들어진 건 마이클 잭슨의 댄스 버전이라고 한다.[13] Thriller 앨범에 수록하려고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제외되고 결국 마이클 잭슨의 사후 기념 앨범 Michael에 댄스로 어레인지되어 신곡으로 포함되었다. YMO의 오리지널 버전을 어색해하는 이들도 마이클 잭슨의 곡을 들으면 대단히 흥겨움을 느낄 것이다.
Tong Poo의 경우, 당시 초창기의 전자오락이 뮤직 비디오에서 사용되고 있어 특이한 느낌을 준다. 곡의 실질적인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독주회에서 자주 연주하는 곡이며 YMO 버전 뿐만 아니라 피아노 버전도 많이 퍼져있다. 생각없이 듣다보면 어느새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의 리듬감과 흥겨움을 연출하는 노래이다.
Computer Games이란 뮤직비디오[14]도 있는데 이 뮤직비디오 역시 또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대부분의 뮤직비디오와 마찬가지겠지만 지금보면 촌스럽기 그지없어도 당시에는 백남준의 영향을 받은 전위적인 뮤직비디오였을 것으로 예상 가능하다. 참고로 백남준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하나.
'君に、胸キュン(너의 가슴에 쿵)'이라는 곡은 당시 오리콘 차트 2위 곡이자[15] YMO 싱글 최다 판매 곡으로, 당시 가네보 화장품 광고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고 지금도 일본 내에서는 자주 리메이크되는 유명한 곡이다. 사실 원곡 뮤직비디오는 무심코 봤다가는 손발이 오글거림과 동시에 심장에 심각한 부담이 올 수도 있다!더블어택 도수체조를 연상케 하는 댄스와 부담스럽게 번질거리는(…) 여자가 압권.지금 와서 들어보면 거의 전파송 월드뮤직을 하던 무거운 이미지의 중년 뮤지션 아자씨들이 갑자기 이러한 깨는 모습으로 나왔다는 것에 당시에도 상당한 충격을 줬던 걸로 알려져 있다.
'君に、胸キュン'은 2009년 1월에 방영 개시한 애니메이션 마리아 홀릭의 엔딩 테마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외에 교향시편 에우레카7 극장판의 부제가 이들의 곡인 'ポケットが虹でいっぱい' 라는 점이나, 안녕! 절망선생, 히다마리 스케치에도 인용되면서 오덕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23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하츠네 미쿠 오케스트라 라는 하츠네 미쿠 패러디 음반에서 뮤직비디오가 나왔는데...
이게 넨도로이드로 나왔다! # 지갑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엥? 하츠네 미쿠가 DX7이 아니라 TRITON EXTREAM이잖아?
국내에서도 나름대로 유명한 곡인 'Rydeen'의 뮤직비디오. 참고로 제목의 어원은 애니메이션 용자 라이딘이라고 한다. 본래는 전설의 스모 선수 라이덴 타메에몬(雷電 爲右エ門)의 이름에서 착안해 '라이덴'으로 표기했으나, "요즘 미국에서 용자 라이딘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인기라니까, 라이딘으로 하자!" 라는 호소노 하루오미의 제안으로 라이딘이 되었다. 비트매니아 GB2 갓챠믹스의 밴드장르 히든곡으로도 등장하기도.
그리고 2014년 3월, 일본 아이돌 그룹인 E-girls가 라이딘을 'RYDEEN~Dance All Night~'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하기도 했다.
2015년 4월에 제작된 취주악부를 다룬 애니메이션인 울려라! 유포니엄에서 마칭 밴드 버전으로 어레인지 되었다.
79년에 발표된 Firecracker라는 곡은 제니퍼 로페즈의 I'm real로 샘플링 되기도 했다.
참고로 곡은 아니나 2006년에 나온 공각기동대 S.A.C. 3기의 부제인 'Solid State Society'는 이들의 앨범인 'Solid State Survivor'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제작진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물론 차용 외의 관계는 하등 존재하지 않음.
