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무어

Gary Moore (1952. 4. 4. ~ 201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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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를 쳤던 사나이

1 개요

영국 북아일랜드 출신의 블루스/하드록/ 기타리스트.

80년대에 일본 바보들이 80년대의 3대 기타리스트에디 밴 헤일런, 마이클 쉥커, 그리고 게리 무어를 들곤 했다.새끼들아 잉베이 무시하냐?[1]

2 바이오그래피

그의 대표곡인 Still got the blues. - 한국에도 많이 알려저 있다.

70년대에는 그의 절친인 필 리뇻이 이끄는 하드록 밴드 '씬 리지'에서 자주 활약하며 하드록 연주를 들려주였으며, 80년대 초엔 프로그레시브 재즈록 밴드인 '콜로세움 2'에서 열정적인 재즈록를 연주하였다. 또 역시 그의 절친이었던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출신의 그레그 레이크, 크림의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나 유명 세션 드러머 코지 파웰의 앨범에서도 연주를 해주었다.[2]

그리고 80년대 초중반부터는 솔로로 활동하면서 딥 퍼플 출신의 이안 페이스나 로저 글로버 등과 함께 격정적인 헤비메탈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 당시 최대의 히트곡은 Empty Room 이라는 하드 록 발라드이다. 한국에서는 KAL기 격추 사고를 노래한 Murder in the sky도 대단히 관심을 모았었다. 이 시기 또 한 가지 특징은, 대단히 파워풀한 보컬을 직접 맡아 하고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물론 저 활동 중간에도 꽤 블루스를 많이 연주하긴 했다. 씬 리지 역시도 블루지한 느낌의 하드록 밴드였기 때문에 그 시절에 유명한 Parisienne Walkways 가 씬 리지의 앨범에서 발표되었고, 그 밖에도 많은 블루스 계통의 곡들을 연주했다.

90년대 들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블루스에 팝 취향을 잔뜩 가미한 곡들과 팝 발라드들을 모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상업적으로 크게 흥행했다. 'Still got the Blues'가 이 때 발표한 대표곡 중 하나다. 그래서 게리 무어는 이런 달콤한 음악만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시기조차도 그는 크림의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와 함께 'BBM'이란 밴드를 만들어 크림 시절에 유행했던 사이키델릭 하드록과 정통 블루스 록을 연주했다.

2011년 스페인에서 휴가를 즐기던중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자연사로(추정되나 원인은 아직까지 불명이다), 그의 나이 향년 58세.[3]

3 평가

에릭 클랩튼과 함께 백인 블루스 기타의 거장으로 불리는, 로이 뷰캐넌과 함께 기타가 운다는 표현이 가장 잘 맞는 기타리스트. 피킹 할 때마다 기타와 함께 호흡하는 듯한 표정과 몸짓 또한 인상적. 물론 미리 짜놓은 것이라는 말도 있다.

특유의 한이 서린듯한 음의 표현력에 있어서는 세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평을 들었으며, 이미 트렌드에서는 멀어진 블루스지만 게리 무어 사후에도 그의 음악을 듣는 대중은 많을 정도로, 그의 음악에는 단순히 악보 위에 펼쳐진 노트 그 이상이 있다고 평가 받는다.

물론 좀 과장이 있기는 하다. 80년대 이후 당대의 블루스,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라면 저 로이 뷰캐넌도 아직 건재하고 있었고, 역시 요절한 스티비 레이 본, 로리 갤러거, 자니 윈터 등등 게리 무어에 견줄만한 인물은 많이 있다. 다만 그들보다 상업적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성공에서 상당 부분은 블루스 그 자체로 성공한것이 아닌, 블루스를 팝발라드화 시켜서 얻은 것이다. 그리고 원래 게리 무어는 하드록/헤비메탈 기타리스트였기 때문에[4], 원래부터도 정석적인 블루스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70년대에서 80년대 당시 대부분의 하드록 기타리스트가 그러하였듯이 블루스를 기반으로한 록 뮤지션이었으며 그 위에 자신만의 애절함을 녹여낸 기타리스트라 평가할 수 있겠다. 그 외 재즈 뮤지션들과 많은 재즈 협연도 하였고 여러 장르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하였다.

깁슨에서 시그네춰 기타가 출시되었을 정도로 레스폴을 애용했지만, 헤비메탈을 하던 시기에는 1961년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잭슨 솔로이스트를 애용하였으며, 초기 유명 연주곡인 The Loner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솔로이스트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HAMER 기타를 사용하였다. 그 이후 깁슨 레스폴을 선물받은 이후에는 계속 깁슨 레스폴을 사용했을 정도로 레스폴 매니아가 되었다.

라고 써져있었으나, 사실 게리무어는 스무살때 전설적인 깁슨 레스폴 그리니를 피터그린에게 팔아달라고 졸라서 구입하고 사용했으며 그리니는 게리무어가 일생동안 가장 좋아했던 기타이다. 그리고 72년도에 찍힌 사진속 게리무어[5]는 그리니가 아닌 레스폴을 들고 있음에 미루어보아 10대 때부터 레스폴을 사용했었다는걸 알 수 있다.
  1. 그리고 그보다 더한 바보들(...)은 지미 헨드릭스, 에디 밴 헤일런, 잉베이 말름스틴을 3대 기타리스트라고 했다.(물론 이쪽은 80년대 한정이 아닌 기타리스트 역사 전체를 통틀어 말하는 거였지만.)
  2. 코지 파웰과 게리 무어가 참가한 돈 에어리의 솔로 프로젝트 앨범 K2에는 겐키 히토미가 보컬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3. 공교롭게도 그의 대표곡 중에 'Spanish Guitar'란 곡이 있는데 슬픈 발라드곡이다.
  4. 그가 초창기에 주로 사용했던 기타인 잭슨 솔로이스트를 만든 잭슨 기타가 바로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기타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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