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BA 농구 월드컵

FIBA 농구 월드컵
FIBA Basketball World Cup

1 개요

국제농구연맹(FIBA)에서 주최하는 세계 농구 대회로 1950년에 1회 대회가 열리면서 4년에 1번씩 열린다. 1959년부터 1967년까지 홀수년도로 개최했다가 1970년부터 다시 짝수년도로 개최하면서 피파 월드컵이랑 같은 해에 매해 개최되었다가 피파 월드컵에 밀린다고 하여 2019년 대회부터 다시 홀수년도에 개최한다.

2010년 대회까지는 FIBA 세계 선수권 대회(FIBA World Championship)로 불리다가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부터 월드컵이란 이름을 쓰게되었다.

2 시작

1948년 FIBA 사무총장인 독일(서독)인 레나토 빌헬름 요네스(Renato William Jones 1906~1981)가 FIFA 월드컵같이 따로 세계 농구 대회를 열자고 하여 시작되었다. 하지만 세계 대회에서 이미 시작되어 인기를 얻었던 올림픽 농구에게 상대적으로 줄곧 뒤쳐지고 있다. 물론 축구도 올림픽이 먼저 축구 대회를 선점했지만 축구 월드컵이 올림픽 축구를 압도하고 있듯이 미리 시작되었다고 꼭 뒤쳐지는 건 아니긴 하다.

어찌됐든 1950년 아르헨티나에서 1회 대회가 개막했다.

3 역대 대회

3.1 1950 아르헨티나 세계 선수권 대회

축구 월드컵처럼 농구 월드컵도 처음부터 온갖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머나먼 남미에 가는게 어렵다고 1949 유로바스켓을 우승한 이집트(아프리카 나라지만 1959년까지 유로바스켓에 아시아 및 아프리카 나라가 일부 참가했다)는 불참을 통보했기에 유럽 챔피언 불참으로 김이 빠지는 듯 했다. 게다가 참가하기로 한 우루과이와 유고슬라비아, 에콰도르, 스페인도 정치적인 어려움으로 연이어 불참을 통보했다가 막판에 이집트와 유고슬라비아와 에콰도르,스페인은 번복하여 대회에 참가했다.

물론 1936, 1948 올림픽 농구 금메달을 받은 세계 최강급 미국은 주저없이 참가하기로 했다.

10개 나라가 참가하여 6개국 조, 4개국 조로 2개 조로 나눠 조예선를 치뤘으며 개최국인 아르헨티나가 무패로 우승을 거뒀다. 미국은 2위, 칠레가 3위. 4위는 브라질. 보시다시피 아메리카 대륙 나라들이 4강을 모두 차지하고 유럽챔피언인 이집트가 5위. 6위는 프랑스, 7위는 페루, 8위는 에콰도르, 9위는 스페인, 유고슬라비아가 10위 꼴지.

물론 남미에서 열리던 대회만큼 유럽팀들이 고전했던 게 당연했다. 그러나 1967년까지 연이어 농구 월드컵은 죄다 남미에서 열리면서 유럽에서 불만이 컸었다.

3.2 1954 브라질 세계 선수권 대회

아시아인 대만, 필리핀, 이스라엘(당시에는 이스라엘은 아시아 스포츠에서 활동했다)이 참가하면서 더 농구 월드컵 이름에 어울리게 되...는지 알았으나 또 남미에서 열리는 것에 대하여 유럽 나라들이 참가가 어렵다고 하여 유럽은 유고슬라비아와 프랑스만 참가했다. 덕분에 북미인 미국과 캐나다를 빼면 나머지 5개 나라는 브라질,페루, 우루과이, 칠레, 파라과이같이 남미 나라들이 대거 참가했으나 1회 우승국 아르헨티나는 불참했다.

참가국은 12개로 늘면서 3개씩 4개조로 조예선을 치루고 각조 3위 꼴지들끼리 따로 최종순위 결정전을 먼저 치뤘으며 각조 1,2위끼리 8개팀끼리 격돌했다.

