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엔 조수미가 있다면 발레엔 강수진이 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빛낸 발레의 대가
1967년 4월 24일 생. 선화예술학교를 지원했을 때는 한국무용 전공이었으나, 중학교 1학년 때, 발레과에 사람이 없어서 지원자를 받았고 골격 테스트 통과 후 발레를 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선화예술고등학교 1학년이던 1982년에 모나코로 유학을 떠나 3년간 공부하였으며, 1986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초의 아시아인이자 최연소로 입단하여 2015년까지(49세) 활동 했으며, 2016년 50세에 은퇴하였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1994년에 솔리스트, 1997년에 수석 발레리나가 되었다. 발레단 동료였던 터키인 툰치 소크만 씨와 2002년에 결혼하였다. 2016년 7월 예브게니 오네긴의 독일 공연을 끝으로 완전히 은퇴했으며, 대한민국 무대에서는 2015년 11월 오네긴의 예술의 전당 공연이 마지막이었다. 은퇴를 위해 작품을 하나씩 정리했던 것. 2014년부터 임기 3년의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에 취임하였다.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답게, 대한민국에도 같이 따라온 남편 역시 국립발레단에서 무보수 객원코치로 같이 일하고 있다.
1985년 아시아인으로서 2번째로[1] 로잔 콩쿨 (Prix de Lausanne)에서 우승하였다. 1999년 <춘희>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까멜리아 레이디의 마르그리트 역으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상을 받았다. 당연히 한국인 최초이며, 13년 현재 이 상을 받은 한국인은 강수진과 김주원단 2명 뿐이다. 2007년에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정부로부터 궁중 무용가에 해당하는 캄머탠처린(Kammertanzerin)이라는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인간 문화재이고, 이 역시 아시아 최초[2]이다. 이젠 아시아인 최초라는 단어는 생략해도 될 지경 무려 면책 특권이 있다고 한다(!)[3]
이러한 그녀의 기록은 한국 출신 발레리나 중에서는 거의 최초고, 그런만큼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혹독한 연습으로 인해 발의 형태가 많이 흉한 것은 그녀 관련해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이런 발의 형태는 물론 강수진의 혹독한 연습때문인것도 있지만 제대로된 관리를 하지않아서 발형태가 망가진것도 있다. 그녀와 관련된 일화중 연습중발가락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통제를 먹고 발을 붕대로 감고 꾸준히 연습하였다는 일화가 있는데 사실 이건 미친짓이라고 봐도 좋다. 아무리 강수진처럼 되고 싶어도, 일단 무용수나 운동선수들이 부상시, 완전한 회복 때까지는 절대안정을 취하고 충분한 휴식기간을 가지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나라의 '무조건 열심히'라는 사상이 맞물려 이 발사진 한 장 때문에 수많은 무용 전공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음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무용전공자들의 발이 다 저렇게 흉측한것은 아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기관리를 충분히 하면서도(적어도 뼈가 부러지면 쉬면서) 우수한 실력을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무용수들이 많다. 물론 전세계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박지성도 비슷한 발 사진을 가지고 있다. 시인 고은은 그녀의 발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며 찬양했다.
여담으로 슬럼프를 매운 음식, 그것도 아주 매운 음식으로 해결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매운 요리를 주문했을 정도. 셰프들이 요리 과정에서 청양고추와 매운 고추가루를 많이 쓰다보니 눈물까지 흘리면서 준비했으나 강수진이 원하는 '뒷골이 땡기는 매운 요리'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4] 당신을 진정한 격신 발레리나로 임명합니다
놀랍게도 삼겹살을 먹어 본 적이 없다. 특별히 채식주의인 것은 아니고 불고기나 닭고기 정도는 조금씩 먹지만 빨간 고기가 맛이 있는지 모르겠고 자신은 채소가 제일 맛있다고 한다. 콘도그는 유학 가기 전에 먹은 이래 30년이 지났다고 한다.
2016년 5월 10일에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SSG 지식향연에서 1부 강연자로 초청됐는데, 평범한 신변잡기적 내용으로 많은 아쉬움을 일으켰다. 차라리 인생이야기보다는 발레를 통해 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이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과 결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미학적인 이야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1천400개♥로 '당케수진'…'강철나비' 獨서 웃으며 은퇴 2016년 7월 독일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30년 발레인생을 마치고 은퇴하였다.- ↑ 아시아인 최초는 1983년도에 수상한 일본인 요시다 미야코
- ↑ 혈연, 지연 따지는 한국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명창 박동진 옹이 유명한 박칼린을 전수자로 삼으려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던 적이 있다.
- ↑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법을 어겨도 봐주는 특권. 무려 살인을 저질러도 정당한 사유가 있을 시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살인면허 - ↑ 다만 매운 요리를 잘 못먹는다고 했던 서장훈도 강수진의 요리를 먹으며 이 정도면 맛있게 맵다고 할 정도였다. 셰프들이 아무래도 강수진이 즐긴다는 매운 정도를 낮게 잡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