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케후 마사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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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No.31
카케후 마사유키(掛布雅之)
생년월일1955년 5월 9일
국적일본
출신지치바현 치바 시
포지션3루수
투타우투좌타
프로입단1973년 드래프트 6위
소속팀한신 타이거스(1974~1988)
지도자한신 타이거스 2군 감독(2016~)

일본프로야구 선수, 해설가. 제 4대 미스터 타이거즈로서 한신의 1985년 일본시리즈 제패에 큰 몫을 한 슬러거. 스크류 스핀 슬라이딩을 깨뜨린 남자!!

1 학창시절

치바 상업학교 교사로 야구부 감독을 겸하며 학교를 고시엔 일보 직전까지 이끈 경력이 있는 나름 야구인이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야구와의 연을 끊고 식당을 운영하는 등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 카케후가 초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다시 야구와 인연을 맺었는데, 이 때 카케후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야구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카케후가 우투좌타로 전향한 것도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훈련을 받아 기초부터 실력을 쌓아온 카케후는 나라시노 고교의 주전 유격수이자 4번타자로 이름을 날렸고 2학년이던 1972년 고시엔 여름 대회에 진출했지만 1회전에서 탈락, 이듬해엔 예선탈락으로 쓴맛을 보기도 했다.

2 현역시절

고교 졸업 무렵 아버지의 치바 상업학교 시절 제자이던 오가와 요시하루(당시 야쿠르트 스왈로즈 2군 감독)을 통해 야쿠르트 입단을 주선하려 했으나 좌절당하고 다른 루트를 찾은 끝에 한신 타이거즈에 드래프트 6번으로 지명되며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포지션은 후지타 타이라가 이미 주전 유격수로 뿌리를 내렸는지라 3루수로 전향해야 했고 데뷔 첫해 시범경기에서 범상치 않은 실력을 선보이며 1군 무대에 발을 들였지만 2년차까지는 그리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데뷔 3년째 되던 1976년 포텐이 폭발하며 27홈런, 83타점, 타율 0.325를 기록, 명실상부한 한신의 주전 3루수로 자리잡게 된다. 1977~1978년 시즌에도 각각 23개, 32개의 홈런과 3할대 중반의 타율을 마크한 카케후는 1978년 시즌 종료 후 한신의 4번이던 타부치 코이치세이부 라이온즈로 이적하면서[1] 4번 타자 자리까지 꿰차게 되었고 1979년 48홈런으로 생애 첫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2]

이후 1982년, 1984년에도 홈런왕 자리에 오르는 등[3] 카케후는 한신의 확실한 주포로 명성을 날렸고, 1985년 시즌엔 3번 랜디 바스-4번 카케후 마사유키-5번 오카다 아키노부로 이어지는 사기유닛클린업 트리오의 멤버로 팀을 창단 이후 첫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4] 특히 그 해 4월 1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 7회말에 폭발한 백스크린 3연발은 아직도 한신 올드팬들이 "그때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고 할 정도로 당시 한신 클린업 트리오의 무시무시함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당시 동영상. 근데 카케후의 홈런은 백스크린에서 살짝 왼쪽으로 벗어나 있다?

훗날 당시 상대 허용투수였던 마키하라 히로미는 2015년 4월 NHK 토크쇼에 나와 이 영상을 지켜보며 다시한번 멘붕하게 된다. 본인이 말하길 다른 타자였다면 내야뜬공인 것을 카케후는 홈런으로 때려냈다고 하며, 세 번째 홈런을 맞을 땐 거의 멘붕 상태였다고.

그러나 1986년 시즌 초장에 주니치 드래곤즈의 신인 투수이던 사이토 마나부의 사구에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후 그의 타격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1987년 시즌 개막 직전에 음주운전 현행범으로 체포되며 비난의 중심에 서는 흑역사까지 창조하는 등 이런저런 안좋은 일만 겹치는 통에 심신이 많이 지쳐버린 카케후는 결국 1988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15시즌 동안 349홈런[5], 1019타점, 1656안타, 타율 0.292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

3 은퇴 이후

유니폼을 벗은 후 니혼 TV, 마이니치 방송 등에서 해설가로 일했으며, 특이하게도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잠깐 코치를 한 것 이외엔 이상하리 만치 지도자 생활과는 인연이 없었다. 물론 다른 구단에서 여러 차레 오퍼가 들어왔고 2004년 신생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창단 감독 제의도 있었지만[6] 그 때마다 자신의 야구관과는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3년 스토브리그에 한신 타이거즈가 젊은 타자를 육성할 포석으로 그를 육성+타격 코디네이터로 초빙하자 이를 승낙하며 25년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왔고, 2015년 가네모토 도모아키 감독이 취임하면서 2군 감독으로 영전했다. 감독이면서도 현역 시절 자신의 배번인 31번을 사용하고 있다.

4 기타

애니메이션 거인의 별에선 호시 휴마의 스크류 스핀 슬라이딩을 깨뜨린 유일한 선수로 유명하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성우는 와카모토 노리오.

만화 H2에서 메이와와 연습시합을 하던 중 자기 타격 방법을 잊어먹고 우타석에서 스윙하던 키네 류타로가 자기가 원래 우투좌타라는걸 알았을때 스윙 모션과 함께 등번호 31번이 보이는데, 이게 카케후 마사유키의 오마쥬.

[1]
1988년 4월 26일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스 와의 경기에서 인사이드 파크 호텔을 기록했다(...).

1980년대 말에는 그와 닮은꼴의 아역 배우가 '카케후 군'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아역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패미컴플랫포머 게임인 "카케후 군의 점프 천국 스피드 지옥"(カケフくんのジャンプ天国 スピード地獄)이 발매되기도 했다. 문제는 제목처럼 주인공의 상상을 초월하는 점프력과 스피드 덕분에 지옥같은 고난이도의 게임이 되었다는 것. "Kid Kool"이란 제목으로 미국에 수출되었고, 후일 AVGN에 의해 위와 같은 이유로 대차게 까였다.[2]
  1. 당시 타부치의 반대급부로 영입한 선수 중 한명이 이후 한신의 공포의 1번 타자로 맹활약한 마유미 아키노부였다.
  2. 팀 선배인 후지무라 후미오가 1949년에 세운 구단 기록인 46개를 경신한 것이었다. 이 기록은 1985년 랜디 바스가 54개로 뛰어넘었지만, 아직까지 한신의 일본인 선수 시즌 최다홈런 기록으로 남아있다.
  3. 여담으로 1978~1984년 사이 카케후는 야마모토 코지와 홈런왕 경쟁을 벌였다. 이 기간 동안 카케후가 홈런왕을 차지하지 못한 해는 야마모토 코지가 홈런왕을 차지했다.
  4. 1985년 카케후는 40홈런, 108타점, 타율 0.300으로 4번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5. 한신 선수로선 통산 최다기록.
  6. 얼마 안가 다오 야스시가 감독직을 맡으며 없었던 일이 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