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카레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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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라스의 2014년 11월 내한 기자회견 모습.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만큼 많이 노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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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

1 개요

José Carreras
호세 카레라스

영혼을 울리는 소리

1946.12. 5.~

본명은 조제프 마리아 카레라스 이 콜(Josep Maria Carreras i Coll).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성악가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더불어 '쓰리 테너'라 불렸으나, 파바로티 사후에는 이 칭호가 사라졌다. 이는 도밍고도 마찬가지...

외국 성악가로써는 드물게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은 편[1]인지 자주 내한해서 콘서트를 가지는 편.[2]

지금은 세월때문에 오페라는 물론이고 콘서트 무대에서도 거의 은퇴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카레라스의 전성기 였다. 특히, 동향 출신의 소프라노 몽셰라 카바예와 이탈리아 로비고[3] 출신의 성악가 카티아 리치아렐리[4]와는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주기도 했고, 필립스와 EMI, 도이치 그라모폰에서도 많은 음반을 남기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리스 출신의 성악가 아그네스 발차와도 여러 편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2 시청자들을 깜놀케했던 어린 시절

본명에서 눈치챘듯이 카레라스는 본래 카탈루냐인인데, 카탈루냐어로는 조제프 카레라스(Josep Carreras)라고 부르는게 맞다. 허나, 카레라스가 태어날 시기의 스페인은 카탈루냐와 바스크 등 분리주의 운동이 거셌던 지역을 억압했던 프랑코의 철권통치 기간 이었고, 카레라스가 그 시기에 태어난 탓에 카탈루냐어 본명보다 스페인어(=카스티야어)로 된 '호세 카레라스'로 많이 불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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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시절의 카레라스

다행히 스페인이 혹독한 시기 였음에도 불구하고, 카레라스가 어렸을 땐 아무일은 없었던 거 같다. 대신, 카레라스의 어린 시절 내용 중에서 이런 일화가 전해지는데, 카레라스는 꼬맹이 시절부터 타고난 영재로 손꼽혔고, 여덟 살 때는 지방방송에 출연까지 했다고 한다. 그 때, 방송 출연하고 있었던 꼬맹이 카레라스가 엄청난 노래를 불러서 방송을 보고있던 시청자들을 깜놀케 했는데, 바로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그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La donna è mobile)"을 어린나이에 열창했다는 것. 허걱시스트!! 이것은 당시에 많은 화제가 되었고, 지금도 카레라스의 어린 시절을 언급할 때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카레라스 무서운 아이



카레라스가 꼬맹이 시절에 시청자들 앞에서 "여자의 마음"을 불렀다는 그 증거 영상. 6분 34초쯤에 나온다.

3 백혈병투병과 극복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7년 카레라스는 정천벽력같은 소식을 듣는데, 급성 백혈병진단을 받은 것이다. 생사를 오가는 투병 끝에 결국 기적적으로 완치를 받고 무대에 복귀할 수 있게 된다. 복귀 이후에 급속도로 기량이 쇠퇴하게 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샀지만, 1988년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설립하여 백혈병 환자들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숨많은 자선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사회공헌에 전념하고 있다. 다만, 플라시도 도밍고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백혈병 치료를 도우면서 좋아졌다"는 설이 많이 돌고 있는데, 실제로 두 사람은 라이벌이기도 했지만, 원래부터 친했다고 한다. 이전 버전의 문서에서는 유명한 다음의 이야기가 적혀 있으니 참고할 것. #

카탈루냐출신인 카레라스와 카스티야 출신인 플라시도 도밍고지역감정 그리고 엘 클라시코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백혈병 투병을 하게 된 카레라스는 계속된 항암치료와 골수 이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그때 카레라스는 마드리드에 위치한 에르모사 백혈병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료로 치료를 받아 건강을 회복한다. 완치판정을 받은 카레라스는 에르모사 재단에 감사 표하는 마음으로 후원회원이 되기 위한 절차를 밟는데, 알고보니 에르모사 재단은 플라시도 도밍고가 설립한 재단이며, 설립한 취지가 호세 카레라스의 병을 치료하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라이벌인 카레라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익명으로 처리했던 것. 카레라스는 도밍고의 우정에 진심으로 감사했고 그 이후로 둘은 절친이 된다. 카레라스가 백혈병 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도 이것이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그 재단의 홈페이지에서는 이 일화가 거짓임을 공지하고 있다고 하나, 워낙 전세계적으로 퍼져버린 루머(?)이다보니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서프라이즈"에서 방송을 탄 이후, 기정사실로 알려져 버렸다. 이와는 별개로, 절친한 또 다른 불세출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투병 당시, 그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며 격려했다고 전한다, "힘내요. 당신이 쓰러지면 나는 누구와 경쟁한단 말이오."

