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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초상화의 최고라 불릴만한 그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에르마인을 안은 숙녀"라고도 불린다. 1489년에서 1490년에 걸쳐 그려졌다고 한다. 현재 폴란드 크라쿠프의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에 소장중이다.
다빈치의 남아있는 여성을 그린 초상화 네 작품중의 하나로 모나리자에 비하면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걸작이다. 그림의 모델은 밀라노의 지배자 루도비코 스포르차 대공의 애첩 체칠리아 갈레라니로 특이하게 흰 담비를 안고 있다.
체칠리아가 안고 있는 담비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근대 이전의 서양화는 일종의 읽는 그림이었기 때문에 의미없이 담비를 그려넣었을리는 만무한게 사실. 우선 담비는 유력한 귀족이나 왕족들의 옷에 쓰인 귀한 모피이기 때문에 담비를 든 사람이 상류계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또한 중세 유럽에선 흰 담비는 순백의 상징으로, 모피가 더럽혀지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에 체칠리아의 순수하고 청정함을 드러내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재미있게도 밀라노를 지배한 스포르차 가문의 상징 또한 담비다. 다빈치는 이를 통해서 체칠리아가 스포르차 대공의 총애를 받는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고 할수 있다. 일각에선 흰 담비를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개인적 상징으로 해석하여 체칠리아가 루도비코를 품에 안았다라는 식의 성적인 해석도 하고 있다.
그림의 모델인 체칠리아는 스포르차 대공이 다른 여인에게서 자식을 얻고 총애를 잃어 조용히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녀를 모델로한 이 그림은 실로 수라장을 여러번 거쳤다. 폴란드의 귀족 아담 예르지 차르토리스키가 1789년에 구입해 자신의 어머니 이자벨라 차르토리스키가 세운 치르토리스키 미술관에 소장되었지만 1830년, 러시아의 지배에 저항하여 일어난 폴란드 11월 혁명이 일어나자 이자벨라 차르토리스카는 이 그림을 숨겼다. 11월 혁명이 실패하여 혁명에 가담한 아담 예르지 차르토리스키가 국외 망명이 불가피해지게 되어, 드레스덴을 거쳐 파리에서 머무르다가 1882년이 되어서야 폴란드 크라쿠프로 돌아올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나치에 의해 약탈되어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황제 박물관에 소장되었다가 1940년, 나치의 폴란드 총독 한스 프랑크가 자신의 집무실에 장식하기 위해 이 그림을 크라코프로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이 그림은 한스 프랑크가 빼돌렸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한스 프랑크의 집에서 발견되어 폴란드에 반환되었고 원래 자리인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에 현재도 전시중이다.
대체역사소설 당신들의 조국에서는 나치가 빼돌린 뒤 한 나치 고관이 스위스 은행 비밀금고에 숨겨버려 세간에서는 전쟁통에 영영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주인공 일행에 의해 발견되는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