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갑옷

1 정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 아마 인류가 가장 오래전부터 사용한 갑옷.

그냥 가죽으로 만든 옷이라고 해도 천옷보다는 나은 방어력을 제공하지만, 갑옷(甲)이라고 부르는 것은 보통 가죽이 아니라 특별히 경화(硬化) 과정을 거쳐 단단하게 만든 가죽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만드는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괜찮은 것은 플라스틱 수준의 강도를 가지고 있으며 도검류의 베기 공격은 상당히 잘 막아주는 편이다.

2 종류

2.1 생가죽(Hide)


말 그대로 생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이다. 즉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무두질을 하지 않은 채로 말려서 재단하여 만든다. 작은 동물의 생가죽은 Hide라고 하지 않고 주로 , , 들소, 코뿔소, 코끼리 등 덩치가 크고 피부가 두껍고 튼튼한 짐승의 가죽을 Hide라고 한다. 털을 그대로 살린 털가죽(Fur) 또한 Hide에 포함된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하여 이후에는 강철 갑옷에 장식으로 붙는 등 오랫동안 애용되었다.

이런 성의없이 만든 갑옷으로 대체 뭘 막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마는, 생가죽은 피부 안쪽의 젤라틴과 지방질이 딱딱하게 말라 방어력이 일반 천옷보다는 굉장히 높다. 영국의 한 수도사가 남긴 기록에서 바이킹 약탈자들이 가죽을 걸친 채로 쳐들어왔는데 '칼로 쳐도 베이질 않더라.'라고 할 정도였다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만들기 쉽다는 장점이 있으나, 생가죽이라 야만인 간지를 노리는 게 아니라면 모양새가 안 살고, 무두질을 하지 않아 습기와 세균에 노출되면 쉽게 썩어버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또한 무두질을 한 가죽 갑옷에 비해서 훨씬 무겁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중세 중반부터 거의 없어졌고, 미개인들이 착용하는 갑옷이라는 인식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한편 동양에서는 근대 태동기까지 생가죽 갑옷이 널리 쓰였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멧돼지 생가죽을 미늘로 재단하여 엮은 조선의 피갑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갑옷에 포함되지는 않는 것이지만 게임에서는 털가죽 갑옷을 Hide Armour 라고 부를 때가 많다.

2.2 가죽 갑옷 (Leather Armour)


무두질과 경화(硬化) 처리를 거쳐 단단하게 만든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다. 단단한 가죽이라 해서 하드레더(hard leather) 라고도 부른다.
경화 과정은 형태를 잡은 다음 표면에 기름을 칠하고 그늘에서 말리는(그냥 땡햇볕에 말리면 손상되고 썩는다) 과정을 반복한 후에 마지막으로 왁스를 발라 마감한다. 이러면 기름이 가죽 속에 스며들어 밀도가 높아지고 단단해진다고 한다. 판타지에 많이 등장하는 가죽갑옷이 이것인데 서양 역사재현 쪽에서 복원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가죽을 끓이거나 옷칠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종류의 경화 기술이 있다.

2.2.1 보일드 레더 아머(Boiled Leather Armor)

가죽 갑옷 중 그 기술력이 단연 종결자급인 갑옷으로, 동양에선 나타나지 않고, 서양에서 중세 후반까지 쓰였다. 프랑스어로 퀴르 부이(Cuir Bouilli, 삶은 가죽)이라고 부른다. '보일드'라는 말이 들어간 것과 같이, 이 갑옷을 만들기 위해서 가죽을 파라핀을 섞은 끓는 기름에 삶아야 한다. 큰 솥에 집어넣었다 뺐다를 몇 시간동안 서너차례 반복하며 삶으면, 가죽이 손으로 구부리기가 어려울 만큼 단단해진다. 튼튼한 건 물론이거니와 모양까지 반들반들해져서, 우리가 판타지물에서 많이 본 가죽 갑옷들과 굉장히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플라스틱 수준의 단단함을 가지는데 베기 공격은 매우 잘 막아주지만 도끼류의 강력한 공격을 받으면 휘어지는 게 아니라 쪼개져버릴 정도이다.
일본계 서브컬쳐에서는 큐일보일(CUIRBOIL) 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로 부르기도 한다.

2.2.2 옻칠 갑옷

육군박물관 소장 두정투구. 머리를 보호하는 검은 부분이 철로 보이지만 실은 옻칠한 가죽이다.

서양에 보일드 레더 아머가 있다면, 동양에는 옻칠이 있다. 옻칠을 하면 옻의 수지 성분이 가죽에 스며들면서 단단해짐은 물론, 옻칠이 가지는 항균/내열/내습효과로 인해 가죽이 튼튼해지면서 잘 썩지 않고 오래간다. 화살과 창검을 막아내는 지갑의 높은 내구력도 소금물과 더불어 종이에 바르는 옻칠에서 오는 것.

2.2.3 가죽 찰갑(Leather Lame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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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갑은 보통 작은 철판 조각을 가죽끈으로 엮어서 만든 갑옷을 말하는데, 금속 대신 가죽 조각을 사용하기도 했다. 국내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유성룡 찰갑이 있는데 옻칠을 하여 가공한 가죽을 엮어서 만든 갑옷이다.

