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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협의 리즈 시절인 원주 동부 프로미 시절.
이름 | 강대협 |
생년월일 | 1977년 3월 13일 |
국적 | 한국 |
출신지 | 부산광역시 |
출신학교 | 동아고 - 고려대학교 |
포지션 | 슈팅 가드/스몰 포워드 |
신체 사이즈 | 187Cm, 86Kg |
프로입단 | 2000년 드래프트 12번(대전 현대 걸리버스) |
소속팀 | 대전 현대 걸리버스(2000~2001) 창원 LG 세이커스(2001~2002, 2009~2011) 안양 SBS 스타즈(2002~2003) 울산 모비스 피버스(2004~2006) 서울 SK 나이츠(2006) 원주 동부 프로미(2006~2009)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2011~2012) |
2006~2007 한국프로농구 기량 발전상 | |||||
송영진(부산 KTF 매직윙스) | → | 강대협(원주 동부 프로미) | → | 이한권(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
2007~2008 한국프로농구 이성구 기념상(모범선수상) | |||||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 → | 강대협(원주 동부 프로미) | → | 주희정(안양 KT&G 카이츠) |
1 소개
KBL 역사상 최고의 저니맨. 황진원과 함께 저니맨으로 꼽히지만, 황진원이 같은 팀을 왔다갔다 한 편이라면, 강대협은 거의 같은 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한 마디로 진정한 저니맨. 하지만, 성실한 플레이로 인정받는 선수라서 저니맨으로서는 오래도록 살아남는 선수기도 하다.
2 선수 시절
고려대를 졸업했지만, 그 자신은 특급 선수는 아니었다. 당시 스포트라이트는 이규섭에게 주로 맞춰져 있었다. 결국 2라운드로 밀려 12번에 지명받고 대전 현대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 당시 현대는 KBL을 주름잡던 막강 팀. 결국 자리가 없어서 첫 시즌이 끝나자마자 2:2 트레이드로 창원 LG로 건너가게 된다. 강대협, 정종선과 김태진, 이상영을 교환하는 트레이드.
그리고 창원에서 한 시즌을 뛴 후, 골밑을 보강하고 싶던 LG의 의도에 의해 표필상이 LG로 가는 조건으로 김병천과 함께 다시 안양으로 트레이드. 안양에서는 앞선 두 시즌동안 거의 받지 못했던 기회를 상당히 받으며 평균 득점 7.3점이라는 제법 괜찮은 활약에 좋은 수비력을 선보이며 처음으로 자리를 잡는가 싶었는데... 영장이 나왔다. 현역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공익근무 요원으로 한 시즌 공백.
제대하니까 그를 중용하던 정덕화 감독도 물러났고, 결국 현금 9,000만원에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트레이드. 모비스에서 백업 가드로서 역할을 수행하다가 2006년 2월 가드진에 공백이 생긴 서울 SK 나이츠가 김재훈과 맞트레이드를 단행해서 서울로 짐을 싸서 올라갔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원주 동부 프로미로 이적.
원주에서는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가드진이 부실했던 원주로서는 어차피 김주성이 샐러리의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특급 가드를 영입할 여력은 없었고, 이 때문에 저비용 고효율을 낼 수 있는 로또를 긁어야 했다. 그 로또가 제대로 터진 것이 강대협. 2006-07시즌, 2007-08시즌에 모두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면서 외곽 슈팅과 수비력으로 2007-08 시즌 동부의 우승에 큰 기여를 하며, 생애 첫 우승 반지를 가져간다.
2008-09시즌까지 동부에서 뛴 후, 다시 FA 자격을 얻었는데, 문제는 그의 연봉이 전체 연봉 랭킹 30위권 이내였고, 하필이면, 다시 FA 자격을 얻던 시점에서 규정이 바뀌면서 연봉 랭킹 30위 이내 선수는 보상 선수를 내줘야 했던 것. 쏠쏠한 백업이지만, 보상 선수까지 가져갈 가치는 있지 않아서 자칫 붕 뜰 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강을준 감독이 그를 눈여겨보고, 사인 & 트레이드 형식으로 2:2 트레이드가 단행되었다. 강대협과 박진수가 창원 LG로 가는 대신에, 박지현과 진경석이 원주 동부로 가는 트레이드.
문제는 09-10시즌부터 3점 라인이 멀어지는 룰 변경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강대협의 3점 적중률은 수직하락하면서 그를 데려온 강을준 감독과 쌍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LG에서 올린 성적은 평균 15분 출전에 6점 득점. 창원 LG가 감독도 바꾸면서 우승을 하겠다고 서장훈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이 번에는 1:2 트레이드로 이현민과 함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트레이드 또한 서장훈을 내주고 데려온게 마찬가지로 끝물에 가까운 강대협과 당장 써먹지도 못하는 이현민이라 전랜팬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그리고 팬들의 우려대로 가드진이 많은 전자랜드에서는 많은 경기에 나오지는 못하는 편.(...)
2011-12 시즌 종료 후, FA로 풀렸지만 전자랜드는 재계약을 포기했고, 다른 팀의 러브콜도 받지 못했다. 2군 드래프트에 참가하거나 은퇴, 둘 중 하나의 길이 남았는데 나이로 볼 때, 사실상 은퇴할 것으로 보였고, 결국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