후일 라제폰 음악감독과 카미나 마야 성우, 그리고 루카스아츠 제작의 어드벤처 게임 LOOM 일본판 음악 감독으로 유명해진 하시모토 이치코가 당 밴드의 서포트 멤버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1.2 디스코그래피
- イエロー・マジック・オーケストラ - YELLOW MAGIC ORCHESTRA (Alfa ALR-6012、1978年11月25日)[16]
- イエロー・マジック・オーケストラ (US版) - YELLOW MAGIC ORCHESTRA (Horizon SP736 / Alfa ALR-6020、1979年5月30日[17]
- ソリッド・ステイト・サヴァイヴァー[18] - SOLID STATE SURVIVOR (Alfa ALR-6022、1979年9月25日)
- 増殖 - X∞MULTIPLIES (Alfa YMO1、1980年6月5日)
- BGM (Alfa ALR-28015、1981年3月21日)
- テクノデリック - TECHNODELIC (Alfa ALR-28030、1981年11月21日)
- 浮気なぼくら[19] - NAUGHTY BOYS (Alfa YLR-28008、1983年5月24日)
- サーヴィス- SERVICE (Alfa YLR-28013、1983年12月14日)
- テクノドン - TECHNODON(東芝EMI TOCT-8010、1993年5月26日)[20]
2010년 10월, 한국에 아래 디스코그래피에 굵게 강조된 앨범이 발매되었다.
2015년에는 YMO의 주요 앨범들이 네덜란드에 위치한 Music On CD라는 업체를 통해 발매되었다. 슈퍼 쥬얼 케이스가 기본 사양이며 가격은 일본판에 비해 저렴하니 일본원판이 아니라도 괜찮다면 구입을 고려해 보는 것도 괜찮다. TECHNODON 음반은 Music On CD에서 아직 발매를 안했으니 주의.
2 영향력
일본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는 슈퍼 밴드답게 그 영향력 또한 막대하다.
크라프트베르크에 의해 창시된 전자음을 중심으로 하는 크라우트 록을 받아들여 여기에 자신들의 팝적 감각을 덧붙여 전자음악에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하였다. 이러한 이들의 업적은 전기 그루브, 플리퍼즈 기타 등으로 상징되는 시부야계 음악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또한 90년대 일본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프로듀서인 코무로 테츠야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로도 유명하다.[21] 90년대 중반에는 YMO의 이니셜을 거꾸로 해 만든 Oriental Magnetic Yellow라는 카피밴드도 나왔는데 카피밴드라고 얕봤다가는 큰 코 다칠 정도로 YMO의 스타일을 잘 살렸다. OMY 말고도 미디/일렉트로닉 계열의 능력자들은 대부분 YMO의 음악을 기본적으로 카피한다.
BL 그룹access의 리더이자 일본 최고의 키보디스트로 언급되는 아사쿠라 다이스케도 고딩 시절에 YMO의 노래를 듣고 컬쳐 쇼크를 받아 본격적으로 키보디스트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한때 디지털드림도어라는 사이트에서는 '최고의 일렉트로닉/디스코 뮤지션' 순위에 크라프트베르크에 이어 2위에 올라와 있었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순위가 내려앉은 상태.
3 기타
최근에 재결성한 유닛 HASYMO가 2012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No Nukes!'(반핵운동) 집회에서 공연했다고 한다. 이 공연에는 일렉트로니카의 아버지인 크라프트베르크도 참석했다고.
과거 팀의 해체 사유가 "지나치게 인기가 많은 것이 두려워서"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도 사카모토 류이치는 자신의 지나친 인기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잠시 생기기도 했었다는 이야기가...
일본의 동인작가 출신 만화가 다이오키의 만화 하루미네이션의 주인공 3인방(호소노 하루미, 타카하시 유키, 사카모토 카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름만.친구는 얘네 따라하더니(…)
- ↑ 비디오게임 'D의 식탁'과 '에너미 제로' 등으로 유명한 크리에이터. 2013년 향년 43세(만 나이)의 나이로 작고했다.
- ↑ 이노 켄지가 비틀즈나 아버지보다도 YMO를 더 좋아했다. 또한 YMO로 인해 디지털과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YMO가 해산하자 이노 켄지는 그 충격으로 한 동안 컴퓨터를 멀리 했다고.