미국이 무패로 우승했으며 개최국 브라질이 2위, 필리핀이 3위를 차지하며 역대 아시아 나라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대만은 5위를 기록했으며 12위는 페루.

3.3 1959 칠레 세계 선수권 대회

필리핀, 대만, 아랍에미리트가 아시아에서 참가했으며 냉전 당시 미국의 숙적 소련도 처음으로 참가했다. 13개국이 참가하여 개최국인 칠레를 빼고 4개씩 3개조로 조예선을 치루고 각 조 3, 4위끼리 따로 순위결정전을 치루고 나머지 6개국 및 개최국으로 2차전에 자동진출한 칠레가 2차 토너먼트를 치뤘다.

그리고 경기 도중 냉전과 이념으로 껄끄러운 일이 터졌다. 원래라면 소련이 총합 8승 1패로 우승을 차지해야 했으나, 공산권 나라로 참가한 소련과 불가리아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만을 인정하고 대만을 인정하지 않아 경기를 보이콧했다. 덕분에 조예선에서 캐나다에게 54-63으로 진 거 빼고 나머지 경기를 다 이기던 소련은(당연히 불가리아도) 몰수패를 당하며 미국, 브라질과 같은 7승 2패를 차지했다. 골득실차를 따져 브라질이 우승하고 미국이 2위, 소련이 원래는 3위였지만 대만 보이콧에 따른 추가 징계로 순위도 깎여 6위로 내려가며 경기를 끝냈다. 참고로 5승 4패로 원래는 4위이던 불가리아 또한 똑같은 징계로 7위로 내려갔다. 그리고 대만이 4승 5패를 거두고도 4위, 3승 6패인 푸에르토리코가 5위. 대회에 처음 나온 멕시코는 축구 월드컵(에 처음 나와서 전패로 대회 꼴지했었음)처럼 전패로 13위. 아랍에미리트는 11위, 필리핀은 8위를 기록했다.

여담인데 소련은 라이벌 미국을 71-36으로 처뭉개며 이겼음에도 이념적 고집을 부리다가 순위로는 저 꼴이 되었다.

3.4 1963 브라질 세계 선수권 대회

1954년 대회 개최국인 브라질이 재차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더불어 대회 이름에 어울리게 종전과 달리 1960 올림픽 농구 우승국인 미국과 1961 유로바스켓 우승국인 소련을 비롯하여 1961 남미 농구 선수권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이 참가자격을 먼저 주며 각대륙 및 올림픽 챔피언 참가를 종용하게 했다.

그러나 소련 및 공산권의 반발로 대만은 대회에 불참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처음으로 홀로 참가했다. 이전 대회와 같이 모두 13개국이 참가하며 개최국 브라질은 조예선 면제로 2차 토너먼트에 자동진출했다.

브라질이 우승했으며 유고슬라비아가 2위, 소련은 3위, 미국은 4위를 차지했다.

더불어 미소전에서 소련이 75-74로 극적으로 이기면서 4년전 대패 설욕을 벼르던 미국은 아쉬운 패배로 끝내야 했다. 한편 전대회 꼴지인 멕시코는 이번에는 4승을 거두며 9위를 기록했고 일본은 페루를 70-50으로 이기며 1승을 거뒀지만 나머지는 죄다 패하면서 13위 꼴지로 대회를 끝냈다.

3.5 1967 우루과이 세계 선수권 대회

13개국이 참가해 이전처럼 우루과이는 조예선 면제.

소련이 우승했으며 유고슬라비아가 2위, 브라질이 3위, 미국은 4위를 기록했다. 아시아 유일 참가국인 일본은 푸에르토리코와 파라과이를 이기면서 11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순위에서 소련에게 밀렸지만 소련과 경기에서 59-58로 극적인 승리를 맛보며 4년전 1점차 미소전 패배를 똑같이 설욕했다.

