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 썬더스 No. 9 | |
주희정(朱熙正 / Hei-Jung Joo) | |
생년월일 | 1977년 2월 14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부산광역시 |
출신학교 | 동아고 - 고려대 중퇴 |
포지션 | 포인트가드 |
신체 사이즈 | 181Cm, 79Kg |
프로입단 | 1997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 입단 |
소속팀 | 원주 나래 블루버드 (1997~1998) 수원/서울 삼성 썬더스 (1998~2005, 2015~) 안양 KT&G 카이츠 (2005~2009) 서울 SK 나이츠 (2009~2015) |
등장음악 | Apink - Mr.Chu (SK 나이츠 시절) 티아라 - 넘버나인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
2008~2009 한국프로농구 정규리그 MVP | |||||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 → | 주희정(안양 KT&G 카이츠) | → | 함지훈(울산 모비스 피버스) |
2000~2001 한국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 | |||||
서장훈(청주 SK 나이츠) | → | 주희정(수원 삼성 썬더스) | → | 마르커스 힉스(대구 동양 오리온스) |
1997~1998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 | |||||
프로농구 출범 | → | 주희정(원주 나래 블루버드) | → | 신기성(원주 나래 블루버드) |
2013~2014 한국프로농구 식스맨상 | |||||
변기훈(서울 SK 나이츠) | → | 주희정(서울 SK 나이츠) | → | 유병훈(창원 LG 세이커스) |
2015~2016 한국프로농구 이성구 페어플레이상(모범선수상) | |||||
오용준(부산 kt 소닉붐) | → | 주희정(서울 삼성 썬더스) | → | 2016-17 |
2008~2009 한국프로농구 이성구 페어플레이상(모범선수상) | |||||
강대협(원주 동부 프로미) | → | 주희정(안양 KT&G 카이츠) | → | 윤호영(원주 동부 프로미) |
목차
1 개요
KBL의 기록 제조기, 그리고 프로농구 최초의 신인왕과 최초의 플옵 탈락팀 MVP
서울 삼성 썬더스의 포인트 가드. KBL 통산 최다 경기 출장, 통산 최다 어시스트, 통산 최다 스틸, 통산 최다 반칙을 기록한 살아있는 KBL의 전설이다.
2 선수 생활
2.1 KBL 데뷔 이전
조모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고, 아버지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매번 얼굴을 잊어버릴 때쯤 하면, 다시 집으로 오고 그랬다고.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농구 선수로 성장했다.
동아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으나 당시 고려대에 신기성, 김병철, 김승민 등 좋은 가드 자원이 많아 일찍 빛을 보지 못하였다. 결국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2학년을 중퇴하고 일찍 프로의 문을 두드린 끝에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2.2 나래에서의 데뷔
지독한 연습량으로 연습생 신화를 써내려 갔다. 나래 시절 최명룡 감독은 주희정에 대하여 "밥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운동만 하길래 오히려 내가 말릴 지경이었다" 고 회고했으며, 본인도 농담 삼아 '농구에도 더블 헤더 경기가 있으면 좋겠다' 말한 바가 있다. 대학 중퇴하고 들어온 선수가 데뷔 시즌에 놀라운 활약을 보이며 일약 스타로 부상하는데 성공했다.
본인의 데뷔 시즌인 1997-98 시즌에 신인왕, 스틸상, 수비5걸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나래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맹활약하면서 전년도에 이어 나래가 6강 PO에 안착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마침 신인상에 있어서 가급적 농구대잔치 출신 선수들을 배제하기로 결정된 상황이라[1] 프로농구 초대 신인왕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시즌 성적은 12.7 득점, 4.1 리바운드, 4.2 어시스트, 2.9 스틸.
