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계림로 보검

대한민국의 보물
634호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慶州 皇南 洞象 嵌琉璃玉)
635호
경주 계림로 보검
(慶州 鷄林路 寶劍)
636호
도기 서수형 명기
(陶器 瑞獸形 明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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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로 보검 (慶州 鷄林路 寶劍)

1 개요

유럽 혹은 중동 지역에서 만들어진 5~6세기 신라시대의 . 보물 제635호. 정식명칭은 '경주 계림로 보검'인데 초창기 언론과 TV 보도 탓에 신라 황금보검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철제 칼날과 칼집은 1,5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삭아서 많이 없어졌고 황금, 가넷, 마노 등으로 만들어진 보석 장식부가 온전히 남았다.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경주박물관에 가보면 현미경 수준으로 보석과 세부 장식들을 확대해서 볼 수 있다.

2 상세

파일:황금보검.jpg
복원한 모습을 가정한 복제품. 칼집과 손잡이 부위는 목재고, 칼날의 형태는 평범한 단검날 형태를 하고 있다.

1973년 이름대로 미추왕릉 인근 계림로 도로공사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삼국시대의 흔한 환두대도와 그 형태와 문양이 판이하게 다른데, 한반도 인근이 아닌 서역에서 만들어진 검이 확실해서 주목을 받았다. 검을 장식한 보석은 동유럽 지역 원산의 석류석이고, 소용돌이 문양 또한 불가리아에서 출토된 트라키아[1] 시대의 유물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대유물 전문가 요시미즈 쓰네오(由水常雄)는 계림로의 황금보검을 제작한 금세공 기술자는 로마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며, 주문자는 켈트족 출신의 트라키아 왕이라고 보았다. 함께 출토된 사자머리 버클은 기원전 4세기부터 서기 5세기까지 비잔티움 제국에서 쓰이던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 버클은 원래 황금보검을 차기 위한 허리띠에 달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링크

로마 유리로 제작된 국보 제193호 유리병, 보물 624호 유리잔 등과 함께 신라가 삼국통일 이전부터 일찍이 실크로드 혹은 아라비아 상인들의 바닷길을 통해 머나먼 서역과도 주기적으로 교역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1. 지금의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일대 지역