3.6 1970 유고슬라비아 세계 선수권 대회

처음으로 남미를 벗어나 유럽에서 개최한 대회.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참가한 대회이다. 한국은 1969년 태국에서 열린 ABC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는데 당시에는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가 없었기에 이 대회 우승국에 아시아 챔피언 자격이 주어졌기에 비로소 한국도 참가할 수 있었던 것.

한국은 우승후보급 강호 브라질, 캐나다, 이탈리아와 같은 조가 되어 고전이 예상되었고 결국 조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비록 2차전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다고 해도 강호이자 대회 준우승한 브라질에게 77-82로 선전했으며 캐나다를 97-88로 이기며 첫 1승을 거둬들이는 선전을 펼쳤다. 한국은 순위결정전에서 캐나다와 아랍에미리트를 이기며 최종순위 11위로 마무리했다.

우승은 유고슬라비아. 2위는 브라질. 3위는 소련이 차지했다. 미국은 5위, 아랍에미리트가 전패하면서 13위로 꼴지를 기록했다. 오세아니아의 호주도 처음 참가해 12위를 기록했다.

3.7 1974 푸에르토리코 세계 선수권 대회

참가국이 14개국으로 늘어났다. 이전처럼 개최국은 자동으로 2차전에 올라갔으며 전대회 우승국인 유고슬라비이도 전대회 우승국 자격으로 2차전 자동진출이 되었기에 나머지 12개 나라가 3개조로 나눠져 조예선을 치뤘다.

이 대회는 북중미에서 처음 열린 대회이자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이 참가하며 첫 아프리카 나라가 참가한 대회로서 이로서 5대륙 모든 나라가 참가한 대회가 되었다. 1973 ABC 챔피언십 우승국인 필리핀도 아시아 대표로 참가했다. 중앙 아프리카는 전패를 거두며 14위, 필리핀은 13위를 차지했다.

우승은 소련, 2위는 유고슬라비아, 3위는 미국이 차지했다.

3.8 1978 필리핀 세계 선수권 대회

아시아 첫 개최 대회로 한국이 2번째 참가한 대회이다. 1977년 ABC대회에서 우승한 중국과 2위한 한국이 아시아 대표로 나가게 되었으며 전번 대회처럼 14개 나라가 참가해 필리핀과 소련이 조예선을 면제하고 2차 예선에 진출했다.

한국의 조예선 상대는 8년전 2경기(조예선과 순위 결정전)를 다 이겼던 캐나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와 처음으로 나온 세네갈이었다. 그러나 캐나다에게 8년전과 달리 69-105로 완벽하게 처뭉개졌으며 우승후보인 유고슬라비아는 당연히 85-121로 처발렸다. 그나마 1승 상대로 보던 세네갈은 연장전까지 가서 86-84로 겨우 이겨 가까스로 1승을 챙기는 것으로 만족하며 조 3위를 거뒀다. 그리고 순위결정전에서 다시 한번 세네갈을 이기며 13위로 세네갈을 제치고 꼴지 탈출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회에 처음 나온 중국은 브라질에게 154-97로 뭉개지며 조예선에서 동네북이 되었으나 순위결정전에서 한국과 세네갈을 이기며 11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개최국 필리핀은 개최국으로서 2차 예선에 올랐으나 7전전패를 당했다. 그나마 최종 순위로 8위(...)로 기록되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이 대회 4강에 오르지 못하고 최종 순위 5위를 기록했다. 그 뒤로 미국은 줄곧 4강에 꼭 들어가며 농구 본고장 이름값을 하다가 24년 뒤...

3.9 1982 콜롬비아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국- 소련
준우승국- 미국
3위 - 유고슬라비아

3.10 1986 스페인 세계 선수권 대회

1982년 대회에서 13개국이 참가하던 거와 달리 이 대회에서 무려 24개 나라가 참가했다! 참가국이 늘어난만큼 유럽,남미, 북중미는 당연하고 오세아니아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 아프리카에서 앙골라와 코트디부아르가 참가하며 명실공히 드디어 월드컵 이름에 어울리는 5대륙 참가국이 한 자리에 모였다.