4 음악적 성향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리리코 테너로 분류되며, 발성이나 기교보다는 호소력 짙은 노래와 연기로 유명하다. 또, 이러한 점이 카레라스의 매력이라는 평가가 많다. 백혈병 치료 이후 성량이 줄면서 기량이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금을 울리는 호소력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가를 적시게 했다. 비슷한 성향의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는 바리톤으로 시작해서 음역을 넓혔기에 풍성한 저음의 음색이 있지만, 카레라스는 (상대적으로)깨끗하고 맑은 고음의 음색이라는 점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카레라스의 진가는 PP에서 드러난다. ff에서 부드럽게 PP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그의 미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섬세한 감정연기에서 빛을 발한다. 그가 쓰러지기 직전에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했던 카르멘(1986년 공연)은 그의 연기와 연주의 진면목을 여실히 볼 수 있는 명반. 실제로 카르멘의 돈 호세와 같이 불쌍한가련한 남자주인공 역할을 맡을 경우, 그의 목소리의 진가가 멋지게 드러난다.

2000년대 이후에는 오페라 공연보다는 주로 연주회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인은 오페라 무대도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하지만, 나이가 상당히 든 만큼 오페라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국내 연주를 자주 왔던 몇 안 되는 성악가로, 한국 출신 성악도들에게도 호의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는 듯. 연주회에서 몇 차례 앵콜을 받으면, 그 중 한 곡은 무대 뒷쪽 좌석으로 돌아서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관객들을 위해 한 곡을 불러주는, 좋은 매너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다만, 2014년 내한 연주회[5] 에서는 11월 23일자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준비하던 중, 급성 후두염과 감기로 인해 공연을 취소했는데, 언론에서 자극적인 기사로 이를 비난하며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당시 공연 포스터 자체가 "전설을 맞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식으로 홍보했기에 그의 생전 한 번 더 공연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듯. 토요일은 공연을 했다. 토요일은 공연 시작직전 안내 멘트로 '호세카레라스씨가 감기 걸렸으나 최선을 다해 부른다고 관객의 양해 부탁드립니다'가 나왔다. 공연 도중에도 계속 코나 입주변을 손수건으로 닦기도 했다. 언론에선 토요일 공연은 애기도 안 하고 일요일 공연취소에 대해서 매우 신랄하게 까댔다.
  1. 실제로 인터뷰에서 한국은 자신의 고향과 굉장히 비슷해서 친숙하다고 얘기했다.
  2. 단, 2011년 11월 23일,24일 양일간에 걸쳐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내한공연은 취소되었다. 공연 주최사인 애셋 &밸류 인베스트 그룹(Asset & Value Investment Group)의 사정 및 부가적인 문제가 그 이유였다고....
  3. 베네치아 지방의 일부이다.
  4. 심지어 리치아렐리와는 연인관계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 설명들 참조.
  5. 플라시도 도밍고의 연주회와 겹친데다 최고가 티켓 값이 44만원에 달해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파바로티가 3-4-5억, 도밍고가 3-4억 카레라스가 2-3-4억 정도이며 3태너 합동 땐 각자가 10억불의 게런티가 있었다. 모든 콘서트가 그런건 아니지만. 더하여 이 3 모두 전용기가 있다. 서울 3태너 공연때도 3명 모두 전용기를 탔다. 저 게런티가 20세기 금액이다. 21세기에 조수미가 1억불 정도이며 안나 네트렙코는 2-3억불 수준이다. 그 20세기 당시에 3-4-5억 인데 지금에서야 몸값이 많이 낮아졌어도 티켓값이 비싼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