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우리 카르발류 지 올리베이라 (Amauri Carvalho de Oliveira) | |
생년월일 | 1980년 6월 3일 |
국적 | 이탈리아/브라질 |
출신지 | 상파울루 주 카라피쿠이바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신체조건 | 186cm 83kg |
등번호 | 22번 |
소속팀 | AC 벨린초나 (2000) 파르마 FC (2000~2003) 피아첸자 칼초 (2001)(임대) 엠폴리 FC (2001~2002)(임대) 메시나(2002~2003)(임대) AC 키에보 베로나 (2003~2006) US 팔레르모 (2006~2008) 유벤투스 FC (2008~2011) 파르마 FC (2011)(임대) ACF 피오렌티나 (2012) 파르마 FC (2012~2014) 토리노 FC (2014~2016) |
국가대표 | 1경기 0골 |
1 소개
아마우린 안될꺼야...
피온3충들의 브라질 국대 1순위 공격수
아마우으리
이탈리아의 축구선수[1]. 국내에서는 와싯의 양아들로 유명하다(...).
악마우리
2 클럽
스위스 2부리그 벨린초나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곧 파르마FC로 영입되면서 본격적인 세리에 A 생활을 시작했다. 파르마FC로 영입되었지만 영입과 동시에 하부리그 임대 생활만 하면서 정작 파르마에서 활약은 하지 못했다. 10년이 지나서야 파르마 소속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US팔레르모 시절로 키에보에서의 활약을 눈여겨보던 팔레르모에서 루카 토니의 대체자[2]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다 이적시장 마지막날 이적을 확정짓게 된다.
US팔레르모에서 2시즌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데 적절한 득점력[3]과 타겟 스트라이커치고는 나쁘지 않은 발재간,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세리에 A의 강자들인 AC 밀란, 유벤투스 같은 강팀들 상대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빅클럽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여기에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스타일 덕분에 세리에A의 드록바 혹은 하얀 드록바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팔레르모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첼시,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과 같은 빅클럽들의 구애 속에 2008년 360억의 이적료와 노체리노, 란자파메라는 유망주의 소유권까지 포함된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이적을 통해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그의 평가가 본격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유벤투스로 이적한 첫시즌 왕성한 활동량과 중요한 경기에서의 적절한 활약[4], 그리고 리그 12골을 포함 총 17골을 득점에 성공하며 트레제게, 델피에로와 같은 선수들과 포지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가 갓마우리 소리 듣던 그의 리즈시절로 무려 이탈리아와 브라질과 같은 축구강국들이 아마우리를 대표팀으로 선발하기 위한 신경전까지 벌일 정도였다. 승자는 아마우리를 선택하지 않은 브라질 이탈리아였고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정식 데뷔하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첫시즌 말미부터 조금씩 득점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불안한 조짐을 보이더니 무려 7개월간 무득점에 시달렸으며, 2009년 10월 18일 피오렌티나전 득점 이후, 이번엔 1년 가까이 무득점에 성공했다(...). 부진 초기만 해도 득점만 못할 뿐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고 골대도 자주 맞히는 등의 불운도 있어서 팬들로부터 어느 정도 쉴드를 받았지만, 부진이 길어지면서 경기력도 구려지고 넣어줬어야 할 쉬운 찬스들도 다 놓치고 장점이었던 피지컬도 무너지는 등 가지고 있던 장점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황금쓰레기통 후보에도 등극. 특히 이 시기 소속팀인 유벤투스가 연속 7-7찍던 잭팟투스 암흑기였기 때문에 그의 활약이 간절해서 더욱 비판받았고, 안 그래도 빈공에 시달리던 유벤투스 공격진에 부담을 덜어주긴커녕 더해주면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를 노년가장 노릇하게 만든 주범으로 찍혔다.
이런 아마우리를 처분하려고 유벤투스도 경기 출장을 안시키거나 트레이드 등 여러가지로 노력해보았지만 주급이 적거나 빅클럽이 아니어서 계속 이적을 거부하며 더욱 팬들의 속을 긁어놓았다. 결국 2011년 알레산드로 마트리의 영입과 맞물려 겨울이적시장 임대로 정든 유벤투스를 떠나 자신을 세리에로 처음 영입했던 파르마로 임대되었는데, 여기서 임대된 11경기동안 무려 7골을!!! 터뜨려 파르마를 강등에서 구출해내며 유벤투스 팬들의 복장을 더더욱 긁어놓았다(...).[5] 파르마 임대종료 후 피오렌티나를 거쳐서 파르마 소속으로 완전 영입되었다.