6개씩 4개조로 조예선로 치뤄진 이 대회에서 1985년 ABC 대회 준우승을 거둔 한국과 3위 중국,4위 말레이시아가 참가하게 되었는데 우승한 필리핀이 복잡한 정치적인 일로(독재자 마르코스에 대한 반대시위같은 상황) 불참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가 대신 나오게 되었다. 각 조 3위까지 12강으로 2차예선에 나가게 되었으며 이전과 달리 13위부터는 순위 결정전을 치루지 않기로 했다. 대신 12강 이후부터 플레이오프가 더 세분화되어 종전과 달리 결승전 및 3,4위전이 처음으로 치뤄진다.

한국은 A조에 속해서 브라질,그리스,프랑스, 스페인, 파나마와 겨루게 되었다. 한국 농구계는 그나마 파나마를 1승 상대로 여겼지만 브라질에게 74-104,스페인에게 73-120, 그리스에게 80-98, 프랑스에게 84-101로 진데 이어 파나마에게는 103-111로 지면서 5전전패를 기록했다. 공식적으로 공동 13위로 다같이 처리했지만 순위를 조예선 결과로 치자면 한국은 22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같은 5전전패를 거둔 코트디부아르와 말레이시아를 제치긴 했다(...)

여담인데 이충희는 브라질전에서 홀로 45점을 넣어 1990년 대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은 허재 다음으로 아시아 선수 최고 득점 2위이자,대회 선수 득점 순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결승에서 숙적 소련을 87-85로 이기며 우승했다. 유고슬라비아가 117-91로 브라질으 이기며 3위. 중국은 9위를 기록했다.

3.11 1990 아르헨티나 세계 선수권 대회

40년만에 아르헨티나에서 열린대회로 1989 ABC대회 준우승한 한국은 연속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참가국을 16개로 줄이고 4개조씩 4개로 조예선을 치루는 것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9위부터 순위결정전을 다시 치루게 되었다.

B조에서 미국, 그리스, 스페인과 또 만난 한국은 미국에게는 무려 67-146으로 처절하게 처발렸고 그리스에게 76-119, 스페인에게 101-130으로 지면서 순위결정전으로 밀려나 중국에게 100-122로 졌다. 그나마 대회에 처음 나온 이집트를 상대로 허재의 독무대로 117-115 진땀승으로 이기면서 15위로 대회를 끝냈다. 더불어 중국은 바로 위인 14위.

우승은 결승에서 소련을 92-75로 이긴 유고슬라비아. 3위는 미국

여담인데 허재는 이집트전에서 무려 62점을 넣어 이 대회 개인 최고득점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24년째 깨어지지 않고 있다.

3.12 1994 캐나다 세계 선수권 대회

전대회 우승국인 유고슬라비아는 유고 내전으로 참가 자격이 박탈됐고 대신 유고슬라비아에서 떨어져 나간 크로아티아가 참가했다. 더불어 1993 ABC대회 준우승국 북한도 불참하는 통에 3위 한국이 어부지리로 참가했다.

한국은 바로 첫 출전한 크로아티아와 쿠바와 같은 조가 되었다. 그밖에 호주도 같은 조였는데 유고슬라비아였던 크로아티아를 빼면 쿠바와 호주를 해볼만하다고 판단했다....그러나

일단 크로아티아에게는 역시나 53-104로 처발렸다.그리고 호주에게는 눈물겨운 85-87 분패. 마지막으로 쿠바에게는 79-92 패배. 순위결정전으로 밀려나간 한국은 4년전 순위 결정전에서 유일한 1승을 안겨준 이집트와 또 만나 76-69로 이겼으며 앙골라를 75-71로 이기고 최종순위 13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조예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강호 브라질을 97-93으로, 스페인을 78-76으로 이기는 이변을 낳았다. 비록 조 1위 미국에게 77-132로 털렸지만 그래도 조 2위로 2차 토너먼트에 진출하여 8강(8위)까지 올라갔다.

