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동권의 분파
제헌의회(Constitution Assembly).
1980년대 한국에 존재했던 운동권 그룹.
한국 운동권의 계보는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이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중반 CNP 논쟁 속에서 ND그룹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민중혁명을 완수해서 제헌의회를 소집하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CA그룹으로 진화하였다. 반면에 한쪽에서는 주체사상을 수용하여 NLPDR이론을 내건 NL(정파)이 등장하여 급격하게 세를 불려나갔다. CA그룹은 반독재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제헌의회 소집이라는 구호를 외쳤으나 1987년 6월 항쟁 국면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NL(정파)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1987년 12월 대선에선 민중후보 백기완 독자출마로 결집해서 대규모 거리유세를 조직하기도 했지만, 백기완 후보는 자신이 제기한 민주연립정부[1] 제안이 무산되자, 양김후보 단일화를 촉구화면서 선거운동 도중 사퇴하였다.[2] 반면에 NL은 정권교체 구호를 들고 제도권 정치인중에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김대중 후보 비판적 지지로 결집하면서 비록 대선은 패배했지만, 대학가에서 많은 공감을 얻으면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후 NL의 대중성에 감명받은 CA다수파는 NL에 합류하였으나 NL주류와는 달리 북한의 주체사상은 거부하고 자주, 민주, 통일이란 큰 대의만 받아들이는 비주사NL(혹은 NL좌파) 노선을 걷는다.
소수파는 민족민주(ND)를 내걸고 PD계열과 함께 범좌파를 이루면서 오랜기간 NL과 대립하였다. 이들은 족보학적으로 보면 민중당(1990년)과 백기완선거운동본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사노맹. 백태웅, 박노해 등이 이끌었고 조국교수나 은수미의원도 여기 참여하였다.) 등에서 활동하였고, 1991년 사노맹이 정권의 탄압으로 와해되면서 2000년대에는 민주노동당 평등파, 사회당, 사회주의정치연합, 진보신당과 각종 노동운동, 사회운동단체로 이합집산을 거듣했고, 현재는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및 기타 운동단체로 산산히 흩어지면서 사실상 정파로서의 의미는 사라졌다.
여담으로 80년대 중반 가장 급진적인 그룹으로 평가가 되기도 했다. "제헌의회 그룹 사건"이나 "제헌의회"를 키워드로 옛날 보도자료를 검색해 보면 많이 나온다. 박종철 열사가 CA 그룹 소속이었으며, 지금은 작고한 가수 신해철이 대학 초반 서강대 CA계열 그룹에 가담하여 교련 반대 투쟁에 참가했었다는 증언도 있다.[3]
2 Club Activity
클럽활동이다. 보통 초중고에서 동아리에 해당하나 실제론 거의 관제 동아리. 고2 되면 그냥 자습한다. HR[4]과 마찬가지로 존재감이 없어진다.
한국에서는 대개 학교에서 한 달이나 일주일에 한 번씩 교과시간을 CA 시간으로 만들어 활동을 시킨다. 보통 학교에서 담당 선생님 하나를 선발해 만든 부들이 20~30개 정도 있으며, 한 부는 한 반에서 1~2명씩 들어갈 수 있다. 스포츠에 관련된 검도부, 축구부, 농구부 등의 부부터 시작해서 제과제빵부, 요리부, 퀼트부 등의 다양한 부가 존재한다. 그 외에도 문화탐방부, 영화감상부, 프라모델부 등이 존재한다. 한 가지 특이점이라면 학교에서 부를 만들어서 선생님께 부여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학교에 CA 시간에 해당 부를 운영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식으로 개설된다. 그래서 목록이 가끔 바뀌기도 한다.
CA 시간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정규 교과 시간에 비편성되므로 빠질 경우 결석 처리되고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계속 참가해야만 한다. 그러나 학생들 입장에서 손해볼 것은 별로 없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연장하는 게 아니라 기존 수업 시간에서 2~4교시를 통째로 잘라 할애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업을 그만큼 안 들어도 되기 때문. 다만 한 달에 한번 꼴로 짧게 토막내서 활동하므로, 부원들 간에 깊은 연대감이나 활발한 활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래상담, 또래조정, 학교 전담 스포츠부(수영부나 전대3종부 등), 방송부, 도서부 등의 부는 CA 때가 아닌 평소에도 활동하지만 CA 목록에도 포함되어 이 부에 있는 학생들은 또 다른 CA 부를 선택할 수 없다. 평소에도 부활동을 하고, CA 시간에도 그 부의 활동에 똑같이 참여해야 한다.
3 California의 준말
캘리포니아참조
4 AV 레이블 회사
SOD와 함께 2016년 기준 일본 AV계열을 양분하는 거물회사
창설은 1990년으로 당시이름은 호쿠토로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그냥저냥하는 회사였으나, 이 회사가 이시카와현에서 도쿄로 사업을 이전하면서 렌탈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는데 그 렌탈업이 소위 대박을 쳤다.[5] 그래서 97년 20개를 제작하던 회사가, 2000년에 200개를 생산하는 미친 회사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8년 이후로 인터넷 렌탈업에도 손을 뻗었고, 회사를 설립, 전 일본을 주름잡게 되었는데, 그 사이트가 우리가 익히 아는 DMM.
이후 골동품매매 등을 시작으로, 각종 미디어 물품의 판매, 출판 판매 등 18금과 관련되지 않은 대부분의 것들을 DMM으로 돌리고, CA는 18금 관련 모든 계열사들만을 관리하는 그룹이 되었다. [6] 워낙 자금력이 뛰어나서, 예하에 S1, 무디즈, 어택커즈,아이디어 포켓 등 다양한 미디어들을 설립/인수하여 돌리고 있는데도, 이를 돌리는 것을 보면, 이미 그룹으로는 거의 원톱급의 회사라 할만하다. 그래서 CA산하 한 레이블에서 졸업하면, 보통 같은 CA계열에 다른 회사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으며, 계열사 끼리 판매량 1~2위를 다투는 거대 회사 계열 회사가 되었다.
4.1 산하 레이블
- 무디즈
- 어택커즈
- 아이디어 포켓
- 마돈나
- S1
- 타메이케 고로
- 프리미엄
- 카와이
- kira☆kira
- E-BODY
- OPPAI
- MUTEKI
- BeFree
- 치녀 헤븐
- 혼나카
- Fitch
- CORE
- Team ZERO
5 기타
- ↑ 김영삼-김대중-재야 3자연대.
- ↑ 백기완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진보운동 역사에서 대단히 독특한 존재로 1970년대부터 활동했지만 어떤 특정 정파에 속한적도 없고, 백기완의 사상도 그 어떤 정파와도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재야민주화운동그룹, 학생운동 세력 일부의 추대를 받아서 출마한 것이지 백기완이 CA파 소속이었던 것이 아니다.
- ↑ 신해철 유고집에도 나오는 내용이고,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신해철은 87학번이었기 때문에 6월 항쟁을 신입생때 겪었다(...). 더불어 이 시기에 주요 학생운동 정파간 대립으로 투쟁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명 교문메가폰사건.(...)
- ↑ Home Room의 준말로 학급회의란 뜻이다.
- ↑ 이때 이 렌탈업을 담당하는 예하 회사가 아웃비전이었는데, 워낙 강렬하게 인식이 되어서, 이 이 회사를 아직도 호쿠토/아웃비전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다.
- ↑ 물론, 지금은 사업구조를 개편하여, DMM 산하에 CA가 있지만, 엄밀하게 이쪽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