그러나 대학 시절 그의 앞 길을 가로막던 신기성이 또 다시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면서 그의 앞길이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신기성과 완벽하게 겹치기 때문에 공존은 거의 불가능했고, 결국 당시 최명룡 나래 감독은 기회 보장 측면에서 주희정과 강병수를 삼성으로 보내고, 양경민, 김승기를 받는 2:2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2.3 삼성 시절
주희정은 삼성에서 팀을 이끌며 대활약을 시작했다. 정통파 센터는 없지만, 포워드와 가드 위주로 팀을 꾸려가던 2000년대 초반 삼성에게 주희정의 가세는 안정적인 리딩을 할 수 있는 화룡정점의 순간이었다. 삼성에서 꾸준히 활약하면서 삼성의 부활을 이끈 주희정은 결국 2000~01 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MVP를 받으며 이규섭, 아티머스 맥클레리, 문경은 등과 함께 삼성 썬더스의 우승을 견인한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10.8득점에 11.8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한 것.
그러나 우승 직후 시즌 주희정은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리며 우승하던 시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2001~02 시즌이 끝나며 삼성은 서장훈을 영입하게 되는데 당시 주희정은 플레이 스타일상 서장훈과의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속공과 가드 & 포워드 중심의 빠른 농구에 익숙했던 주희정은 서장훈의 영입 이후, 세트 오펜스 상황에서 위력을 보이지 못하며 팀 컬러에서 겉돌기 시작했다. 그래도 평균 10득점과 어시스트도 준수하게 찍어주면서 이상민, 신기성, 김승현의 속칭 '3대 가드' 보다 조금 아래의 위치를 유지했다.
결국 2004~05 시즌이 끝나고 팀이 서장훈을 선택하면서 안양 SBS의 이정석과 트레이드된다.[2]
2.4 KT&G 시절
2005~06시즌 SBS에서 인수된 팀인 안양 KT&G에서 슬슬 삼성 우승 시의 주희정의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마침 이 때의 KT&G는 속공과 포워드 중심의 농구로 팀 컬러가 변했던 상황이었고, 이는 볼 소유 시간이 길지만 그만큼의 효율을 내던 주희정에게는 딱 맞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06~07, 07~08시즌에는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한몫했다.
2008~09시즌에는 마퀸 챈들러와 화려한 2대2 플레이, 스몰라인업 런앤건을 선보이며 정규시즌 2위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캘빈 워너의 대마초 흡입 사건으로 곧 순위는 곤두박질, 승패가 동률이었던 LG, 전자랜드에 상대전적에서 밀려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시즌 내내 굉장한 활약을 보인 주희정은 결국 MVP를 수상했다(다소 논란이 있긴 했지만 국내 농구 커뮤니티 등에서도 그래도 주희정이 받아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플레이오프 탈락팀에서 MVP 수상자를 배출한 것은 KBL 역사상 최초.
08-09시즌 주희정은 평균 15.1득점, 8.3 어시스트, 2,3 스틸을 기록했으며 올스타전에는 그의 MVP 수상을 지지하는 팬들이 '정규시즌 MVP에 팀 성적이 반영되면 안된다'는 피켓을 든 적이 있다. 결국 주희정은 김주성을 누르고 MVP를 수상했다.
한편 08-09시즌 KT&G는 시즌 시작 전 유도훈 감독이 프런트와의 마찰로 도중 물러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주희정은 한창 플레이오프 경쟁이 치열할 때에 리빌딩을 준비하는 구단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몇차례 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시즌을 마치고 김태술, 김종학과 맞트레이드 되어 SK로 이적했다.
2.5 SK 나이츠 시절
SK 이적 후 SK는 방성윤의 팀이며 좋은 조언자가 되겠다는 인터뷰를 했다.하지만 방성윤은 은퇴크리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며 우승 후보 소리 들으면서도 플레이오프도 제대로 못 나가던 SK와 김진 감독의 승부수였으나, MVP 받고 온 주희정조차도 09~10, 10~11 시즌 SK나이츠를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주희정 본인도 팀과 같이 몰락(...)하면서 트레이드를 야심차게 추진한 김진 감독은 시즌 중도 사퇴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으며, 이때 이후로 평균 득점을 포함한 스탯도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했다.
10-11시즌 개막 전에 김승현과 트레이드 오퍼가 있었다는 말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정지욱 기자 블로그 참조 그러나 트레이드는 이뤄지지 않았고, 팀의 에이스 자리는 2011-12 시즌에 혜성처럼 등장한 김선형에게 넘어갔다. 나이도 분명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기량 저하기는 하지만, 급작스러운 몰락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많다.