결승에서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로서 처음 나온 라이벌전에서 미러전이 8년만에 다시 치뤄졌다. 그리고 미국은 137-91로 러시아를 처뭉개며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미국은 처음으로 이 대회에 드림팀을 이뤄 나왔던 만큼 러시아가 고전하리라는 예상은 당연했다.

3위는 그리스를 78-60으로 이긴 크로아티아.

3.13 1998 그리스 세계 선수권 대회

20세기 마지막 대회.

1997 ABC대회를 우승한 한국과 준우승한 일본이 아시아 대표로 나왔으며 4년전 대회에서 출전 자격이 박탈당한 유고슬라비아가 다시 참가했다. 물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만 남은 상황이지만. 러시아는 미국을 4강전에서 66-64로 이기며 결승에 올랐으나 유고슬라비아에게 62-64로 패해 준우승했다. 미국이 전대회와 다르게 드림팀이 아닌 대학팀 선수단으로 참가해서 그런지 3위로 그쳐야 했다.

한국은 그래도 그 드림팀 아닌 미국에게 조예선에서 68-88, 리투아니아에게 56-97로 패하며 탈락했다. 브라질에게는 73-76으로 선전했지만 순위결정전에서 나이지리아에게 65-89,세네갈에게 72-75로 지면서 5전전패, 16위 꼴지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서장훈이라든지 주전들이 분전하며 브라질전은 선전했지만 얼마든지 이기리라 본 세네갈에게 분패한 것이 아쉬움이었다. 일본은 세네갈을 이기며 14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2000년대와서 안 그래도 중국에게 밀리던 한국은 아랍권 농구 및 이란의 발전으로 아시아 대회에서 연이어 4강조차 오르지 못하며 16년동안 이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된다.

3.14 2002 미국 세계 선수권 대회

농구 본고장 미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회지만 미국은 단단히 망신당했다. 드림팀 항목에도 나오듯이 그래도 올림픽보다 비중이 떨어질지언정 본고장 미국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대회인만큼, 미국 농구계는 당연히 우승해야한다는 목표로 드림팀을 구성했다.

조예선에서 알제리를 110-60으로 가볍게 처뭉갤때 역시 미국~ 이랬지만 독일에게 104-87로 이겼다. 이기긴 이겼지만 독일이 농구로는 약체급이기에... 물론 독일 농구의 자존심인 덕 노비츠키가 버텼다는 점도 있지만 그 다음 중국은 84-65로 이겼다. 뭐 중국도 어차피 아시아 최강급이니.(그리고 독일은 미국보다 훨씬 잘한 최종순위 3위...)

그리고 2차 토너먼트 조예선에서 러시아를 106-82, 뉴질랜드를 110-62로 이기면서 이변이 없다고 할 찰나, 아르헨티나에게 80-87로 덜미를 잡히고 만다. 이어 준결승 플레이오프에서 스페인에게 75-81,유고슬라비아에게 78-81로 연패하면서 결국 4강조차 못 오르고 탈락. 최종순위 6위라는 대회 역사상 최악의 결과로 끝을 맺었다. 24년만에 4강에도 오르지 못함과 동시에 당시 기록한 5위보다 더 떨어진 6위. 그것도 드림팀을 이루고 미국 안방에서 처음 치뤄진 대회였기에 미국은 두고두고 망신당하게 됐다.

그러나 미국의 망신은 2년 뒤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이어지는데 드림팀 항목을 참고할 것. 미국의 6위 순위는 유고슬라비아의 2회 연속 우승 보도를 세계 스포츠 보도에서 덮어버릴 정도로 화제였다. 52년만에 우승을 노리던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유고슬라비아에게 77-84로 지면서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독일은 역사상 처음으로 3위까지 오르는 이변을 낳았다. 더불어 덕 노비츠키는 득점왕에 올랐다.