2.2.4 버프 코트 (buff c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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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등장한 소가죽 코트. 의 발달로 금속 갑옷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등장한 갑옷이다. 자세한 내용은 버프 코트 항목 참조

3 금속 갑옷과의 차이

가죽 갑옷과 금속 갑옷은 공격으로부터 받는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점은 같지만, 방어의 메커니즘은 재질과 같이 차이가 있다. 금속 갑옷은 단단하기 때문에 충격을 받으면 그것을 금속이 가진 강도 자체로 견뎌내는 반면, 가죽 갑옷은 충격을 받으면 가죽이 뒤로 밀리면서 충격속도를 완화하여 방어하는 식이다. 천 갑옷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금속 갑옷의 경우 철퇴와 같은 무거운 무기로 공격당할 경우 금속의 전성 때문에 조금씩 휘어 들어가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반면, 가죽 갑옷은 탄성으로 충격을 완화하는 방식이다. 단 내상 보호는 보장하지 않는다.
반면 창이나 화살처럼 날카로운 찌르는 무기가 단박에 훅 날아올 경우 금속 갑옷은 버티지만 가죽 갑옷은 잘 버티지 못하는 편이다. 가죽 갑옷이 견디기에는 순간적인 압력이 강해서 충격을 충분히 완화하지 못하기 때문.

금속 갑옷은 움직일 때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날 수밖에 없는데 비해 가죽 갑옷은 매우 조용하다. 이는 현대의 실험으로도 밝혀졌으며 그래서 게임에서는 암살자나 도둑 계열이 주로 입는다는 설정을 하기도 한다.

중세 갑옷의 대명사인 사슬갑옷과 비교했을 때 베기 공격에는 사슬갑옷이 더 강하지만 철퇴류의 둔기 공격은 오히려 가죽 갑옷이 더 잘 막아주었다. 이것은 사슬갑옷이 워낙 유연해서 둔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발전된 형태의 금속 갑옷인 브리간딘부터는 모든 면에서 가죽 갑옷보다 나은 방어력을 제공했고 판금 갑옷과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4 가격

서브컬쳐에서는 가격이 매우 싼 갑옷으로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 튼튼한 가죽을 위해서는 멧돼지, 들소, 하마, 코뿔소 등의 대형 짐승을 사냥해야 하는에 이것은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고 많이 잡을수록 동물의 개체수가 줄어들어 점점 구하기가 힘들어진다. 고기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가죽은 값이 싸지만 가죽만을 위해 동물을 잡는 데는 훨씬 큰 비용이 든다. 또한 경화 과정 역시 고급 기술이 필요하고 노동력을 꽤나 잡아먹는 일이라 제대로된 가죽 갑옷은 게임에서처럼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현대의 기술로 중세의 갑옷을 만들면 사슬갑옷보다 가죽 갑옷이 더 비싸게 되기도 한다.

5 역사

아무리 가죽이어도 어쨌든 갑옷은 갑옷이기에 보통 멧돼지, 코끼리, 코뿔소 등 가죽이 두껍고 튼튼한 짐승들의 가죽을 재료로 사용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상, 주 시기 수많은 전쟁통에 코끼리와 코뿔소를 닥치는 대로 잡아 가죽으로 갑옷을 만드는 게 중국의 기후변화와 겹쳐 중국 남부에서 코끼리와 코뿔소가 멸종하는 데 일조하였다. 전쟁을 하지 맙시다. 전쟁은 모든 생명체의 원수 고대 이집트에서는 하마악어 가죽 갑옷도 무덤에서 나오곤 한다.

사실 현재로써는 고대에 쓰인 가죽 갑옷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대충 남겨진 기록이라도 없는 이상 알 길이 도저히 없다. 왜냐면 남아 있는게 거의 없으니까. 가죽은 유기물인지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썩는다. 가죽 갑옷은 현역으로 뛸 때도 갑옷 주인이나 병기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줘야만 한다.[1] 그냥 놔두면 여름부터 썩어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고 한다. 하물며 그런 갑옷이 관리할 사람도 없는데 남아있을 리가 없다. 그런 이유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고대의 가죽 갑옷 유물은 이집트나 시베리아처럼 기후로 인해 유기물이 잘 안썩는 곳에 드물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걸 제외하면 오래 올라가 봐야 근세시대 두정갑 정도다. 때문에 기록을 보고 대충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유추되는 정도다.

강력한 무기가 발달하면서 중세 후반으로 갈수록 강력한 금속 갑옷이 가죽 갑옷보다 더 우세해져 간다. 전쟁이라는 것이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무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죽 갑옷보다는 금속 갑옷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액수에 큰 차이가 없다면 차라리 금속 갑옷을 착용하는 쪽이 더 나으니까. 아무래도 전부 금속으로 만들면 비싸고 무거우니까 흉갑 부분만 금속으로 만들고 나머지 부분에 가죽을 덧대는 정도. 픽션 작품의 영향으로 경보병이나 궁병이 썼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시절에는 가죽갑옷 보다는 천으로 만들고 양털이나 헝겊 부스러기를 채워넣은 누비갑옷류가 더 성행했다. 또한 가죽으로 충분한 방어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고 두께도 두터워지는데다가 처리과정에서 유연성도 떨어지게 되어 15세기의 금속 갑옷만도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실용 가죽 갑옷은 통 가죽 갑옷은 드물고 가죽 편을 이은 찰갑 등이 더 많았다.

즉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 싼 방어구, 또는 전사가 아닌 직업을 위한 방어구로서 가죽 갑옷이 전사용의 금속제 갑옷과 공존하는 일은 현실세계에서는 없었던 일이라는 것.
  1. 사실 철갑옷도 빈도만 낮을 뿐 지속적인 관리는 필수다. 방심하면 녹이 슬어 버리기 때문이다. 찰갑같은 경우 가죽찰이면 말할 것도 없고, 철찰도 찰을 잇는 끈을 가죽이나 비단, 천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미늘이 철일 경우 끈이 쓸려 끊어지기 쉬우므로 끊임없이 정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