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px 신라의 역대 국왕 | ||||||
46대 문성왕 김경응 | ← | 47대 헌안왕 김의정 | → | 48대 경문왕 김응렴 |
시호 | 헌안(憲安) | |
성 | 김(金) | |
휘 | 의정(誼靖) / 우정(祐靖) | |
생몰년도 | 음력 | ? ~ 861년 1월 29일 |
재위기간 | 음력 | 857년 ~861년 1월 29일 (4년) |
1 개요
신라 제47대 왕. 45대 왕인 신무왕 김우징의 이복동생이며 46대 왕인 문성왕에게는 숙부다. 헌안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의 행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아버지인 상대등 균정과 처남인 시중 김명이 권력다툼을 벌일 때 당나라의 사신으로 가 정쟁에 휘말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성왕이 즉위한 뒤에는 병부령을 맡았고, 이후 문성왕 11년에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 조카인 문성왕이 죽자 그의 유조를 받아 각간의 벼슬에 있었던 그는 왕위에 올랐다. 왕 위에 오른 뒤의 치적은 빈약한 편인데, 실제로 별 일 안 한건지, 기록이 부실한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후자쪽이 좀 더 가까워보인다.
《삼국사기》기록엔 제사 지내고 큰 물고기가 잡혔으며 제방수리가 전부. 그나마도 왕족 의렴과의 대화가 절반을 차지한다. 게다가 후기엔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있었다.
슬하에 있던 딸 둘은 경문왕에게 시집 보냈으며 자매덮밥 후에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가 헌안왕의 서자라고 한다.[1]
2 기타
훗날 궁예가 절에 들렸을 때 헌안왕이 그려진 어진(왕의 초상화)을 보았는데 자신의 눈을 잃게 만든 궁예는 이에 분노하여 헌안왕의 어진을 칼로 뎅겅 해버렸는데 찢어진 부분에서 피가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혼이 실린 그림이다
흥미로운 설이 존재하는데 헌안왕이 상대등 시절에 시중인 김계명과 연합하여 조카인 문성왕을 협박하여 물러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근데 왠지 모르게 납득이 간다.[2]
3 삼국사기 기록
一年秋九月 헌안왕이 즉위하다
一年秋九月 죄수를 크게 사면하다
一年秋九月 이찬 김안을 상대등으로 삼다
二年春一月 신궁에 제사지내다
二年夏四月 서리가 내리다
二年夏五月 비가 오지 않다
二年 당성군에서 큰 물고기가 잡히다
三年 기근에 사신을 보내 구휼하다
三年夏四月 제방을 수리하고 농사에 힘쓰게 하다
四年秋九月 왕족 응렴이 헌안왕의 사위가 되다
五年春一月二十九日 헌안왕이 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