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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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이미 폐지되어버린 구시대의 제도로써, 호주제란 말 그대로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의 관계를 등록하는 제도이다. 호주는 호적의 기준이 되며, 호적의 소재지 (본적)에 따라 기재되었다. 민법은 호주와 가족의 개념을 ‘일가(一家)의 계통(系統)을 승계(承繼)한 자’ ‘호주와 같은 호적인 자’로 규정해 호주제를 명문화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가족을 대표하는 남성 가장이 재산의 처분이나 가족의 결혼 등에 대해 우월한 권리를 행사하는 제도다.

호주제도는 헌법재판소에서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05년 3월 2일부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2008년 1월 1일부터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되었다. 신설된 가족관계등록부에는 호주를 기록하는 칸이 없어지고 본인을 기준으로 한 변동사항(출생, 입양, 혼인, 이혼, 사망 등)이 기재된다. 결혼한 여성도 남편 호적에 들어가지 않고 남편의 인적사항이 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다.

재혼가정의 자녀는 법원 허가를 받아 새아버지 성을 따를 수 있고, 미혼모의 자녀는 부모 협의에 의해 기존에 쓰고 있는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게 되어 있는 부성강제주의는 혼인신고시 부부의 합의에 따라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도 있게 된다.

2 호주란?

한자로는 戶主. 한국의 민법상, 한 가(家)[1]을 거느리며 부양하는 일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근데 2008년에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호주가 갖는 법적인 권리는 더 이상 없다.
2008년 이전에도, 일상에선 가장이란 말을 더 많이 쓰기 때문에 호적 관련 외에는 그렇게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하물며 법적으로 폐지된 이후에는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비슷한 말로 당주가 있는데, 의미상으로는 호주 쪽이 그보다 더 포괄적이다. 참고로 이 말은 의미가 많이 변천했고, 이 과정에서 과거에 비해 범위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3 역사

호주제 위키백과

이후 1975년, 1986년, 1988년 등 줄기차게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폐기되었다. 2000년 들어 호주제 폐지는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가 되었고, 2001년에는 법원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호주제 관련 위헌법률심판이 여러 건 제청되었다.

4 병폐

  • 3년 전 이혼하고 얼마 전 재혼한 A씨는 아이의 호적을 옮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친아버지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전남편의 성을 그대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학교에서 왕따가 됐다.[2]
  • 이혼 후 딸을 10년간 혼자 키운 B씨는 어느날 등본을 떼어보니 모르는 남자가 호주로 되어 있었다. 사실인즉 전남편이 죽고 그의 어린 아들이 호주가 된 것이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린 애가 내 딸의 호주라니! 기사
  • 엄마가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경우 친부의 동의가 없으면 새아버지의 호적에 올라가지 못해 보험, 은행, 여권 발급 등 생활에 꼭 필요한 것도 취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 남편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아내의 의견에 상관없이 자유로이 입적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 호주 승계 순위는 호주의 아들→손자→미혼인 딸→미혼인 손녀→배우자→어머니→며느리 순으로 돼 있어 딸만 있는 경우 사위가 처가에 입적해 외손자가 외가의 성과 본을 물려받지 않는 한 폐가가 됐다.

호주제는 상기의 가족 간의 종적(縱的) 관계, 남성우월적 호주 승계 순위 등을 강제하고 있어 여성계의 폐지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외에도 성씨 변경 금지 원칙(단, 아버지가 밝혀진 경우 무조건 변경원칙), 이혼 여성의 6개월 이내 재혼 금지 원칙(단, 6개월 이내라도 해산했거나 임신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될 경우 재혼 가능) 등도 그 불합리성이 받아들여져 호주제와 함께 폐지되었다.

이런 병폐를 잘 묘사한 창작물로 2003년에 방영한 드라마 노란 손수건이 있다.