유벤투스 팬들에겐 흑역사 of 흑역사 선수이며 유벤투스를 떠난 이후 안 그래도 얼굴만 봐도 성질 뻗치는데 인터뷰로 유벤투스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들을 많이 해서 더더욱 까이고 있다. 국내팬들에겐 아예 금지어 취급. 하지만 12시즌 피오렌티나 임대 시절 유베와 우승을 다투던 밀란을 상대로 결승골을 작렬, 유벤투스를 무패준우승의 위기에서 구해내 은혜갚은 아마우리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밀란이 1위, 유베가 2위로 승점차는 2점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아마우리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컸다.
확실히 주급 버티기는 팬이 빡칠 만한 상황이지만, 아마우리 부진의 이유는 사실 복합적이고 아마우리 혼자만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는 점도 있다. 팔레르모 시절에는 미콜리가 중앙에 서 있고 아마우리가 오히려 흔들어주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유벤투스 시절 라니에리는 아마우리를 중앙에 박아 놓았다. 이는 아마우리의 준수한 피지컬과 걸출한 헤딩력을 중시한 작전인데, 유벤투스가 네드베드, 카모라네시, 델 피에로 등이 활발하고 아마우리도 좋았던 시절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네드베드가 은퇴하고 카모라네시의 노화와 부상이 찾아오자 상술되었듯이 노년가장 델 피에로밖에 남지 않았다.
거기에 아마우리 자신 역시 부상을 당하고 경기감각과 신체능력이 저하되면서 전봇대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에 앞서 얘기되었듯 골대를 맞힌다든가 등 들어가야 할 게 안 들어가면서 자신감이 하락했다. 이러자 이탈리아 언론에서 아마우리를 극딜하고, 자신감마저 완전히 하락하면서 유벤투스에서의 아마우리는 실질적으로 끝장이 난 것이다. 거기에 부상이 또 찾아오면서 더욱 피지컬이 하락하고, 팀 자체가 안 되는 팀이던 페라라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네드베드 등이 버티고 있던 시절이면 몰라도, 그렇잖아도 피지컬과 자신감이 하락한 상태에서 팀 전술이 다른 거 없고 키가 큰 아마우리를 전봇대로 쓴다, 그리고 극딜은 아마우리가 당한다, 이 따위면 배겨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유벤투스를 탈출해서 파르마로 갔을 때 바로 살아났듯이 아마우리는 피지컬과 헤딩도 좋지만 발재간과 센스 또한 활용시켜야 되는 베르바토프나 즐라탄 타입의 선수인데 잘못 썼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저런 점 다 포함해서 빅클럽에서 버티기는 좀 클래스가 모자랐다고 볼 수도 있고.
국내 해축팬들 사이에선 축구 웹툰작가 와싯의 양아들(...)로 통한다. 작가자신을 흰 수염에 비유하면 아들은 스쿼드, 아마우리가 득점을 하자 아들아 이게 무슨짓이냐?! 골을 삽입중입니다 아버지!!, 혹은 그냥 대놓고 아마우리 아빠 와싯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어감때문인지 실력때문인지 우린 안될거야 아마랑 엮이기도 한다(...). 말의 앞뒤를 바꿔서 아마우린 안될거야 이런식으로 쓰는데 우리는 안 될 거라는 뜻과 아마우리는 아마도 안 될 거야라는 식으로, 아마우리의 실력 자체를 깔 때도 쓰인다.
그런데 12-13시즌 파르마에서 10골을 넣었다! 그 후 재계약에 성공하였으며 13-14시즌에 2013년 12월 31일까지 13경기(5교체) 0골을 기록하며 와싯을 기쁘게 하고 있다. 2014년 시작과 함께 첫득점에 성공하더니 그 후 멀티골, 다다음 경기에 또 골을 넣으며 2014년 4경기 4골을 넣고 있다. 와싯이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