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당(1990년)

1990년에서 1992년까지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진보 정당.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독자적 민중후보 출마를 주장하였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1989년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을 결성되고, 1990년 11월 10일 민중당이 창당된다. 상임대표 이우재, 정책위원장 장기표, 사무총장 이재오.

1991년 광역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의회에서 당선자를 배출했으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하여 정당 등록이 취소되어 해체되었다.

민중당 해산 이후 지도부였던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는 1994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여 정치노선을 확 바꿨으며 그중에서 이재오, 김문수 두 사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현재 새누리당 소속이다. 도지삽니다 새누리당에는 이들을 따라서 같이 넘어갔던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민중당에서 중앙당 실무자, 지역조직 간부였던 이들 중에 차명진[1], 박형준, 임해규, 정태윤 등이 새누리당(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우재는 서울특별시 금천구에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때 당선되었다. 16대의 경우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 창당에 가담했으나[2]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경선에서 2002년 재보궐선거 때 대결했던 이목희에게 패하였다. 이후 노무현 정권 후반기 한국마사회 회장을 역임하고 정계은퇴하였다.

장기표는 통합민주당, 새천년민주당 등 주요 정당에 몸담은 적이 있긴 한데... 민주국민당, 녹색사민당, 정통민주당, 국민생각이 다 이분 작품으로 정치노선을 보면 좌우중도 가릴거없이 정당창당에 많이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죄다 망했다는게 공통점.

노회찬주대환, 조승수 등과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3] 창당을 준비하다가 1992년 초 민중당과 합당하였다. 민중당 해산 이후 지도부가 여당으로 떠난 이후에도 민중당 잔류파를 결집하여 진보정당 건설에 꾸준히 매진하여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 백기완 후보 선거운동본부, '진보정치연합', '국민승리21'을 거쳐 민주노동당창당에 이른다. 하지만 결국은 굴러온돌박힌돌을 내쫓아내고...

놀랍게도 허경영도 민중당에 참가했었다. 축지법 쓴다고 주장하고 콜미라는 노래를 히트한 그 사람 맞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부터 자신을 한국의 페스탈로찌라 칭하는 등(...)의 패기를 보여주셨다. 당시에는 무명의 정치지망생에 불과했기에 국회의원이 아닌 시의원으로 출마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꼴찌를 기록했던 박종선도 1992년 민중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었다.

민중당 학생위원회로 결집했던 민중민주주의계 학생운동 분파들은 비주사NL 그룹와 통합하여 1993년 21세기 진보학생연합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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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제의 식사라는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그 사람 맞다.
  2. 이우재와 함께 이부영,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모두 재야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3. 약칭 한국노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