5 호주제 폐지의 의의

호주제 폐지는 가부장제가 상징하는 권위 및 악습 타파의 결과이자 여권의 진일보라는 평을 받고 있으나, 사실 호주제 폐지는 양성 모두를 위한 시대적 흐름이다. 가부장제의 직접적이고도 일차적인 피해자가 여성이라면, 남성 역시도 가장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하에서 권위와 힘의 논리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양성 간 진정한 공존을 위해서는 성별을 막론하고 피해자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찌보면 당연한거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인간이니

또한 현대사회 들어 전통적 가족제도를 대체한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왔음은 물론 다문화 가구, 미혼·비혼 가구, 편부모 가정 등 가족 구성 역시도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다원화되고 있는 가족의 현실상을 반영하여,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의 구분 없이 가족을 대하는 모습이 평등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혼이나 재혼등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약해지면서 기존의 가족이 해체-재조합되는 경우가 잦아진 현대에 호주제와 같은 고정적 개족 개념을 유지할 경우 피해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

6 부모 성씨 같이쓰기 운동

호주제 폐지에 있어서 이 역시 상당히 관련되어있는 주제다. 자세한것은 성씨 참조.

7 논란 및 쟁점

일제의 구습이고 성차별적이라며 여성 단체들은 철폐를 주장하였으나 유림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그런데 당시 한 토론방송에 나온 유림 노인이 "호주제가 없으면 한국 인구 상당수가 쌍놈"이라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역풍을 맞았다.[3]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전부 다 쌍놈이 될 입장'인) 관객들은 너나할것 없이 비웃음을 던졌고, 다른 나이 든 노인들도 '쌍놈 운운거리면 전직 대통령이나 기업인들도 다 쌍놈으로 멸시할 거냐'면서 그랬다가는 인생 말년에 코렁탕 욕을 하자 그 노인은 울부짖더니열폭 그냥 나가버렸다. 안습 사실 그 전부터 호주제가 너무 가부장적인 제도인지라 손을 봐야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이 당시 호주제 폐지는 종북이라느니 엉뚱한 이념 논쟁으로 이어졌고 정계에서도 찬반이거세졌다. 유림에선 호주제 폐지는 종북 이라고 버젓이 신문광고까지 싣어가면서 반대했으며 보수단체를 표방하는 곳과 연루하여 종북관련이라며 시위도 벌였다.

지금도 간혹 호주제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젠 듣보잡이 된 경우가 많다. 보수 언론들도 이젠 거론도 하지 않는다. 사실, 호주제 폐지 당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던 보수정당 최병국 의원이 '혈통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이혼한 여성들이 호주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민족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막 나가는 발언을 했을 정도로 호주제 폐지 반대론자 중에 극단적 보수주의자가 많았던 덕에, 호주제 부활 여론이 대중의 호감을 얻기 힘든 탓도 크다.

7.1 유교적 입장에서의 호주제

사실, 호주제에서 '남성만 호주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이 없었다면 호주제 폐지 여론이 그정도까지 비등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호주제에 따르면 남성만이 호주가 될 수 있으므로 편모가정과 같은 경우 실질적인 가장인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호적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즉, 대체로 호주제에 우호적인 보수주의자 중에서도 '어떻게 어머니가 자식 밑으로 들어가냐'고 화내는 사람이 있을만큼 남성적 가부장제가 강한 제도였기에 평이 좋지 못했던 것.

그리고 보수적인 유교 관점으로 봐도 어머니가 아들의 밑으로 들어가는 호주제는 제대로 되먹은 제도가 아니다. 부모님을 아랫것 따위로 취급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남녀의 문제 이전에 부모자식 간의 도리가 우선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고, 현대의 관점으로 봐도 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통적 관점으로 보나 현대적 관점으로 보나 모순덩어리 제도였던 셈. 물론 과거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남성이 많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식이 경제적으로 부모를 봉양해서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는거고, 집안의 최고 어른은 당연히 홀어머니다. 조선왕조에서도 왕실의 최고 어른은 왕의 어머니할머니였고 이들이 정사에 일부 개입하기도 했다.

8 관련 문서

  1.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가족과는 다른, 관념적인 법률용어이다. 다만 호주를 제외한 가의 구성원들을 가족이라고 하였다.
  2. 지금도 부성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결혼 전에 부부 간의 합의로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개정 전에는 아버지가 외국인이거나 불명인 경우 외에는 아버지 성을 따라야 했다.
  3. 족보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국민의 태반이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에 족보 매매혹은 별보 등재 요청에 따라 어거지로 형식적인 신분 상승을 한 상황에서 이런식의 헛소리는 그야말로 개드립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