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

조선 수군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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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수영 중에서 북쪽을 지도의 위로 놓을 때 경상도의 오른쪽(동쪽)에 존재하던 수영이다. 왼쪽이라는 건 한양에서 봤을 때 왼쪽에 있다는 뜻. 본부에 해당하던 곳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일대. 수영구와 수영동, 수영강 등 수영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바로 이 경상좌수영이다. 임진왜란 이전 왜구의 침입이 주로 섬이 많은 경상우도와 전라도 쪽에서 벌어졌기에 경상, 전라우수영에 비해 전력이 약했다.

임진왜란 개전시 수사는 박홍이었다. 개전 직전 경주, 울산, 포항, 영덕, 기장 등 경상좌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진포 7개를 남동해안 주 방어선인 동래부, 부산진 인근으로 재배치하였다. 전력이 가장 막강하여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보단 경상감사가 예하 진포를 일제 점검하는 정도로 끝낸 경상우수영, 거북선이란 신형전선 건조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강화요소가 없었던 전라좌수영에 비해 전쟁 준비를 두드러지게 한 군영이었지만 왜군의 상륙지점이 되어 침공을 가장 먼저, 온 몸으로 받은 탓에 부산진, 다대포 등 예하 진포들이 함락되고 수영이 위치한 부산이 왜군 점령하에 놓여 7년 내내 실질적인 해상전력으로 작용하지 못하였다. 수정실록에 기록된 수군의 육군전환론에 관한 논쟁에서 항상 거론되는 수영. 예하 장수들이 왜군을 상대로 수전을 시도한 사례가 한 건도 없고 모두 자침후 농성으로 대응하였기에 적어도 경상좌수영은 지상군으로 전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