2012-13 시즌에는 주전을 완전히 김선형에게 내주고, 벤치에서 뛰고 있다. 전반적으로 뛰어난 활약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없으면 김선형의 체력이 방전되므로 있는 것이 낫기는 하다. 2012년 11월 4일 KGC와의 경기에서 통산 4,900어시스트를 돌파하면서 최초의 5,000 어시스트 돌파를 눈 앞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11월 7일 KGC와의 경기에서 통산 5,000 어시스트를 돌파했다. 현역선수 중 어시스트 2위는 3175개의 김승현, 3위 2122개 임재현, 4위 1913개 양동근인데 모두 주희정이 넘사벽이다. 현재 평균 5.7개로 KBL 어시스트 1위를 달리고 있는 가드 김시래라고 해도 5000 어시스트까지는 20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하다.
SK시절 내내 볼을 들고 코트를 한바퀴 돌면서 공격 시간을 다 소비했기 때문에 동네 한바퀴 돈다는 소리를 박수교 해설위원에게 듣기 시작했다. 팬들 역시 주렁쇠,주봉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또한 실력에 비해서 과한 연봉을 받았기 때문에 먹튀라는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2013-14 시즌을 기점으로 나아졌고 그 결과 생애 첫 식스맨 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로써 KBL 출범 이후 처음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받은 선수가 되었다.
2014-15 시즌에 9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위인 추승균이 738경기, 현역 중 1위가 임재현으로 600경기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이다. 2015년 시즌을 앞두고 식스맨 가드 신재호와 묶여 이정석, 이동준과의 2:2 트레이드로 친정인 서울 삼성 썬더스로 컴백했다.
2.6 삼성 2기
답이 없는 삼성 가드진의 한줄기 빛과 소금.
박재현, 이호현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리빙 레전드의 클래스를 보여줬다. 3.54 어시스트로 팀내 1위, 전체 8위, 스틸도 0.8개로 팀내 2위를 기록했다. 전매특허인 속공 전개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지공 상황에서의 경기 운영능력도 삼성의 안습한 가드진과 비교했을 때 주희정이 왜 아직 현역인지를 보여주는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팀에 가드 레전드가 몇 명인데 주희정이 없으면 볼이 안 돌아가냐 희정이 형 있을때 이호현, 박재현, 이동엽은 정말 많이 배워야 한다[3]
4라운드 중반 이후 출전시간이 더 늘어나면서 퍼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다행히 이동엽과 이호현의 경기력이 상승하고 이관희가 제대하면서 어느 정도 관리를 받고 있다.
삼성의 3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공을 세웠다. 하지만 안양 KGC 인삼공사와의 6강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상대 가드진의 활동적인 압박수비에 많이 고전하였다. 또 극악의 슛컨디션을 보여주면서 1차전 패배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3차전 극적인 한 방을 터뜨려주며 팀의 플레이오프 연패를 끊어냈고, 4차전에서도 높은 3점슛 적중률로 팀의 리드를 이끌어오기도 했다. 팀은 비록 패배했지만, 주희정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다른 모든 가드보다 가장 많이, 가장 오래 뛰었고 그만큼 믿음직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거꾸로 말한다면 삼성 가드진이 그만큼 막장이란 의미지만.
시즌이 끝난 뒤 FA로 풀렸으나 삼성과 보수 총액 2억 원에 1년 계약하면서 20번째 시즌을 채우게 됐다.
3 선수로서의 특징
스피드가 뛰어나다. 전성기때는 지금의 김선형에 비견될만큼 아니 사실은 KBL 역사상 가장 빨랐다고 봐도 되었으며, 리그 탑의 스피드를 지녔었다. 스피드에 바탕을 둔 수비력도 우수했다. 전성기때의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속공 전개에 있어서는 역대 레전드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만큼 뛰어나지만, 그 놈의 스피드때문에 하프코트 오펜스에는 다소 약점을 보인다. 부상과 노쇠화로 스피드가 죽은 뒤에는 이러한 단점이 더 두드러졌다. 그럼 40넘은 중늙은이에게 스피드를 어떻게 바랄까??
