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마 신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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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히야마 신지로 (桧山進次郎)
생년월일1969년 7월 1일
국적일본
출신지교토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좌타
프로입단1991년 드래프트 4위
소속팀한신 타이거스(1991~2013)

한신 타이거즈 소속의 전 야구선수. 등번호는 24번. 포지션은 외야수이며 최근 몇 년간은 대타 전문으로 활약하였다.


일명 "한신의 얼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한신 타이거스의 암흑기에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가네모토 도모아키와 함께 한신의 정신적 지주였다.

1991년 드래프트 4위로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한 뒤 지금까지 주욱 한신 소속이며, 현재 재적중인 한신 선수중 한신에 있던 기간이 가장 긴 선수이다.

입단 후 1995년 6번 우익수, 1996년에는 5번 좌익수로 22홈런, 1997년에는 4번 우익수로 출장하며 신죠 츠요시와 함께 타선을 이끌었으다. 그러나 20+ 홈런을 기록하는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2할대 초반의 타율에 100개가 넘는 삼진을 기록하는 등, 함께 중심타선에 배치되던 신죠 츠요시와 함께 호쾌한 풍기질을 즐기면서 당시 암흑시대를 달리던 한신의 안습한 득점력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노무라 카츠야 감독의 재임기간인 1999, 2000년 시즌에는 주로 대타로 활약하며 절치부심. 2001년에 다시 4번타자로 복귀했으며, 개인 최초의 3할 타율을 달성함과 동시에 28경기 연속안타 기록도 달성했다. 2003년에는 팀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견인하고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등 대활약. 이 전성기를 2004년까지 이어갔으나, 2005년부터 하락세를 보였고 점점 대타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아져서, 2007년 이후 스윙을 짧게 바꾸는 등 전문 대타요원으로써 변신을 시도하였다.

가네모토 도모아키가 뒤늦게 기량을 만개하고 철인의 이미지를 굳힌것에 반해 히야마는 가네모토가 한신에 입단한 2003년을 기점으로 기량이 점점 떨어졌으나, 대타로 다시 기사회생해 국내 모 구단만큼 화끈한 투자를 하는 한신에서 질긴 선수생활을 이어가면서 엄청난 생존본능을 보여주었다.



2007년 8월 21일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경기에서 대타 만루 홈런을 터뜨려 팀의 역전 승리에 공헌하는 장면.

2008년에는 개막 직후부터 대타로 한 때 4할을 넘나드는 좋은 성적을 남겨서 '新 대타의 신'이라 불리며 팬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다. 지금도 '대타 히야마'가 콜되면 고시엔은 아직도 엄청난 열기에 휩싸이곤 한다.

2012년에는 하락세가 뚜렸했지만 구단에서는 1년 계약을 연장!! 스프링캠프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조정대상자로 시작했다.

시즌시작부터 1군에 합류하여 23 타석만의 안타를 기록, 대타 통산 99 타점을 기록했다. 이는 90년대에 원조 '대타의 신'으로 불렸던 야기 히로시[1]의 98타점을 넘어서는 구단 기록이다. 한신의 선수로는 대타 통산타율 1위에 등극했고, 5월 12일 대타 통산 100 타점을 기록했다.

2013년 9월 7일, 201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 10월 5일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졌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어 대타로 출장하였다. 10월 13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에서 7-2로 뒤진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대타로 등장,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마무리 투수 캄 미콜리오를 상대로 추격의 투런 홈런을 쳤다. 하지만 다음 타자 아라이 타카히로가 삼진으로 아웃당하며 한신은 CS를 탈락했고, 이것이 히야마의 현역 마지막 타석이 되었다.한신팬들은 이 홈런을 보며 정신승리 시전 은퇴 뒤엔 호리프로에 입사해 야구 해설자로서 활동할 것이라고.

저서로는 "生え抜き タイガースから教わったこと"('평생을 함께한(본토박이) 타이거즈로부터 배운 것')가 있다..
  1. 카케후 마사유키의 은퇴 이후 90년대 초중반까지 한신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주전 자리를 빼앗기고 주로 대타로서 활약하면서 2003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