중국은 알제리를 이기며 겨우 1승을 챙기며 꼴지 탈출로 만족해야 했고 2001년 ABC대회에서 한국을 제치고 준우승하여 대회에 처음 나온 레바논은 전패를 거두며 16위 꼴지를 기록했다.

3.15 2006 일본 세계 선수권 대회

다시 24개국으로 참가국이 늘어났으며 6개씩 4개조로 이뤄 조예선을 치루고 16강 토너먼트 제도로 변경했다.

르브론 제임스을 비롯한 드림팀을 다시 이룬 미국은 4년전 굴욕을 씻고자 나섰으나 이제 상대들도 강해졌다는 평을 듣었다. 미국이 못한게 아니라 유럽 및 남미, 북중미 나라들의 농구 솜씨도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오며 미국은 5전 전승을 거뒀지만 중국에게 121-90, 세네갈을 103-58로 이긴 걸 빼고 이탈리아, 푸에르토리코, 슬로베니아와 10점차 승부를 벌여 이겼다.

그러나 4강까지 그럭저럭 순항하던 미국은 그리스에게 95-101로 덜미를 잡혀 결승 탈락했다. 그나마 3, 4위전에서 2년전 올림픽에서 패배를 안겨준 아르헨티나를 95-81로 이기면서 3위를 거둬 4년전보단 좀 더 성적이 좋긴했지만 우승을 노렸기에 미국 농구계는 실망했다. 그러나 농구가 그만큼 세계적으로 실력이 늘어난 것이니 농구의 세계화라는 면으로 보자면 절대 나쁜게 아니라는 분석도 많이 나왔다.

그리고 스페인은 70-47로 그리스를 가볍게 이기며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전년 대회 3위 독일은 스페인에 이어 조 2위를 기록해 8강까지 진출했다. 비록 미국에게 65-85로 졌지만 선전한 셈. 전번 대회 득점왕 덕 노비츠키는 조예선인 앙골라전에서 47점을 넣으며 108-103으로 이겼다(다만 연장전까지 갔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중국이 16강에 진출해 총합 12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야오밍이 대회 득점왕에 올랐는데 야오밍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중국의 16강 진출은 어려웠을 평가였다.

그밖에도 나이지리아(14위)와 앙골라(9위)도 16강에 올라서 아프리카 농구도 꽤 발전했다는 분석이 나왔기에 미국이 고전한 것만이 아니라 그만큼 다양하게 여러 나라에서 농구가 강해졌다는 평이 나왔다.

그리고 이런 평과 같이 FIBA에서는 스폰서비라든지 대회 중계권비같은 수익면에서도 나날이 규모가 커졌음을 통계 및 분석으로 내놓아 이 대회도 세계적인 대회로 자리잡았음을 입증했다.

3.16 2010 터키 세계 선수권 대회

이전과 달리 갈수록 이 대회도 세계적 인기와 수익성에서 나날이 커지면서 대회 개최도 꽤 치열해졌다. 프랑스와 터키가 경쟁을 벌인 끝에 터키가 개최하게 되었다. 터키는 화려하지 않지만 농구로서는 역시 강호급이 들어가는 나라이고 2002년 대회 5위, 2006년 대회 6위를 기록하여 역시 만만치 않은 나라였다. 그런 터키가 처음으로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화제가 되었으며 축구와 더불어 인기많은 농구 세계대회를 개최했기에 터키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평균관중 수에서 4년전 일본의 2배가 넘는 2만이 넘는 관중이 왔을 정도로 역대 최고 관중 수치를 기록했다.

미국은 데릭 로즈, 케빈 듀란트, 케빈 러브 같은 NBA 리거로 참가했다. 조예선에서 브라질에게 70-68 진땀승을 거둔 걸 빼고 나머진 모두 20~30점차 완승을 거뒀다. 8강전에서 러시아를 89-79으로 이기고 4강에서 리투아니아를 89-74로 이기고 결승에 올라갔다.