데뷔 초 외곽슛에 약점이 있었는데 삼성 썬더스를 우승으로 이끈 시즌에는 주희정에게 외곽슛이 없다고 판단, 노마크로 버리는 수비를 하는 상대팀에 결정적인 3점슛을 여러차례 터뜨리며 통수를 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안경선배? 00-01 시즌 결승 상대였던 창원 LG 세이커스가 이런 뜬금 3점에 제대로 당한 케이스. 안양으로 이적한 뒤에는 3점슛도 안정궤도에 올라 전성기를 맞이한다. 본래 3점이 없이도 정상급 가드였던 선수가 3점마저 장착하니 진부한 표현이지만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 본인에게 특화된, 상당히 특이한 슛폼을 갖고있기도 하다. 농구 꿈나무들은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하프코트 상황에서의 지공은 속공 전개 시 보여주는 능력에 비해 많이 모자라다. 같이 2 대 2 플레이를 해주는 선수가 있으면 하프코트 상황에서도 좋은 위력을 보여주나 같이 움직여주는 선수가 없으면 그냥 보통 포인트 가드 정도. SK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도 본인의 기량 감퇴도 있겠으나 지공 위주의 선수 구성을 가진 SK에서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
점프가 높은 건 아니지만 공이 떨어질 자리를 찾아 쏙쏙 받아가는 리바운드 능력은 일품. KBL에서 한국인 선수 중 리바운드 순위를 꼽으면 서장훈 다음에 위치한 일도 자주 있다. 이런 리바운드 능력으로 한때 디시 농갤, NBA 매니아, I LOVE NBA 등 국내 주요 농구 커뮤니티에서 '주키드'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내구성도 뛰어나서 전성기에는 35분 가량을 출장하면서도 다치는 일 없이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했다. 전성기였던 07-08 시즌부터 12-13시즌까지 단 한경기도 결장한 경기가 없다.
4 기타 사항
- 동시대에 경쟁했던 이상민, 김승현에 비해 평가가 낮았으나 특유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2010년 12월 19일 삼성전에서 통산 4500 어시스트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통산 어시스트와 스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갱신할 선수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2013년 11월 7일 안양 KGC전에서 통산 5000 어시스트를 달성했다. 7일 현재 현역 선수 중 어시스트 2위는 3175개의 김승현(35·삼성), 3위는 2122의 임재현(35·오리온)이다. 2013-14시즌 어시스트 1위인 김시래의 평균 어시스트가 5.7개인 것을 보면 이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 하겠다. 얼리엔트리 + 군면제 + 뛰어난 기량 + 뛰어난 자기 관리의 결과물로 기록에 있어서는 서장훈과 함께 다시없을 레전드
- 트리플 더블도 현재까지 통산 8회를 기록하며 리온 데릭스, 크리스 윌리엄스와 함께 공동 2위를 이루고 있고[4] 국내선수로는 당연 통산 1위다. 희정옹께서는 통산 10회를 기록하고 은퇴하겠다고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무래도(....)
- 거의 프로 원년부터 꾸준하게 뛰어와서 프로농구의 역사와 함께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2016-17시즌 기준 20시즌째) 팬들에게는 프로농구계의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말도 듣는다. 대학을 거쳐서 들어 온 동기들(조상현, 황성인, 조우현, 김성철, 강혁, 조동현 등)이 모두 은퇴한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4-15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프로농구 국내 선수 전체를 통틀어서 문태종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선수다.
- 불우했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좋은 가정, 많은 아이들을 원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이 슬하에 넷이다.
- 또 한가지 불운이 있다면 국내에서의 활약에 비해서 국대 활약이 전혀 없다. 선수 시절 내내 성인 국대 1군에 뽑힌 적이 단 2번밖에 없고 모두 저조한 활약을 펼쳐 국내용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반면 비시즌 잦은 국대 차출에 시달리지 않은 점이 선수로서의 몸 관리와 현역 생활 롱런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