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콘서트

1 개요

2000년 10월, mbc 게릴라 콘서트 보라매공원편에서 h.o.t 무대장면이다.

2000년 9월부터 2003년 1월까지 방송되었던 문화방송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전 코너로 목표인원수와 도시를 지정해 해당하는 도시를 찾아가 1시간동안 홍보차를 타고 길거리 홍보만 해서, 목표 인원수(보통 5천명)를 넘겼는지에 따라 공연여부가 결정된다.[1]2001년부터 장소는 당일날 아침에 추첨으로 정했는데 듀크는 예외적으로 추첨 없이 바로 안양으로 결정됐다. 이유는 당시 유일한 실패장소가 안양이었고 듀크가 '성패를 예상하기 가장 어려운 가수'(...)로 꼽혔기 때문. 결과는 5024명이 참석하면서 가장 아슬아슬하게 콘서트를 열었던 주인공이 되었다.

다섯번째 출연자인 가수, 배우사업가강현수에게는 흑역사(...)이기도 한데, 앞선 출연자들인 조성모, 핑클, H.O.T., god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진 것을 감안해서 예외적으로 24시간동안의 길거리 홍보가 주어졌으나, 게릴라콘서트 최초 실패를 계기로 가수일과 배우일이 꼬여버렸다(...). 그 밖에도 가수 중에서는 주영훈[2], 클릭비, 최진영, 강수지, 김현철&윤상[3], 가 게릴라 콘서트 개최에 실패한 흑역사가 있다.[4] 비의 경우는 2011년 입대 전 코엑스 앞에서 무료 콘서트를 개최해 데뷔 초기 게릴라 콘서트에서의 굴욕(?)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일밤의 게릴라 콘서트는 단 7번을 제외하고 공연에 성공할 정도로 성공률은 굉장히 높았다.[5][6] S.E.S.는 유일하게 2001년과 2002년에 한번씩 총 2번이나 개최했는데[7] 두 번 모두 성공. 심지어 두번째 공연은 지하철에서만 모집할 수 있다는 패널티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 참고로 S.E.S.의 첫번째 공연 편은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S.E.S. 하면 게릴라 콘서트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최대로 관객이 모인 경우는 2001년 12월 23일 수원시에서 열린 god 공연의 18,521명이라고 한다.[8]
특히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가수들이 공연하기에 가장 힘든 지역으로 대전광역시를 꼽는데, 전통적으로 묵직한 양반 정서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웬만해선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출연자가 안대를 풀 때 나오는 음악은 Steve Raiman의 Songbird이다.

일밤의 게릴라콘서트는 종영된 이후에도 형식만큼은 살아남아서 본가인 MBC의 무한도전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하기도 하는 등 콘서트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다만 프로 자체는 부활이 어려운 게 예전과 달리 SNS가 널리 보급되어 금방 소문이 퍼지는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어지간히 인지도가 떨어지지 않고서야 실패하기가 힘든 형태이기 때문이다.

2 논란

한 때 이 프로그램은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는 전에 보이지 않던 PD 모습까지 나오는 것이 일본의 <전파소년>을 옮겼고, 진행 방법은 물론 제목까지 비슷한 ‘소꼬가 시리다이(그것이 알고 싶다)’는 아직도 계속 방송하고 있다는 증언이었다.[9]

위의 표절 문제보다 더 논란이 된 부분은 게릴라 콘서트의 콘서트 진행 정보가 은밀히 새나간다는 의혹이 잦았다는 점이며 제작진에서는 끝까지 부인했지만 상당 부분은 사실로 드러났다. 일례로 원주시에서 개최된 JTL의 콘서트의 경우, 주로 여중생 내지 여고생을 중심으로 하는 팬간의 정보 공유로 인하여 콘서트 개최 며칠 전에 이미 공연에 관한 정보가 모두 퍼진 실례가 있었고, 장나라의 콘서트는 인구 24만의 중소도시인 목포시에서 1만 7천명을 동원하였는데, 이는 MBC지역국인 목포MBC에서 MBC채널에 오늘 게릴라 콘서트 한다고 자막을 띄워준 덕택이다. 당시 목포사람들은 다 아는 비밀(...).

이 외에도 서울 여의도에서 치뤄졌던 박진영편 때도 MBC에서는 자막을 띄워준 바 있다. 다른 지역의 사례가 있으면 추가바람. 대전에서도 룰라가 게릴라 콘서트한다고 Mbc에서 자막을 띄워 주었다. 또한 진행 과정에서 지나치게 억지감동을 조장하는 등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한편 가수가 아닌 이영자를 위해 게릴라 콘서트를 연 것도 논란이 됐는데, 당시 이영자는 지방 흡입 건으로 반은퇴 상태였기에 더욱 파장이 컸다.

3 역대 출연자 목록

역대 출연자 목록 위키백과를 참조. 다만 주영훈이 성공으로 기록됐다던가 서경석의 입대전 게릴라 콘서트가 10,000명 도전이었다는 게 누락됐다던가 SES의 두번째 게릴라콘서트가 '지하철 안에서만 홍보'라는 조건이 있었다는게 누락됐다던가 하는 오기도 있다.

첫 회는 조성모가 출연했으며, 마지막회의 주인공은 성시경이었다.
  1. 예외적으로 신승훈 편과 코요태 편에서는 30분 간 밀폐된 홍보차를 타고 임의로 정하는 3곳에서 10분 씩 홍보, 나머지 30분은 자유홍보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2. 히든싱어의 반복되는 오리지널 가수의 우승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게릴라 콘서트가 계속해서 성공하다가 자기때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모창자가 우승할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히든싱어2 2회만에 모창자 우승자가 나왔다.
  3. 강수지에 이어 2주 연속 실패.
  4. 비는 원래 목표였던 5천명에서 1천명이 오른 6천명으로 목표를 설정했는데, 결과는 5367명이 나와 공연 취소.
  5. 태진아 첫번째 편은 폭설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었으며(당시 부산은 무려 49년만의 대 폭설이 나던 그 날이었다.), 그 뒤 2001년 8월 29일에 다시 도전해서 게릴라 콘서트 개최에 성공했다.
  6. 다만 위키백과 목록에서 일부는 빠져있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다.
  7. 두번 다 대구에서 도전했다.
  8. 이 경우는 태극기 지참자만 관객수로 인정되는 도전이었는데도 목표인원인 16,000명을 넘긴 것은 대단한 일이다.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