개최국 터키는 앙숙인 그리스를 상대로 76-65로 이기고, 중국을 87-40으로 처뭉개며 조예선 5전전승을 기록하며 쉽게 16강에 올라갔으며 4강에서 세르비아에게 극적인 83-82 진땀승을 거두며 사상 첫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서 만난 터키와 미국, 3만이 넘는 터키 관중들이 뜨거운 응원을 보냈으너 결국 미국이 81-64로 이기면서 16년만에 우승을 되찾았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1승 4패를 거두고도 극적으로 16강(16위)에 아슬아슬하게 진출했다. 이란과 레바논도 똑같이 1승 4패를 거뒀지만 골득실에 밀려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2002년 대회 3위, 2006년 대회 8위를 거둔 독일은 이번에는 덕 노비츠키 홀로 이끌기에는 무리라 그런지 17위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였다.

3.17 2014 스페인 월드컵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 항목을 참고할 것.

3.18 2019 중국 월드컵

축구 월드컵을 피해 2019년에 개최하기로 했으며 2015년 8월에 개최국이 발표된다. 브라질과 필리핀이 개최 후보이며 러시아나 베네수엘라같은 나라들도 개최 경쟁에 뛰어들 듯 했는데 2014년 12월 12일 국제농구연맹(FIBA이하 피바) 발표로 “카타르와 중국, 독일, 필리핀, 터키가 2019년과 농구월드컵 유치를 희망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독일은 단독개최 혹은 프랑스와 공동개최를 희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3월 들어서 피바는 아시아에서 차기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고 카타르는 2019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를 개최하면서 후보에서 물러나면서 중국과 필리핀이 개최지 최종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중국이 앞서긴 하지만 중국이 최근 국제대회를 너무 많이 독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필리핀이 2014 대회에서 보인 선전도 괜찮고 필리핀도 농구에서는 시장성이 무척 좋고, 농구 인프라가 나쁘지 않아서 평가가 좋다.

결국 2015년 8월 최종 투표에서 중국이 14표로 7표를 얻은 필리핀을 제치고 개최국이 되었다. 최종 투표장에 중국은 야오밍이 게스트로 나왔고 필리핀은 매니 파퀴아오가 나왔다.

2019 대회부터 참가국이 종전 24개에서 32개로 대폭 늘어난다. 더불어 2017년부터 지역예선을 축구의 홈앤어웨이 형식으로 바뀌면서 예선경기 수도 대폭 늘어난다.

3.19 2023 월드컵

원래 2015년 3월 초만 해도 2023년 대회도 아시아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3월 16일부로 취소하고 2019년에 개최국을 다시 확정하기로 했다.
터키,독일,러시아가 개최 후보로 나설 예정이지만 터키는 2010년 대회 개최국이라 불리한 상황이다. 거기에 카타르가 다시 개최 후보로 나서고 있다.

4 갖가지 이야기

  • 대회 최다 우승국가는 유고슬라비아미국. 5번 우승하여 최다 우승 타이틀을 얻었다. 3회 우승한 소련, 2회 우승한 브라질, 1회 우승한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이 우승을 경험해봤다. 이 가운데 유고슬라비아의 후예인 세르비아나 소련의 후예인 러시아가 과연 다시 우승을 되찾을지? 하지만 2014 대회 결승에서 세르비아는 미국에게 너무 쉽게 대패했다.
  • 아시아 최고 성적은 1954년 대회에서 3위를 거둔 필리핀.
  • 한국은 역대 2차 토너먼트를 넘겨본 적이 없다. 순위로는 1970년 유고슬라비아 대회에서 처음 나가 거둔 11위가 최고 성적. 하긴 2014년에 오랫만에 스페인 월드컵에 나왔을때 대한농구협회부터도 외면시했을 정도이니 이런 현실에서 대회 진출도 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2014년 대회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과 일정이 거의 겹치는 바람에, 농구협회 입장에서는 어차피 거의 가망성이 없는 세계대회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개최국으로 출전하는 아시안게임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결승전에서 이란을 꺾고 극적으로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