- ↑ 최근 애플 시드 엑스 머시나 음악 감독과 영화감독 이누도 잇신 음악 파트너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상승했다.
- ↑ 7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록밴드 중 하나.이 밴드의 리더인 가토 카즈히코(加藤和彦)는 국내에서도 알려진 임진강의 일본어 판을 부른 포크 크루세이더스의 멤버이기도 하다. 또 보컬인 후쿠이 미카와는 부부였다. 해산도 이들 부부가 이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나 멤버들의 뛰어난 연주력과 창작력은 후대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참고로 밴드 명은 존 레논의 백업 밴드인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패러디(…).
- ↑ YMO에서는 보컬을 담당했다. 당시 로맨틱한 보컬과, 80년대 일본인답지 않은 상당히 유창한 영어 발음으로 유명했다. 2010년대에도 죽지 않은 로맨틱한 보컬을 뽐내면서 토와 테이의 곡을 피쳐링해주는 등 괜찮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예전에도 좋았던 영어 발음이 거기서 더 좋아졌다(…).
- ↑ 일본의 성우였던 故 이노우에 요우가 YMO의 해산을 예언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 ↑ 기계음이 중심이 되는 전자음악을 하기 때문에 들으면 대단히 경박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크라프트베르크나 재팬 등 이 장르의 밴드가 갖는 공통적인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 ↑ 아코디언 연주자로 유명하시다.
- ↑ 심지어 당시 무그 건반이나 녹음 설비는 국가의 관세 정책(악기와 녹음장비를 사치품 취급 했다)때문에 엄청난 고가였다. 지금이야 현재 시세로 100만원~200만원의 신디사이저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신디 한대를 사려면 지금 돈으로 7~800만원은 가뿐히 넘겼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가 되어야 좀 나아진다.
그때까지 녹음실 수준도 엉망진창이었다 - ↑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 심성락 선생의 '무그 경음악' 시리즈가 블로그에 자주 포스팅이 될 만큼 재조명 받고 있기는 하다.
- ↑ 지금은 유튜브에서 활동 중이지만 이 사람도 일본 키보디스트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고 방송 나올 때도 가끔씩 있다.
- ↑ YMO 세션으로 활동 중에 사카모토 류이치와 결혼(야노로서는 재혼)하여 슬하에 사카모토 미우(坂本美雨)를 낳았고, 2006년에 사카모토 류이치와 협의이혼을 했다.
- ↑ 추가된 가사와 보컬 멜로디는 마이클 잭슨이 직접 만든 것이다.
- ↑ YMO 1집의 <Computer Game 'Theme From the Circus'>와 <Firecracker>를 한데 이어붙였는데, 제작사의 오기로 이런 되도않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
- ↑ 이 시기에 호소노는
지금으로 비유한다면 음원차트 킬러레전설급 아이돌인 마츠다 세이코에게 곡을 주기도 했었는데, 웃기게도 이 노래가 2위하는 동안 1위는 호소노가 작곡한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에 빼앗기고 말았다.이 노래도 결국은 콩라인 - ↑ 일본반에만 Acrobat (アクロバット)#이 수록되어 있다.
- ↑ 일본반과 비교해 일부 곡의 효과음이 변하고 Tong Poo에 보컬이 들어가는 등의 변화가 생겨났다. 현재 일본반과 미국반의 합본이 해외에 발매되어 있다.
- ↑ Rydeen과 Technopolis, 그리고 마이클 잭슨, 에릭 클랩튼 등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한 명곡인 Behind The Mask 수록
- ↑ 君に、胸キュン 수록
- ↑ 도시바 EMI(현재는 EMI 레코드 재팬)으로 이적한 후 나온 앨범인데 YMO와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권리가 전 소속 레이블인 Alfa Records에 있었던 탓에
YMO(YMO에 가위표)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 합의가 된건지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로 2011년 재발매 되었다. - ↑ TM NETWORK를 결성 시 YMO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었으며 약칭인 TMN도 YMO에서 유래했음을 코무로가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